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7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7화
내용
반 시진을 달려가자 웬 동굴이 하나 나타났다. 여인은 그곳에서 비로소 발을 멈췄다. 그녀를 앞지를 정도로 빨랐던 무신과 달리 방우돈과 우청길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그들은 버거웠던 듯 숨을 헐떡거렸다. 초절정고수로서의 체면을 구기기 싫었는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온몸에 육수가 한 바가지였다.
“곧 의뢰인들이 오실 겁니다.”
여인은 차분했다. 그만큼의 속도로 달려왔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아직 땀을 훔치고 있는 방우돈이나 우청길과 비교하면 오히려 그녀가 더 초절정스러웠다.
방우돈이 괜히 신경질을 냈다.
“밝혀지지 않은 지점인지 뭔지 설명도 안 해주고 왜 냅다 뛰고 지랄이야, 지랄은?”
“힘드셨나요? 설명보단 보여 드리는 게 빨라서 그런 건데.”
트집은 아니었다.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충분히 신경질을 낼 만했다. 그러나 ‘힘드셨나요?’ 하는 말로 받아치니 방우돈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지면 정말 힘들어서 신경질을 내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청길도 같은 생각인지 그렇게 씩씩거려 놓고선 입을 싹 닫았다.
자존심 센 두 남자를 뒤로하며 여인이 말했다.
“어쨌든 이곳이 백야평야의 밝혀지지 않은 지점입니다.”
동굴.
방우돈과 우청길이 그제야 그곳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산서 출신이 아니었지만, 동굴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라는 것은 알아 들었다.
방우돈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걸 여태 아무도 못 봤다고?”
얼추 봐도 넓이가 열댓 장도 넘었다. 높이는 고개를 한참 들어도 그 끝이 까마득했다. 저만큼 큰 동굴이 지도에서조차 표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우청길도 한마디 거들었다.
“없던 게 생긴 거야, 뭐야?”
그냥 던진 말이었겠으나 우습게도 거의 정답이었다.
“맞습니다. 정확히는 없던 게 생긴 것이 아니라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된 것이지만요.”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돼?”
여인이 손가락을 쭉 펴 동굴을 가리켰다.
“저것은 일종의 기관진식입니다. 평소에는 감춰져 있으나 특수한 힘을 받으면 겉으로 드러나죠.”
“특수한 힘은 또 뭐야?”
“주술입니다.”
죽은 사람을 강시란 이름으로 되살리기도 하는 게 주술의 힘이었다. 그러니 동굴 하나쯤 밖으로 꺼내는 것이야 일도 아니었다. 우청길과 방우돈이 그 점을 모를 리 없었다. 천성이 무인인 그들도 주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은 알았다.
무신도 놀랍다는 듯 반응했다.
“이야, 그래도 그렇지 참 대단하군.”
그는 짝짝짝 손뼉을 마주쳤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밝혀지지 않은 지점이란 것도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됐다는 것도. 그는 ‘동굴이 여기 있었단 건 몰랐지만’ 하고 남몰래 웃으며 여인을 쳐다봤다.
서예림.
타고나기를 주술사의 자질이었으며 무공도 괜찮게 익혔다던 저 멀리 서씨세가의 여식.
워낙 음지에서만 활동해 아는 정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알고자 했으면 더 알 수 있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얽매일 만큼 무신은 오지랖 넓은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초절정고수도 따돌릴 만큼 걸음이 빠르다’ 하고 잠깐 감탄만 할 뿐이었다.
물론 방우돈의 반응은 무신과 달랐다.
“발바닥에도 주술을 쓰는 거야?”
“네?”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리 빠르냐고.”
뒤늦게 말을 이해한 서예림이 ‘아아’ 하며 답했다.
“당연히 보법을 썼습니다.”
“보법? 주술사가 무슨 보법이야?”
“저처럼 무공도 함께 익히는 주술사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다 쳐. 헌데 네가 익힌 보법이 내가 익힌 보법보다 좋을 순 없는 거잖아? 안 그래? 게다가 난 초절정의 경지라고, 초절정의 경지. 만인이 인정한.”
