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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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8화
교주의 비기
분주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가 치워지고 있었고, 형체도 알 수 없게 무너진 건물 역시 수레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저것들이 갈 곳이야 뻔했다.
어디 뒷산에 파묻히거나 강가에 버려지겠지.
쓰레기에게 어울리는 쓰레기 같은 운명이었다.
“서둘러! 빨리빨리!”
그들에게 지시하는 자들은 무신에게 한 자리씩 약속받은 혈교의 고수들이었다.
서열이…….
“몇 위라고?”
“13위 위장호입니다!”
“너는?”
무신이 곁눈질로 묻자 머리가 민둥산인 사내가 각이 바짝 들어서는 답했다.
“15위 현우종입니다!”
“좋아. 잘들 하고 있군.”
별것 아닌 말에 위장호와 현우종이 ‘감사합니다, 대협!’ 하며 힘차게 목을 울렸다.
적라성이 이 모습을 보면 아마 천인공노하겠지.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미 석판 위 강시 신세였다.
“너희들보다 더 높은 서열의 교도가 아직 남아 있나?”
“그게 대부분…….”
“그래, 그래, 내 손에 죽었겠지. 개중에서 남은 놈들이 있냐 이 말이야.”
대답은 현우종이 했다.
“최근 저와 외곽에 나갔던 교도가 한 명 있기는 합니다.”
“몇 위인데?”
“7위입니다.”
혈교는 사파에서 알아주는 대형 문파였다.
그곳의 일곱 번째 손가락쯤 되면 ‘세간이 알아주는 고수’이게 마련이었다.
무신은 7위의 대상을 금세 기억해 냈다.
“우지겸을 말하는 것이로군.”
“알고 계십니까?”
“들어는 봤지.”
무신은 어디론가 향하며 지시했다.
“오거든 내가 부른다고 전해.”
“예!”
그가 향한 곳은 집회장 반대편에 있는 원형의 신전이었다.
교리란 말로 포장된 현혹을 교도들에게 전파하는 곳.
물론 교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혈교의 악(惡)에 현혹되는 게 나쁜 것이지.
그곳은 상당히 컸다.
수천 명도 거뜬히 들어설 것 같았다.
무신은 그곳 안쪽으로 들어가 가장 높은 지점의 문을 두드렸다.
“오셨습니까!”
일을 보고 있던 어느 교도가 무신을 보고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행동이 재빨랐다.
바로 무신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무신은 교도를 따라 기다란 복도를 걸었다.
저 끝에 다다르면 적라성이 그토록 자신했던 ‘그것’이 있을 것이다.
비기.
혈교의 비기.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혈교의 무공은 마교의 그것과 성질만 다를 뿐이지 무(武)에 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야…….
혹시나였다.
뒤지다 보면 쓸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가봐라.”
“예.”
뒷걸음으로 나가는 교도를 뒤로하며 무신은 혈교의 무공서관 앞에 섰다.
들어가니 다섯 장도 넘는 높이에 어지간한 대련장만큼 넓은 내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서너 장 간격으로 서적이 꽉꽉 진열되어 있어 언뜻 보기에는 아까 집회장보다도 좁게 느껴졌다.
무신은 미리 교도에게 들은 대로 검법과 심법, 그리고 보신경이 놓인 공간만을 찾아갔다.
일단 검법과 심법부터 뒤졌는데, 과연 예상 그대로였다.
달리 건질 것이 없었다.
‘검법은 기대도 안 했고… 심법이야 백산자화신공이 있으니… 뭐, 됐군.’
무신은 큰 미련 없이 바로 옆 책장으로 넘어갔다.
갖가지 보신경에 관련된 무공서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폈다.
어떻게 익히는가를 보는 게 아니었다.
어떠한 성질을 가졌는가를 봤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이전과 똑같았다.
성에 차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진짜가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야.’
무신은 서관을 나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신전의 꼭대기.
그 바로 아래층에 혈 자가 큼지막하게 걸린 입구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혈 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문고리가 금강석이었다.
‘돈지랄은 여기저기 다 해놨군.’
무신은 주인 없는 그곳의 문을 잡아당겼다.
