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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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8화
괴이한 생각
혈사대.
홍전풍 허대건.
그리고 일곱의 활강시.
회귀 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회귀 후에도 못 이길 상대였다. 서열이고 뭐고 떠나서 저들은 혈교 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무신은 모용선화를 뒷선으로 물리며 양손으로 흑라신검을 꺼내 쥐었다.
진즉부터 검병을 빠져나온 그것은 먹잇감을 본 맹수처럼 쩌억 아가릴 벌렸다.
벌려진 아가리에서 진득한 덩어리가 치솟아 올랐다.
검강.
하지만 무신의 그것은 보통의 그것보다 몇 급은 더 위에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하던 혈사대 대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동태의 그것인들 저만치 튀어나올까.
그들은 당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
“대, 대장!”
무(武)와 무(武)의 싸움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게 비단 내공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검법.
경험.
재능.
영약.
요소는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내공이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그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커헉!”
저까짓 놈은 제가 맡겠다며 앞으로 나와 있던 고정현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무신의 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도 물론 검강을 발현하고 있었으나 부딪치기 무섭게 이등분되었다.
내공의 차가 너무 큰 탓이었다.
“…….”
고정현.
혈사대 안에서나 무위가 낮지 혈교 전체에서는 서열 5위에 드는 고수였다.
결코 저리 허망하게 당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자로 엎어진 그는 몇 초간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즉사했다.
열둘의 무사가 순식간에 열하나로 줄은 것이다.
허대건이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예상이 빗나갔구만.”
“무슨 예상을 하셨길래?”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단신으로 처치했다고는 해도 그저 상대적 무위에 의한 것인 줄 알았는데… 상대적이 아니라 그냥 네 녀석이 강한 것이었어.”
어차피 곧 다 죽을 놈들이었다.
몇 마디 정도는 대화를 나눠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말을 받았다.
“천하의 허대건 님께서 그리 봐준다니 너무 영광인걸?”
“입 함부로 놀리지 말거라.”
“그럼 다물게 해보시던가.”
이죽거리는 말투에도 허대건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무신을 만만치 않은 상대로 보고 있단 방증이었다.
대장이 그 지경이니 대원들 반응이야 뻔했다. 관자놀이 양쪽으로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허대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로들 말이 맞았군. 네 녀석이 폭혈단 씹은 무기창을 잡았을 수도 있음을 감안했어야 했는데.”
“내가 폭혈단 씹은 무기창을 잡았다 생각하나?”
“물론.”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아니고서야 네 녀석의 힘이 설명이 안 돼.”
“호오.”
“허나…….”
허대건의 입꼬리가 살살 말려 올라갔다.
“어떤 힘을 가졌든 네 녀석의 명줄은 이 자리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무신은 ‘저게 안 보이나 보군’ 하며 싸늘한 주검이 된 고정현을 가리켰다. 불과 1분 전에 부하를 잃어놓고서 명줄을 운운하는 게 우스웠다.
그런데 나머지 대원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줄줄 식은땀을 쏟아내더니 지금은 팔짱을 낄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그들의 뒤에서 큼지막한 신형 일곱 개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활강시였다.
허대건이 크큭거리며 말했다.
“네 녀석이 이것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
“아, 그 전에.”
허대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것들이 활강시임을 어찌 알아봤지? 겉보기에는 평범한 무사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눈깔만 봐도 훤히 보여.”
“눈깔?”
허대건이 고개를 돌려 활강시들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여전히 멀쩡한 무사에 지나지 않았다.
“보통은 싸워봐야 아는 법인데… 뭐, 상관없겠지.”
그 사이 허대건 앞으로 활강시들이 주르르 도열했다.
하나 같이 핏빛 장검을 꼬나 쥐고 있었는데, 그것만 보면 별 것 없었다.
길 가는 삼류무사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허대건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것들의 재료는 아주 특별해.”
“개방의 고수들을 잡아다 만들었으니 특별하겠지.”
“…뭐?”
지금이야 혈교 내에서 기밀로 유지되지만 몇 년 후면 강호 전체에 까발려질 내용이었다. 15년을 건너 뛴 무신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무신은 말을 잃은 허대건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알기로는 별의별 강시술을 죄 때려 박았다던데, 재료가 개방의 고수들이라 특별히 신경을 쓴 건가?”
