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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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5화
오리 다리
남궁세가.
안휘성에 위치해 있으며 구파일방의 소림사나 무당파처럼 오대세가의 우두머리가 되는 가문.
수차례 무림맹주를 배출할 만큼 수준 높은 무위.
강남이라는 지리적 위치.
돈방석이란 말로도 모자란 엄청난 부.
…라는 게 무신이 아는 남궁세가의 간략한 정보였다.
남궁 자가 써진 패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다시 세 청년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나이는 얼추 동년배로 보였는데, 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회귀 전에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모를 수밖에. 삼류무사가 명망 높은 남궁가를 마주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얼굴을 모른다 하여 이름 석 자까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남궁세가만큼 가솔 하나하나가 이름값 있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 청년은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당신이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았다는 게 사실이오?”
최 대협이란 지칭이 사라진 것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성명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제멋대로 맞은편에 앉은 것보다 훨씬 무례한 행동이었다. 무신은 ‘있는 가문 자식들이 더하다니까’ 하고 중얼거리며 역으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가운데 자리한 청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답은 않고 역으로 물은 게 아니꼬운 모양이었다.
무신은 기가 찼으나 일단 잠자코 있었다.
청년이 패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남궁성이오.”
이어 왼쪽에 앉은 청년이 남궁호, 오른쪽에 앉은 청년이 남궁수이라며 본인을 소개했다.
무신은 그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차후 남궁세가의 실세가 되는 자들.
특히 남궁성은 남궁세가뿐 아니라 강호 전체를 통틀어 제일의 검객 중 하나였던 남궁천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던 자였다. 비록 뒷심이 달려 늘 2인자 신세였지만 말이다.
“자, 이제 물음에 답을 하시오.”
거의 명령이었다. 남궁세가란 배경을 안고 아주 지랄염병을 떨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전혀 불쾌한 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앞서 말한 그 배경이 얼마만큼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달랐다.
“그런 화법은 어디서 배웠소?”
“뭐요?”
“무언가를 물어보려거든 정중하게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의 구실은 갖추어야지.”
하고는 죽엽청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무신을 남궁성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쳐다보았다. 이러다 당장 검을 뽑아 목을 칠 기세였다.
남궁호가 얼른 뜯어말렸다.
“참으십시오, 형님.”
남궁성이 ‘하’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당신이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정말 혼자 잡았는지 그게 궁금하오. 대답해 주시오.”
정중하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구실은 갖추었기에 이번만큼은 무신도 대답해 줄 의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혼자 잡았는가’ 하는 게 요지인 듯싶었다.
그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내 혼자 잡았소.”
“허.”
남궁성이 못 믿겠다는 듯 무신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경멸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렷다.
가만히 있던 남궁수가 물었다.
“칠십혈천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기창을 어찌 잡은 거요? 그자는 혈교에서 스무 번째에 드는 고수인데.”
“어찌 잡았다 할 게 있겠소? 그저 내 검술이 더 강했던 것뿐이요.”
초장부터 쭉 예의 있게 나왔다면 성의껏 답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놈은 살기를 띄울 만큼 행동이 쓰레기 같지 않은가. 쓰레기에게 맞는 대접이었다.
남궁성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럼 어디 한번 확인 좀 해봅시다. 무기창보다 더 강하다는 그 검술을.”
“…….”
“아아, 남궁가로 가서 확인하겠단 거요. 당신을 궁금해하는 가솔이 많소.”
“…….”
“왜 말이 없으시오?”
말이 확인이지 광대 짓을 하란 소리였다.
무신은 마침 주문한 음식을 갖다 주는 점소이에게 ‘잘 먹으마’ 하며 남궁성을 바라보았다.
“궁금하면 댁들이 직접 오셔야지 내가 거길 왜 가오?”
“…뭐라고?”
“이 양반 귀가 막혔나 봅니다. 아우들이 설명 좀 해주시오.”
