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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5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5화

도어검

 

 

흑라신검이 옆구리살을 뚫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스친 게 아니었다.

손끝에 살갗의 감촉이 전해질 정도로 아주 깊숙하게.

무신의 뺨에 시뻘건 피가 튀었다.

피가 피 같지 않았다.

적라성의 몸이 워낙 시뻘건 탓이었다.

무신은 반대쪽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는 여유까지 보이며 서서히 적라성을 잠식해 나갔다.

22만 년 동안 갈고 닦은 검술이 물론 그 원동력이었다.

그의 섬세한 그것에 적라성은 사면초가였다.

막기에만 급급했다.

간간히 반격을 시도했으나 먹힐 턱이 없었다.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그에 반해 무신은 적라성의 허점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의 눈에는 그것이 다 보였다.

적라성이 아무리 발악해 봤자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그는 박룡격의 초식을 밟았다. 망령의 숲에서 특히 더 신경 써서 익힌 검술이었다.

그의 몸이 한 마리 용처럼 꿈틀거렸다.

맹렬하게 퍼붓는 공세에 적라성의 가슴팍에 사선으로 검상이 새겨졌다.

철룡광랑검까지 더해졌으니 상처는 더더욱 컸다.

서로 다른 무공을 어찌 더하겠느냐마는 무신에겐 쉬운 일이었다.

익히는 데만 수백,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까짓 조화로움 하나 못 찾겠는가.

단순히 비슷한 부류의 검술만 섞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중검에 쾌검이나 화검을 더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포원경이 의류의 장인이라면, 무신은 검술의 장인이었다.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니 작업은 금방 종점을 향해 달려갔다.

무신은 잠깐 숨을 골랐다.

적라성의 몸에 도드라질 정도로 빈틈이 드러나 있었다.

저곳 어딜 찔러도 치명타가 될 것이다.

무신은 개중 한 곳을 노려 회심의 일격을 꽂았다.

 

“우엑!”

 

적라성이 괴음과 함께 피를 토했다.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갔으면 단전이 파괴됐을 텐데.’

 

무신은 아쉬움을 토했다.

하지만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적라성을 강시로 만들 계획이니 육체든 어디든 멀쩡한 편이 좋았다.

그래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괴로워하던 적라성이 대뜸 크흐흐흐흐흐흐흐흐! 광소를 터뜨렸다.

진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일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일까.

아니면… 뭐가 됐든 제정신은 아니었다.

무신은 흑라신검을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이 현실이 안 믿기는 모양이야?”

 

반쯤 죽여놔야 정신을 차리겠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적라성의 복부를 재차 노렸다.

이번 한방이면 싸움은 분명 종점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흑라신검이 찌른 것은 허공이었다.

적라성의 몸뚱이는 그보다 약간 옆에 있었다.

무신이 실수한 게 아니었다.

적라성이 몸을 튼 것이다.

 

‘피했어?’

 

무신은 조금 놀랐으나 곧장 다시 검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도였다.

그의 검은 가만히 있는 허공만 또 헤집었다. 덕분에 무게중심이 살짝 앞으로 쏠렸고, 적라성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적라성에게 처음으로 내준 빈틈이었다.

다행히 그는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빗겨냈다.

먹잇감을 놓친 혈성검이 부르르 울부짖었다.

적라성이 그것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무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콰쾅!

무신은 검을 옆으로 돌려 막아냈다.

검신에 맞닿은 힘이 마치 거대한 바윗덩어리 같았다.

그뿐이랴.

가공할 속도였다.

적라성이 검을 치켜들어 내려치기까지의 그 순간, 쫓아가지 못할 뻔했다.

 

‘또 무슨 해괴한 무공을 쓴 거야? 지랄 맞군.’

 

그는 투덜거리며 적라성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택도 없었다.

적라성이 꿈쩍도 않고 검을 휘저었다.

마치 광인(狂人)처럼.

한순간에 상황이 반전되었다.

무신은 막기에 바빴고, 적라성은 찌르고 베기에 바빴다.

하지만 무신이 의아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적라성이 멀쩡했다.

