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2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2화
칠표
탁 트인 전방이 혈교 특유의 붉은 문양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나, 둘, 셋… 세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구름떼였다.
무신은 그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대부분 영향력 없는 일반 교도들이었다.
영향력이 없다는 것은, 간단하다.
무위가 낮단 뜻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지휘하는 자들은 사뭇 달랐다. 타고 있는 말부터 적마(赤馬)로 기백이 넘쳤다. 눈썹을 가릴 정도로 푹 눌러 쓴 적모(赤帽)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마저 느껴졌다.
무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대지가 요동쳤다.
멀리 양옆으로 줄줄이 뻗은 아름드리나무들도 따라 뒤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적모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내공을 터뜨리고 있었다.
걸리는 것은 모두 베고 썰어버리겠다는 듯 쌍심지도 활활 태우고 있었다.
하늘 위를 비상하던 수십 마리의 매들도 그것에 놀라 닭처럼 푸드득 자취를 감추었다.
걸리면 분명 죽음이었다.
하지만 무신은 여유롭기만 했다.
일반 교도들이야 당연히 볼 것도 없고, 적모인들도 딱히 신경 쓸 거리가 못 되었다.
‘저들은 우백관이나 허대관은커녕 혈사대보다도 못해.’
무신에게는 그저 하룻강아지였다.
물론 저들의 정체를 알지는 못했다.
회귀 전의 기억이나 배춘삼의 정보가 있다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또 그만큼 입지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법 유명세를 떨쳤다면 무신이 모를 수가 없다.
무신은 윗입술을 핥으며 검을 한번 휘저었다.
일류무사쯤만 되도 간단히 구사하는 검풍이 초절정 고수의 검격처럼 맹렬하게 허공을 찢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검풍은 폭풍처럼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갔다.
무신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독했던 평지에 시끌시끌한 비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통성이 아니었다.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유언이었다.
털썩!
말 아래서 우후죽순 시체가 피어났다.
화경의 검풍을 이기기에 일반 교도들의 몸뚱이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상체가 쩌억 찢어지며 붉은 씨앗을 허공에 흩뿌렸다.
“웬 놈이냐!”
수십 명이 골로 가고서야 무리는 무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무신이 연거푸 검풍을 날리자 구름 떼가 따로 없었던 교도들이 대반수 바닥을 굴렀다.
무리는 금세 조촐해졌다.
적모인들만은 목숨을 건졌으나 출혈이 심했다.
교도들 뒤를 따라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무신은 그들에게 유유자적 걸어갔다.
구보전답에 화산파의 비기까지 익힌 그였기에 가벼운 걸음으로도 순식간에 그들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무슨 일로 이리 단체로 나오셨대들?”
그의 물음에 답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입이 굳어서 도무지 떼어지질 않았다.
마치 교주를 대면하는 기분.
그의 기압은 그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나마 정신이 말짱한 적모인 하나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서, 설마 네가 바로 그…….”
무신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파천검을 들었던 검객을 찾는 거라면, 내가 맞다.”
무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모인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본인들이 찾는 사람을 찾았으면 기뻐하진 않더라도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다들 좌불안석이었다. 억지로 끌려온 사람처럼.
무신은 대충 짐작해서 물었다.
“교주가 무작정 잡아오라던?”
적모인들의 눈알이 심히 흔들렸다.
방금 전 요동쳤던 대지도 저만큼은 아닐 것이다.
무신은 문득 궁금해졌다.
“헌데 조금 이상하군.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겨우 너희 정도 무사만 보냈단 말이냐? 아니면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건가.”
적모인들도 고수였다.
초절정 정도는 못 되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무신 앞에선 삼류무사와 다를 게 없었다.
상대적 차이였다.
어쨌거나 무신이 묻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적라성이 그것도 감안하지 않고 일을 작당한가 싶어서.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마른하늘에 번개가 내리 꽂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신은 적모인들을 두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번개는 적모인들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무신이 서 있던 자리였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으면 산 채로 고깃덩어리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번개의 여파가 제법 커 적모인들은 그 신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무신은 검게 그을린 시체들을 뒤로한 채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일련의 무리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진즉에 무리를 눈치채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번개가 내려와 꽂힐 줄은 몰랐다.
‘뇌전 쪽 무공을 익혔다는 건데.’
그는 무리의 정체를 금방 파악했다.
혈교에서 그 무공을 익힌 부류는 하나였다.
혈교칠표(血敎七豹).
이름만 그럴싸할 뿐 저들 역시 강시였다.
본래는 1555년 봄에나 모습을 드러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몇 년을 앞당겨 나타난 것이다.
물론 저들에게 여의치 않은 상황을 만든 이는 바로 무신이었다.
우백관마저 도륙내면서 저들이 차선책으로… 무신은 고개를 저었다.
순수 무위는 우백관이 우위일지 몰라도 저리 일곱이 다 모이면 혈교칠표가 제일이었다.
뇌전.
내공을 번개처럼 다루는 무공.
1555년 봄, 오죽하면 혈교칠표의 그것보다 빠른 무공이 없단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무신은 눈을 빛내며 그들을 주시했다.
주시한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이미 그의 지척까지 와 있었다.
동시에 그를 둘러쌌다.
강시였기에 달리 입을 열지는 않았으나 매서운 살기로 그를 옭아맸다.
그리고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선 검이었다.
일곱 개의 검이 주목하는 것은 오로지 무신의 목이었다.
무신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들 대가리도 멍청하기 짝이 없군. 혈교칠표라면 또 다를 줄 알았던 건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무신과 혈교 고수들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차라리 교주 본인이 직접 오는 게 애꿎은 피해를 줄이기에는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무신은 내공을 끌어 올려 온몸에 강기를 쳤다.