붉으락푸르락하는 남궁성을 뒤로하며 무신은 잘 조리된 오리탕을 한 입 푹 떠먹었다. 약재를 넣었는지 특유의 향이 속에서 은은하게 번졌다. 육질이야 두 번 세 번만 씹어도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러웠다.
세 입 정도 먹고 고개를 들자 남궁성의 얼굴이 더욱 시뻘게져 있었다. 무신은 ‘그러다 얼굴 터지겠소. 이걸로 좀 가라앉히는 게’ 하고 조소하며 물을 건넸다.
남궁성이 그 잔을 그대로 내던지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네놈이 지금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구나.”
객잔이 아무리 소란스럽다 한들 깨진 잔에도 집중 못 할 만큼은 아니었다. 손님들이 ‘뭔 일이야?’ 하며 무신과 남궁가 청년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는 자는 없었다.
님궁성이 다시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대남궁가의 위엄을 모르고 감히 그런 망발을 지껄이다니.”
이제는 하오체마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똑같이 응대하면 그만이었다.
“대남궁가면 대남궁가답게 행동하셔야지.”
“네놈이 정녕 뒤지고 싶어서 발악을 하…….”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들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신은 툭 자르고 들었다.
“내 무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거든 남궁가까지 갈 것 없이 이 자리에서 당장 하지.”
“뭐?”
“대신 너와 내가 대련을 하는 거야. 백날 눈으로 보는 것보다 한번 몸으로 부딪치는 게 더 잘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내가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혼자 잡을 만큼의 무위를 지녔는지 지니지 않았는지.”
하고 말하며 무신은 오리 다리 하나를 잡고 뜯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남궁성을 똑바로 직시했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우습게도 남궁성이었다. 금방이라도 죽일 듯 노려보더니 정작 나설 때가 되자 꼬리를 내빼는 것이다.
무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못 하겠나?”
못 하겠느냐는 것.
무인으로서, 특히 위대한 대남궁가의 자제로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텐데도 남궁성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대응했다.
되도 않는 변명과 함께.
“내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련은 힘들다.”
“전형적인 겁쟁이들 변명이로군.”
이죽거리는 무신의 말에 남궁성이 벌떡 일어섰다.
이미 객잔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이, 이 개 같은 놈이!”
씩씩거리며 검을 뽑아 들려는 남궁성을 남궁호와 남궁수가 양팔을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형님과 다르게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동생들이었다. 둘마저 감정대로 행동했다면 남궁성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테니 말이다.
무신은 다른 한쪽 오리 다리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 ‘미안하지만 내 무위가 부족해 대련은 하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지 않으면 하겠단 뜻으로 간주하마.”
“나 남궁성을 뭐로 보고 그따위 말을 하…….”
“셋 셀 동안 결정하도록. 셋”
“입 닥치지 못…….”
“둘.”
“오냐, 좋다! 내가 얼마든지 상대…….”
다 먹은 오리 다리를 내려놓으며 마지막 ‘하나’를 세는 무신에게 남궁성은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다.
아니, 잇지 못했다.
너까짓 놈은 단번에 잡아먹을 수 있다는 눈빛.
그것을 증명하는 살기.
그리고 온몸이 억눌리는 기압.
남궁성이 떠듬거리며 겨우 다시 입을 뗐다.
“미, 미안하지만 내 무위가 부족해 대련은 하지 못하겠소.”
***
해질녘.
산동 서쪽을 부근으로 일련의 무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흑장포에 흑마를 타고 있었는데, 흡사 살막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살막 따위에 비할 존재가 아니었다.
흑사단.
웬만한 문파나 가문쯤은 우습게 궤멸시킨다는 흑룡강의 마적들이었다.
머나먼 북쪽에 터를 이룬 그들이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는 뻔했다.
약탈.
속된 말로 깽판.
단주, 사준환은 해가 기우는 서산을 바라보았다. 산서성의 전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클클 웃었다.