살가죽이 훤히 드러난 옆구리나 너덜너덜한 팔다리, 속을 뒤집어봐야 알겠으나 내상도 여전할 텐데 전혀 고통스럽단 얼굴이 아니었다.

평온하면 평온했지.

 

‘상처가 있는데 고통은 없다…….’

 

무신은 쉽게 답을 찾았다.

강시였다.

적라성은 지금 강시가 된 것이다.

마교의 마공이 아니고서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공은 이 세상에 없었다.

정말 마공을 쓴 것이라면?

 

‘그럴 리는 없지.’

 

무신은 확신했다.

사파와 대립 관계에 있는 마교가 혈교에게 자신들의 비기를 넘겨줄 리 만무했다.

그러니 답은 강시뿐이었다.

무신은 기가 찼다.

아무렴 활강시라는 게 있다고는 해도 날 것 그대로 강시가 된다는 것은,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대체 혈교는 얼마만큼의 금술을 쓰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 저런 식의 강시화는 처음 보았다.

회귀 전에도 듣지 못했다.

 

‘강시술 자체도 꽤 오래 지나서 알려졌으니까.’

 

무신은 그런대로 수긍하며 아랫입술을 바짝 물었다.

몸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단순히 각 잡고 싸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사투.

목숨도 내놓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물론 예상에 없던 경우였다.

무신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적라성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화경?

어차피 그도 화경이었다.

오히려 22만 년의 경험을 덕에 수십만 배는 더 앞서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판단 착오라면 판단 착오였다.

그런데…….

 

‘좋아.’

 

무신은 이 상황을 즐겼다.

적라성이 귀경대혈초왕신공을 썼던 때처럼 이번에도 웃고 있었다.

호각을 다툴 수 있다는 것.

싸울 의미가 있다는 것.

그는 그게 좋았다.

성취감도 일격으로 끝낼 때보다 치고 박는 혈전 후에 끝낼 때가 더 들지 않을까.

그러다 위험한 상황이 나오면 후회밖에 더 들겠느냐마는, 그는 자신 있었다.

얼마든지 말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적라성의 공격은 투박했다.

속도와 힘.

그것으로 찍어 누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투박한 것이지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읊는 초식은 백산검법에 견줘도 꿇리지 않을 만큼 세밀하고 정교했다.

모르긴 몰라도 혈교의 비기겠지.

공통 검술이나 각 문파에 전파된 유명 검법이었다면 바로 알아봤을 것이다.

 

‘애당초 혈교의 교주가 공통검술 같은 것을 쓸 리도 없고.’

 

무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적라성과 똑같이 나섰다.

그도 그만의 비기를 썼다.

백산자화신공.

접전 중에 운기조식을 하겠느냐마는, 귀경대혈초왕신공과 마찬가지였다.

그저 신체를 다스릴 뿐이었다.

그는 단전 내 내공을 온몸으로 돌렸다.

그 순간에도 적라성의 공격은 원천 차단 했다.

어렵지 않았다.

적라성이 무슨 수를 쓰든 그의 눈에는 아까와 동일하게 다 읽혔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아무리 빨라봤자 유림보다는 빠를 수 없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지긋지긋했는데 그 대련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는 접전 중에 회상까지 할 만큼 다시 여유를 찾았다.

그만큼 적라성의 속도는 무신에게 별 타격이 되지 못했는데, 마냥 좋아만 할 것은 못 되었다.

눈으로 쫓아도 몸으로 쫓지 못하면 무의미였다.

무신은 그것을 염려해 이렇듯 백산자화신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내 그의 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적라성처럼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내부에서는 이미 들끓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백산자화신공은 온몸을 단전화시키는 심법이었다.

내공이 폭등함과 동시에 체내 회전율이 수직상승하니 그의 전투력은 갑절로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전투에서 증명됐다.

그가 다시 상황을 뒤집기까지 채 오십 합도 걸리지 않았다.

오십합은 초식 하나도 못 읊을 아주 짧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분명 그의 편이었다.

콰콰쾅!

혈성검에서 폭발이 일었다.