내부는 지독히도 어두웠다.
그럼에도 안내하거나 관리하는 교도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했다.
교주서관.
이곳은 원로들초차 출입을 금하는, 오로지 교주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
실질적 교주가 된 무신에겐 자유로운 공간이 된 것이고.
“이야.”
전등을 켜 내부가 드러나자 무신은 육성으로 감탄을 토했다.
아까 무공서관보다도 큰 공간에 오만 가지 보석이 채워져 있었다.
방금 전 문고리의 금강석은 그냥 길바닥 돌멩이 수준이었다.
그는 단백석으로 된 벽면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달랑 하나만 놓인 책장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달랑 하나였다.
하지만 그만큼 꽂힌 서적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우경비. 구보전답. 천라지경. 죽간만 아니었으면 그것들도 여기 꽂혀 있었겠군.’
무신은 파천에서의 그날을 회상하며 하나씩 서적을 빼들었다.
정확히는, 서적이라기보다 비급.
무인으로서 평생 한두 번 만져보기도 어려운 것이 줄줄이 꽂혀 있는 것이다.
대혈초왕신공이나 귀경대혈초왕신공도 물론 포함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살살 말려 올라갔다.
마음만 먹으면 그도 그것들을 익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유는 아까와 똑같았다.
무도에 어긋나는 무공을 익히기 싫었다.
정사의 구분을 떠나서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집중의 무서움이었다.
양옆으로 갖가지 비급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널찍한 창 안으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들어와도 무신은 비급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눈이 쫓기에는 권수가 너무 많았기에 결국 잠이 들었지만, 어차피 내일이 있었다.
모레도 있었다.
그는 매일매일 그곳에 엉덩일 깔고 앉았다.
많아봤자 일반 무공서보다 한참 적은데 어찌 더 오래 걸리겠느냐마는, 읽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비급은 좀 더 면밀히 살폈다.
단순히 성질만 보고 넘기기에는 그것이 가진 가치가 너무 컸다.
혹시나 가지고 있는 무공에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무언의 기대.
실제로 그는 이튿날 정오, 쓸 만한 보신경을 하나 찾아냈다.
당연히 무도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나 그 점을 빗겨내면서 기존의 무공에 연결시키는 게 가능했다.
쇠뿔은 단김에 빼는 법이렷다.
그는 책장에서 물러나 두 발을 딛고 섰다.
그리고 곧장 수련에 들어갔다.
수련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가 다시 양반다리를 깔고 앉은 것은 불과 반 시진도 안 지났을 때였다.
비급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숙련도가 너무 높았다.
한두 번만 따라 해도 바로 몸에 익혀졌다.
통달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몇 가지 비급을 더 제 것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심법에는 전혀 도움될 것이 없었으나 일전에도 말했듯 백산자화신공이면 이미 충분했다.
차후 더 좋은 것을 익힐 기회가 오기도 할 것이고.
다시 이틀이 더 지난 밤, 무신은 텅 빈 책장을 바라보았다.
오직 적라성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혈교의 비기가 이제 그의 머릿속에도 들어와 있었다.
물론 진짜 익힌 것은 열댓 개에 불과하지만 글자로라도 알았다는 게 중요했다.
이쪽으로는 더는 미련이 안 남을 테니 말이다.
그는 지저분하게 너부러진 비급을 한데 모았다.
멀리서 보면 종이쪼가리였으나 가까이서 보면 금괴 수백 짝을 갖다줘도 못 얻을 보물덩어리였다.
그는 그것을 검강으로 내리쳤다.
지체 없이.
고민 없이.
그냥 그대로 바로 내리쳤다.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혈교의 무공 역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널찍한 공간에 거뭇한 가루만 흐물흐물 휘날렸다.
모든 게 지워졌다.
‘나한테 쓸모없다고 남을 줄 수는 없지.’
무신은 만족스럽단 미소를 띠웠다.
그도 물론 알았다.
이것은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그가 그랬듯 여타 무인도 얼마든지 자신의 무공과 연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조금도.
의와 협이란 말로 대신할 뿐이지 강호도 결국 치열한 경쟁사회였다.
