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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0화

대협

 

 

대협.

나이가 많거나 무위가 뛰어난 자에게 붙는 호칭.

무신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음으로 전자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후자란 것인데…….

어색한 지칭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이 끌렸다.

 

악성권.

 

산동의 대들보이자 악가의 가주인 그가 와 있었다.

소속 무사들을 대동한 채.

의아하게 서 있는 무신에게 악성권이 ‘아차차’ 하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저는 악가의 가주 악성권이라 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하지 않아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악성권 정도 되는 양반이 아침 댓바람부터 소속 무사들을 이만큼이나 이끌고 찾아온 게 궁금해서였다.

 

“최 대협 되십니까?”

 

두 번이나 물어오는데 계속 묵언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

무신은 일단 답했다.

 

“예, 맞습니다만.”

“그러시군요. 사실은 어제 찾아뵈려 했으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제야 왔습니다.”

 

무신이 차리려 했던 예의를 외려 악성권이 차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악성권은 지금 그냥 존대도 아니고 아주 극존대를 쓰고 있었다.

연배.

가문.

모든 면에서 윗선에 있는 자가.

 

“무슨 일이래?”

“아, 악성권이 말을 높이고 있어?”

“저 검객, 그 검객이잖아?!”

 

악가의 행보는 산동에서 언제든 이목이 끌리게 마련이었다. 거기다 가주가 직접 나서고 있으니 그 여파야 안 봐도 뻔했다. 행인들은 물론이요, 건물 여기저기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악성권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어젯밤 피칠갑이 되어 돌아오셨단 말을 들었습니다.”

 

무신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악성관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혹, 그게… 평야에서의 일 때문이었습니까?”

 

역시나였다.

 

***

 

섬서성 종남파.

장문 진해천을 포함해 종남파의 실세가 모두 운집한 자리에 삼엄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슨 사단이라도 났는지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웠다.

진해천의 팔자 주름도 오늘따라 유독 더 깊었다.

 

“마교에서 태청운을 놓쳤으면 그에 맞는 다른 고수라도 보내달라 난리입니다.”

“야단났구먼. 태청운 같은 고수는 있어도 태청운처럼 부술을 구사하는 고수는 없으니.”

 

다른 장로가 클클거리며 끼어들었다.

 

“그러게 애당초 일 처리를 똑바로 했어야지.”

“그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요. 일 처리를 잘했으면 이런 사단이 났겠소? 진즉에 태청운 그놈을 잡아다 약을 먹여서든 어째서든 마교로 보내고도 남았지.”

 

말 자체는 틀린 게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종남칠응을 보냈소, 종남칠응을. 우리 종남파에서 알아주는 일곱의 고수를 보냈는데 잡지 못했다 이 말이오. 그게 어찌 일 처리를 똑바로 못 한 걸로 치부된답디까.”

“종남칠응? 나 원, 그자들은 원래 태청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소.”

“그래서 일곱 전부를 내려 보낸 거 아니오?”

“내 말은 좀 더 확실히 해야 됐다, 이 말입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진해천이 더는 못 듣겠다는 듯 뚝 대화를 잘랐다.

 

“지금 이게 언쟁하자고 만든 자립니까? 자중들 하십시오.”

 

늘 깍듯이 대하는 자가 신경질적으로 나오니 장로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진해천이 말을 이었다.

 

“급한 대로 이진위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마교에서 그자로 만족하겠는가?”

“태성운 밑에서 곧잘 배우던 녀석이니 웬만큼은 해줄 겁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저라도 나설 수밖에요.”

 

당치도 않은 말에 장로들이 기겁했다.

 

“그, 그 무슨 말인가?”

“농입니다, 농. 허나 현재 우리 종남파에겐 마교와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장로님들께서도 다 아시다시피.”

 

이미 종남파 일원 대부분이 마공을 쓰고 있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다.

없으면 아예 문파가 찢어질 수도 있는 상황.

복잡하다는 듯 고개를 젓던 진해천이 ‘그리고…’ 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종남칠응은 태청운에게만 당한 게 아닙니다.”

“태청운에게만 당한 게 아니라니? 그럼 그놈 밑의 표사들 때문이란 겐가?”

“마공을 익힌 자들이 한낱 표사들에게 당할 린 없지요.”

 

진해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날 임시 표사로 가던 입문 무사가 해결했답니다.”

 

***

 

악가.

무신은 그곳이 왜 산동의 명가라 불리는지 두 눈으로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으리으리한 원목집 열댓 개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으며 거기에 딸린 시종들만 해도 수십 명은 더 되었다. 한쪽의 창고 안에는 척 보기에도 날이 예사롭지 않은 창이 수백 자루도 넘게 걸려 있었다. 어딜 봐도 규모가 크다 보니 연무장과 비무장이 따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야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악성권이 양손으로 건물 한 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얘기하시지요.”

 

무림맹주가 와도 이렇게까지 공손하게 나올까.

부담스러운 언행이었다. 그러나 악가에 오며 악성권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최 대협께 어떤 식으로든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이탤릭)

 

대접.

이유는 하나였다.

악가에게 치욕을 준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처치해 줬다는 것 때문에.

물론 무신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나서서 대접을 해주겠다니 그저 누워서 떡이나 먹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디 계십니까!”

 

악구형.

산이라도 타다 왔는지 이마에 땀이 흥건한 그가 무신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서, 설마 당신이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았다는 그 검객…….”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악구형을 악성권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당신이라니. 귀인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귀인.

