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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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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3화

재회

 

 

무신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다. 뭐에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멍했다. 침만 꿀꺽꿀꺽 자꾸 넘어갔다. 그냥 믿기지가 않았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유림.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못해 찬란했다. 말 그대로 성녀이자 선녀였다. 그날과 느낌이 똑같았다. 무신은 그렇게 한참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석영이었다.

 

“유, 유림이시여!”

 

유림이 아닐 수도 있단 혹시나 하는 생각이 석영의 말로써 완전히 지워졌다.

그는 저승의 1급 관리자.

저승의 신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유림이 말했다.

 

“석영이구나.”

“예……!”

 

무신을 대할 때는 예만 갖추는 느낌이었다면 유림을 상대로는 잔뜩 긴장까지 하고 있었다.

유림은 진짜 신이기 때문일까.

무신은 ‘진짜 신인 것도 그렇고 직장 생활에서 상급자만큼 무서운 이도 없지’ 하며 혼자 킥킥댔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였다. 그 역시 긴장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유림이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 있는 무신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어려 있었다. 매혹이라면 매혹이었고 고혹이라면 고혹이었다.

간만의 그것에 무신은 일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

그녀와의 대련만 족히 10만 년이 넘는데 볼 때마다 항상 그랬다. 어떤 의미에선 미친 여자였다.

저토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게.

 

“네가 최무신인가?”

 

유림의 어조는 당당했으며 고고했다. 내려다보는 시선에 ‘우쭐’이란 감정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거만해 보이지도, 불쾌해 보이지도 않았다. 신이라는 존재만이 품을 수 있는 일종의 기백일 것이다.

무신은 조금은 긴장이 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한때는 하대도 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인간이 유림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망령의 숲에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신은 석영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개까지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유림이 흥미롭단 눈을 했다.

 

“염라가 자꾸 부탁해 내려와 봤더니… 이거 정말 굉장하구나. 이승에 나와 비슷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줄이야. 놀라워, 정말 놀라워.”

 

무언가 작위적인 말투였다. 그러나 종전보다 눈동자가 조금 커져 있었으며 입꼬리도 씰룩이고 있었다. 유림은 지금 정말 신기해하고 있었다.

무신은 그 순간 알아챘다.

석영처럼 그녀 역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저승의 신이라고 해도 결국 신인데, 그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도 회귀에 대한 기억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는 ‘아니지. 이게 맞는 거야. 기억하면 그게 더 이상해’ 하며 슬쩍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쿵.

쾅.

하고 순간 제 가슴 떨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은 그의 착각이 아니렷다.

그녀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석영을 뒤로 하며 무신에게 한 발 다가섰다. 겨우 한 발이었으나 거리는 바로 코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애초에 구멍이 서너 걸음 안에 생성된 탓이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이란 말이지.”

 

유림이 무신의 면면을 살폈다. 그 비단결 같이 고운 손으로 그의 뺨과 턱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아닌 말이 아니라 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10만 년의 대련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생동감 있는 그녀의 숨결과 은은하게 풍키는 머리칼의 내음에 정신이 아른거렸다.

그는 결국 허억 하고 가쁜 숨을 토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듬지 않고 대답한 것만 해도 용한 일이었다. 무신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 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어오는 유림에게 ‘아름다움이 묻었습니다’ 하고 내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가 다시 한 발 물러났다.

그는 왠지 아쉬웠다.

 

“석영.”

 

다시금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에야 석영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찌저찌 침착함은 찾은 모양이었으나 명부를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자의 명부를 볼 수 있느냐?”

“예!”

 

빠릿하게 대답하는 꼴이 꼭 장군을 대면한 군병의 그것 같았다. 무신은 ‘녹화해서 나중에 보여주고 싶군’ 하고 아쉬움을 삼키며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유림이 말하는 이자는 곧 자신.

유림은 명부로 자신의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잠자코 명부를 내려다보던 유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위대한 존재가 맞긴 하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신과 석영 모두 그 뒷말에 집중했다.

유림이 명부를 덮었다.

 

“그대처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것도 참 위대한 일이로다. 위대한 존재란 자리에 앉기 충분해.”

 

위대하다는 게 정말 위대하단 뜻이 아니었다. 유림은 무신을 여전히 ‘평범한 존재’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힘.

명부상에 무슨 내용이 나와 있든 그것만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무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무슨 수로 그 힘을 얻었느냐?’ 하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대… 어떻게 나의 힘을 가지고 있지?”

 

유림은 분명 무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

회귀로 인해 그녀에게 그는 난생처음 보는 새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동질감.

자신의 힘과 그의 힘이 서로 같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가 무언갈 말하려다가 쭈뼛쭈뼛 서 있는 석영을 쳐다보았다.

 

“석영.”

“예!”

 

재빨리 대답하는 석영에게 유림이 구멍을 가리켰다.

 

“먼저 저승으로 돌아가거라.”

“알겠습니다!”

 

석영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자리에는 금세 유림과 무신만이 남았다.

그녀가 그의 면면을 훑으며 물었다.

 

“그대가 위대한 존재라 불릴 수 있는 그 힘은 나의 것이다. 분명해.”

“…….”

“내 그대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단지 궁금할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어려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면이었다. 무신은 ‘마음도 얼굴 따라가네’ 하고 미소 지으며 그제야 토로했다.

그날의 일을.

 

***

 

섬서 무림맹 본거.

새로운 맹주를 차출하는 일로 바삐 돌아가던 그곳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혈교의 간판이라던 칠십혈천대가 산동 평야 언저리에서 몰살을 당했단 것이다.

