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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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6화
광후채
동영.
저 멀리 동쪽 바다의 새외무림.
종이에 박힌 정체불명의 문양이 그곳의 것임을 무신은 한눈에 알아봤다. 배춘삼이나 산동 분타주로부터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듭을 풀고 그 안의 내용을 살폈다. 과연 회귀 전 들은 그대로 흑사단이 일정량의 재물을 넘겨주는 대신 동영으로부터 일흔일곱의 처녀를 받는다 적혀 있었다.
그는 ‘그러니까… 산서구가에서 약탈한 재물을 동영에게 넘겨줄 요량으로 가지고 가던 중에 근방 녹림의 급습을 받아 재물을 모두 빼앗겼단 건가’ 하고 중얼거리다 피식 웃었다. 녹림이 그 재물을 가지고 역으로 동영과 거래를 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흑사단 단원들로 위장해서 말이다.
그는 이번 일을 회귀 전과 똑같이 진행할 생각이었다. 녹림을 족쳐 흑사단으로 위장시킨 후 동영이 붙잡아온 일흔일곱의 처녀를 구하는 것이다. 처녀든 미녀든 알지도 못하는 여인들이 사고 팔리는 게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각별한 사정이 있었다.
동영과 인접해 있는 또 다른 새외무림, 해동.
여인들은 모두 그곳 출신이었다. 회귀 전 해동무사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무신은 그녀들을 구해서라도 그 은혜를 꼭 갚고 싶었다.
특별히 만나야 할 모종의 여인이 있기도 했고.
그는 조약서를 품에 집어넣고는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데 묶었다. 그리고 사준환의 말에 올라타 어디론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산.
원래대로라면 얼마 후 흑사단을 급습할 녹림이 있는 곳이었다.
***
녹림 72채.
비기는커녕 무구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으며 표국과 뒷거래를 하거나 인근 촌을 약탈하여 간신히 살아가는지라 사실 72채의 녹림 대부분이 뒷골목 한량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산동과 산서 어귀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만은 달랐다.
광후채.
일원들 대부분의 무위가 웬만한 문파의 직계제자들과 맞먹으며 특히 채주 목군호의 무위는 인근 하북팽가나 진주언가의 고수들과 견주어도 수위에 들 정도였다. 물론 표파자라 불리는 녹림 72채의 총채주만큼은 아니겠으나 특출난 이임은 분명했다.
“바, 받으십시오.”
그 특출남이야 오늘도 어김없이 증명되고 있었다. 산서로 향하던 가림표국이 광후채에게 은자 수십 냥을 바치고 있었다.
가림표국은 산동에서 무위가 상당한 표사들이 몰려 있는 곳.
그러한 곳마저 광후채의 망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광후채가 가림표국을 습격한 게 아니라 반대로 가림표국이 광후채를 찾아갔다.
“알아서 찾아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군.”
“하, 하하하.”
가림표국의 표국 이대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 발로 수십 냥에 달하는 은자를 내줬음에도 아쉬움은커녕 외려 다행이란 눈치였다.
표사들?
그들은 살았다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산동에서 상당한 무위를 가졌다고는 해도 광후채에 비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한 표국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인근 문파의 고수들을 끌어다 친 일도 있었는데, 역시 처참히 무너졌다.
채주 목군호.
창술의 대가.
제아무리 대단한 자도 그의 창 앞에선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다. 가볍게 휘저은 창질 몇 번에 유명세가 자제의 목이 날아간 것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였다.
심지어는 그가 산동악가의 가주 악성권보다도 더 창술에 능하며 내공도 방대하단 말도 있었다. 전자는 비급을 익혔을 것이요, 후자는 영약을 캐다 먹었을 것이란 게 항간의 추측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고 부채주 우익극이 대신 나와 있었다.
“산서로 가는 길인가?”
“예예.”
“오늘따라 뭔 표물이 저리 많아?”
우익극이 은자 주머니를 수하에게 내던지며 표물이 든 짐칸을 들췄다. 혹시나 빠질까 싶었는지 두터운 밧줄이 십자 모양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우익극은 그것을 서슴없이 잘랐다.
