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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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1화
하산
질 것 같아서 대련을 못하겠다니.
무신은 제 두 귀를 의심했다.
“예?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의 길에 들어선지 어언 수십 년이다. 내겐 그 시간만큼의 촉이 있어. 그게 네 녀석에게 질 것 같단 느낌을 주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찌…….”
이해가 되지 않는단 무신을 뒤로하며 목청수는 계속 먼 산만 바라보았다.
“물론 제자가 사부를 뛰어넘으면 좋은 일이지. 그러니 질 것 같아도 대련은 할 수 있다. 정말 지더라도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니 말이다. 허나 의미가 없다, 의미가.”
“…….”
“네 녀석이 나와 대련을 해서 무언가 배우거나 깨달을 것이 전혀 보이질 않아.”
“…….”
“수련은 이로써 모두 끝이다.”
그렇게 말하는 목청수의 뒷모습은 어딘지 처량해 보였다.
그래, 결코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한때 무인이었으며 무림맹으로부터 숱한 포섭 제안을 받을 만큼 강했다.
고수.
선망의 대상.
그리고 은거기인.
자존심에 흠집이 날 게 자명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맞습니다, 사부님. 저와 대련하면 지실 겁니다.’
모든 면에서 무신이 월등하다.
검술.
검법.
내공.
경험.
심지어 연륜까지.
목청수는 단지 ‘백산자화신공’ 하나만 더 나았을 뿐이다.
곧 그마저도 뒤처지겠지만.
‘신기하군.’
무신은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렴 그렇다고는 해도 목청수 본인의 입에서 ‘질 것 같다’라는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인정받는다는 것.
첫날 느꼈던 바로 그 감정.
그는 미소를 감추며 목청수에게 절을 올렸다.
지든 이기든 어떻든 저떻든 목청수는 사부였다. 제자된 도리로서 마지막 예를 갖춰야 했다.
“나중에 또 만났으면 좋겠구나.”
“예, 시간이 되거든 이곳에 꼭 다시 들르겠습니다.”
“여기가 아니어도 만날 수 있을 게다.”
“예?”
목청수가 뜻밖의 답을 했다.
“내가 이곳에 은거한 이유는 속세에 환멸을 느껴서보다도, 지루함 때문이었다. 이룰 것을 다 이룬 자의 속사정이랄까. 배부른 소리겠지만 이 사부는 그만큼 강했다.”
“배부른 소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사부님.”
무신이 아양을 떠는 게 아니었다.
희대의 천재.
몇 손가락 안에 들던 재능.
속세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으면 목청수는 지금쯤 현경에는 도달했을 것이다.
그만큼 대단한 위인이었다.
목청수가 계속 말했다.
“어쨌든 그리해서 속세를 떠났는데, 다시 속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갑자기 왜……?”
“네 녀석 때문이다.”
줄곧 먼 산만을 바라보던 목청수가 비로소 몸을 돌렸다. 처량해 보였던 뒷모습과 달리 앞모습은…….
들떠 있었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다음에 또 네 녀석만큼 강한 놈이 제자로 들어올지 어찌 아느냐? 해서 속세로 돌아가 더 강해질 생각이다. 누구든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만드는 게지.”
회귀 전에는 없던 전개였다.
강호에 마물이 내려앉는 순간에도 목청수는 계속 백산의 은거기인이었다.
그런데 그게 바뀌려는 것이다.
무신은 난처해졌다.
억지로라도 대련을 해서 내리 다섯 판 져주면 괜찮아질까.
하지만 목청수는 이미 결심한 듯싶었다.
“먼저 하산하거라.”
무어라 말을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무신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모르겠다’ 하고 정상을 내려갔다.
속세로 내려간 목청수와 재회한다 한들 그게 악연은 아니잖은가.
인연, 아니, 애당초 사제지간인데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무신은 쉬지 않고 내려가다가 잠깐 옆으로 빠졌다.
눈 쌓인 백산에 묘령의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나희였다.
무신은 인기척을 죽이고 찬찬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운기조식 중에 있는 무인을 깨우는 것은 같은 무인으로서 절대 하면 안 될 짓이었다.
그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찾는 이유야 뻔했다.
안쓰러웠다.
너무도 안쓰러웠다.
저 여자는 지금, 불가능한 일에 애꿎은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확실했다.
회귀 전의 그녀는 분명 백산자화신공의 연마자가 아니었다.
‘말해주는 것도 우습긴 한데.’
확실한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해서였다.
이나희에게 그 부분을 설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무신은 고민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저러고 있었을 텐데,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었다.
그래도 정상 수련 전까지 부대끼며 산 정이 있으니까.
물론, 장차 삼봉이 될 처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때, 이나희가 눈을 떴다.
“최 대협!”
“어, 예예. 소리 안 낸다고 한 게 난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마침 딱 쉴 시간에 오신 걸요.”
이나희가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부좌라고 해봐야 결국 앉은 다리.
땀은커녕 숨도 안 차야 정상인데, 그녀는 쇄골과 그 아래 옷자락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집중했던 것일까.
또 얼마나 백산자화신공을 익히고 싶었던 것일까.
무신은 순간 생각했다.
그도 내공 한번 느껴보겠다고 수십수백 년을 이렇게 지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결국…….
‘성공했지.’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단 것을 그제야 느꼈다.
회귀 전의 이나희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무신은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무공 하나 익히는 데 수천 년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반년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소저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최 대협도 참. 사부께서 반년이면 되고 안 되고 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했는걸요?”
“그거야 재능의 영역을 기준으로 말씀하신 거잖습니까? 노력의 영역에선 더 필요할지도 몰라요.”
“음…….”
무신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경험담을 들려줄 뿐이었다.
“내키거든 더 해보십시오.”
