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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2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2화

결의

 

 

무인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예의를 차린다고 보면, 아예 절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빙궁무사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자긍심이 높기로 중원 전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초면인 무사에게 결코 고개를 숙일 위인들이…….

무신은 아직도 그들의 정수리를 보고 있었다. 도무지 고개를 들 생각들을 안 했다.

그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그의 몫이었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그는 서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다섯 번은 더 눈을 깜빡였을 즈음에야 빙궁무사들은 고개를 들었다.

 

“북해빙궁에서 나왔습니다.”

 

청마와 청의.

비단 그들의 행색을 떠나서 옷자락 한편에 그곳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까막눈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정체를 눈치채기는 쉬웠다.

그러나 무신은 몰랐다는 척 말을 받았다.

 

“북해빙궁이요?”

“예.”

“북해빙궁에서 저를 왜?”

“그… 우선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대화를 하는 빙궁무사는 가운데 선 자였다. 나머지는 그보다 한 걸음 뒤에서 잠자코 서 있었다.

그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빙궐대 대장 백충일이라고 합니다.”

 

빙궐대 대장 백충일.

들어본 바 있었다.

북해빙궁 전체를 통틀어 수위에 드는 고수였다.

무신은 잠깐 그의 외양을 살폈다. 장한이란 말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덩치가 대단했다. 떡 벌어진 어깨는 통나무를 통째로 짊어져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외양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유명한 백충일이 왜 날 찾아왔느냐지.’

 

무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이미 아시는 모양이지만, 저는 최무신입니다.”

“예, 최 대협.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익히요?”

“아… 그게 그러니까…….”

 

백충일이 처음부터 사정을 설명했다.

 

“현재 최 대협의 위상은 저희 북해빙궁까지 소문이 나 있습니다.”

“제 위상이요?”

 

되묻기는 했으나 무신도 짚이는 것은 있었다.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은 게 강호 바닥에서는 위상이라면 위상이었다.

그런데 백충일의 입에선 전혀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단신으로 마청대를 처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팽가에 전한 소식이 다시 무림맹으로 옮겨갔고, 급기야 북해빙궁에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하기야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전혀 뜻밖이라고도 볼 수 없겠군.’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이어지는 백충일의 말에 집중했다.

 

“그 전에는 칠십혈천대와 무기창도 잡으셨고요.”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군요.”

“워낙 큰 사건이라 여기저기서 새어나간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백충일이 ‘혹, 기분 나쁘시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하고 얼른 덧붙였다.

무신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기분 나쁠 게 무어 있겠으며 또 사죄드릴 이유는 또 무어겠는가.

너무 과도하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이쯤 되자 무신의 머릿속에서도 슬슬 계산이 나왔다.

무언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물론 처음부터 짐작한 것이기는 했다.

북해빙궁이 아무렴 의(義)와 협(協)을 중시하는 강호의 정파 같은 곳이라고는 해도 난생처음 보는 이에게 이리 저자세일 수는 없었다.

 

백충일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중한 투로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최 대협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아, 예,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어떤 부탁일까.

무신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예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백충일의 입은 조금 머뭇대다가 다시 열렸다.

 

“저희 북해빙궁은 최 대협과 결의를 맺고 싶습니다.”

“예?”

 

예상 범주 안에 있기는 했다.

이름난 무사와 손을 잡는 것은 강호 바닥에서 흔한 일이었다.

백충일 본인 입으로 무신을 행보를 위상이라 표현했으니 더더욱.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는 말이 다분히 의외였다.

 

결의.

 

단순히 힘을 합치자가 아니라 피만 안 섞인 형제가 되잔 소리였다.

무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저와 결의를 맺고 싶으시다고요?”

“예, 최 대협.”

“어…….”

 

말끝을 흐리는 것은 내내 백충일의 역할이었으나 이번에는 무신의 역할이었다.

무신은 당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북해빙궁.

정파로 따지면 남궁세가나 사천당문, 일전에 다녀왔던 하북팽가와도 비견되는 곳이다.

하등 꿇릴 게 없는 대형문파에서 왜 자신과 결의를 맺으려 한단 말인가.

위상을 떨쳐서?

그래도 설명이 안 되었다.

잠깐 협력 관계가 될지언정 굳이 결의까지 맺을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백충일이 그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조금 이상하지요? 아무렴 그렇다고는 해도 결의란 말까지 나온다는 게.”

“그렇습니다.”

 

무신은 솔직히 답했다. 납득이 안 가는 일에 굳이 본뜻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백충일이 더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이유는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최 대협의 위상이 드높기 때문이지요.”

“제 위상이 결의란 말까지 나올 정돕니까?”

 

이번에는 정말 몰라서 되물었다. 마청대를 잡은 게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북해빙궁에 가면 그에 버금가는 고수가 널린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백충일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째서요?”

“최 대협은 지금…….”

 

눈이 부릅 뜨이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이어졌다.

 

“당가의 당비청, 화산파의 한철룡, 그리고 마교의 마준환과 함께 강호의 신성으로 불리우고 계십니다.”

“…….”

“모르고 계셨군요. 하기야 윗사람들 말이 최 대협의 귀에까지 들어갈 리 없으니.”

 

백충일이 말을 이어갔다.

 

“신성은 현재의 무위보다 미래의 무위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 그 가치가 매우 큽니다. 저희 북해빙궁에서는 해서 최 대협과 결의를 맺고 싶은 것이고요.”

“…….”

“그렇다고 이리 갑작스레 찾아온 것에 대해서는 사죄드리겠습니다.”

