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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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9화
해동
“어어, 네.”
“역시.”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당연히 회귀 전의 기억 덕분이었지만, 사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무신은 대충 둘러댔다.
“손에 굳은살이 많으시길래.”
“그 정도로 티가 많이 나나요?”
이유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없지는 않았기에 대강 수긍은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많고 많은 검술.
개중에서 어찌 해동검술을 딱 콕 집어 말했느냔 것이다.
무신은 그도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해동하면 해동검술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제가 촉이 좀 좋았나 봅니다.”
유연하게 넘어가는 무신에게 이유주가 돌연 ‘죄송해요’ 하고 또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는 그만 됐대두요, 참.”
“그게 아니라…….”
“그럼 왜요?”
이유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 손까지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한테 여태 제 소개도 안 드렸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요.”
“정신 없으셨잖습니까? 저래도 소개할 생각 못 했어요.”
“아니에요. 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한사코 손사래 치는 무신을 뒤로 하고 이유주가 급기야 주먹을 쥐고는 제 머리를 두어 대 쥐어박았다. 참으로 순순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겨우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제 이름은 이유주예요.”
“최무신이라 합니다.”
“최무신… 그 이름,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예요.”
“왜요?”
“절 구해주셨잖아요.”
어느 사람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해동 사람들은 특히 더 은인을 소중히 한다더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이유주가 그러면서 무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을 한 번 깜빡.
또 깜빡.
다시 또 깜빡.
무신이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하자 그녀가 ‘으, 은인의 얼굴도 잊으면 안 되니까요!’ 하며 그제야 휙 시선을 돌렸다.
“나,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스물여섯입니다.”
“저, 전 스물이에요!”
무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말은 갑자기 왜 그리 더듬으십니까?”
“아, 하하하. 아니에요. 아무것도.”
무신은 ‘뱃멀미를 하나?’ 하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이유주와의 관계를 잇기 시작했다.
관계.
앞으로의 무도에 요긴하게 쓰일 요소였다.
“해동검술은 일인전승된다 들었습니다.”
“일인전승… 맞아요. 수백 명의 제자 중에서 단 한 명에게만 이어지니까.”
“이 소저도 개중 하나였습니까?”
이유주가 당치도 않는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도 그저 수백 명의 제자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왜죠?”
“어… 왜죠라고 물으시면… 음… 무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로예요. 실력이 부족했으니까요.”
“제자였단 뜻은 아직 전승자가 뽑히지 않았단 말이잖습니까? 그럼 충분히 가능성 있는 거 아니에요?”
가능성.
무신의 말은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뽑히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전승의 기회가 열려 있는 법이었다.
이유주가 ‘아직도 대장이 죽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벌벌 떨고 있는’ 동영 무사들을 돌아보며 답했다.
“전 저들조차 이기지 못했는걸요. 그래서 이렇게 잡혀왔고. 전승될 만한 자격을 갖췄다면 저들은 이겼을 거예요.”
“대단히 착각하고 계시군요.”
“네?”
무신은 선수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이 소저, 제자로 들어간 지 얼마나 됐습니까?”
“4년 정도 됐어요.”
무신은 동영 무사 감시하랴 이것저것 잡일하랴 바쁜 광후채 일원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강호에서 알아주는 녹림입니다. 도끼질만 십 수 년을 넘게 했지요. 하지만 동영 무사들보다 몇 수는 더 아래에 있습니다.”
“…….”
“노련한 자들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을 이 소저가 무슨 수로 상대하겠습니까? 애당초 상대가 강했던 겁니다.”
“…….”
“너무 본인을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광후채에게 팔려갔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와 부단한 수련 끝에 강호 내 최고의 여검 중 하나가 되는 것.
그게 원래 이유주의 미래였다.
무신은 ‘이번 일로 인해 이유주가 자신의 실력에 회의를 느끼고 해동검술을 포기하면 없는 미래가 될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하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소저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
“아시겠지요?”
이빨이었다. 최고의 여검을 미리 포섭해 두기 위한, 어떤 의미에선 미끼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무신의 의도를 이유주가 알 리 없었다.
그녀는 눈시울까지 붉혔다.
“무사님 덕분에 힘이 나요.”
“다행이군요.”
“돌아가면 열심히 해볼게요. 정말.”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낼 듯했던 이유주가 돌연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저 의지가 회귀 전의 미래보다 더 큰 미래로 이어지기를 무신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녀가 ‘저… 그런데 무사님’ 하고 의미심장한 운을 뗐다.
“예, 말씀하십시오.”
“무사님은 대체 얼마나 강하신 건가요?”
“예?”
“검에 그렇게 짙은 기운이 드리운 건 처음 봤어요. 기운뿐인가요? 검술은 또 얼마나 빠르고 정교한지.”
그녀가 ‘더 신기한 게 뭔 줄 아세요?’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무신은 그저 웃었다.
이유주가 경이롭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중원에선 무사님 같은 분을 초절정고수라고 부른다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이상이에요.”
“그 이상이요?”
“네. 깨달음의 경지요.”
깨달음의 경지.
이유주 딴에는 ‘최대한 높게 평가’한 것일 테지만, 애석하게도 틀렸다.
무신은…….
‘그 정도는 진즉에 넘었습니다.’
검신이었다.
***
산동의 한 객잔.
악철도, 심지어 칠십혈천대와 무기창까지 잡은 ‘검객’이 자주 들른단 이유로 그곳은 언제부터인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대목에도 한가하다는 사시나 신시에도 손님이 몰려들 정도였다.
“이야, 말도 주고받는다면서?”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기는. 나 같으면 무서워서 말은커녕 눈도 못 마주치지 싶은데.”
