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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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0화
추적
무신은 제 귀를 의심했다. 객주가 잠깐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예… 죽었습니다.”
무신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죽엽청 내오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은 지금 꿈속에 있는 것일까.
그는 저도 모르게 제 뺨을 꼬집었다. 따끔한 통증이 뺨을 타고 얼굴 전체에 번졌다. 꿈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꿈일 리가 없었다.
잠깐 조는 사이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질까 그는 산동으로 오는 내내 깨어 있었다.
객주가 잠시 장사를 접고 그를 객잔 근처 산으로 데려갔다.
봉긋하게 솟은 무덤 하나.
그 앞 비석에 ‘명화진’이란 이름 석 자가 음각으로 박혀 있었다.
점소이의 이름이었다.
제법 긴 만남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묻지 않은.
아, 무신은 그제야 후회했다.
통성명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냥 한마디만 던지면 되는 것을.
그는 말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통성명은커녕 그녀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갑자기 병에 들기라도 했던 겁니까?”
“아니요. 살해당했습니다.”
살해.
순간, 무신의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언젠가 검객님과 시비가 붙었던 세 청년을 기억하십니까? 개중 한 명이 얼마 전 갑자기 저희 객잔으로 찾아왔습니다. 용무가 있다면서 화진일 데리고 나갔는데… 이상하다 싶어 뒤따라 나가보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놈, 6척 반 정도의 신장에 눈썹이 짙었습니까?”
“기억하시는군요. 맞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남궁성.
바로 그자였다.
객주가 분을 삭히지 못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나갔더라면… 화진이가 죽지 않았을까요… 하루하루 죄책감에 살아갑니다.”
“그랬으면 주인장도 죽었을 겁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놈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날의 대면은 구석자리에서 이뤄졌고, 그놈이 남궁세가라는 것도 패를 통해 밝혀졌다. 손님들도 못 듣고 못 봤을 것을 더 멀리 떨어져 있던 객주가 알 리 없었다.
무신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세가의 남궁성이란 잡니다.”
“예, 예예?”
객주가 말을 더듬으며 그 짧은 찰나에 식은땀까지 흘려댔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남궁세가.
범인들에게 그만큼 두려운 족속도 없었다.
“혹, 그놈이 화진이를 죽였음을 증명할 증거 같은 게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며 객주가 갑자기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신이 ‘없을 수도 없지 주인장이 왜 죄송합니까?’ 하자 급기야 제 가슴팍을 때리며 자책했다.
“사실 뒤따라갔을 때 화진이는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같이 죽을까 봐 두려워서. 그놈은 검을 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러셨군요.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래도…….”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범인이 무인을 상대로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혹자는 객주를 욕할지 몰라도 무신은 이해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했다. 회귀 전, 자신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그 즉시 도망쳤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힘.
그게 없는 이가 하루도 피바람 잦아들 날 없는 이 중원 땅에서 살아가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무신은 그길로 다시 객잔으로 돌아왔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턱턱 숨이 막혔다. 자꾸 갈증도 났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시장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사 명화진에게 가져다놓았다. 그새 장대 같이 쏟아지는 비 아래 비석으로밖에 남지 않은 그녀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남궁성.
그날의 조롱에 대한 분노.
그것을 애꿎은 명화진에게 푼 게 분명했다.
물론 남이었다. 통성명조차 나누지 않은, 솔직히 말해서 저 높이 산새와 다를 것 없는 존재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것이다. 그러나 잠깐의 인연도 그에겐 소중했다. 대화를 나눴고 여러모로 도움도 받았다. 무엇보다 힘없는 이가 힘 있는 이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가 가장 증오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두 번 절을 올리며 명화진에게 안녕을 빌었다. 그리고 무거운 걸음을 끌고 산동 분타를 찾았다.
“오셨습니까!”
수십의 백의개들이 무신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 뒤따라 일결과 이결에 있는 자들까지 우르르 몰려나와 배춘삼의 은인을 맞았다.
그는 마주 인사해 줄 겨를도 없이 산동 분타주를 만났다.
“사람 하나만 추적해 주십시오.”
***
섬서성.
복면을 쓴 일련의 무리가 그곳에 모여들었다. 비단 행색을 떠나서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수상쩍었다. 어렴풋이 드러난 살갗에 갖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발자국은커녕 기척 하나 남지 않는 보법은 어느 산의 도인을 보는 듯 했다.
한참을 내달리던 그들은 종남산에 다다라 걸음을 멈추었다. 화산파와 더불어 섬서성의 유명문파 중 하나인 종남파가 있는 곳이었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열댓에 달하는 그쪽 제자들이 대거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니, 마중보다는 시중이 더 어울렸다. 허리를 절반도 더 굽히고서 양손을 쭉 뻗고 종남파 안으로 안내했다.
복면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 대접을 받았다.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본거에 도착하자 제자들은 사라지고 고위급 장로들이 나타났다. 비단 종남파 내부를 떠나 강호 어디에 나가도 한 가닥씩은 할 작자들이 종전의 제자들처럼 굽실거린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장문 진해천.
종남파의 주인까지 복면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예.”
제자들이나 장로들과 달리 존대만 하지 않을 뿐 진해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복면인들을 들이는 태도에 ‘조심스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강호 내에서 나름 입지가 있는 종남파가 이렇게 장문까지 나서서 쩔쩔 메는 이유야 뻔했다.
마교.
복면인들은 사파의 혈교보다도 더 거대하다는 그쪽, 거기서도 마향대(魔響隊) 소속이었다. 웬만한 문파 정도가 아니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와도 비견될 정도라 의무적으로라도 윗사람 모시듯 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눈 밖에 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문파가 한둘이 아니었다.
진해천이 큼큼 목소릴 가다듬으며 말했다.