“…그걸 네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무신이 입 다물고 있었으면 허대건은 활강시에 대해 제 스스로 다 까발렸을 것이다.
기밀 유출.
이라고 해봤자 들은 놈을 죽여 버리면 상관없다 판단해서.
무신도 그 판단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저 일곱 활강시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를 가감 없이 내뱉었다.
“내가 회귀를 했거든. 그래서 몇 년 후면 밝혀질 저 활강시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지.”
사실, 어차피 말한들 믿지도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허대건이 불같이 화를 냈다.
“네 녀석이 아주 정신머리가 나갔구나! 감히 누굴 상대로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느냐!”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고서야 어떻게 알았겠어?”
“…….”
“그렇지 않아?”
허대건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밀이 새어나갔을 리는 없으니 무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어찌 알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네 녀석이 여기에 묻힐 거라는 게 중요하지. 유언이나 미리 생각해 두거라.”
“멍청하군.”
“뭐, 뭐라고?”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비단 허대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양옆에 서 있던 세 명의 혈사대들이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하며 더 격하게 반응했다.
개중 하나가 못 참고 무신에게 달려들었다.
무신은 무표정하게 검을 한번 휘둘렀다.
간단한 몸짓.
그러나 허공을 부유하는 어느 깃털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유연했다.
목청수의 백산검법의 오의였다.
그러니 결과야 뻔했다.
주제도 모르던 하룻강아지의 목이 무참히 썰려 나갔다.
허대건과 남은 혈사대들이 쩌억 입을 벌렸다.
놀란 자의 표본을 고르라면 고민 없이 저들을 골라도 될 것이다.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활강시들이 개방의 고수들로 만들어졌단 걸 아는데도 이렇게 나온다… 뭘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네, 네 녀석.”
“이제야 눈치챘나?”
무신은 ‘그래, 내가 이긴단 뜻이다’ 하고 나직이 말하며 그대로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 갔다.
단순 수적으로만 보면 분명 그의 열세였다.
아니, 열세도 잘 쳐준 것이다.
그냥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에 판도가 뒤바뀌었다.
“이것들은 팔다리 잘려도 비명 한번 안 지르네.”
무신이 뛰어듦과 동시에, 감춰둔 힘을 터뜨린 일곱의 활강시가 바닥에 너부러졌다.
방심한 게 아니었다.
오로지 무위의 차에 의한 것이었다.
한 놈이 어찌저찌 몸을 일으켜 개방의 것과 혈교의 것이 더해진, 거대문파의 비기와도 견줄 검술을 펼쳤으나 무신은 상체만 살짝 뒤로 젖혀 가뿐히 피해냈다.
공격하면 틈이 생기는 법.
무신의 눈에는 그 틈이 더 크게 보였다.
처억!
흑라신검이 놈의 명치를 뚫고 들어갔다.
말캉한 것이 느껴졌다.
피가 솟구쳤다.
강시도 결국 사람이었다. 하지만 비명 한번 안 지르는 게 여전히 고통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강호판 좀비가 따로 없군.’
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을 뺐다.
검신 아래로 창자인지 뭔지 모를 것이 빨려 나왔다.
그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보이지 않던 벽을 넘어선 기분이었다.
기분.
기분 탓은 아니었다.
회귀 전의 그에게 이 활강시들은 범접도 할 수 없는, 망령의 숲의 유림과 같은 존재였다.
“더 데려오지 그랬어. 손맛 채우려면 아직 멀었는데.”
무신은 아쉬움을 삼키며 윗입술을 할짝였다.
그래도 단순 무위로만 보면 마청대, 그리고 그 대장 당우청보다도 강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사냥이었다.
짧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섭도록 시린 고요만 남았다.
그 중심에는 허대건이 있었다.
그는 무신이 자신에게 뚜벅뚜벅 걸어올 즈음에야 겨우 입을 벌렸다.
“…정체가 무엇이냐?”
회귀한 이후, 무신이 열댓 번도 더 들은 질문이었다.
무신은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검객이지 뭐겠어.”
이죽거리는 말투임에도 허대건은 의문을 풀고자 노력했다.
“내 알기로는 새외무림 출신이라던데.”
“파천도 새외무림이라면 새외무림이기는 하지.”
“파천? 거기는 네 녀석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잖느냐?”
맞는 말임과 동시에 틀린 말이었다.