***
산서성 북부.
녹림으로 인해 장사치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그곳에 수십의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남청색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좋은 용무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옷자락에서부터 살기가 가득했다.
개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수하에게 물었다.
“확실해?”
“예. 이쪽 거리에서 나다니는 것을 봤답니다.”
수하는 그렇게 답하며 잔뜩 기가 죽은 웬 소년에게 ‘맞지? 분명 그놈이랬지?’ 하고 다그쳤다.
소년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분명 말씀하신 사람이 맞아요……!”
소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나 할 일을 했단 것에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있었다.
그놈을 찾으면 나름의 사례를 하겠다는 것.
남청색 무복인들의 약조였다.
소년은 한껏 허리를 숙이고는 수하에게 물었다.
“저… 약조하신 사례는…….”
“길 가는 사람 본 거 가지고 사례는 무슨 사례야?”
“예?”
“썩 꺼져. 목구녕에 칼침 맞기 싫으면.”
“아, 알겠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정말 검이 휘둘러질 모양새였다.
소년은 기겁하여 달아났다.
어리디어린 소년에게 약조를 어긴 것으로도 모자라 살해 협박까지 하는 이 망나니들의 정체는…….
우습게도 오대세가 다음 간다는 석가장의 무사들이었다.
“샅샅히 뒤져. 예사 놈은 아니라니 무작정 덤벼들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일이 터진 것은 약 석 달 전이었다.
이곳에 보석을 매입차 왔던 석가장의 안부인이 웬 검객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당해 얼굴 반쪽이 으깨졌다.
그녀를 호위차 온 무사들은 죄다 송장 신세가 되었고.
하여 석가장 가주가 직접 이곳을 찾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바로 그, 석위현이었다.
“저희도 움직일까요?”
호법 대장의 물음에 석위현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부산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눈치채고 빠져나가면 곤란해. 너희는 이 자리에서 대기…”
“대기할 필요 없다.”
한 청년이 기지개를 펴며 걸어왔다.
흑장포.
흑검.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시종들이 말해준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목구비.
석위현이 퍼뜩 소리쳤다.
“네 이놈!”
“아후, 귀청 떨어지겠네.”
청년이 손바닥으로 귀를 가리며 몸을 떨었다.
별것 아닌 행동이 석위현의 눈에는 비아냥대는 것으로 보였다. 애당초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저 자는 안부인을 그 지경으로 만든 쳐 죽일 놈이었다.
자리는 순식간에 석가장 무사들로 가득 찼다.
석위현의 쩌렁쩌렁한 육성에 다시 죄다 모여든 탓이었다.
“그런 짓을 하고서 여태 잘도 돌아다녔구나!”
“잘도 돌아다니기는. 그럴 거였으면 이 자리에도 안 나타났지.”
그러고 보니 청년은 방금 전 ‘대기할 필요 없다’라는 말을 했다.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석가장 무사들이 지천에 깔린 곳에.
청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됐군.”
“뭐라고? 잘돼?”
“그래. 잘됐지. 마침 새로 익힌 심법의 효율을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
석위현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뭣들 하느냐! 저 주제도 모르는 놈의 머리통을 날려라!’ 하고 다시 소리친 후, 그 자신도 무기를 빼들었다.
정확히는 무기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석가장.
장법의 명가.
그와 무사들의 무기는 본인들의 손바닥이었다.
청년이 짝짝 두어 번 박수 치며 말했다.
“손으로 싸우는 것은 하북의 팽가 정도는 돼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안 그런가, 석가장 가주 양반?”
“닥쳐라!”
“모르면 직접 느끼게 하는 수밖에.”
해가 저물어 어둑한 사위.
그곳에 집채와도 같은 섬광이 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저게 무슨……!”
석위현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세상만사 지나고 나서 깨달으면 항상 늦는 법이었다.
아차 싶어 도주하려 할 때에는 이미 잘게 잘린 석가장 무사들의 몸이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의 몸도 같은 꼴이 되기까지 한순간이었다.
***
혈교.
마교.
종남파.
그리고 석가장까지.
무신은 본의 아니게 강호 내 거대 세력들과 적대 관계에 있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지금 무림공적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잖아?’
그는 머리통과 팔다리가 보기 좋게 잘린 석위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에게는 죄가 없었다.
당장 이번 일만 해도 석가장의 부인이 먼저 원인을 제공해 벌어진 것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아직까지도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흑라신검을 내려다보았다.
백산자화신공.
과연 놀라웠다.
목청수의 말처럼 창궁무애신공에도 비할 만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되겠어.’
무신의 입꼬리가 살살 말려 올라갔다.
벌써부터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만 내공을 가라앉히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제법 소란스러웠을 텐데도 인기척 하나 없었다.
‘북부가 아니었다면 수십 수백의 구경꾼이 몰려들었겠지.’
시체야 내일이면 관부가 알아서 치울 테니 이제 그는 그냥 떠나면 그만이었다.
따로 추적이 붙을 수도 있겠으나 이처럼 목격자가 없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무방했다.
다만…….
추적이라고 하니 다른 부분에서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마교나 종남파야 그쪽에서도 날 잘 알지 못할 테니 상관없겠지만, 혈교는 다를 텐데 말이지.’
이미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이 나섰다. 더한 놈들이라고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어쩌면 이미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바에야 싹 정리해 버리는 편이 나으려나.’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진심이었다.
‘어차피 혈교 쪽에 가서 할 일도 있고 하니… 그래, 그게 낫겠어.’
정파의 화산파와 남궁세가에 비견되는 사파의 거물.
혈교.
단신으로 그곳을 쳐부수겠다는 것은 정말 미친놈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여전히 진심이었다.
오히려 흥분하고 있었다.
‘재밌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