“우리가 갔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네.”
“하하, 아닙니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대답한 이는 마향대의 대장 성태귀였다.
그는 ‘정파 구경도 하고 좋지요’ 하며 너스레까지 떨어댔다.
그러나 저 웃는 얼굴 뒤에 코 묻은 어린애의 목도 서슴없이 가르는 잔혹함이 숨어 있음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진해천이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어떻게, 이진위는 좀 도움이 되고 있나?”
“이진위요?”
종남파 정기집회장.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던 성태귀가 돌연 ‘아아아’하고 운을 뗐다.
“부강도 제대로 못 다루던 그 부객 말씀이십니까?”
“…….”
“농이시지요? 그깟 놈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
“쓸모 없다 느껴 진즉에 죽였습니다. 부객 좀 키우겠다 하는 계획에 괜히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요.”
성태귀가 또 하하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불편하신 건 아니지요? 쓰레기를 처리해 드렸으니 오히려 고마워하셔야 될 것 같은데.”
“무, 물론이요. 고맙소.”
“그래, 그래, 제 이래서 진 장문을 좋아한다니까.”
보이지 않는 갑과 을.
성태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참, 보름은 이곳에 머무를 계획입니다.”
“예?”
저도 모르게 말을 높인 진해천에게 성태귀가 귀를 후비며 ‘굳이 마향대까지 나서서 종남파를 찾은’ 목적을 말했다.
“그전까지 좀 정상적인 부객을 내주십시오.”
“아, 아시다시피 우리 종남파에는 부술을 능히 다루는 이가 잘 없소.”
“하, 나 이거 원.”
성태귀가 슬슬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태청운인지 태정운인지 하는 놈을 내줬으면 됐을 일 아닙니까?”
“미안하오… 내 일이 그렇게 꼬일 줄은…….”
“종남칠응까지 나섰는데 놓쳤다고 하셨었나? 뭐, 종남파 사정이야 우리는 모르겠고 돌아가기 전까지는 반드시 내놓으시오. 정상적인 부객을.”
“후…….”
“싫으십니까?”
“아니오.”
아무렴 대단한 실력을 가진 집단이라고는 해도 한 문파의 장문에게 너무 무례한 언행.
그러나 외려 종남파가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부객을 내주는 조건으로 이미 십 수 개에 달하는 ‘마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성태귀가 눈을 빛냈다.
“헌데 산서의 어느 검객이 혈교의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았다면서요? 누군지 아십니까?”
정체 불명의 검객에 대한 정보.
사실, 그게 마향대가 종남파를 찾은 진짜 이유였다.
***
대륙력 1551년 5월 3일.
무신은 육포와 건량만 대강 챙겨 산서성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이 무너질 듯 비가 쏟아지더니 그새 감쪽같이 사라지고 오늘은 아침부터 더위가 극성이었다. 말에 몸을 실었는데도 이마에 벌써 땀이 한가득이었다. 지랄 맞은 날씨였다.
그는 산서성으로 넘어가는 어느 어귀에서 대뜸 방향을 틀었다. 그깟 더위 하나 못 참아 잠깐 쉬려는 게 아니었다. 한번 꼭 만나고 가야 할 이들이 있었다.
그는 수통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바로 옆 산길에 올랐다. 고도가 낮은 편이라 그리 고되지는 않았다. 우거진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니 외려 편하다고 하면 더 편했다.
그가 슬슬 고삐를 풀기 시작한 것은 통나무집 수십 채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었다. 다시 봐도 기이하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세상에 저만큼의 살림을 꾸린 ‘녹림’이 또 있을까.
그래, 그는 광후채에 갇혀 있었던 여인들을 만나러 가는 참이었다.
“무사님이 돌아오셨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언니들! 얼른 나와보세요!”
도착도 전에 여인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떠날 때만 해도 다들 피골이 상접해 산송장과 다를 게 없었는데, 지금은 쌕쌕 웃는 게 전체적으로 생기가 넘쳤다. 마음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질 것이다. 아니, 무뎌져야만 한다.
이윽고 무신을 둘러싼 여인들의 수는 자그마치 스물다섯에 이르렀다.
그는 비로소 인사를 건넸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씩씩하게 답한 그녀들이 외려 ‘무사님은 별일 없으셨나요?’ 하고 그를 챙겼다. 확실히 광후채 생활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가만 보니 저쪽 자갈만 굴러다녔던 땅에 새싹이 돋아나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본론을 꺼냈다.
“여길 지배하던 놈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
“이 말 드리려고 왔어요.”
여인들은 일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세 스물다섯 모두에게 번졌다. 북받친 눈물에 그간의 고통과 설움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여인들이 입 모아 말했다.
“무사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놈들의 몸종으로 살았을 거예요… 이 은혜를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
회귀 후 그 말을 벌써 몇 번째 듣는 것인지 무신은 이제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은인이 되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광후채 놈들을 잡으러 왔다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이들을 구해줬을 뿐이었다.
왜?
왜 구해줬느냐고?
별거 없었다.
그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 잘 살아주시는 게 제게 은혜를 갚는 겁니다. 다들 힘내주세요’ 하고 빙긋 웃었다. 여인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반응하자 ‘본인 처지도 마땅치 않은 이들에게 뭘 받으면 외려 절 나쁜 놈 만드시겠단 거 아닙니까?’ 하며 다소 뼈 있는 한마디를 더했다.
처지.
녹림이 잡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어떤 이들인가.
가족 없고 친지 없고 뒤봐줄 사람은 더더욱 없고 당연히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
그가 그녀들에게 ‘마땅치 않은 처지’ 하고 단정 짓는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녀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 처지가 마땅하면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말하며 한 여인이 불쑥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 말 그대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본인의 처지’를 설명했다.
“진주언가 가주의 구녀 언가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