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1화
보다 더 완벽하게
손님이 피 칠갑으로 들어와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맞으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검이나 도끼 따위를 든 몇몇 무사들이 막 자리에 앉은 무신을 곁눈질로 훑었다.
개중에는 ‘어디서 구르다 왔소?’ 하며 농담식으로 말을 묻는 이도 있었다.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한바탕하고 왔소.”
“도적이라도 잡은 거요?”
“그보다 더한 놈을 잡았지.”
흑룡강에서 도적보다 더한 놈은 혈교뿐이었다.
무신은 지금, 본인이 한 일을 본인이 직접 동네방네 소문내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아무도, 정신 줄이 나간 사람일지라도 혈교를 떠올리진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검객 한 명이 혈교와 일전을 벌였다고 세상에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들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그보다 더한 놈? 도적 우두머리를 잡았나? 만약 사실이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흑룡강 도적이 지독하기는 더럽게 지독해서 지들 원수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
“그렇소?”
“내 객지 사람 같아서 해주는 말이오.”
무신은 ‘고맙소’ 하며 점소이에게 이것저것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 걱정이란 단어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애당초 그가 잡은 것은 도적이 아니라 혈교였다. 정확히는 혈수라철골강시로 변한 부교주 우백관을.
먼저 나온 물을 들이키던 그는 문득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그도 도적, 그것도 흑룡강 도적을 잡은 적이 있었다.
흑사패.
해동 여인을 구할 때 그들을 도구로 썼었다.
당시 일이 관련 도적들 귀에 들어간다면 저 사내의 말대로 지옥 끝까지 추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무신은 피식 웃었다.
그놈들 추적이야 백 명, 천 명이 와도 환영이었다.
짐승들 모가지를 썰어내는 흥분을 계속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맛있게 드세요!”
주문한 음식은 규화계에 간단히 곁들일 술이었다.
무신은 큼지막하게 잘린 닭고기를 세 개나 집어 한 입에 다 넣었다.
조리를 어떻게 했는지 살이 안에서 살살 녹았다.
입안이 금세 텅 비었다.
그는 술 한 모금으로 약간의 텁텁함을 달랜 후, 걸신들린 것처럼 규화계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삼배계를 내온 빈 접시가 무려 세 개나 되었다.
그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추가로 만두 두 접시를 주문했다.
점소이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왜 이렇게 잘 드세요?”
“옛날에 너무 많이 굶었거든, 내가.”
“얼마나 굶으셨는데요?”
“못 먹어서 죽을 만큼.”
말끔한 차림의 검객.
점소이가 무신의 모습을 보더니 못 믿겠다는 듯 ‘못 먹어서 죽을 만큼이셨다구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무신은 가진 돈이 없어 열흘을 쫄쫄 굶은 적도 있었다.
쓰레기를 뒤져 음식물 찌꺼기라도 먹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직 가슴에 남아 늘 이렇게 폭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남의 배에나 폭식이지 그의 배에는 기분 좋은 포만감이었다.
그는 만두 두 접시도 마저 비우고는 짧은 휴식에 들어갔다.
팔자 좋게 잠을 자려는 게 아니었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매일매일 해오는 것이지만 오늘은 좀 더 집중해서 내공을 다스렸다.
혈교 궤멸.
대업이 이제 곧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힘을 비축해 둬야 했다.
혈수라철골강시도 그리 쉽게 잡은 마당에 비축까지 필요하겠느냐마는 일대일과 일 대 집단의 싸움은 다른 것이다.
그 집단이 사파최강 혈교라면 더더욱.
특히 교주 혈추귀(血追鬼) 적라성은 다른 것은 몰라도 실력 하나는 세간이 알아주는 고수였다.
‘그놈은 확실히 화경에 올랐지.’
무신은 기억 속의 적라성을 더듬어보았다.
화경을 넘어 현경을 바라보는 자였다.
경지로만 따지면 분명 무신보다 위에 있었다.
하지만 경지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무신이 적라성을 압도했다.
검술.
내공.
심지어 경험까지.
적라성이 혈교를 지배한 그깟 수십 년은 무신이 망령의 숲을 지배한 22만 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쳤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었다.
적라성에게도 믿을 건덕지 하나는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무신이 조심할 것은 그것이었다.
무신은 대강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단전, 그리고 온몸에 내공이 휩싸였다.
늘상 느끼는 것인데도 항상 새롭고 뜨거웠다.
무언가 무공을 익히는 기분이었다.
‘무도에선 이것을 성장이라 부르지.’
무신은 빙긋 웃으며 무아지경의 세계에 들어갔다.
감기는 내공이 점차 늘어났다.
아니, 폭등했다.
비좁은 객잔의 단칸방으로는 가진 것을 다 담을 수 없었다.
그의 내공은 그만큼 많았다.
비단 내공뿐일까.
그는 내공보다 더 많은, 그리고 높은 검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그에게는 비급과 비기 같은 것이 무의미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그게 곧 비급이자 비기였다.
하지만 그는 열뢰대섬검이나 철룡광랑검법 등 회귀 후 수많은 검술을 익혀왔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기초 검술과 고급 검술이 내는 공격력이 다르듯 강호의 여럿 무공을 통해 그것을 더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보다 더 완벽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되고 싶었다.
무신은 스스로의 생각에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회귀 전에는 꿈도 못 꾼, 아니, 생각만으로도 몰매를 맞을 짓이었다.
삼류무사 따위가 품기에 천하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얼마든지 품어도 됐다.
그리고, 그것을 이룰 자신이 있었다.
***
그날 저녁.
허대건과 혈사대가 당한 이후로 또 한 번 혈교가 한바탕 뒤집어졌다.
