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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8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8화

팔두사

 

 

팔두사는 말 그대로 머리가 여덟 개 달린 뱀이었다.

그에 어울리게 몸길이는 자그마치 이십 장이 넘었고, 몸통은 수백 년 나무의 그것처럼 두꺼웠다.

 

‘백산왕도 팔두사 앞에선 쥐새끼에 불과하겠지.’

 

무신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앞에서는 반대로 팔두사가 쥐새끼가 될 것이다.

그는 이후 반 시진을 더 달렸다.

여기저기 묻어 있었던 다사촌의 흔적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사실 팔두사의 보금자리와 다사촌은 별개였다.

팔두사가 작정하고 몸을 끌고 오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 주민들과 객인들이 벌벌 떠는 것은 놈이 영물이란 이유에서였다.

놈의 기운만 잘못 닿아도 그들은 황천길 신세였다.

무신은 산을 두어 개 넘어 어느 늪지에 도달하고서야 발을 멈췄다.

이제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었다.

기억에 의하면 필히 이곳이 팔두사의 보금자리였다.

 

‘응?’

 

무신은 팔두사는커녕 늪만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사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몸길이만 이십 장이 넘으니 안 보이려야 안 보일 수가 없는데, 어딜 둘러봐도 코빼기 하나 보이질 않았다.

물론 놈의 기운을 느끼면 될 일이었다.

그럼 고개도 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반박귀진처럼 제 기운을 숨기기도 하는 게 놈의 특색이었다.

무신은 결국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다사촌의 서쪽.

능선 두 개.

그리고 늪지.

확실했다.

분명 이곳이었다.

 

‘이놈이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무신은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졌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묵은 구렁이가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회귀 전에 분명 어디선가 들은… 콰콰콰콰쾅!

별안간 굉음과 함께 늪지가 요동쳤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거칠고 요란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신은 눈을 부릅떴다.

갈라진 늪지를 뚫고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피부에 아주 길쭉한 것.

그가 그토록 찾던 팔두사였다.

 

‘설마 진짜 땅으로 꺼졌었을 줄이야.’

 

그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놈의 등장을 지켜보았다.

팔두사란 이름에 걸맞게 머리가 하나, 둘, 셋… 계속 튀어나왔다.

그의 팔뚝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생김새가 흉측해서가 아니었다.

창자가 쏟아진 시체에 비하면 저것은 오히려 귀여운 편이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놈의 기운이 생각보다 커서였다.

느낌상으로는 혈교 서열 1위의 허대건에 버금갔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그사이 놈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쏟아냈다.

기운도 몸집도 생각보다 컸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사사사사사사.

기괴한 소리가 귓전에 파고들었다.

팔두사의 머리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소리였다. 무신을 발견하고서 군침을 다시는 것이다.

무신은 슬슬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신검합일의 내공을 장전했다.

콰콰콰콰콰콰쾃!

그의 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놈의 혓바닥 소리를 저 멀리 쫓아냈다.

그는 찬찬히 놈에게 다가갔다.

그와 달리 놈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날개 뗀 매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냥 몸집 큰 뱀이 슬금슬금 기어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진 보신경이면 저 정도 속도는 빠른 축에도 못 꼈다.

 

‘너도 맛있게 먹어주마.’

 

그는 놈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마침내 놈과 마주했다.

마음먹고 뛰어가면 눈 서너 번 깜빡일 시간에 닿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는 굳이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선공은 그를 보고 잔뜩 흥분한 놈의 역할이었다.

과연 그가 멀뚱히 서서 빳빳이 고개를 들자 놈이 여덟 개의 머리를 치켜들며 그에게 마수를 뻗었다.

바위도 찢을 듯한 이빨.

철근도 바스러뜨릴 듯한 두터운 몸뚱아리.

심지어 사천당문의 가솔들도 혀를 내두른다는 독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저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팔두사 사냥을 포기했지.’

 

그는 놈의 이빨에서 뚝뚝 떨어지는 보랏빛 액체를 바라보았다.

닿기만 해도 피부가 녹아내리는 맹독이었다.

그러니 물리면 답도 없었다. 즉시 혈관이 막히고 사지가 굳으며 사망이었다.

그런데도 무신은 태연하게 서 있었다. 저깟 맹독 따위야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당가는커녕 웬만한 문파의 기본적인 독에 대한 내성도 없는 그가 이처럼 자신만만한 이유는 뻔했다.