당장 같은 가문 내에서도 가솔들끼리 입지를 위해 중상모략을 펼치는데, 일개 검객에 불과한 자가 왜 그런 선심을 베푸느냔 것이다.
그게 무신의 생각이었다.
“작업은 어찌 돼가?”
“아, 오셨습니까!”
무신은 잿가루가 된 혈교의 무공 역사를 창밖으로 휘날린 후, 적라성의 안식처를 찾았다.
강시 제작을 위한 지하 주술장이었다.
“인사는 됐으니 진행 상황이나 얼른 설명해 봐.”
“예! 일단 보고 말씀 나누시지요.”
생체 화학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진 않았으나 역설적이게도 한번 보고 싶기는 했다.
무신은 나성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첫날의 그 강시술사들이 분주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몇몇은 주문을 외우고.
몇몇은 이상한 물질을 집어넣고.
몇몇은 서걱서걱 칼질을 하고.
완성 후만 봤지 과정 중은 처음이라 무신의 눈에는 죄 해괴한 동작으로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지기는 했다.
적라성의 몸뚱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
목 아래서부터 사타구니 위까지 칼집이 나 있었고, 시뻘겋던 살갗 군데군데에 거뭇한 반점도 나 있었다.
무신은 갑자기 의문스러웠다.
이렇게만 보면 누가 봐도 죽은 놈이었다.
“이거 살아 있는 거야?”
“예, 물론입지요.”
나성로가 친히 설명했다.
“독을 써 정신만 잃게 했습니다.”
“육신은 깨어 있는데?”
“그렇습니다.”
당가의 독기를 떠올리면 될 것 같았다.
듣고 보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상이 적라성이란 점에서 여전히 이해가 안 갔다.
“이놈 무위 수준이 있는데 그깟 독이 먹힌단 말이야?”
“눕혀놓고 왕창 들이부으면 안 될 것도 없습니다.”
“무슨 독인데?”
그래, 그것을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나성로가 ‘이것입니다’ 하며 검지만 한 병을 하나 들고 왔다.
안에서 거뭇한 액체가 넘실거렸다.
무신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진백독이로군.”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진백독.
나성로의 말처럼 상대를 완전히 제압만 하고 있다면, 화경 언저리까지도 기절시킬 수 있는 극악의 독물이었다.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들었는데 과연 혈교는 혈교였다.
‘만약 내가 맞으면 어떻게 될까.’
순간 섬뜩했던 무신은 이내 팔두사의 내단을 떠올렸다.
진백독의 독성이 아무리 강해도 그것 앞에선 시큼한 액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영약 같은 것은 다 주입했나?”
적라성의 허벅다리를 가르고 있던 술사 하나가 얼른 대답했다.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럼 뭐야?”
“예?”
“완성되면 그대로 혈수라철골강신 거야,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야?”
“저희도 이렇게 만드는 것은 처음이라…….”
“그래? 그럼 깨어나는 대로 내가 작명 하나 해야겠군.”
나성로가 옆에서 ‘근사한 이름을 뽑아내실 것 같습니다’ 하고 굽실거렸다.
이거야 원, 정말 완벽한 오판이었다.
이곳 교도들이 적라성에게 충성심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은.
“좋아, 이대로 계속 가.”
“예.”
“대신 열흘 넘기면 안 된다는 건 명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
더 있다가는 산송장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무신은 그만 주술장을 나왔다.
그새 날이 어둑어둑했다.
그는 배부르게 저녁을 해결하고는 집회장 옆의 건물을 찾았다.
대련장이었다.
거기서 간단한 운기조식을 한 후, 그는 그나마 맷집이 좋을 것 같은 교도들을 오십 정도 추려 그곳으로 불렀다.
“일렬로 나란히 서봐.”
“예? 아, 예예!”
“거기 좀 더 붙고.”
“예!”
한 덩치씩 하는 사내 오십이 열 맞춰 선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장관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목각인형 신세에 불과했다.
교도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굴릴 때, 무신은 검을 뽑아 들었다.
요 며칠 글자만 읽느라 뻣뻣해진 몸을 좀 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