흑룡강 중부 부근에서 우백관이 죽은 채로 발견됐단 것이다.
적라성이 교주로서의 체면도 잊고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적라성은 들은 소식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단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다섯 등분으로 나뉜 시체가 놓여 있었다.
머리통이 틀림없는 우백관이었다.
이어 당도한 원로들은 그대로 굳어 말도 잇지 못했다.
장내가 한바탕 뒤집어졌으나 정작 소란스러움은 전혀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흑룡강 중부 시장에서 이리되었다고?”
간신히 입을 뗀 자는 적라성이었다. 나직한 어조였으나 눈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하가 ‘그, 그렇습니다!’ 하며 얼른 답했다.
적라성이 다시 물었다.
“누구 짓이라던?”
“그, 그것은 잘 모르겠으나 부교주 시체 가까이에 경산파 장문의 시체도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산파 장문? 오동학을 말하는 게냐?”
“예, 예.”
이런 경우 대개 오동학이 우백관을 죽인 범인이 되게 마련이었다.
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적라성은 오동학을 그 대상에서 바로 제외했다.
오동학은 우백관이 검만 몇 번 툭툭 내질러도 그냥 죽을 하수였다.
“달리 의심해 볼 자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죽였으면 온몸이 피 칠갑이 됐을 거 아니냐? 그 시간대에 그랬던 놈을 못 찾아?”
수하가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하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흑룡강 주변이 워낙 싸움이 잦은 곳이라… 그런 무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시간대에.”
“많아서 안 찾았다 이 말이냐, 지금?”
“그, 그게 아니오라…….”
수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적라성의 검이 그의 목을 잘라내고 있었다.
아련한 목숨은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른 채 그대로 이승을 떠나갔다.
애꿎은 수하를 죽여 놓고서 적라성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우스운 것은 원로들이나 다른 교도들이나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저자의 검이 내겐 오지 말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하.”
다시 무거운 침묵에 빠진 분위기 속에 적라성의 한숨이 실려 나왔다.
적라성은 여전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도대체 우백관이 왜 죽었는지.
그가 알기로 흑룡강 내에 우백관을 잡을 고수는 없다.
아니, 흑룡강뿐이랴.
갈림은 물론, 요령까지 내려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검객이 스쳐 지나갔다.
망상이라고 생각했으나 본능과 이성 모두 그 검객을 범인으로 보고 있었다.
‘설마…….’
칠십혈천대.
무기창.
혈사대.
혈강시.
허대건.
그 검객이 보여준 말도 안 되는 행보를 감안하면 우백관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물론 우백관은 아니었다.
그 검객이 아무리 강해도 우백관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의심해 볼 이는 결국 그 검객뿐이었다.
적라성이 소리쳤다.
“그 검객 놈을 찾아!”
***
흑룡강에 도착하는 대로 파천의를 새로이 했고, 혹시 몰라 흑라신검도 손을 봤다.
채비는 모두 갖추었다.
이제 칼만 뽑으면 되었다.
무신은 배낭에 들쳐 메고 말에 올랐다.
흑룡강에서 특별히 난다는 흑마(黑馬)였다.
놈이 푸르르 떨며 새로운 주인을 환대했다.
무신은 놈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고삐를 가볍게 말아 쥐었다. 그리고 멀리 고개를 들었다.
흑룡강 북부.
그가 지금부터 향할 곳이었다.
그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말을 몰았다.
장이 섰는지 근방으로 좌판에 행상인에 표국까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마진을 내려는 목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잦아들었다.
누군가가 들고 온 소식이 바쁜 시장, 아니, 흑룡강 전역을 가득 메운 탓이었다.
“혈교 부교주가 죽었다는군!”
처음에는 다들 개소리로 치부했다.
공개 처형으로 오래 전 명을 달리한 자가 또 죽었다는 것은… 그냥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환생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속속 증빙이 이어졌다.
“틀림없네. 분명 우백관이라고 했어.”
“경산파 일원들과 장문도 함께 죽어 있었다는구만.”
“혈교 교도들이 직접 시체를 가져갔다니까? 이 양반이 말을 왜 이리 못 믿는대?”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혈교의 부교주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객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죽은 자가 또 죽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에 대한 왈가왈부가 끊임없이 오갔다.
‘하기야 대부분은 아직 혈교의 강시술을 모르고 있을 테니.’
무인은 소란을 뒤로한 채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혈교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흑룡강 북쪽으로 관도를 쭉 따라 올라가다가 능선 한 개만 넘으면 금방이었다.
거기까지 가자 부산스럽던 인파가 거의 줄어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혈교가 코앞에 있는데 알짱거릴 바보는 없었다.
누가 보면 무신도 그 바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더 고삐를 세게 잡아당겼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혈교란 족속들을 이 땅에서 지우고 싶었다.
단순히 그들의 추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혈교와 개인적인 원한이 많았다.
회귀 전 15년의 나날.
개중 몇 년은 아마 그들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사파 최강이 한낱 삼류무사에게 무어하러 신경을 쓰겠느냐마는 그들 또한 강약약강이었다.
약자에겐 한없이 지옥을 선사했다.
‘가랑이를 기라면 기는 시늉이 아니라 정말 기어야 했지.’
무신은 치를 떨었다.
끔찍한 기억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아니, 백 배 천 배로 더 갚아줄 생각이었다.
그가 말에서 내린 것은 그로부터 약 세 시진을 더 달린 후였다.
가깝다고는 해도 혈교는 아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만 고삐를 놓았다.
멀리 전방, 적포를 입은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오고 있었다.
흑룡강에서 적포가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혈교 교도들.
사냥감이 제 발로 나타나 준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흑라신검을 꺼냈다.
재밌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