쿠웅!

입을 쩌억 벌리며 코앞까지 다가온 팔두사의 머리 하나가 식칼에 무 썰리듯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머리 세 개가 더 떨어졌다.

맹독이든 극독이든 이처럼 닿거나 물리기 전에 없애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팔두사의 저항도 거셌다. 머리가 네 개나 잘려 나갔는데도 거침없이 몰아쳤다.

하지만 거침없이란 것은 놈의 기준에서였다.

무신의 눈에는 이제 막 중상급 검술을 익힌 검객이 자기 좀 잘났다고 우쭐대는 수준이었다.

그는 흑라신검을 양손으로 쥐고 그대로 도약했다.

파천에서 보신경 비급도 익힌 그였기에 팔두사의 머리 위까지 뛰어오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놈이 재빨리 반응해 혀를 내밀었으나 그는 그마저도 몸만 살짝 젖혀 피했다.

이후는 더 볼 것도 없었다.

그의 검이 남은 네 개의 머리를 모조리 잘랐다.

석 장에 달하는 검강이 아직 배가 고프다는 듯 검신 위로 으르렁댔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머리만 남은 팔두사가 입을 찢으며 마지막 발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틀꿈틀 재미난 춤사위로 보였다.

그는 그것을 그만 저승으로 보내주고는 이마를 훔쳤다.

잿빛 늪지가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놈은 많은 피를 흘렸는데, 그는 피는커녕 땀 몇 방울이 전부였다.

그래, 애당초 승자가 정해져 있던 싸움이었다.

상대가 무인이었다면 아마 무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영물도 결국 짐승.

본능만을 쫓아가다 보니 제가 질 것도 모르고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밀고 본 것이다.

 

‘어디 한번 보실까.’

 

무신은 흥얼거리며 몸통만 덩그러니 남은 팔두사 사체를 향해 걸어갔다.

여덟 개의 머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놈의 몸통 어딘가에 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파 보였던 흑라신검에게 마지막 만찬을 선물했다.

끝에서 끝이 이십 장에 달하는 놈의 몸통을 수십 조각으로 나누었다.

식성 좋은 자들에겐 아마 고깃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회귀 전에 이 팔두사를 잡은 자는 사체를 넣어다 탕으로 끓여먹기도 했다.

청사탕처럼 효능이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목구멍에서 쏟아진 피였다.

놈의 살갗에도 독성이 있었던 것이다.

무신은 멀찌감치 서서 조각을 쳐다봤다.

일일이 뒤질 필요는 없었다.

이제 곧 어딘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역시나 금방 반응이 왔다.

차갑게 식어가는 어느 조각이 번쩍번쩍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무신은 성큼성큼 그리로 다가갔다.

혹시 몰라 흑라신검은 이미 검집 안에 넣어둔 후였다.

 

‘이게 바로…….’

 

그의 시선이 그 조각 안쪽의 둥그스름한 무언가에 향했다.

그는 허리 숙여 그것을 집었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여인네 살결을 다루듯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린 그는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입맛을 다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흥분을 했다.

그럴 수밖에.

지금 그가 든 것은 팔두사의 내단(內團)이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숨 쉬듯 계속 요란한 춤을 추었다.

쿵!

쿵!

쿵!

소리가 지금 무신의 심경을 대변했다.

그의 심장도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

그는 물을 두어 모금 마셔 입안을 정리한 후, 더 볼 것 없다는 듯 내단을 집어삼켰다.

씹을 것도 없었다.

목구멍 안으로 넘기기만 하면 효능이 나오게 돼 있었다.

 

‘이렇다 할 변화는 없는데 말이지.’

 

무신은 팔다리를 비롯해 제 온몸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었다.

팔두사의 내단은 여타 내단과 달리 신체를 키워주거나 내공을 증대시켜 주는 역할이 아니었다.

내성.

독에 대한 내성.

범인이 먹어도 대부분의 독기를 막아내는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

 

‘아주 극독이라면 이 내단으로도 막을 수 없겠지만, 그런 독은 흔치 않지.’

 

무신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칼질 몇 번 하고 체질을 바꾸는 것은 금괴 한 짝을 갖다 줘도 못할 일이었다.

그는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몸을 돌렸다.

