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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4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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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4화

남궁선검대

 

 

남궁성.

무신은 마음 같아선 직접 남궁세가로 달려가 그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남궁세가는 진주언가 따위의 가문과 다르다. 초절정 이상의 무사들이 넘쳐난다. 혼자 당해내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산동 분타에 남궁성의 추적을 부탁했다. 강호의 수많은 거지들로부터 돌고 돌아 산서 분타에도 전해졌고, 지금 이렇게 결과를 들고 온 것이다.

 

“잠깐 산서 분타로 가시겠습니까? 가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대장간에 볼 일이 좀 있습니다. 끝나는 대로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충구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이결.

분타주 바로 아래의 직책에 있음에도 마치 상관을 맞은 듯한 태도였다. 새삼 또 배춘삼의 입지를 알 만했다. 무신은 ‘만두와 죽엽청 몇 개 덕분에 인생이 편해지는군’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대장간을 향해 걸어갔다. 나신의 여인이라도 본 것처럼 자꾸 가슴이 뛰었다. 흥분이었다. 명화진의 복수를 할 수 있음에 몸이 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고민했다. 어떻게 죽일까. 어떻게 죽여야 더 고통스러울까. 팔다리를 잘라 그 단면에 소금을 뿌릴까. 눈깔을 뽑아 아가리에 쑤셔 넣을까. 무엇이 됐든 모두 명화진의 복수를 위한 일이었다.

대장간에 들어가니 마침 작업이 다 끝나 있었다. 석반 위에 놓인 흑라신검의 날이 맡겼을 때보다 곱절은 더 번쩍거렸다. 그것을 심오하게 관찰하고 있던 노인이 ‘딱 왔구먼! 와서 좀 보게!’ 하고 손짓했다.

 

“잘됐습니까?”

“잘되다마다.”

 

노인이 입에 침을 바르며 말을 이었다.

 

“내 대장일을 수십 년 했지만 이렇게 좋은 물건은 처음 보네. 과연 명검은 명검이야.”

“어르신이 잘 두드려 준 덕이지요.”

“내 덕은. 원체 물건이 좋았대도.”

 

백산왕의 가죽이 팔각수(八各手) 포원경의 손을 거쳐야만 진정한 파천의로 탄생하듯 흑라신검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대장장이였다면 망치질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두 손을 들었을 것이다. 흑라신검 특유의 기운을 견디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무신은 ‘산서의 많고 많은 대장간 중에 굳이 여길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하며 은자를 뭉텅이로 꺼냈다. 단순히 보수비를 떠나 수십 년 장인의 손길에 대한 감사의 뜻도 함께였다.

그런데 노인이 그것을 도로 돌려주었다.

 

“괜찮네.”

“예?”

“흑라신검을 만져본 것만으로도 만족해.”

 

손님이 와도 졸린 잠부터 채우던 꼴에 듣던 대로 참 괴팍한 노인네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의 구석이었다. 돈도 포기할 만큼 대장 일에 열정이 대단했다.

무신은 결국 보수비를 내지 않고 대장간을 나섰다. 그러나 영 찜찜해 문틈에 은자가 넉넉히 든 주머니 하나를 걸어두었다. 그제야 마음이 후련했다.

새 것 같은 테를 내는 흑라신검을 안고 그가 향한 곳은 당연히 산서 분타였다. 대장간에서 약 5리 정도 더 떨어진 곳이었으나 도착은 금방이었다. 수위의 보신경을 이용하는 그에게 ‘멀다’ 하는 느낌은 적어도 50리는 되어야 했다.

 

“오셨습니까?”

 

산서 분타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백의개와 일결에 해당되는 거지들이 대거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니, 마중이라기보다는 상관 예우란 말에 더 어울렸다. 이결 오충구가 그랬던 것처럼.

무신은 유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예, 일이 있어 좀 늦었습니다.”

 

하고 말하기 무섭게 뒤에서 단신의 중년인이 한 명 나타났다. 5척 반 정도로 신장이 매우 작았는데, 반대로 몸집은 어디 저 8척 장한보다도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거지들이 양옆으로 길을 터주는 것으로 보아 아마 분타주인 모양이었다.

무신은 ‘저 정도 무골이면 분타주의 자리까지 올라갈 만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그와 마주했다.

 

“분타주 학도건입니다.”

“최무신이라 합니다.”

 

학도건이 손을 내밀었다. 무신은 그것을 잡고 흠칫 놀랐다. 마치 철근을 쥐는 느낌이었다. 풍기는 기압은 절정의 경지를 가뿐히 넘어서니 이 정도면 능히 호법까지도 올라갈 것 같았다.

