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21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21화
121화 방문자들(3)
***
사교 파티에 참석했던 게 벌써 오 일 전의 일이다.
그동안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시에트 때문이다.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내가 그녀에게 뭘 실수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일단은 포기다.
도무지 뭘 잘못했는지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시에트의 말마따나 약혼식이 유효한 거지, 결혼을 허락한 게 아니라는 건 사실이다.
그래,
황녀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슨! 윌스은!”
“나? 아! 왜?”
고민하지 않겠다고 하고선 계속 그녀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코너가 부르는 소리마저 듣지 못할 만큼 집중하고 있었다는 의미.
“‘왜?’ 라뇨? 오늘 드워프들이 오기로 했잖아요.”
“맞아! 그랬지. 깜빡하고 있었어.”
녀석이 한참이나 나를 불렀던 것인지, 얼굴에는 심통이 하나 가득이다.
아마도 코너를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약간이라도 살기(殺氣)를 품었다면 또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밖에 트와토른과 노예상 아놀드가 기다리고 있어요.”
“후우! 그래 알았다. 같이 나가자.”
코너의 얘기에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여자고 일은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쯤은 레이놀드 영지를 향해 이동 중일 터.
다시 만난 때쯤이면 몇 개월은 훌쩍 넘은 다음의 일이 될 터다.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다.
잡생각을 털어 내고 집무실을 나섰다.
“여어! 윌슨 놈아! 어서 와라! 빨리!”
밑에 내려가니 트와토른이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내게 손짓한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보아,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넌 또 왜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저 아놀드 자식이, 우리 동족을 보여 줄 수 없다고 하잖냐! 더러운 노예 상인 주제에!”
트와토른이 투덜거리면서 여러 대의 마차를 이끌고 온 노예 상인 아놀드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며 용맹하신 윌슨 아이언 남작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역시나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성으로 귀족의 예법에 맞워 인사하는 아놀드.
“오랜만이오.”
“영주님께서 오시지도 않았는데, 드워프 노예가 억지를 부려서 난처했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녀석과 교환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언 남작님.”
아놀드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느끼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트와토른이 찔끔해서는 뒷걸음질을 쳤다.
녀석이 ‘영주의 재산’이었기에 그가 건드리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데려온 드워프들이나 두고 가시오.”
“알겠습니다. 크라시온 백작 각하와 아르곤트 자작께서 각각 5명의 드워프 노예를 아이언 남작님께 계약서 초안과 함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여기 확인증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확인했소.”
아놀드가 내민 서류에다가 반지에 새겨진 아이언 남작가의 문장을 찍어 주고서 마차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마차는 지난번 트와토른을 데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에 가려져 있다.
펄럭!
마침내 천이 걷히고 쇠창살로 이루어진 마차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10명의 드워프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선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눈의 적응이 필요한 모양이다. 트와토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드워프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
또 하나 다른 점은 쇠창살 마차에서 내려온 뒤로 트와토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는 것.
“그럼 아이언 남작님,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노예상인 아놀드가 느글느글한 음성으로 인사하고는 마차를 몰고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때까지도 새로 들어온 드워프 노예들은 한 마디도 안 하고 트와토른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어…! 반가워, 친구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손을 들어 인사하는 트와토른.
“멍청한 자식! 인간의 편에서 일하다니!”
“네 놈은 드워프의 수치다!”
“인간 놈 따위와 친하게 지내고 인간 놈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니!”
.
.
.
마차에서 내린 드워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트와토른에게 욕설을 퍼부어댄다.
그러자 트와토른의 눈빛이 바뀌었다.
어색하게 웃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이런 개 같은 난쟁이 새끼들이? 잡혀 온 주제에 지랄하고 자빠졌네! 윌슨 놈은 다른 인간 놈하고는 다르다!”
녀석이 나를 손으로 가리키고는 턱을 치켜들었다.
“다르긴 뭐가 달라? 저 인간 놈은 우릴 풀어 주기라도 한다더냐?”
