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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2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2화

아가리

 

 

“예?”

 

무신은 얼이 빠져서 언태군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 두 귀에 무슨 말이 들어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쓰레기?

녹림에게 잡혀 있다가 겨우 돌아온 딸에게?

제3자가 듣기에도 그런데 본인의 반응이야 뻔했다. 언가희는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못 이었다.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씀은. 들은 그대로다.”

“아, 아버지가 저한테 왜…….”

“아버지란 소리 하지 말거라. 듣기 싫으니.”

 

딱 잘라 말한 언태군이 입맛을 다시며 무신을 돌아봤다.

 

“제대로 씻지도 않는 사내들에게 돌려 먹힌 년 아닌가? 그럼 쓰레기와 다를 게 무엇이야? 한번 잘 생각해 보게. 더러워도 너무 더러운…….”

“그만하십시오.”

“왜, 내 말이 틀렸나?”

“틀리고 자시고 그게 아비 된 이로서 할 말입니까?”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하는 무신에게 언태군이 ‘아비 된 이라…’ 하며 조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눈시울이 뻘게진 언가희를 쳐다보았다. 딸을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정말 쓰레기를 보듯 하고 있었다.

언태군이 다시 말했다.

 

“난 저년의 아비가 아닐세.”

“언 소저가 서녀라고 들었습니다. 혈통에 벗어났다 하여 아비가 아닐 수는 없습니다.”

“자네가 뭘 알지?”

 

언태군이 넌덜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명문일수록 혈통이 중요한 법이네. 그래야 좋은 것만 물려받고 태어나거든. 허나 저년의 어미는 시종이었어. 당연히 아주 질 낮은 것만 물려받았겠지. 내 것을 물려받았으니 괜찮지 않겠느냐고?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깨끗한 물도 똥 한 점만 떨어지면 똥물이 되는 게야.”

“말씀 조심하십시오.”

“사실을 말할 뿐인데 뭘 조심하나?”

 

무신은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럼 왜 잘해줬습니까?”

“그야 위선이었지, 위선. 대외적인 위상을 생각해서.”

 

언태군이 ‘물론 몇 년 전에 뒤진 저년의 어미 때문에도 그랬지’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주 개처럼 빌빌 부탁하더구먼. 제발 제 딸만은 잘 보살펴 달라고. 어찌나 빌던지 확 죽여 버리고 싶더라니까? 그래서 그냥 죽였지.”

“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는 비단 무신만이 아니었다.

넋을 놓고 있던 언가희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구요?”

“그놈의 아버지 소리는 아직도 하는구나. 이쯤 되면 가주님, 아니, 네년 어미가 시종이었으니 그냥 주인님이라 불러주지 않으련?”

“죽였냐구요!”

“그렇대도?”

“마, 말도 안 돼…….”

 

언가희가 털썩 주저앉았다. 나라를 잃은 이의 얼굴이 저러 할까.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웠다.

언태군이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하여간 딸도 어밀 닮아서 그런지 낙담하는 표정 하난 볼 만하구먼.”

“염병할 입 좀 닥치시지.”

“응? 나한테 한 소린가?”

“정파가 정을 추구한다는 것도 다 옛말이구나.”

 

주먹을 부르르 떠는 무신에게 언태군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뭘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행한 일이 정파의 정을 추구한 걸세.”

“그딴 게 정이라고?”

“쓰레기를 쓰레기처럼 다뤘으니 응당 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찌 보면 저년은 내게 고마워해야 되네. 광후채한테 팔아넘김으로써 쓰레기도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해 주지 않았는가?”

“…팔아넘겨?”

“아아, 거기까진 몰랐겠구먼.”

 

그렇게 말하며 언태군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 복장을 터뜨렸다.

 

“아니, 그럼 저년은 정말 내 심부름 나갔다가 광후채에 잡힌 걸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나 원 참, 아무렴 그놈들 대가리가 커도 우리 진주언가를 건드리겠나? 당연히 내가 돈 받고 팔아넘긴 것이지.”