한국에서 차원이동으로 넘어왔으니 파천은 잠시 머물렀던 곳이지만, 분명 난 곳은 파천이 맞았다.
무신은 ‘정 궁금하면 거기에 숨은 내막을 알려주마’ 하며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저승에서 22만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하다 왔다. 하여 이러한 힘을 얻게 되었지.”
“…….”
“너도 가고 싶다면, 내 소개해 줄 수도 있다. 그쪽 관계자한테 몇 마디 말만 하면 되거든.”
무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대건의 광대가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네 이놈!”
“어우, 깜짝이야. 귀청 떨어질 뻔했네.”
무신은 ‘간은 안전한가? 음, 안전하군’하고 정말 제 간을 매만지며 더욱 허대건을 농락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대건의 입장에서였다.
무신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허대건이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네 녀석의 명줄을 끊을 원흉은 애당초 저 활강시들이 아니라 이 혈사대와 바로 나, 홍전풍 허대건이다!”
“오호, 그러셨군.”
“뭣들 하고 있느냐! 죽여!”
딱 거기까지였다.
남은 혈사대 3인은 오합도 못 견디고 죽었다. 수적대비로 따지면 오히려 활강시들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서열 2위의 백강상은 목구멍부터 아랫도리 바로 위까지 두 쪽으로 갈려 죽었으니 상황도 더 처참했다.
무신은 와르르 쏟아진 백강상의 창자를 피해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이제 그와 허대건의 거리는 불과 다섯 장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허대건이 그럴 줄 알았단 투로 말했다.
“활강시들을 그리 만든 자를 혈사대가 어찌 해본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
“알면서도 보냈단 소리야?”
“준비 작업이 좀 필요해서 말이다.”
“응?”
그때였다.
기껏해야 6척에 불과했던 허대건의 몸뚱이가 8척에 가깝게 불어났다.
“마교의 마공이 불가사의한 힘을 끌어내듯 혈교에도 그러한 심법이 하나 있지. 그것은 바로…….”
“대혈초왕신공을 말하는 게구나.”
“뭣이?!”
활강시를 알아챈 것.
활강시의 재료가 개방의 고수임을 알아챈 것.
백 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혈초왕신공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밀 수준을 넘어 정말 혈교 내에서 몇 사람만 아는 비기 중의 비기였다.
허대건이 혈사대를 먼저 보낸, 정확히는 먼저 보내 죽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게 있었다.
무신은 미래를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네가 간과했다고도 볼 수 없지. 이미 말해줬잖아?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무신에겐 여유가 가득했다.
허대건이 몸을 바르르 떨며 받아쳤다.
“닥치거라! 대혈초왕신공까지 어찌 알았는지 내 도무지 믿기지는 않다만, 그래도 네 녀석의 명줄이 끊어지는 건 변치 않아!”
“왜 이리 학습 능력이 없으실까.”
무신은 다시 흑라신검을 고쳐 잡았다.
한일자[一]가 되도록.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던졌다.
상대가 자신보다 하수, 몹시 하수여야만 먹힐 공격이 ‘커억!’ 외마디 비명을 만들어냈다.
목구멍에 흑라신검이 박힌 허대건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허대건은 무신에게 몹시 하수였다.
“질 것 같았으면 내가 안 도망치고 있었겠냐고.”
무신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며 허대건에게 걸어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 강기를 친 것인지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다.
무신은 두어 번 박수갈채를 보냈다.
“반응속도는 과연 서열 1위라 할 만하군. 허나 그뿐이야. 모든 면에서 형편없다고.”
힘 좀 얻었다고 으스대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깔봤으니 그대로 갚아줄 뿐이었다.
무신은 흑라신검을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
아등바등 아련한 명줄이 꿈틀거리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 자리에서 끊어질 명줄은 무신의 것이 아니라 허대건의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결말이었다.
“그나저나…….”
무신은 뒤를 돌아봤다.
벌써부터 날파리가 꼬인 일곱 구의 사체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피붙이보다도 더 믿음직스럽다는 충직한 부하들.
강시들에겐 감정선이란 게 없으니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하게 돼 있었다.
그는 저 멀리 혈교의 본거가 있을 흑룡강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혈교 고수들 잡아다 혈강시를 만들어볼까.’
그의 머릿속에 괴이한 생각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