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8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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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은 삿갓을 쓴 백여 명 남짓의 동영무사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듣기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생김새는 중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행색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삿갓.
변발.
그리고 도.
특히 도가 동영무사들의 가장 큰 특색 중 하나였다. 열에 아홉은 그것을 사용하며 나머지 하나도 검이나 도끼 따위를 들다가 결국 그것으로 넘어가는 게 다반수였다. 이유야 뻔했다. 도법이 가장 발달했기 때문이다.
발도술?
그야 말하면 입만 아팠다. 아마 파천에서의 발검전이 발도전으로 바뀐다면 으뜸은 항상 동영무사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무신은 ‘기회가 된다면 한번 겨뤄보고 싶군’ 하고 군침을 삼키며 다시 우두머리와 눈을 마주했다.
사카모토 히사시.
언뜻 보기에는 강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무사에 지나지 않았다. 무골도 그렇고 기압도 저기 저 바다처럼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영구도(東瀛九刀)에 속하는 대단한 고수였다.
사카모토 히사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디 물건 좀 봅시다, 사 단장.”
단장?
흑사단 단장 사준환을 가리키는 지칭이었다. 무신은 순간 ‘내 이름은 최무신이오’ 할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는 미리 준비해 온 물건을 꺼냈다.
“여기 있소.”
원래대로라면 약탈한 산서구가의 재물을 줘야 하겠으나 진짜 흑사단이 아닌 무신에게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해서 그는 제 살림을 꺼냈다.
금 1관.
기관진식을 뚫고 얻은 철교교주의 재물이었다.
“응?”
“왜, 마음에 안 드시오?”
“아, 아니오. 그럴 리가.”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사카모토 히사시의 눈은 탐욕에 젖어 있었다.
금 1관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녔던가.
원화로 따지면 거의 50억에 육박하는 거액이었다.
지켜보던 그의 부하들 역시 꿀꺽꿀꺽 침을 삼키고 있었다.
무신은 ‘확인하셨으니 이제 그쪽 물건도 좀 봐야겠소’ 하고 금 1관을 도로 집어넣었다.
사카모토 히사시가 ‘암, 그래야지요’ 하고 부하들을 시켜 자기 쪽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배.
이윽고 그곳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이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입에 재갈을 물고 앞뒤로 줄에 묶인 꼴은 정말이지 물건과 다를 게 없었다. 초췌하다 못해 창백한 얼굴은 이미 삶을 포기했다는 듯 푹 수그리고 있었다.
무신은 개중에 채 열 살 남짓한 소녀도 있음을 발견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저 어린 것을 시종도 아니고 몸종으로…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인간의 욕구라는 게 얼마만큼 무섭고 잔인한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사카모토 히사시는 물론 껄껄 웃고 있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해동 계집들이 요 맛이 끝내주오.”
사카모토 히사시가 검지와 엄지를 만들어 원을 만든 후 반대쪽 검지로 쑤시는 시늉을 했다.
그의 부하들이 ‘저들도 아마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겁니다’ 하고 키득거렸다.
그가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아, 처녀성을 확인해 봐도 좋소. 당장 손가락 하나만 찔러 넣어 봐도…….”
“됐소. 그럴 필요 없소.”
“응? 깐깐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유하구려.”
무신은 지독하면 지독하지 결코 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더 듣기 싫어서였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곧장 금 1관을 넘기고 71명에 달하는 해동의 여인들을 받았다. 으으으읍 재갈 문 잎으로 몸부림치는 그녀들이었으나 ‘빨리빨리 움직여! 뒤지기 싫으면!’ 하는 동영무사들의 무력을 견딜 순 없었다.
사카모토 히사시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요긴하게 잘 쓰겠소.”
“잘 쓸 수 있으려나 모르겠소.”
“응? 그게 무슨 소리요?”
뒷선에 와 있는 해동의 여인들.
무신은 그녀들의 무사를 확인하며 그대로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사카모토 히사시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여타 무인이었다면 거기서 승부가 끝이 났겠으나 사카모토 히사시는 과연 달랐다. 동영구도이자 발도술의 대가답게 순식간에 도를 뽑아 그것을 막아냈다. 물론 완벽하게는 막지 못했다. 피가 철철 쏟아지는 손등을 감싸 쥐며 두어 발 물러섰다.
“이, 이 개 같은 놈이!”
우두머리가 당했으니 그 밑에 부하들의 반응이야 뻔했다. 즉각 도를 뽑아들고 무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무신의 부하들도 준비를 마친 후였다.
“죽여주마, 동영 촌뜨기 놈들아!”
“광후채 창술의 맛 좀 봐라!”
“도법밖에 모르는 놈들이 설치기는!”
광후채 일원들이 낯부끄러운 대사와 함께 저마다 도끼 하나씩을 빼들었다. 애초에 고르기를 날쌘 놈들로만 골랐으니 극도의 쾌(快)를 추구하는 동영무사들과도 제법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실력은 동영무사들이 분명 위.
무신은 ‘광후채 놈들이 없으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니… 어쩔 수 없군.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다.
갑작스런 뒤통수에 잔뜩 열이 뻗쳐 있던 사카모토 히사시가 ‘허억’ 하고 함지박만하게 입을 벌렸다. 기껏해야 마적 두목에 불과한 자가 자그마치 세 자도 넘는 검기, 아니, 검강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도 잠시.
사카모토 히사시는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중원 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야. 내공을 무조건 무식하게 키우기만 해.”
“…….”
“내공의 진짜배기는 오히려 절제에 있지. 안에서부터 응축 시켜 밖으로는 꺼낼 게 없는 거야.”
동영무사들의 특징이었다.