“어, 어떻게…….”

 

언가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까부터 쌓여 있던 눈물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펑펑 쏟아져 내렸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그녀가 간신히 버티며 울부짖었다.

 

“전 오히려 죄송해하고 있었어요! 자기 때문에 딸이 사라진 걸로 생각하실까 봐!”

“오호, 그랬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실 수가 있어요!”

“그냥 네년이 미련했던 게지. 그리고 아까부터 뭘 자꾸 어떻게는 어떻게야? 쓰레기 치우면서 돈도 받을 수 있다는데 누가 가만있어?”

 

이어 ‘참, 네년 판 돈 덕분에 세가 보수공사를 하게 됐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마’ 하고 이죽거리는 언태군을 보며 언가희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마치 산송장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죽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으니 말이다.

무신은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언태군이 눈을 빛냈다.

 

“비위가 좋구먼. 쓰레기를 안고 말일세.”

“아가리 찢기기 싫으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언태군이 ‘이런, 진정하게’ 하고 양손을 허공에 휘이휘이 저으며 말했다.

 

“광후채를 홀로 날린 위인과 상대하고 싶지는 않아.”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이 말을 그따위로 해?”

“그따위라…….”

 

언태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태까지 한 말에 대해 자네가 분노할 이유가 있나? 자넨 저년을 살려줬을 뿐이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아닌가?”

 

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분노할 이유는 있었다. 무신도 한국에서 비슷한 경우에 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지금 언가희는 그보다 더했다. 한국에서의 양부모는 적어도 그를 팔아먹지는 않았다.

흥미롭게 그를 지켜보던 언태군이 ‘아, 그거였구먼’ 하고 입을 뗐다.

 

“그년이 밑을 대준 게야. 그래서 없던 정이 붙은 게고. 그렇지? 어쩐지 비위가 좋아 보이더라니 원래 취향이 독특했구먼. 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내놈들 그것에 범벅이 되었을 곳에 집어넣고 싶은가? 나 같음 영 찝찝해서 못했을 텐데.”

“죽여달란 말을 참 길게도 하는구나.”

 

무신은 그대로 검을 뽑았다. 이미 검신에서 서슬 퍼런 기운이 줄기줄기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태군은 개의치 않아 하며 여유로이 차까지 들이켰다.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

“날 건드리면 무림공적이 되는 걸세.”

“…….”

“듣자하니 자네는 새외무림에서 온 모양인데, 그쪽 무사들이 무림공적이 되면 곤경 정도가 아니라 그냥 죽는 거야. 쥐도 새도 모르게.”

“…….”

“어때? 들으니까 자신 없어지지?”

 

그래, 화산파고 남궁세가고 다 족치고 싶은데 항상 그게 문제였다. 불씨 몇 개 들쑤셨다가 삽시간에 집채만 한 화염으로 번질지도 몰랐다. 과장이 아니었다. 무림공적이란 그만큼 무시무시한 해악이었다. 그러나 진주언가는 논외였다.

무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죽이면 누가 알겠어? 내가 진주언가를 건드렸는지 안 건드렸는지.”

“뭐?”

“지금부터 네놈 모가지부터 시작해 가솔 전부의 모가지를 따주마. 진주언가 정도면 어려울 것도 없지.”

 

멍하게 무신의 말을 듣던 언태군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하라, 상대하기 싫다, 건드리면 무림공적이 된다, 약한 척 좀 하니까 우리 진주언가가 만만하게 보이는가? 전혀. 광후채와는 차원이 달라. 몇 급수는 더 위에 있지.”

“…….”

“물론 그래도 홀로 광후채를 작살낸 것은 치하하겠네.”

“…….”

“허나 거기까지야. 당장 내 호법들만 데려다 놔도 자네 정도는 스무합 안에 끝나. 내 장담하지.”

 

일련의 검객들이 집회장 안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들은 언태군에게 예를 갖추며 무신을 둘러쌌다. 일사불란한 게 마치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신은 개중 한 놈의 머리통을 잡아 탁상 위에 내려쳤다.