서열 20위 흑염사 무기창도 함께.

악가에서 불과 보름 전에 칠십혈천대 처리를 위해 구원을 청했던 터라 그 소식은 시사되는 바가 더욱 컸다. 급기야 원로들이 한데 모여 자리를 만들었다.

 

“어떤 문파의 짓이오?”

“문파가 아니랍디다.”

“그러면?”

“항간의 소문으로는 웬 절세의 고수 한 명이 죄다 잡았다 하오.”

 

홀로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상대했다는 것.

속세의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원로들조차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호오, 재밌는 일이 벌어졌군.”

“헌데 문파가 아니라니? 절세의 고수인데 배경은 없다 이 말이오?”

“그렇소. 그 역시 항간의 소문으로는.”

“허허.”

 

항간의 소문.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 절세의 고수가 악가와 접촉했단 말이 있소.”

 

***

 

“대단하구나. 망령의 숲을 버티다니. 그로도 모자라 나의 힘을 얻을 만큼 성장하다니.”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저물어갈 즈음.

유림이 무신을 보며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흥분이었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으며 허옇던 뺨이 울긋불긋 상기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참 예쁘구나 생각하는 그에게 그녀가 비로소 ‘그 두 글자’를 꺼냈다.

 

“그대, 결국 회귀를 했겠구나. 그래서 나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예.”

 

무신이 대답하는 순간, 유림이 그 곱디고운 손가락을 모아 손뼉을 부딪쳤다. 짝짝짝 박수 소리마저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콩깍지가 씌여도 아주 단단히 씌인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아무리 봐도 별일이라는 듯 말했다.

 

“내가 만들었으나 통과할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회귀라는 절대적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해냈구나.”

“저도 두 번은 못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걸 도대체 누구 보고 통과하라 만든 거야? 나쁜 년’ 하는 게 무신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다 지나간 한탄 아니겠는가. 지금은 외려 감사할 뿐이었다.

어쨌든 회귀를 하게 됐으니까.

유림 덕에.

그녀가 애매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의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구나.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망령의 숲에서 쌓은 힘을 회귀하면서 가지고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회귀 전이든 후든 자아는 동일해도 육신이 달라지니 말이다.”

 

유림이 ‘계승’이란 말을 언급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서 내가 그대에게 나의 검을 집어넣어 준 것이더냐? 너의 의지에?”

“예.”

“그런데 갑자기 가동이 되어 일시적으로 나의 힘이 개방됐다… 이 말인 것이고?”

“맞습니다.”

 

유림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실체가 없는 의지가 계승되어 실존하는 힘으로 가동된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러나 그 한편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의 영구 소멸.

그것을 해결하려면 ‘온전한’ 그 힘이 필요하다.

무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 힘은 유림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 유림님의 힘을 이용해 영구 소멸을 풀어주면 되지 않습니까?”

“사자나 염라가 그리했다면 가능하다.”

 

유림이 ‘하지만…’ 하고는 안색을 굳혔다.

 

“신과 신의 힘에는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다.”

“그럼 어떡하죠? 당장은 저도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아니, 방도를 모릅니다.”

“으음.”

 

턱에 손을 괴고 고민하던 유림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게 뭐죠?”

“영구 소멸을 풀 수 있는 권한을 나한테 양도하는 것이지.”

 

조심스럽게 제안했음이 무색하게 무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뒤진 놈이 영영 사라지든 저승에 남든 별 상관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림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괜찮겠느냐?”

 

권한을 양도한다는 것.

저승에선 상당히 민감한 부분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설령 양도 없이 유림 독단대로 행동해도 무신으로서는 전혀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어차피 이승의 사람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고맙구나.”

“별말씀을.”

 

석영이 돌아간 직후 닫혔던 구멍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무신은 유림을 따라 그 앞에 섰다. 양도에 대한 서약을 쓰기 위해서라도 부득이하게 저승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세상으로 가는 조건?

그야 진즉에 만족했다.

영구 소멸의 상황에 처한 망령들을 되살리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저승으로 이동하는 그 힘까지.

그 힘은 물론 유림이 대리로 넣어줄 것이다.

 

“나와 10만 년 가까이 대련을 했다고?”

“예.”

“그거 참 알찬 시간이었겠구나.”

 

무신은 ‘알차기는 개뿔이. 세상에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 어디 있어’ 하는 말을 간신히 목구멍 밑으로 밀어 넣고선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굉장한 반향이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동은 금세 끝났다.

그는 ‘호오’ 하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사위를 둘러봤다.

저승.

한번 경험해 봤다고는 해도 그 낯설음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적응은커녕 사위를 다 둘러보기도 전에 상황이 진행됐다.

 

“와, 왔어! 정말 왔어!”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웬 망령들이 넙죽 엎드려 있었다. 실체가 없었으나 무신은 한눈에 알아봤다.

칠십혈천대와 무기창.

바로 그들이었다.

그때, 거대한 존재 하나가 무신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염라였다.

회귀하면서 딱 한 번 보았으나 저 흉흉한 몰골을 어찌 잊겠는가.

그것을 떠나서도 손에 염라의 검을 쥐고 있었다.

무신은 얼떨떨했다.

자신을 심판하던 자가 외려 예를 갖추는 상황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는 말의 참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염라가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의 영구 소멸을 풀어주십사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 예.”

 

무신은 이어 ‘제가 힘이 온전치 않아 유림님에게 그 권한을 양도할까 합니다’ 하고 정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헌데 맨입에 해드리기는 좀 그렇군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그의 삶의 철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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