대형 문파의 장문이나 가주는 돼야 들을 지칭에 무신은 기분이 묘했다. 대협까지 들은 마당에 귀인이라고 못 들을 바 있겠느냐마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달랐다.

악구형이 떠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분이실 줄은…….”

“이분이실 줄이라니? 아는 분이더냐?”

 

다그치듯 묻는 악성권에게 악구형은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악철도의 일로 무신에게 무사들을 이끌고 찾아간 것으로도 모자라 창까지 들이댔으니 말은 안 해도 지금 아주 가시방석일 것이다.

무신이 어깨를 으쓱하며 끼어 들었다.

 

“글쎄요. 저는 처음 뵙는군요.”

“예? 아, 예예! 제,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다. 굳이 다시 끄집어내어 악구형에게 불편한 상황을 줄 필요는 없었다.

무신이 포권을 취했다.

 

“최무신입니다.”

“저, 저는 악구형이라 합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무신과 달리 악구형은 어딘가 긴장한 눈치였다. 말도 아직까지 더듬고 있었다.

악성권이 껄껄 웃었다.

 

“아들 놈이 겁을 먹었나 봅니다.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은 최 대협께.”

 

농으로 한 말이겠으나 사실 악구형은 정말 무신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

그날 밤, 무신의 검강을 본 후부터.

 

“제가 이렇게 최 대협을 모신 이유는…….”

 

이후 자리를 옮겨 악구형이 구구절절 악가와 혈교의 관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신은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한 시진쯤 지나서야 마침내 결론이 나왔다.

 

“해서 한번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악가의 철천지원수 칠십혈천대를 그리 만든 분을.”

“그랬군요.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모른 척 연기하는 것쯤이야 이제 도가 튼 무신이었다.

악성권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헌데 이리 젊은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가 무위의 높고 낮음을 증명하진 않는 법이지요.”

“아,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무신도 별생각 없이 던진 대답이었다.

그런데 악성권은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무신은 이 상황이 마냥 신기했다. 회귀 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자가 이렇게 쩔쩔 메고 있는 것이.

악구형?

그는 아까부터 구석에 쭈그려 있었다.

땡전으로는 사지도 못할 고급스런 다과를 건네며 악성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궁극적으로는 최 대협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라니요?”

“무림맹에서도 거절당한 우리 악가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셨으니… 어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

오랜 숙원.

그러나 그 사이에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제가 애초에 악가의 숙원을 위해 그리했다면 모를까 그저 저만의 사정이 있었을 뿐입니다.”

“단순히 숙원 때문만은 아닙니다.”

 

악성권이 자세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무인으로서의 경의도 있습니다.”

 

짧은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무신은 더 이상 악성권의 뜻을 만류하지 않았다.

악성권이 물었다.

 

“헌데 최 대협은 어쩌다 혈교와 악연이 되셨습니까?”

 

죽간 일로 사학도와 그 교도들을 죽였으니 외려 무신이 혈도의 원수가 된 게 맞겠으나…….

회귀 전 혈교에게 당한 게 얼마던가.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물론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순 없기에 무신은 적당히 둘러댔다.

 

“일전에 그쪽 교도들에게 당한 일이 있습니다.”

“허, 그런 일이.”

 

악성권이 마치 제 일처럼 반응했다. 혈교에게 쌓인 감정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었다.

 

“제 최 대협의 무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조심하십시오. 기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칠십혈천대가 날아갔으니 혈교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뒤를 봐줄 문파나 세력도 없다 하시니 오밤중에 칼침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혈교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요.”

 

맞는 말이었다.

오밤중에 칼침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저기 저 벽을 뚫리며 혈교의 고수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다 감안했습니다.”

“예?”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겁니다.”

 

제 귀를 의심하는 악성권을 뒤로 악구형은 무신을 아예 미친놈 보듯이 하고 있었다.

무신이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이어 말했다.

 

“원래 모든 일은 자신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히 흉내도 못 낼 여유였다.

그것도 혈교를 상대로서.

악성권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 도무지 쥐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예.”

 

뭐든 물어보라는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무신에게, 악성권이 꼴깍 침을 삼키며 물었다.

 

“대체 얼마나 강하신 것이지요?”

“별거 있겠습니까?”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홀로 잡으신 분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별거.

으스대는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유림의 검이 계승되지 않았다면 폭혈단을 씹은 무기창은 몰라도 칠십혈천대는 아직도 산동일대를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즉, 말하자면…….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악성권은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만한 실력을 가지시고도 참 겸손하십니다.”

“별말씀을.”

 

악성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최 대협.”

“예.”

“실례가 안 된다면 저와 대련 한번 가능하시겠습니까? 무기창을 쓰러뜨리신 실력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무기창과 호각을 다투었다던 악성권.

어쩌면 그가 무신에게 진짜 궁긍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감사’가 아니라 ‘대련’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흑라신검을 좀 더 진득하니 써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장소는 악가 내에 설치된 비무장이었는데, 가주와 무명의 절세고수의 대련이란 흥미진진한 구도에 바삐 움직이던 소속 무사들까지 모두 모여들었다.

악성권이 허공을 찢어발기는 창강을 터뜨리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개중에는 ‘왠지 가주께서 이기실 것도 같아’ 하며 기대를 품는 이도 있었다.

악성권이 창을 젖히며 물었다.

 

“혹, 전력으로도 가능하십니까?”

“전력을요?”

“최 대협의 무위를 제대로 보고 싶습니다.”

“가능은 합니다만…….”

 

무신이 애매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가주께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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