 

벌써 몇 번째 사죄인지… 하는 것에 대해선 지금 무신의 머릿속에 조금도 없었다.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만도 바빴다.

신성(新星).

강호에서 떠오르는 신흥 고수들.

단순히 거기에 포함돼서가 아니었다.

당가의 당비청, 화산판의 한철룡, 그리고 마교의 마준환과 같이 속해 있다는 게 중요했다.

 

‘특히 마준환 그놈은…….’

 

무신은 질린다는 듯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기로 마준환은 그냥 괴물이었다. 항간의 떠도는 소문이었으나 열댓 살의 나이에 마교 내 서열 33위의 고수를 때려잡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인의 신성 중에서 최 대협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합니다.”

“…….”

“비단 저희 북해빙궁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윗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하지요.”

 

당비청이든 한철룡이든 그리고 마준환이든 사실 지금의 무신에겐 별것도 아니었다.

툭 하면 죽을 한 주먹거리일 뿐.

그런데도 그가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회귀 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였다.

심지어 평도 가장 높다는데 이 대체…….

무신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회귀한 후부터 감회가 새롭단 말의 참뜻을 알게 되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예?”

 

신성을 찾아온 이에게 미치광이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신은 ‘그냥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강 얼버무렸다.

그러자 백충일이 ‘신기하다고 하시는 게 저는 더 신기합니다. 최 대협 정도 되면 오히려 신성이란 표현도 아쉬울 텐데’ 하고 받아쳤다.

빈말은 아닌 듯싶었다.

화경.

그에 올랐으니 확실히 신성으로는 부족했다.

무신은 ‘예, 사실 제가 지금 화경의 경지에 올라 있는 상태입니다’ 하려다가 말았다. 그리했다가는 결의가 아니라 아예 북해빙궁에 눌러살라고 할지도 몰랐다. 물론 북해빙궁이라고 못 살게 무어 있겠느냐마는, 사시사철 칼바람이 부는 지역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백충일이 크흠 헛기침하며 물었다.

 

“혹, 생각이 어떠신지…….”

“생각이라…….”

“재촉하는 것으로 들렸다면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놈의 사죄는 언제까지 나올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무신의 눈치를 살핀단 방증이었다.

무신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삼류무사였던 15년.

그에게 이런 대접은 백 날이고 천 날이고 반복돼도 달갑기만 했다.

윗사람이 된 듯한 느낌 때문에?

맞다.

사실이다.

그는 그게 좋은 것이다.

속물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나쁠 것은 또 무엇인가.

상대가 먼저 나서서 그리해 주겠다는데.

 

‘그나저나 이걸 어찌 한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결의.

무려 북해빙궁과의 결의.

의외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굽실거리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한국식 말로 하면 든든한 빽을 얻게 되는 격이니까.

하지만 성급히 결론 지을 문제는 또 아니었다.

북해빙궁이 과연 평생을 함께할 만큼… 무신은 그냥 간단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북해빙궁은 제 실력이 필요해서 결의를 맺으려는 것이잖습니까?”

“아, 예예! 그렇지요!”

 

무신은 덤덤한 어투로 다시 물었다.

 

“그럼 저는 무엇이 필요해서 북해빙궁과 결의를 맺어야 하는 겁니까?”

“…예?”

 

돌려 말하는 것은 질색이었다.

무신은 확실히 말했다.

 

“북해빙궁은 제게 뭘 해줄 수 있습니까?”

 

사실, 말만 번지르르하게 결의지 결국 ‘거래’라는 것이 잘 포장됐을 뿐이었다.

 

***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십대고수(十大高手).

사신객(四神客).

·

·

·

그리고 신성(新星).

중원의 여럿 고수를 대표하는 집합체는 소위 윗사람들이라 불리우는, 그러니까 대형 문파의 장문인들이나 원로들에 의해 나오게 돼 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고수니까.

그들에겐 누군갈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최무신이라…….”

 

늦은 밤, 거뭇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가 이름 석 자를 곱씹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은 자가 연초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출사표를 던진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야?”

“그렇겠지.”

 

사내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자가 신성의 반열에 오르다니. 기이한 일이로구만.”

“강호 밖에서 이미 힘을 기르고 왔을 수도 있지.”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힘이었으면 강호 밖에서부터 소문이 났어.”

“흐음, 그도 그렇군.”

 

그사이 연초가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연기가 멎으면 이 자리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대화도 끝을 내야 한다는 듯 사내가 물었다.

 

“당가의 당비청, 화산파의 한철룡, 심지어 마교의 마준환보다도 더 강하다고 꼽히는 놈이야. 그냥 놔둘 순 없지 않겠어?”

“포섭하자, 이 말인가?”

“그렇지.”

 

사내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포섭이 안 되면… 잡아다 환술로 개조를 시키던가.”

 

***

 

백충일은 자신만만했다. 그 정도 질문이야 이미 생각해왔단 얼굴이었다.

 

“북해빙궁에서는 뭘 해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까?”

“예.”

“뭘 해줄 수 없느냐, 하고 물으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금은보화.

권력.

아랫도리.

정말 뭐든 주겠단 소리였다. 백충일이 자신만만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럼…….”

“예, 말만 하십시오.”

 

그러나 무신은 그보다 몇 수는 더 위에 있었다.

 

“빙룡검도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만면에 만개했던 여유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관자놀이 양쪽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눈동자는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백충일은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

반면, 무신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했다.

 

“빙룡검을 주실 수 있으시면, 빙궁과 결의를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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