허연 수염의 드워프가 비웃음을 잔뜩 베어 물고서 비아냥거렸다.
“그렇다!”
“개소리!”
트와토른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마차에서 내린 드워프가 짤막한 가운뎃손가락을 뻗었다.
“후우…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트와토른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짤짤 흔들었다.
그러고는 터벅터벅 나의 앞에까지 걸어왔다.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녀석의 몸이 좋아졌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눈빛은 확실하게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볼록 튀어나왔던 배가 조금 들어간 것도 같고…
특훈의 성과인가?
“윌슨 놈아! 열쇠!”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고서 손을 내미는 트와토른에게 조금 전 아놀드에게서 받은 열쇠를 주었다.
씩씩대면서 열쇠를 받아간 트와토른이, 다른 드워프들의 두 손을 구속한 수갑을 하나씩 풀어 주었다.
쇠창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던 드워프를 끝으로 그들의 구속이 모두 해제되었다.
“진짜로 풀어 주는 것도 아닌 주제에 선심 쓰는 척하고 싶은 거냐!”
“닥쳐! 망할 난쟁이 놈아! 누가 옳은지는 ‘대지의 율법’에 따른다!”
허리춤에 한 손을 얹고서 나머지 손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드워프를 가리켰다.
“…대지의 율법?”
“그렇다! 대지의 율법! 너희 중에 가장 강한 놈이 바로 네 놈인가!”
트와토른이 당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좋아! 나 수르다메르! ‘대지의 율법’을 받아들이겠다!”
이제껏 트집만 잡던 드워프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트와토른을 마주 보았다.
“어째서 네 놈이 ‘대지의 율법’을 대표한다는 것이냐! 나 페로도데스는 네 놈을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
막 싸울 태세를 갖추는 수르다메르를 제지하는 음성.
“이런 빌어먹을 난쟁이 자식! 좋다! 네 놈이 먼저 덤벼라!”
잔뜩 흥분한 수르다메르가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푸른 수염을 배꼽까지 기른 페로도데스가 한쪽 입술을 씰룩이고 있었다.
막 싸울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이 몸은 사루단이시다! 감히 건방지게 우릴 대표할 자격 따윌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주먹을 불끈 쥐고서 딴죽을 걸었던 페로도데스를 위아래로 흘겨보는 사루단.
“가지가지 하는군.”
나는 드워프들의 행동에 기가 막혀서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두 번째로 나선 사루단이라는 드워프 외에도 나머지 드워프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사루단이 나서는 것을 끝으로 더 나서는 드워프는 없었다.
아마도 저들은 사루단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드워프들인 게 틀림없었다.
“네 놈!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안 들었다. 덤벼라!”
페로도데스가 눈을 부라리면서 두 주먹을 자신의 턱 앞에 두었다.
그래 봐야 두 팔이 워낙 짧아서 파이팅 포즈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좀 불쌍해 보인다.
웃기는 건 사루단이라는 드워프가, 일생의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페로도데스를 노려본다는 점이다.
필살의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서로를 노려보면서 싸울 자세를 잡는 두 드워프.
“간다아!”
“와라!”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서로에게 쇄도하는 두 명의 드워프.
짧은 다리로 달려가는 모습이 묘하게도 박진감 넘치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가던 두 드워프가 격돌하고야 말았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어이가 없어서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짧은 두 팔을 마구 휘두르면서 서로의 몸을 두들기는 두 드워프의 모습이 우습게만 느껴진다.
기세는 대단했지만, 싸우는 모습만 놓고 보면 초등학생 둘이 싸우는 광경과 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드워프의 전투 능력은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코너?”
“네, 윌슨.”
“드워프들은 전투에 특화된 종족 아니었어?”
“맞아요.”
코너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녀석…
드워프 두 명이 싸우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저래?”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턱짓으로 초딩 싸움을 벌이는 두 명의 드워프를 가리켰다.
얼씨구?
트와토른이 초조한 얼굴로 두 드워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놀랍게도 녀석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저런 싸움에 긴장하고 있다는 거냐?