다시 묶으려면 제법 고생스러운 일이기에 이대성의 얼굴이 퍽 일그러졌다. 그러나 내색은 안 했다. 괜히 밉보였다가 머리통에 창이 꽂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우익극이 표물 틈에서 번쩍거리는 광물 하나를 빼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이대성도 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건!”
“그냥 좀 보겠다는데 왜 그리 호들갑이야?”
“아,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냥 좀 보겠다는 사람이 광물을 또 수하에게 내던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호들갑 떤 죄로 가져간다’ 하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이대성은 ‘…알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단념했다. 또 호들갑을 떨었다간 있는 표물을 다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수하의 머리통이 날아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억!”
그대로 즉사한 수하의 품속에서 은자 주머니와 종전의 광물이 굴러떨어졌다. 그새 피에 젖어 붉게 변한 그것들을 뒤로 하며 이대성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우익극이 성난 눈알을 부라렸다.
“누구냐!”
하며 ‘찾아!’ 하는 우익극의 지시에 따라 광후채 일원들이 근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던 가림표국 표사들도 얼른 무기를 꺼내 잡았다.
그러나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장본인이 알아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흑빛의 장포.
마찬가지로 흑빛이 감도는 검.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한 사내는 자리에 일순 적막이 흐르게 만들었다.
비단 행색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공을 익히기 힘든 녹림의 특성상 무골 하나는 어디 나가도 잘 꿀리지 않는 편인데, 사내는 그보다 더한 무골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내가 일격에 죽인 수하가 광후채 안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란 점까지.
그 탓에 가림표국 표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광후채 일원들도 섣불리 나서질 못했다.
그러나 우익극은 달랐다. 무골이 어떻든 수하를 일격에 죽였든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
그는 그만큼 스스로의 무위에 자부심… 은 팔 한쪽이 썰려 나가면서 처참히 깨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광후채에서 무려 부채주를 맡고 있는 위인이 팔 한쪽 잃은 고통을 못 이기겠느냐마는, 거기에 이어 내상까지 입었단 점이 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힘겹게 익힌 그의 내공이 일장춘몽처럼 사라졌다. 단전이 깨진 것이다.
“부, 부채주님!”
수하들이 부랴부랴 우익극을 부축하고 나섰으나 정작 사내에게 나서는 이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팔다리를 덜덜 떨며 외려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가림표국의 표사들?
진즉부터 무기를 내던지고 땅에 코를 박고 있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사내는 그런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바닥을 뒹구는 은자 주머니와 광물을 챙겼다. 그러고는 짐칸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대성에게 말했다.
“어차피 낼 통행료였으니 이건 내가 갖겠소.”
***
안휘성.
양자강 이남에 위치한 그 드넓은 땅의 주인을 꼽으라 한다면 열에 아홉은 천주산의 남궁세가를 꼽을 것이다. 이유야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었다.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도 못 쫓아갈 창궁무애검법을 기반으로 뛰어난 무위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강호에서는 힘이 곧 절대권력.
일대의 패권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단 일대뿐이겠는가.
안휘성을 벗어나서도 대부분 문파와 가문이 남궁세가만 보면 설설 기었다.
“아이구! 오셨습니까!”/(이탤릭)
산서성을 지배한다는 진주언가가 남궁세가에 남 자만 듣고도 머리를 조아렸을 정도였다. 실세에게 잘 보여야만 본인들 입지를 틀 수 있음을 안 것이다.
자존심?
그까짓 알량한 것은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일전에 남궁세가의 심기를 거슬러 멸가해 버린 어느 가문의 경우를 감안하면 말이다.
“그래서 거절했다?”
“…예.”
그런데 진주언가조차 쩔쩔매는 남궁세가의 제안을 뿌리친 이가 나타났다. 산동에 있는 어느 검객이었는데,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은 실력 좀 보자 전했다.
남궁성 등에게 이번 일을 지시한 남궁지철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검객의 머릿속이.
“우리 가문의 패는 보여줬고?”