그 검객과 교류 아닌 교류를 나누는 점소이에게도 자연스레 반향이 생겼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제 아무도 그녀의 엉덩이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 검객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
“무인들은 소소한 친분도 되게 중요시 한다고. 그걸 떠나서도 괜히 내 마음이 불편해.”
그런데 어느 날.
그녀를 건드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래, 너였지. 그때 그놈한테 말을 붙이던 년이.”
엉덩이에 손을, 아니, 목에 칼을 들이대며.
***
5월이 다가오는 무렵.
무신은 드디어 해동 땅을 밟았다. 듣기만 들었지 직접 오기는 처음이라 막 강호에 들어선 신출내기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특별할 것은 없었다. 똑같은 나무에 수풀, 저기 저 어렴풋이 드러난 마을의 전경까지 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만 감상을 끝내고 71명의 해동 여인들과 마주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다들 한껏 들떠 있었는데, 하나 같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하며 그에게 감사부터 표했다. 언제 또 만날 일이 있겠느냐마는,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일전에도 말했듯 해동 사람만큼 은인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도 없었다.
“네? 이걸 왜?”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는 이유주 앞에서 검 하나를 내밀었다.
파천검.
흑라신검으로 인해 주인을 잃어버린 녀석이었다.
“쓸 만한 검입니다. 잘 써주십시오.”
“아, 아니 그게…….”
“보시다시피 지금 전 다른 검을 쓰고 있습니다.”
갖다 팔면 금자든 은자든 주머니 가득 채울 만큼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카모토 히사시에게서 금 1관도 도로 가져온 판에 그 정도 돈이 뭐 궁하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필요 없으니 무작정 주겠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투자였다.
차후 절세의 고수가 될 이를 위한.
무신은 ‘파천검을 가지고 있으면 혈교의 추적이 받을 위험이 있으나… 그놈들도 해동에 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겠지’ 하고 생각하며 이유주의 손에 파천검을 쥐어주었다.
그녀의 눈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무인은 태어나 세 번 우는 거랍니다. 그 기회를 벌써 두 번은 더 쓰신 거 같은데요?”
“아, 아니에요! 저 안 울어요!”
말과는 다르게 이미 이유주의 뺨 아래로 뚝뚝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신이 손가락으로 그것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만남은 길었으나 작별은 짧았다. 해동에 도착한지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아서 무신은 다시 배에 올랐다.
이유주를 비롯한 모든 해동 여인들의 ‘하루라도 묵고 가세요!’ 하는 부탁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번 늘어지면 계속 늘어지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아쉬워도 강호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다시 육지에 발을 디딘 것은 유난히 먹구름이 낀 날이었다. 우중충한 하늘과 다르게 광후채 일원들과 동영 무사들의 얼굴에는 해가 쨍쨍 떠 있었다. 일이 다 끝났으니 전자는 광후채로, 후자는 동영으로 돌아갈 수 있단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검을 뽑아 들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도구.
광후채 일원들은 흑사단으로 위장하기 위해, 동영 무사들은 배를 몰기 위해 필요했을 뿐이었다. 용건이 끝났으니 더 이상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약조?
일이 다 끝나면 살려주겠다 한 것?
“그 말을 왜 믿어?”
조소를 머금는 무신에게 광후채 일원들과 동영 무사들이 한데 뭉쳐 달려들었다.
그대로 가면 개죽음.
가만 당하지만은 않겠단 계산이었으나 턱도 없었다.
무신이 가볍게 휘두른 검풍 하나에, 절반 가까이 목이 날아갔다. 바로 옆에서 머리통과 팔다리가 허공을 헤엄치니 나머지 놈들의 반응이야 뻔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시,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부,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무신의 반응도 뻔했다.
“빈다고 봐줄 거였으면 검을 뽑지도 않았어.”
그는 다시 두어 번 검풍을 휘둘렀다. 어딜 가도 실력 좀 있다 하는 취급을 받을 고수들이 저기 저 파도처럼 쓸려 나갔다.
피는커녕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터라 그는 옷매무새만 정리하며 근처 마구간을 들렸다. 그리고 해동으로 가며 맡겨둔 말을 찾아 서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새 더 적적하게 낀 먹구름이 조금씩 빗줄기를 떨어뜨리고 있었기에 그는 바짝 고삐를 잡아당겼다. 서두르지 않으면 귀한 파천의가 홀딱 젖을 것이다. 의류점에 맡기면 보수가 될 테지만 괜한 찝찝함을 느끼긴 싫었다.
끼니도 거르고 달린 덕분에 그는 금세 산동에 도착했다. 이제는 아주 장대비가 쏟아질 판이라 거리에 노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골목골목 객잔만 술 취한 한량들로 붐볐다.
그도 어느 객잔 한 곳을 찾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동파육에 규화계를 내올 정도로 친절한 점소이가 있는… 문을 열었으나 그녀는 없었다.
“그, 그 검객이야!”
“사, 산동에서 나간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잖아?”
“어, 어디 나갔다 온 거 아니야?”
화들짝 놀란 손님들의 반응만 있을 뿐.
잠깐 객주의 심부름에 나갔거나 음식을 조리 중에 있나 싶었는데, 잠자코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심지어 주문도 처음 보는 점소이가 받고 있었다.
무신은 달달한 향이 올라오는 죽엽청도 마다하고 객주를 찾아 물었다.
“이봐요, 주인장.”
“예…….”
천둥벼락까지 동반할 듯한 저 바깥의 하늘보다 객주의 얼굴에 더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무신은 그제야 느꼈다.
“왜 점소이가 바뀌었습니까? 매번 받던 아이는 어디 가고?”
“그게…….”
객주가 한숨을 내쉬며 겨우 입을 뗐다.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