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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7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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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7화

불꽃

 

 

다시 또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목청수가 아니라 무신이 주인공이었다. 그를 보는 시선에 경악, 당혹, 혼란 등 갖가지 감정이 한데 어려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 포권을 취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목청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

 

“백산검법을 배운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정말 없다고?”

“예.”

“허.”

 

배운 적이 없다면, 남은 것은 하나였다.

 

“네 녀석… 엄청난 재능을 가졌구나.”

 

무신은 피식 웃었다.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는 재능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노력파였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 그게 아니었다면 백 번을 봐도 목청수를 따라할 수 없었으리라.

 

무신은 검을 집어넣었다. 무사들이 그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와아, 어디선가 작은 탄성도 터졌다. 그도 사람인지라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관심이었다.

 

“…….”

 

들창코는 입을 싹 다물고 있었다. 객잔에서부터 내내 무신을 죽일 듯 노려보더니 지금은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슬금슬금 자리를 비켜서기까지 했다. 힘 앞에서 굴복하는 것은 초절정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신 다음으로 백산검법 1초식을 시연한 자는 홍일점 여무사였다. 여덟 번을 보고 끝냈으니 무신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여타 무사들에 비하면 발군의 실력이었다. 애당초 목청수가 기준으로 둔 횟수도 열 번이었다.

 

‘뭐 하는 여자일까’, 무신은 이맛땀을 훔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옷이나 신체적인 부분도 다 낯설었다. 벗겨보면 좀 다를 수도 있겠으나 정분을 나누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까 생각한 대로 시간이 나거든 말을 섞어봐야 알 것 같았다. 이름이라도 들으면 뭐든 기억나는 게 있을 것이다.

 

마흔도 넘는 무사들이 일일이 확인을 받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푸르던 하늘에 붉은 노을이 꼈다. 본의 아니게 열외를 받았던 무신은 내내 혼자 백산검법 1초식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이젠 연마란 말도 무색했다. 그의 몸은 그것을 완벽히 ‘통달’하고 있었다.

 

목청수가 혀를 내두르며 다가왔다.

 

“네 녀석은 어디서 왔느냐?”

“파천에서 왔습니다.”

“파천?”

 

목청수가 아차차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파천삼을 먹었다 했구나.”

“예.”

“그럼 설마…….”

 

목청수의 눈이 무신의 옷을 훑었다.

 

“그 옷, 혹 파천의더냐?”

 

녹림, 도적, 살막, 혈교, 독곡.

파천의 같은 명물을 가지고 다니기에 강호는 너무 위험한 세상이었다. 죽이면 그만이긴 하나 굳이 귀찮은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무신은 단 한 번도 파천의에 대해 떠벌리지 않았다. 흑색으로 염색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목청수라면 안심해도 된다. 그는 녹림이나 도적 따위가 아닐뿐더러 어차피 이 백산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거기인이었다.

 

“예.”

 

목청수가 다시 또 ‘그럼 설마…’ 하며 물었다.

 

“산 것이냐, 잡아서 만든 것이냐?”

“후자입니다.”

“허허.”

 

초절정고수쯤 되면 백산왕 한 마리 잡는 것이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주치는 것’이 문제였다. 백 년에 한 번. 평생의 운을 다 바쳐도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청수는 특히 그 부분을 잘 알았다. 백산검법이 백산왕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출중한데 운까지 좋으니 네놈은 대성하겠구나.”

“대성은요. 아닙니다.”

“아니기는. 내 장담하마. 네놈은 꼭 대성할 게다.”

 

무신은 재차 손을 내저었지만 속마음은 딴판이었다. 첫사랑을 나눌 때보다도 심장이 더 떨렸다. 인정받는다는 기분. 딴 사람도 아니고 목청수란 거물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 왜 여태 모르고 살아왔을까. ‘여태 못 받았던 거 앞으로 다 받으면 돼’, 그의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마흔이었던 무사의 수는 어느 순간 서른까지 줄었다. 달리기에서 하나, 1초식 시연에서 아홉이 떨어진 결과였다. 언제 하산하게 될지 모른단 공포 앞에서도 남은 무사들은 얼굴이 밝았다. 몇 명이 줄었든 어차피 본인만 남아 있으면 그만. 그들은 오히려 목청수의 검술을 배웠음에 기뻐했다.