“드워프는 전사와 대장장이로 나누어져요. 이들은 대장장이죠. 전사 드워프였으면 애초에 노예로 끌려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성격이 장난 아니거든요. 노예로 팔려 갈 바에는 자살을 택할 정도로 과격한 종족이에요.”
“…그러냐?”
몰랐던 내용이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트와토른만 하더라도 성격하나는 끝장이었으니까.
코너의 얘기에 드워프들이 어린애처럼 싸우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대지의 율법?
주제에 율법은 개뿔!
뭐 이런 진지하게 유치한 자식들이 다 있지?
“네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주마!”
“어디 내의 발차기에 짓이겨지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보겠다!”
영주 성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외침.
기합성과 다를 바 없는 우렁찬 함성만 놓고 보면 흉험한 싸움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은,
투닥! 투다닥! 투닥!
“죽어랏!”
“어림없다! 그런 공격이 나의 무쇠와 같은 몸에 통할 거라고 보는그아!”
짧은 팔다리로 투닥거리는 주제에 잘도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
계속 버둥거리듯 싸우던 두 드워프가 숨을 헐떡이면서 잠시 떨어졌다.
그러고는 상대를 노려보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철권을 받아라!”
“무적의 발차기를 먹여 주마!”
페로도데스가 통통한 주먹을 움켜쥐고 휘두르자, 사루단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발차기를 준비했다.
뽀각!
“크흑! 빠, 빠르군!”
사루단이 안면에 페로도데스의 주먹을 받아들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문제는 페로도데스의 주먹이 빠른 게 아니라, 사루단의 다리가 짧아서 상대의 몸에 닿지 않았을 뿐이라는 거.
“내가… 졌다. ‘대지의 율법’에 의해… 네 놈을 대표로 인정하겠… 커헉!”
철푸덕!
사루단이 띄엄띄엄 말을 하고는 눈을 뒤집고 바닥에 쓰러졌다.
진짜…
쓸데없이 진지한 놈들이다.
페로도데스는 쉬지 않고 곧 이어서 수르다메르에게 덤볐다. 원래 트와토른에게 도전했던 수르다메르는 변변한 공격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싱겁게도 말이다.
“후욱! 후웁! 후우… 나 페로도데스가 다른 드워프들을 대표하여, 트와토른 네 놈과 ‘대지의 율법’을 치러 주마! 받아들이겠는가!”
숨을 고른 페로도데스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고는 트와토른을 노려보았다.
“좋다! 덤벼라!”
“와라!”
두 놈이 서로 손짓하면서 덤비라고 도발을 해댄다.
“어이! 트와토른! 끝장 내, 시간 아깝다.”
입맛을 다시면서 트와토른에게 소리쳤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진지함을 맨 정신으로 견디는 게 한계에 다다랐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윌슨 놈아!”
역시나 불필요하게 비장한 각오를 담은 음성으로 소리치는 트와토른.
“눈깔에 힘만 준다고 뭐가 해결돼? 붙어 이 자식아!”
“이잇! 죽인다앗!”
짜증을 담아 소리치자, 트와토른이 잇소리를 내면서 도약했다.
물론, 비장한 음성과는 다르게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양새였지만 말이다.
“모조리 받아 주마!”
페로도데스가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맞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푸른 수염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그의 전신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힘을 주먹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
당연한 얘기지만, 내게는 꼬맹이가 경기(驚氣) 들린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빠악!
“커헉! 으으윽… 대, 대단한 주먹이었다. 트와토… 르은…….”
페로도데스는 복부에 트와토른의 주먹을 얻어맞고 괴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사루단과 벌인 싸움에서 지친 주제에 객기를 부리다가 트와토른에게 당한 것이다.
“좋은 승부였다. 페로도데스!”
트와토른이 비장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페로도데스에게 엄지를 척 내밀었다.
더는 못 봐주겠다.
빠악!
“으윽! 뭐, 뭐냐 윌슨 놈아!”
“적당히 해라. 패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