그까짓 번개 따위야 맞아도 얼마든지 견딜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남기기 싫었다.
“누구부터 요리해 줄까.”
누구부터랄 것도 없었다.
어차피 다 죽여야 할 짐승들이었다.
무신은 짧게 발을 디뎠다.
그의 신형 뒤로 목 하나가 잘려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의 목이 잘려 나가기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번개 따위는 내려쳐지지도 않았다.
무신이 그럴 시간을 허락할 리 없었다.
혈교칠표의 것까지 더해 전장에는 수백 개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중 몇 구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가느다란 호흡이 살려주길 갈망했다.
뼈가 튀어나온 몸을 붙잡고 그러는 꼴은 제법 재미난 광경이었다.
‘카메라가 있으면 찍어두는 건데.’
무신은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말에 올라탔다.
저 목숨들이야 어차피 시간이 알아서 끊어줄 것이다.
굳이 두 번 일할 필요 없었다.
가짜라고는 해도 번개가 내려쳐서인지 난데없이 바람이 불었다.
온몸에 뒤덮이는 그것이 무신은 몹시 개운했다.
그러나 진짜 개운함은 지금보다 나중이었다.
바람 뒤로 드러나는 혈교의 전경.
그는 어깨며 팔이며 잔뜩 묻은 피를 닦지도 않고 그곳을 향해 내달렸다.
이제야말로 정말 코앞이었다.
작은 점만 한 것이 엄지만 하게, 엄지만 한 것이 주먹만 하게, 주먹만 한 것이 이내 지척까지 왔다.
난생처음 본 혈교는 입구에서부터 그 특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뻘건 문양이 아치형의 대문에 새겨져 있었다.
문지기는 둘이었다.
7척이 넘는 거대한 체격의 사내들이었는데, 손님을 받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무신이 도착도 전에 검풍을 날린 탓이었다.
무신은 단말마 비명도 못 낸 시체를 지르밟으며 혈교의 문을 열어젖혔다.
검강을 갖다 댔으니 실상은 터뜨렸단 말이 더 어울렸다.
콰쾅!
육중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돌가루, 그리고 혈 자가 박힌 깃발이었다.
혈교의 상징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누구냐!”
소란을 듣고 교내에 대기 중이던 교도들이 모여들었다.
얼핏 봐도 수십이 넘었다.
수준 또한 대부분이 일류 이상이었다.
그러나 무신에겐 아까 마주쳤던 벌레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널찍하게 휘둘러 이번에도 역시 검풍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갈대처럼 쓰러지는 꼴이 어떤 의미에선 장관이었다.
입구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가 이렇게 대놓고 존재를 드러내는 이유야 뻔했다.
어차피 결국에는 다 부딪쳐야 할 놈들이었다.
그럴 바에야 일찍 잡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갈 것이었으면 애당초 혈교를 칠 생각도 안 했다.
혈교는 두려움을 가진 자에게 무너질 만큼 작은 문파가 아니었다.
무신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교주가 있을 곳을 찾았다.
소란에 소란이 겹쳐 다시 교도들이 모여들었으나 같은 상황만 반복될 뿐이었다.
오기 무섭게 죄다 쓸려 나갔다.
‘이대로면 가만히 있어도 교주가 오겠군.’
무신은 유연하게 계획을 바꿨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가 혈교를 초토화시킨 것은.
***
혈교칠표가 못 미더운 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들이 못 미덥다기보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지레짐작이라고는 해도 상대는 혈수라철골강시가 된 부교주 우백관까지 잡은 고수였다.
적라성은 그래서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직접 나서서야만 이 빌어먹을 사슬이 끓길 것 같았다.
그는 혈성검(血星劍)을 꺼내 들었다.
그에게 혈추귀란 별호를 달게 해준 물건이었다.
과연 그것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무섭게 핏빛 내공을 뿜어냈다.
어지간한 고수도 이 앞에선 꼬리를 살랑이는 개새끼가 될 것이다.
실제로 적라성은 오직 이 혈성검 하나만 들고 정파의 문파 하나를 초토화시킨 적이 있었다.
제법 걸출했다던 장문조차 일격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 이게 무슨!”
진짜 초토화된 곳은 본인의 안채였다.
지상으로 올라온 적라성에게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의 향연이 펼쳐졌다.
하나같이 문이나 벽에 부딪쳐 죽어 있었다.
검풍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거대한, 아주 거대한 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내 지하에 있었던 적라성은 그제야 그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이번에도 적라성의 머릿속에 스치는 존재는 단 한 명이었다.
그 검객.
마침,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오던 교도들 중 하나가 적라성에게 소리쳤다.
“교주님! 그 검객이 교원 안으로 침입했습니다!”
“칠표는 어찌 됐단 말이냐!”
“그, 그것은…….”
소리친 자는 일개 교도였기에 당연히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라성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는 답이었다.
혈교칠표가 ‘어서 가보시오!’ 하며 길을 내줬을 리 없는데…….
그 검객이 교원 안으로 들어왔으니…….
죽은 것이다.
혈교칠표는 분명 죽은 것이다.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적라성은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상황도 버티고 이겨내며 교주의 자리까지 오른 그였다.
이 상황은, 그저 그 검객만 죽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였다.
출혈이 좀 있더라도 말이다.
적라성은 온몸을 시뻘겋게 태우며 그대로 튀어나갔다.
놈이 있는 곳은 묻거나 살필 필요도 없었다.
여전히 꿈틀거리는 거대한 기.
그것을 쫓아가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