 

저녁 식사 중, 무신은 여무사를 찾았다. 홍일점인 그녀는 홀로 저만치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같이 먹읍시다’ 하는 그의 말에 의외로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조금 놀랐다.

 

“상냥하시군요.”

“같이 밥 먹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요.”

“그렇기야 한데, 아까 워낙 살벌하셨어서.”

 

가시나가 뭘 설치냐고 했다가 그녀에게 죽은 남무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앞뒤 잘라먹은 말이었으나 그녀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그놈이야 먼저 저한테 지랄했으니까요.”

 

지랄. 과격한 언어를 그녀는 웃는 얼굴로 구사했다. 무신은 ‘그렇지요. 지랄했으면 죽어야지’ 하고 동조하며 육포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특품으로 가져온 게 효과가 있는지 텁텁하지 않고 본연의 맛 그대로 쫄깃쫄깃했다. 그는 다시 하나를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저도 육포 있는데.”

“이건 좀 맛이 다를 겁니다.”

“왜요?”

“산서에서 이름난 요리사한테 구한 거거든요.”

“그래요?”

 

그녀가 육포를 씹는 순간, 무신은 이때다 싶어 말했다.

 

“드셨으니까 뭐 하나만 물읍시다.”

“뭐야, 뇌물이었어요?”

“그럼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녀가 푸훗 웃었다. 좋게 받아들여 주는 눈치였다.

 

“이름이 뭡니까?”

 

하고 물음과 동시에 무신은 자신부터 소개했다.

 

“전 최무신이라 합니다.”

“본인 소개가 먼저 아닌가요… 하려던 참인데.”

“말해줄 의향이 있으시단 거군요.”

 

그녀가 육포를 오물거리며 애매하다는 듯 말했다.

 

“통성명 의미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사부께서.”

“그건 하산하는 사람들한테나 적용되는 얘기지요.”

 

무신은 육포 하나를 더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소저는 끝까지 남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보이나요?”

“예.”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늘 있었던 두 번의 수련에서 모두 두 손가락 안에 들었다. 나중은 가봐야 아는 법이지만 적어도 통성명 나눌 만큼의 고수는 되었다.

 

그녀가 자신이 싸온 건량을 건네며 말했다.

 

“대협이야말로 정말 끝까지 남을 것 같아요.”

“그리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리 못 보는 게 이상하죠. 사부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시잖아요.”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녀에게 무신은 진실을 토로했다.

 

“사실 제가 원래 한 번 죽었던 사람인데, 사후세계에서 22만 년 동안 수련을 하다 왔습니다. 그러니 재능이라기보단 노력인 것이지요. 본래는 기초 검술에도 허덕이던 하수였습니다.”

“어머.”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무슨 농담을 그리 진담처럼 하세요?”

“안 믿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됐어요, 됐어. 겸손한 척하시는 거 다 알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무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전 이나희예요.”

“예?”

“이나희요.”

 

못 들어서가 아니라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은 것이었다.

이나희. 차후 삼봉(三鳳)에 드는 여제.

 

설마하니 그녀가 목청수의 수련을 받았을 줄은 몰랐다. ‘아니, 받았으니 그렇게 강했겠지’, 무신은 중얼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친하게 지냅시다.”

 

미래를 위한 친목 도모였다.

 

***

 

신강성. 마교의 본거. 모종의 일로 교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그곳이 발칵 뒤집혔다.

 

“마향대가 백야평야에서 전멸을 당해?”

“예, 예!”

“성태귀 그놈까지?”

“그, 그렇습니다!”

 

보고를 받은 사내가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달아 올렸다. 교주를 대신해 마교의 임시 책임자가 된 부교주 마정태였다. 그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탁상을 내리쳤다. 우지끈! 무려 부교주에 달하는 자의 힘을 네모난 나무 따위가 견딜 리 만무했다. 탁상이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누구한테 당했다든?”

“그, 그건 아직…….”

 

일이 터진 지 이제 열흘이었다. 거기다 정파 놈들 땅이라 조사가 더욱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쭉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애당초 적에게 제 땅을 열어줄 바보는 없었다. 마정태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교주가 돌아왔을 때 뭐라 설명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시팔!”