서예림이 답은 않고 물음표를 던졌다
“무사님께서 쓰는 보법은 천리호정보다 대단한가요?”
“…뭐?”
“제 것은 천리호정보다 대단합니다. 그러니 빠를 수밖에 없지요.”
천리호정.
남궁세가의 비기임과 동시에 강호 전체를 통틀어 수위에 드는 보법.
그런데 그것보다 대단하다는 것.
말문이 막힌 방우돈에게 서예림이 싱긋 웃어 보였다.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지 대화를 지켜보던 우청길이 괜히 더 움찔했다.
하지만 무신은 ‘개뿔이. 금약을 잔뜩 처먹은 덕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한낱 주술사가 천리호정보다 대단한 것을 익혔을 리 없었다. 지레짐작 따위가 아니었다. 앞으로 그녀, 그리고 그녀의 일행들이 한 짓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이제 의뢰인들을 만나실 시간입니다.”
마침, 그녀의 일행들도 나올 모양이었다. 깊고 깊은 동굴 속에서 세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양옆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방우돈과 우청길이었다. 무려 초절정이나 되는 그들이 이토록 긴장한 이유야 뻔했다. 세 개의 인영에서 가공할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꽤 하는 놈들인가 보오.”
“그러게 말이오.”
무신은 ‘꽤 하는 정도가 아니지’ 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입구를 주시했다. 차후 강호에 큰 혼돈을 몰고 올 이들. 듣기만 들었지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도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잘들 오셨소.”
붉은 허리띠를 두른 잿빛 무복.
등 뒤에 단단히 동여 멘 검.
그리고 복면.
복장만 보면 평범한 무사 같은데 복면을 보면 살막의 자객 같은 게 의뢰인들의 모습이었다.
무신은 우선 인사를 받았다.
“반갑소.”
그를 따라 방우돈과 우청길도 얼른 입을 열었다.
“빨리도 나오시는구려.”
“나 원,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소.”
꿀꺽 침 넘기면서까지 긴장한 주제에 둘은 잘도 거드름을 피웠다.
가운데 서 있는 의뢰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오. 준비를 좀 하느라.”
“준비?”
“대협들이 할 의뢰에 대한 준비 말이오.”
“그니까 어떤 준비인데? 아니, 그보다 어떤 일인지부터 좀 알려주시오. 세상에 내 그것도 모르고 의뢰를 받기는 처음이야.”
방우돈이 입에 침을 바르며 묻는 말에 의뢰인이 ‘순차대로 진행하는 게 좋지 않겠소?’ 하며 동문서답을 했다.
“약속 장소까지 온 마당에 뭘 더 순차대로 진행하오?”
“들었을 텐데, 의뢰소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만 하는 의뢰라고.”
“아.”
의뢰인이 ‘이제 기억났소?’ 하며 말을 이었다.
“본인에 대해 먼저 좀 알려주시오.”
이 무슨 해괴한 경우인가 싶지만, 의뢰인의 말마따나 의뢰소장에게 이미 언질을 받았다. 거기에 금자 1냥이란 선수금까지. 요구대로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우청길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우리가 이빨을 까면 어쩌려고? 당장 내가 화산파의 1대 제자라 하면 그렇구나 하고 믿을 거요?”
“당연히 못 믿겠지. 허나 애초에 이빨을 까는 게 불가능하오.”
그렇게 말하며 의뢰인이 서예림을 가리켰다.
“이 아이가 주술을 쓰면 하는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 있지.”
“…….”
“허튼소리하면 의뢰에 불응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소.”
다시 방우돈이 말을 받았다.
“불응하면?”
의뢰인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여기가 대협들의 무덤이 될 테지.”
“호오.”
“걱정 마시오. 좋게 좋게 따라주면 아무 문제없소.”
방우돈과 우청길이 코웃음을 치며 계속 입을 연 의뢰인과 양옆의 두 의뢰인을 쳐다보았다. 의뢰인들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묘한 줄다리기 속에서 무신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름 최무신. 별호 없음. 나이 스물여섯. 출신 파천. 현재 거주지 산서. 이 정도면 됐소? 자기소개론 충분한 것 같은데.”