흑라신검에 가미된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검이 그 지경이니 주인이야 뻔했다.

그대로 뒤로 곤두박질쳤다. 일그러진 적라성의 얼굴에 경악스러움이 가득했다.

무신은 지체하지 않고 흑라신검을 내리 꽂았다.

적라성이 혈성검을 횡으로 틀어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자세가 문제였다.

넘어진 데다가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

무신의 몰아치는 공세에 결국 열 장도 더 뒤로 날아갔다.

적라성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밀려나지 않았으면 팔다리 중에 어느 한쪽은 내줬을 것이다.

 

‘그럴 걱정은 말라고. 튼튼한 강시에게 사지 멀쩡한 것은 필수니까.’

 

무신은 크큭거리며 적라성에게 다가갔다.

터벅터벅.

그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양옆으로 깔린 교도들이 입을 떡 벌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말 그러고만 있었다.

못 볼 광경을 봤다는 듯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듯이.

둘 중 뭐가 됐듯 저들의 이해를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누군가 간신히 입을 열었으나 ‘저도 모르게’였다.

마음속의 감정이 순간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무신의 신경을 거슬리기라도 할까 급히 입을 다물었다.

두 손으로 꽉꽉 눌러서.

무신은 그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음에는 죽여도 죽여도 계속 달려들길래 혈교의 교리가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저들도 사람이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이란 공포 앞에선 아무리 대단한 교리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결국, 교주보다 교리보다 그냥 힘이었다.

힘만 있으면 됐다.

이 강호란 세계에서는 말이다.

 

“크흑,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아직 말할 힘이 남으셨나?”

 

무신은 적라성에게 다가가며 그렇게 물었다.

적라성이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답했다.

 

“여력이야 있지.”

“호오, 그래. 혈교 교주가 이리 쉽게 당할 리는 없지.”

 

이리 쉽게.

그 말도 다 무신의 입장에서였다.

적라성은 여태까지 대혈초왕신공에 귀경대혈초왕신공에 강시화에 갖가지 혈교의 비기까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과정만 놓고 보면 폄하될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적라성 스스로도 인정했다.

 

“내가 심각하게 자만을 했구나. 네놈이 나보다 나을 수도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된 거다.”

 

두 사람의 거리는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흑라신검이 혈성검, 아니, 적라성을 점차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적라성은 웃고 있었다.

무신이 그에게 그랬듯이.

 

“허나 네놈도 잘못 생각했다.”

“응?”

“네놈이 나보다 나을 수는 있어도 강할 수는 없지. 크큭.”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적라성의 눈이 번쩍였다.

그리고 무언가가 허공 위로 피어올랐다.

그의 몸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너부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피어오른 것은 그의 검이었다.

혈성검이 그의 손을 벗어나 허공에 떠올랐다.

절망에 찌들어 있었던 교도들이 ‘저, 저것은!’ 하며 일제히 한발 앞으로 튀어나왔다.

 

적라성이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맨손을 들춰 보이며 말했다.

 

“나는 화경의 고수다. 신검합일, 그리고…….”

“신검합일에 뭐? 이런 거? 이런 거 운용할 수 있다 말하고 싶은 건가?”

 

허공에 떠오른 혈성검 앞에 흑라신검이 마주했다.

그것 역시 주인의 손을 벗어나 있었다.

이기어검(以氣馭劍) - 도어검(導馭劍).

무신이 한 십구만 년 전 쯤에 이룬 경지였다.

 

“그냥 네가 다 잘못 판단한 것이다. 너는 나보다 나은 점도, 강한 점도 없어.”

 

흑라신검이 매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그것이 노리는 먹잇감은 도어검의 이치를 두어 개나 깨달았을까 싶은 아련한 혈성검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부딪치기 무섭게, 혈성검이 산산조각 났다.

그에 반해 흑라신검은 허공을 제 세상인 것처럼 춤을 췄다.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수만 년을 봐왔는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무신은 그것을 적라성의 목덜미로 움직였다.

호각을 다툴 줄 알았건만 결국은 시시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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