 

연신 육두문자만 토하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종남파. 마교와 은밀한 거래를 이어가는 정파의 숨겨진 숙적. 그들이 역으로 함정을 파서 작업을 친 게 아닐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교가 쥐고 있는 그들의 약점을 줄줄 꿰어 시 한 편을 쓸 정도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었다.

 

“백야평야에 누가 있지?”

“산서성의 문파 말씀이십니까?”

“문파든 개인이든 뭐든 다.”

 

자신도 저 두 쪽 난 탁상처럼 될까, 수하가 얼른 답했다.

 

“진주언가와 산서구가 등이 있습니다.”

“그놈들 수준으론 마향대를 그리 만들 순 없잖아?”

“그렇습니다.”

“우라질, 그럼 지나가던 고수들에게 기습이라도 당했단 거야, 뭐야?”

“…최대한 빨리 밝혀내겠습니다.”

 

마정태의 계산에서는 이미 밝혀내기는 무리다 확신하고 있었다. 설령 정파가 선심을 써준다 해도 감히 누가 고하겠는가. 자신이 마향대를 제거했다고. 하지만… 이대로 가만있으면 마교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마정태는 결국, ‘그들’을 불렀다.

 

“부교주님을 뵙습니다.”

 

마청대(魔淸隊). 마향대보다 곱절,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한 마교의 무력 집단이었다.

 

***

 

나날이 줄어가던 무사들의 숫자는 두 달쯤 지나자 정체기를 맞았다. 남았다는 것은 수련의 통과를 의미하므로 정체기라기엔 어폐가 있겠지만, 어쨌든 열 명. 며칠 전부터 계속 그 숫자였다.

 

무신은 당연하게도 남아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초식을 한 번만 보고 끝낸 괴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그저 말 그대로 보고 익힐 뿐이었다.

 

이나희는 중간에 좀 애를 먹긴 했지만 역시 훌륭하게 완수했다. 의외는 들창코였다.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는 그는 늘 아슬아슬하기는 해도 하산을 당하지는 않았다. 나머지 일곱 무사야 그와 도긴개긴이었다.

 

목청수가 언제나 그랬듯이 나뭇가지를 손에 쥐었다.

 

“오늘이 마지막 수련이 될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엊그제 백산검법 13초식을 끝냈으니 오늘은 14초식, 마지막이 맞다.

 

열 명의 무사들이 목청수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14초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목청수가 손가락을 두 개 폈다.

 

“두 번의 동작이면 끝나지.”

“예?”

“그간 해왔던 것들에 대한 화룡점정. 점 하나 찍는 일이니 쉬운 게 당연지사다.”

 

아무렴 그렇다고는 해도, 백산검법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나 창궁무애검법에도 비한다는 그 절정의 백산검법이었다. 그런데 그 끝이 겨우 두 번의 동작이라니. 소란은 목청수가 그 두 번의 동작을 펼치는 순간, 씻은 듯 잦아들었다.

 

“……!”

 

동작은 두 번이었다. 하지만 목청수가 든 나뭇가지가 문제였다. 검강. 분명 그것이었으나 겉으로 표출되기는 마치 불꽃 같았다. 아주 높이높이 떠올라 창공을 찢어발길 듯 솟구쳤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내공을 가져야 나오는 강도일까.

 

목청수가 무신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내공이 많아야 가능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전혀. 이것은 순수한 내공의 운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용만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목청수가 불꽃을 지웠다.

 

“이제부터 이만한 검강을 태울 때까지 내공 운용에 열중하도록 하라.”

“마, 말도 안 돼.”

“대신 이번에는 특별히 백 번의 기회를 주마. 인심 썼으니 꼭 합격들 하거라.”

 

그렇게 말하며 목청수는 다시 무신을 흘겨보았다. 그의 눈이 ‘그래, 초식은 내 인정하지. 허나 내공 운용은 안 될 것이다. 나도 이렇게 검강을 만드는 데만 자그마치…’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백산의 기슭에 끝을 알 수 없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그것은 방금 전 목청수의 것보다 곱절은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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