변방이라면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산서 분타의 분타주가 이 정도인데, 총타의 총타주는 어떠할까. 무신은 ‘하기야 배춘삼만 봐도 알 수 있었지’ 하고 감탄하며 학도건을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산동 분타에게 소식을 전해 들어 자신들도 남궁성을 추적하게 되었는데, 그놈이 산서 외곽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아냈단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친 학도건의 얼굴이 다소 어두웠다.

 

“동행한 남궁세가 가솔이 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요?”

“여덟아홉은 됐습니다.”

“여덟아홉이라… 생각보다는 적군요.”

 

여덟아홉.

그래, 수 자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전부 남궁세가의 절세 고수였다. 결코 ‘생각보다는 적군요’ 하는 식으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 잡으실 수 있게끔 추적이 끝났다 그렇게 말씀드렸으나 여덟아홉이라 하면 고민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포기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분타주님도 참.”

“예?”

 

무신은 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포기하려면 여덟아홉이 아니라 팔십구십은 돼야지요.”

 

***

 

이튿날 산서 외각.

남궁성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멀리 고산 하나를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가히 그 정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산이었는데, 돈에 환장한 표국들조차 피해간다는 저곳이 바로 그의 목적지였다.

산행에는 ‘남궁선검대(南宮選劍隊)’에 속한 여덟 검객도 함께했다. 절반은 그와 비슷한 실력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그 이상, 개중 한 명은 남궁세가에서 나름 한 가닥 하는 고수였다.

변방의 문파 하나쯤은 눈 깜짝할 새에 쓸어버린단 집단이 외딴 산행에 나선 이유는 뻔했다.

백치산(白雉山).

그곳의 영물, 백치(白雉)를 잡기 위함이었다.

남궁선검대 대장 남궁태가 바짝 긴장해 있는 남궁성을 보며 말했다.

 

“떨 거 없다. 백치 그놈 그거 백산왕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야.”

“백산왕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

“무인으로 따지면 절정 이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절정 이상.

입에 담기도 어려운 경지를 남궁태는 길거리 삼류무사인 양 언급하고 있었다. 초절정, 나아가 곧 화경에도 이른단 그였으니 사실 ‘백산왕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란 말도 많이 쳐준 것이었다.

물론 남궁성은 달랐다. 이제 막 절정에 다다른 그에게 백치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최무신.

그는 살아생전 그렇게 위압적인 존재를 본 적이 없었다. 셋을 셀 동안 사죄하란 말에 자존심도 다 버리고 결국 고개까지 숙였다. 치욕이었으나 정말 죽을지도 모른단 두려움이 더 앞섰다. 그래도 나름의 앙갚음은 했다. 최무신과 말을 트며 지낸다는 점소이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그는 이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그리고 ‘좀 친분이 많은 있는 년이나 놈을 죽였으면 더 속이 시원했을 텐데’ 하고 중얼거리며 남궁태를 따라나섰다.

 

“여기서 잠시 대기한다.”

 

넝쿨이 잔뜩 우거진 중턱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백치는 분명 이 근방에 있었다. 남궁태가 검을 빼 들며 주위를 훑었다. 눈알을 번뜩이던 산짐승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내공을 주입했으면 아마 땅속 깊이 숨어 있던 놈들까지 몸을 내뺐을 것이다.

남궁성은 문득 궁금해졌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남궁선검대의 대장 남궁태와 칠십혈천대에 무기창까지 잡았다는 최무신 중 누가 더 강할까. 그는 고민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약관의 나이에 일류에 달한 자질.

남궁세가의 위대한 검술.

최무신보다 두 배는 더 많을 나이에서 나오는 경험.

곧 초절정을 넘어서는 경지.

뭐로 보든 최무신이 남궁태를 앞설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칠십혈천대?

무기창?

남궁태도 얼마든지 상대가 가능하다. 아니, 상대라는 말도 우스웠다. 그냥 묵사발 내는 수준일 것이다. 남궁성은 ‘그 실력을 보려고 내가 이렇게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고’ 하고 생각하며 최무신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차피 더 이상 볼 일도 없을 놈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후, 그래?”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는데.”

 

해가 떨어져 슬슬 어둠이 깔리는 와중에도 일당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 동안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발견한 것은 먹어봐야 내공에 기별도 안 가는 최하급 약초들뿐이었다. 남궁태가 쓰읍 아랫입술을 깨물며 바닥에 검을 내리꽂았다.

 

“이놈이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어디로 간 거야.”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간만에 의견을 낸 남궁성에게 남궁태가 ‘절대 그럴 리는 없다’ 하며 단정 지었다.