볼일이 끝났으니 이곳은 이제 안녕이었다.

 

***

 

“차라리 잘됐습니다.”

 

혈수라철골강시로 깨어난 우백관이 고형계의 머리통을 터뜨린 게 불과 몇 시진 전 일이었다.

그런데 적라성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피아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날뛰어야 본연의 힘을 더 끌어 올리기 쉽습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로를 죽였네, 원로를.”

 

그의 말이면 늘 ‘예예’ 고개만 끄덕이던 원로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볼썽사납게 죽은 고형계의 운명처럼 자신들도 그리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적라성이 여전히 아무렇지 않단 투로 말했다.

 

“어차피 제 말은 듣지 않습니까?”

“그, 그 무슨 말인가!”

“그럼 된 것이지요.”

 

듣다못한 나성로가 ‘우리가 어찌 되는 것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겐가?’ 하고 분노에 차 말하자 적라성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말했다.

 

“그러게 안 뒤질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셨어야지요.”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무위가 낮아지…….”

 

적라성이 말을 끊었다.

 

“아흔의 나이에 반로환동하여 수십 년을 더 강호에서 활보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원로님들 나이는 젊디젊은 청년이지요.”

“…….”

“그리고 제가 백번 양보해서 부교주의 지금 성격이 문제가 된다 칩시다. 그럼 죽입니까? 아니면 다시 묶어놓습니까? 기껏 만든 것을 왜 꿍쳐두냐는 겁니다, 제 말은.”

 

일리 있는 지적에 원로들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성로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적라성이 지도 한 장을 내던지며 말했다.

 

“그 주제도 모르는 검객 놈이 이곳 흑룡강 쪽으로 오고 있단 말이 있습니다.”

“여기로 오고 있다고?”

“예.”

“왜?”

 

왜?

이 순간 모두가 묻고 싶은 의문이었다.

아무리 혈사대에 혈강시에 허대건까지 잡았다고는 해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혈교’의 땅에 들어선단 말인가.

그러나 적라성의 고개가 저어졌다.

 

“그저 목적지가 비슷할 수도 있지요.”

“그럼…….”

“예. 부교주가 나가서 잡아올 겁니다.”

 

부교주의 힘은 혈수라철공강시가 되기 전, 그러니까 살아있을 적에도 혈사대든 혈강시든 허대건이든 가볍게 찍어 눌렀다.

그들 모두가 동시에 덤벼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검객의 목숨은 이미 날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딱 한 명, 의구심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만약 부교주마저 당하면… 어찌 되는 겐가?”

 

나성로였다.

그는 허대건 때도 유일하게 검객의 무위를 쉽게 보지 않은 자였다.

이번에도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기는 했다.

결과가 그렇게 나오기도 했고.

그러나 듣는 상대가 적라성이었다.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던 그가 돌연 눈썹을 꿈틀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바늘 모양으로 생성된 내공이 나성로의 입에 날아가 그대로 터졌다.

나성로가 입을 움켜쥐며 뒤로 넘어졌다.

허공에 붉은 선율이 흐물거렸다.

적라성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뭣 같은 말은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십시오. 입 밖으로 꺼내지 마시고.”

 

그저 높임말만 쓸 뿐이었다.

적라성은 원로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

 

무신은 맡겨둔 말을 찾아 나머지 여정에 올랐다.

다사촌에서 하루를 보낸 후였기에 해는 아직 중천에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저것이 서쪽으로 질 즈음이면 흑룡강은 더욱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파천의를 벗어 던졌다.

여전히 시기상으로는 초여름인데 날이 한여름처럼 후덥지근했다.

관자놀이 양쪽으로 땀이 줄줄 쏟아졌다.

영물을 잡았다고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는 고삐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반대 손으로 벌컥벌컥 갈증을 해소했다.

물을 한 통이나 다 비우고서야 다시 고삐를 제대로 쥐었다.

그래도 북부로 올라가는 길이라 그런지 점점 바람이 불어오기는 했다.

그의 짧은 머리칼이 살랑일 정도로 제법 센 바람이었다.

그는 시야를 멀리 밝혀 흑룡강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제 곧 그도 저곳에 바람을 불게 만들어야 했다.

제법 센 정도로는 안 되었다.

아주아주 세게.

그래야지만 사파 최강이라는 혈교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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