놈이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강골에 달하는 무골과 검강도 우습게 발현하는 자의 힘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신은 아등바등대는 놈의 목덜미에 서슴없이 검을 꽂았다. 몸이 바짝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피가 유난히 높게 튀었다. 적면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이 뻘겋게 젖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설마 이놈이 호법은 아닐 테지?”

 

입술을 핥으며 묻는 무신을 보며 언태군이 헙 하고 숨을 삼켰다. 주르르 도열한 호법인지 뭐인지 모를 언가무사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언태군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네, 네놈…….”

 

더듬는 것은 물론, 자네라는 말이 사라져 있었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라 본다면 아무래도 종전에 죽은 자는 호법이 맞는 듯했다. 무신은 힘없이 축 늘어진 놈을 바닥에 내던지며 손을 탈탈 털었다.

 

“광후채와는 차원이 다르다더니 진주언가 호법도 뭐 별거 없군.”

 

비아냥거리는 말에 언태군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죽여!’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남은 일곱의 호법들이 일제히 무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종전과 똑같았다. 잔잔한 바람이 통하던 집회장이 금세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무신은 마지막 호법의 머리통을 서걱서걱 자르며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언태군을 쳐다보았다.

 

“스무 합도 못 버틸 거라더니 이놈들한테 한 소리였나?”

“이, 이게 무슨…….”

 

진즉부터 검강을 켜고 있었던 터라 머리통 하나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무신은 목 없는 시체를 걷어차며 검을 어깨 위에 걸쳤다. 성이 날 대로 났는지 교전 상황이 아님에도 검강이 천장을 뚫을 듯 솟구쳤다.

그러나 언태군의 눈에 그것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곱 호법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가뿐히 피하며 역으로 그들의 급소를 노리는 빠르고 간결한 검술.

무신의 순수한 실력에 더 신경이 쏠려 있었다.

 

“나, 날 건드리면 무림공적이 된다 분명 일렀을 것이다.”

“무림공적… 그러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 산서성 최고의 명문 진주언가에서 새외무림 출신의 검객 한 명을 상대로 호법 여덟이 달려들었다… 강호에 알려지면 꽤 재미난 소문으로 번지겠어.”

“뭐, 뭐라고?”

“가주까지 함께였다고 하면 아주 난리가 나겠는데?”

 

재밌겠다는 듯 중얼거리는 무신을 보며 언태군이 ‘자, 잠깐!’ 하고 손을 들었다.

 

“왜?”

“어, 어쨌든 자네도 무림공적이 돼서 좋을 건 없지 않나?”

 

은연중에 자네란 호칭이 돌아와 있었다. 말투도 공손했다. 언태군이 하하하 어색한 미소까지 덧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서, 서로 좋게 좋게 가지. 이대로 나가면 오늘 있었던 일은 다 없던 일로 하겠네. 무림맹에 신고하지 않겠다 이 말이야.”

“이야,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그, 그렇지?”

 

혹여나 언태군에게 뒤통수 맞을 걱정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무신의 말처럼 새외무림 출신의 검객 한 명에게 여덟 호법이 동시에 달려들었단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무신은 ‘헌데 나가더라도 할 건 하고 나가야지’하며 탁상을 박차고 올라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언태군의 머리통을 잡아다 탁상 위에 걸쳤다.

언태군이 꺽꺽거리며 처음 죽었던 호법처럼 발버둥 쳤다.

 

“네놈 아가리는 찢어줘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무신은 언태군의 입에 검을 밀어 넣었다. 검강이 주입되어 있으면 아예 머리통이 터질 우려가 있어 순수한 검신만을 이용했다. 언태군이 읍읍읍읍읍 무어라 지껄였으나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리고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귓불 언저리까지 쭉 그었다. 살갗이 갈라지며 턱인지 이빨인지 모를 것이 허옇게 드러났다. 그 아름다운 색이 언태군에게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힘찬 비명이 고요한 집회장 내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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