 

“백치라니까 좀 있어 보이지 결국 깃털만 하얀 꿩에 지나지 않아. 그런 놈이 뭔 수로 이 산을 벗어나? 어디 바위틈에 죽치고 박혀 있겠지.”

“그렇군요.”

“어쨌든 계속 대기한다. 이번이 놈의 내단을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백치의 내단.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심법을 운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공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정기를 끌어 올려 범인이 먹으면 반년 동안 아랫도리가 죽지 않는다는 설도 있었다.

남궁성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일이 어떻게 잘 풀리면 그에게도 백치의 내단이 조금이나마 떨어진단 언질이 있었다. 물론 백치를 잡고 나서 생각할 문제겠지만.

 

“우라질.”

 

어둠이 깔리다 못해 당장 옆 사람 얼굴도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와중에도 일당의 행보는 여전했다. 아니, 행보라 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들은 몇 시간 전부터 계속 제자리였다. 횃불을 들고 있는 부하들을 뒤로하며 남궁태가 양손 가득 내공을 태웠다. 마구잡이로 들쑤시면 혹시나 푸드득 백치가 날아오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그의 내공이 사방에 꽂히는 순간.

 

“저기다! 쫓아!”

 

다섯 장도 더 되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기운 하나가 저만치 수풀 속에서 날아올랐다. 몸길이 3척도 안 되는 백치가 뭐 저렇게 꼬리가 긴 지는 의문이었으나 정황상 그것임이 분명했다. 산짐승이야 진즉에 다 도망갔고, 행인들 발걸음은 원래 드문 곳이었다.

 

“…….”

 

그런데 그들이 마주한 것은 높다란 바위 위에 쭈그려 앉아 있는 웬 청년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백치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백치인 줄 알았던 종전의 그 기운이 청년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남궁태의 얼굴이 퍽 일그러졌다.

 

“너 뭐야?”

 

청년은 대꾸하지 않고 검지를 쭉 폈다. 그리고 남궁태를 비롯한 일당의 머리통을 하나씩 가리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아홉. 개방의 정보력은 정말 끝내주는군. 머릿수까지 정확하잖아. 뭐, 니들이 남궁선검대인 것까지는 못 알아냈다만.”

“이게 감히 누구 앞에서 손가락을 놀려?”

 

그렇게 말하며 우락부락한 부하 하나가 청년에게 튀어나갔다. 남궁태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부하의 말마따나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게 몹시 불쾌했으며 애초에 백치로 착각하게 만든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하가 저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을 피우는 청년을 상대할 수 있느냔 것? 남궁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진짜 백치라면 모를까 그래봤자 한낱 무사 따위에게 남궁선검대의 일원이 당할 가능성은 전무…….

 

“……!”

 

부하의 머리통이 목과 분리되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청년은 오른손에 든 검을 꺼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손만 한번 가볍게 휘저었을 뿐이었다.

이내 곧 바닥에 처박히는 부하의 머리통을 보며 가장 놀란 이는 나머지 일원들이 아니었다. 남궁태는 더더욱 아니었다. 청년을 본 직후부터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남궁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떠듬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너, 너는…….”

“간만이야, 남궁성.”

 

청년이 남궁성에게 손을 흔들며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방금 남궁선검대의 일원 하나를 죽였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굉장히 침착했다. 이제 보니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뭣들 하고 있느냐! 죽여!”

“예!”

 

남궁성과 구면이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남궁태가 검을 쭉 뻗어 청년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머지 일원들이 줄기줄기 살기를 피어 올리며 청년에게 쇄도…….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다. 일곱에 달하는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피를 토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청년은 이번에도 검을 쓰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만 몇 개 까딱이고 말았다.

남궁태는 비로소 사리를 판단했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

“얕봤어. 아주 제대로 얕봤어.”

“…”

“너 같은 고수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우쭐대는 것도 거기까지다.”

 

빙긋 웃고만 있는 청년을 보며 남궁태는 간만에 시동을 걸었다. 말은 ‘너는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라는 식으로 했지만, 숱한 고수와 겨뤄본 그가 지금 저 청년의 무위를 모를 리 없었다. 청년도 고수였다. 아주 굉장한 고수였다.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는 부하들과 같은 꼴을 면치 못할… 목구멍에 검이 들어와 꽂혔다. 그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이, 이게 대체…….”

 

청년을 보며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었으나 그래도 안심했었다. 남궁선검대의 일원들이 모두 죽어나간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남궁태가 있는 한 결국 떨어질 것은 청년의 머리통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남궁성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남궁태조차 검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자리에는 이제 자신뿐이었다.

청년이 말했다.

 

“우선 그 팔 두 쪽부터 잘리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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