“가문은?”
“없소. 있으면 내 말했지.”
“없다니? 길바닥에서 났다 이 말이오?”
무신은 한국에서 고아로 자랐다. 길바닥에서 났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니 내내 의뢰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곧 알겠다는 듯 다시 초점을 찾았다.
“개방 사람이오?”
“전혀. 태어나 어디에도 몸담은 적이 없소.”
“그런 자가 어찌 초절정의 무위를 갖춘단 말이오?”
“아주 아랫도리 길이까지 물어보지 그러시오?”
무위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확실히 정보란 주제에 어긋났다. 의뢰인이 ‘크흠’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서예림을 시켜 앞전 내용들까지만 진위 여부를 파악하도록 했다. 결과야 볼 것도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다.
무신이 일종의 군중심리를 작용시켰는지 방우돈과 우청길도 본인의 정보를 하나하나 내뱉었다. 우청길이야 하북우가의 자제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방우돈도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의뢰인이 말했다.
“나는 마상이라 불러주시오.”
“마상? 가명이오?”
의뢰인, 아니, 마상이 그렇다고 하며 답했다.
“대협들이 날 잡을 일은 없지 않소?”
“…알겠으니 이제 얼른 의뢰에 대한 이야기나 해보시오.”
마상이 제 양옆에 있는 두 의뢰인을 가리켰다.
“이들의 가명은 안 궁금하시오?”
“됐소.”
마상이 ‘하기야 대화할 사람 이름만 알고 있으면 되겠지’ 하며 드디어 꽁꽁 묶어둔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그 내용을 아는 자가 있음을 그는 꿈에도 몰랐다.
“마물에 대해 아시오?”
“마물?”
“1천 년 전 중원을 침입했던 마계의 미물 말이오.”
“아아, 알다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방우돈이 부르르 이를 떨었다.
“죽은 민간인만 수십만이 넘었다던가.”
“무림맹도 좌초될 정도였으니 아마 더 될 거요.”
“그렇소? 헌데 마물이 왜? 결국 선조들에게 죄다 죽었지 않소?”
“맞소. 죄다 죽었지.”
마강의 눈이 빛났다.
“허나 사체는 그대로 남아 있소. 그 사체의 산물을 찾는 게 우리가 대협들에게 부탁할 의뢰요.”
“산물이라니?”
불쑥 끼어든 우청길에게 마강이 반대로 물었다.
“무인이 죽으면 뭐가 남소?”
“무기나 옷이 남겠지.”
“마물도 마찬가지요. 죽었으니 무기나 옷이 남았겠지. 그것을 찾잔 얘기요.”
우청길이 실소를 터뜨렸다.
“1천 년이 지났소, 1천 년이. 무기나 옷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리가 없… 그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치고, 어디서 찾을 거요? 세월에 진즉 다 파묻혔을 텐데.”
“저 너머.”
“저 너머?”
“저 동굴 너머. 거기에 마물의 산물이 있소.”
마강이 확신에 차서 말을 이었다.
“내 아까 준비하느라 마중을 못 나갔다 하지 않았소? 그게 다시 한번 산물을 확인하느라 그런 것이었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안 될 것 없소. 저 아이는 단순히 대협들 안내와 정보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 있는 게 아니거든.”
방우돈과 우청길의 눈이 서예림에게 돌아가는 순간, 의뢰의 정확한 내용이 나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산물 주위에 마물이 깔려 있소. 죽은 마물들이 아니라 산 마물들이 말이요. 새끼를 깐 것인지 환생을 한 것인지는 내 모르겠소. 결론은, 마물들을 처리해라. 그게 대협들의 역할이오.”
마물.
기록에 의하면 화산파의 고수도 통째로 집어삼켰다는 그야말로 괴물.
어떻게 보면 영물을 뛰어넘는 신물.
그놈들의 산물을 찾는 게 아니라 그놈들을 직접 상대해야 한단 것에 방우돈과 우청길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나머지 금자 49냥을 채우러 왔다가 사후 49제를 채워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기대가 되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기까지 했다.
“이야기 끝났으면 얼른 들어갑시다.”
무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