‘살다 보니 구가 놈들을 건드리는 날이 다 오는구나.’
산서구가.
인접한 진주언가나 하북팽가 등에 비하면 규모든 뭐든 다 형편없겠으나 적어도 산서 일대에서만큼은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특히 가주 구학진의 무위는 무림맹에서 직접 차출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얼마 전, 그 대단한 구학진이 죽었다.
‘마교한테 당했다 했지.’
사준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교.
생각만으로도 기가 질렸다.
‘구학진이 그리 당할 정도면… 확실히 마교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는 편이 좋아.’
사준환은 혹여나 마교와 부딪치게 되면 그 즉시 넙죽 엎드리리라 다짐하며 대강 가다듬었다.
가주가 사라진 구가를 칠 계획을.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지.’
구학진은 구가의 기둥이었다.
그 기둥이 사라졌으니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일대에서 수위에 든다는 자제들의 무위?
그래봤자 구학진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추리고 추린 흑사단 무사들의 힘이면 충분히 비벼볼 만하다.
사준환은 바짝 고삐를 잡아당겼다. 인근 녹림에서 선수를 치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했다.
바삐 달리던 그가 돌연 말을 멈춰 세운 것은 막 산서의 동문이라는 산동을 지날 무렵이었다.
웬 청년이 길목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흑사단과 비슷한 흑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들고 있는 검마저 검다는 부분에서 조금 달랐다.
사준환이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썩 안 꺼져? 아니다, 뭣들 하고 있느냐! 저놈 죽이고 길 터!’ 하고 말하려는 찰나.
청년이 먼저 검을 빼들었다.
“슬슬 지루하던 차였는데 마침 딱 와주는군.”
사준환은 제 귀를 의심했다. 마치 흑사단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흑사단 때문에 멸가한 어느 가문에서 자객이라도 하나 보낸 것일까.
이상하다 싶어 뒤늦게 청년의 면면을 훑었으나 특별할 것은 없었다.
무골이 괜찮아 보인다 하는 정도.
심지어 기압도 낮았다.
조금 당황했었던 사준환은 그제야 웃었다.
‘병신이잖아?’
물론 무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류.
혹은 그 이상.
그러나 현재 운집해 있는 흑사단의 머릿수는 자그마치 마흔아홉에 이른다.
저깟 놈 한 명이 어찌해 볼 수준이 아닌 것이다.
사준환은 ‘자객질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쯔쯧’ 하고 혀를 차며 이미 청년에게 달려든 단원들을 쳐다보았다.
몇 합 따질 것도 없이 양쪽에서 날아드는 검을 피하지 못해 곧 차디찬 주검이 될…….
“커헉!”
자신의 목구녕에 칼날이 들어오고 있었음에도 사준환은 전혀 알지 못했다.
청년이 검을 휘두르기는 했던가?
그보다 단원들은?
얼굴 가득 시뻘건 핏대를 세운 사준환은 그제야 확인했다.
단원들이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
마흔아홉 구의 시체.
수가 그리 많은데도 건질 게 하나 없었다. 주머니 탈탈 털어봐야 허공에 먼지만 날렸다. 무신은 개의치 않고 주인을 잃어 이리저리 날뛰는 말 중 한 놈을 붙잡았다. 사준환이 타고 있던 놈이었다.
“히이이이이잉!”
드넓은 흑룡강을 달리다 온 놈이라 그런지 기가 드세도 아주 드셌다. 갈기를 쓰다듬어도 진정할 생각을 안 했다. 대가리에 내공 섞인 주먹을 한 방 꽂아주니 그제야 왁왁 쳐들던 고개를 내리깔았다. 무신은 ‘여기 있다 했던가’ 하고 중얼거리며 놈의 안장을 뒤집었다.
정체 모를 문양이 박힌 종이 한 장.
그가 영양가도 없는 흑룡강의 마적들을 잡은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