“…예.”
남궁성의 대답이 아까부터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나 남궁지철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거절당했다는 것에 온 신경이 쏠린 탓이었다.
남궁지철의 미간이 내 천 자로 좁혀졌다.
“남궁가임을 앎에도 그렇게 나올 수가 있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로구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단 말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궁성이 그 검객에게 미안하단 말까지 하며 당한 ‘수모’를 모두 고했다면.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동생들과 함께 무덤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낯짝.
고하기에는 그것을 들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직접 보기에는 어떻든? 정말 홀로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을 만큼 강성해 보이더냐?”
“무골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무골뿐인가.
기압에 눌려 눈도 내리깔 정도였으나 남궁성은 그 검객을 별것 아닌 놈으로 묘사했다. 그렇게라도 잃어버린 자존감을 키우고 싶었다.
남궁지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응했다.
“보여줄 게 없으니 제안을 거절한 건가. 상황 판단은 빠른 놈이로군.”
그리 결론이 지어지니 제안을 거절했다는 본연의 문제도 무의미한 게 돼버렸다. 풋내기 하나 때문에 대남궁가에서 버럭 성을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다만, 그래도 걸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럼 악가는 그놈을 왜 대협으로 모셨다든?”
“악가는 우리 대남궁가의 머리끝도 못 쫓아오지 않습니까? 그들의 눈에는 그놈을 대협으로 모셔도 될 만큼 고수라 보인 모양입니다.”
“호오, 그래. 그건 그렇지.”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검객이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혼자 잡지 않았다고 하면 동행한 무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의 신원은 전혀 파악되지 않았으며 또 악가의 수준이 아무리 낮아도 가주 악성권이 직접 나서서 대협이라 칭하는 것은 분명 이상한…….
그러나 남궁지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혈교와 원수지간인 족속들이 얼마나 많아? 가능성은 낮으나 마교에서 끼어들었을 지도 모르고.’
***
해가 중천에 다다를 무렵.
무신은 ‘이, 이것도 받으십시오’ 하고 은자 몇 냥을 더 내준 가림표국을 뒤로하며 굽이굽이 산길에 올랐다. 듣기만 들었지 직접 가기는 처음이나 어려울 것은 없었다. 잔뜩 겁먹은 광후채 일원들이 앞에서 성실히 안내 중이었다.
반 시진쯤 갔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통나무집 수십 채가 시장 좌판처럼 늘어서 있었다. 옆으로는 곡물과 과일 등을 재배하고 있으니 여기가 평지인지 산지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는 ‘얼마나 약탈을 해댄 거야?’ 하며 혀를 내둘렀다.
안내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일각이 더 지나서였다.
“뭐야?”
막 식사를 끝냈는지 이를 쑤시며 나오는 어느 장한의 앞에, 무신은 벌써부터 날벌레가 꼬이기 시작한 우익극의 머리통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방문.
그 외부인의 눈치를 보는 듯한 광후채 식구들.
어리둥절해 있던 장한이 눈을 부릅떴다.
“부, 부채주님……? 너 뭐야, 이 새끼야!”
그 길로 도끼 하나를 꺼내 들고 온 장한은 다행히 본능보다 이성에 충실할 줄 아는 영리한 자였다.
부채주의 머리통을 쥐고 있었다는 것.
앞서 말했듯 식구들이 대응은커녕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혼자라는 것.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저자는 고수였다.
“누구냐?”
말을 더듬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장한의 몸은 어딘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무신은 웬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광후채를 둘러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부채주 머리통 봤으면 퍼뜩 가서 채주 모셔와야지.”
“무슨 소릴… 끄아악!”
찰나.
보이지도 않은 정말 아주아주 짧은 찰나.
무신의 손가락에서 튕겨 나간 소량의 내공이 장한의 귀 한쪽을 그대로 날렸다. 고깃덩어리가 된 것이 넙적한 돌멩이 하나에 떨어져 척 붙었다.
“가서 채주 모셔와. 아, 또 못 알아들었다고 하면 그땐 귀가 아니라 머리통이 날아갈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