도강으로 가지 않고 도기로 그치되 발산하는 내공의 양을 말 그대로 최대한 응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카모토 히사시가 쳐든 도가 야밤의 달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얼마만큼 내공이 스며들었는지 가늠도 안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잠시.
무신은 검강을 유지하면서 내공도 사카모토 히사시보다 두세 배 넘게 응축 시켰다.
“마, 말도 안 돼!”
그뿐인가.
사카모토 히사시를 동영구도의 반열에 올려준 세기의 도법도 무신의 검법 앞에선 길거리 한량의 삼류무술에 불과할 뿐이었다. 동영이 자랑한다던 극도의 쾌(快)조차 종잇장 구겨지듯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다섯 합 쯤 부딪칠 즈음해서 사카모토 히사시는 중상을 입고 있었다. 손등의 상처는 긁힌 것에 불과해질 정도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특히 깊게 베인 옆구리에선 창자가 쏟아져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
무신은 무표정한 눈으로 사카모토 히사시의 몸을 한 부위씩 썰어갔다. 도를 든 팔이 가장 우선이었다. 철룡광랑검법의 중검을 이용에 내려치니 그것이 팔딱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흰 뼈가 어렴풋이 보이는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이어 다리 한쪽도 마저 잘랐다. 이미 무구를 잃어버린 상대였기에 나머지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카모토 히사시의 몸 위로 핏자국이 자욱하게 번져갔다.
무신은 비로소 검을 내려놓았다.
나머지 동영무사들?
그쪽도 진즉에 승부가 나 있었다. 광후채 일원들 덕이라기보다는 대장이 험한 꼴을 당하니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심지어 무구를 내다 버리고 넙죽 엎드리기까지 했다. 동영무사들은 주군을 위해 제 목숨도 버릴 정도라더니 순 거짓말이었다.
무신은 이내 곧 과다출혈로 뒤질 듯한 사카모토 히사시의 목을 밟았다.
“저 여인들 안전하게 받을 때까지만 참자, 참자, 참자 한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 이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저 어린 것들을… 말을 말자. 내 입만 아프지.”
“사, 살려주십…….”
무신은 피식 웃으며 말을 끊었다.
“저 여인들이 네놈한테 수백 번은 그리 애원했을 것이다. 헌데 넌 저렇게 끌고 왔지. 코 묻은 어린아이까지. 넌 그냥 뒤져야 돼.”
날이 바짝 선 흑라신검이 아등바등 꿈틀거리는 사카모토 히사시의 목덜미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통을 조여가는 그 느낌에 무신은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답답하던 가슴도 뻥 뚫렸다.
그는 눈도 못 감고 이승을 떠난 사카모토 히사시를 뒤로 하며 이호단을 불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금 1관을 가리켰다.
“이거 챙겨.”
“예?”
“이거 챙기라고.”
무신의 몸에서 집채만 하게 피어오르는 살기에 일순 얼이 빠져 있었던 이호단이 얼른 금 1관을 집어 들었다.
살았다, 그리고 살아야겠다 하는 두 가지 감정이 이호단의 심장에서 뒤섞이고 있었다.
무신은 뻘뻘 식은땀에 젖어 있는 동영무사들을 쳐다보았다.
눈앞에서 목격한 대장의 죽음.
그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시 해동으로 돌아간다. 저 여인들 데리고.”
“예, 예예!”
아무도 반문을 달지 않았다. 뒤늦게라도 대장의 복수를 한답시고 도를 드는 이 역시 없었다.
숨만 잘못 쉬어도 목이 날아갈 것 같은 두려움.
개중 하나가 겨우 입을 뗐다.
“바, 바로 출발합니까?”
선택은 무신이 아닌 해동 여인들의 몫이었다.
그는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곧장 돌아가셔도 상관없습니다만, 괜찮으시면 근저 객잔이라도 들르시지요. 씻고 먹고 좀 쉬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산서.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 도착한 가림표국의 표주 이대성은 그길로 친분 있는 표주들을 죄다 끌어 모았다.
“그래가지고 그 광후채 부채주가 딱! 하고 단칼에 끝나 버렸지.”
“광후채 부채주가 단칼에 끝나? 이 양반아, 이빨을 까려거든 적당히 까게.
“정말이라니까?”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러나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무신.
그 이름 석 자의 위세는 아직까지 산동 안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
배를 운용하는 동영무사들.
그들을 감시하는 광후채 일원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살피는 해동 여인들.
그 기이한 광경 속에서 오로지 무신만이 아무렇지 않게 대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라면 강가를 거닐며 몇 번 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파도를 가르는 느낌과 바다 내음을 마시는 기분에 요상스러운 흥분이 동할 정도였다. 막 동정을 벗어났었던 그때 그 시절의 짜릿함이랄까.
다시 또 한껏 숨을 들이마시던 그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목덜미에 검상이 있는 한 해동 여인이 서 있었다. 씻고 먹고 충분히 쉰 후 배에 오른 터라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흘렀다. 물론 다른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다짜고짜 허리를 숙였다.
“왜 이러십니까?”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아이, 몇 번이나 하시려고.”
다시 한번이란 핑계로 이렇듯 허리를 숙인 게 벌써 열댓 번은 더 되었다. 무신은 그만 됐다는 듯 여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그 뒤로 어느새 다른 여인들도 주르르 도열해 있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 ‘죽을 때까지 이 은혜는 갚지 못할 거예요!’ 하고 써 있었다. 이러다 아주 헹가래라도 쳐줄 기세였다.
무신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은혜란 말은 외려 자신이 해야 할 말이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에 그쪽 출신 무사들에 덕분에 목숨을 구원 받… 말해봐야 믿겠는가. 미친놈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장 먼저 온, 목덜미에 검상이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이유주.
이번 일을 하며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겨우겨우 소란을 진정시키고서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 해동검술을 익히셨습니까?”
알지만, 모르는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