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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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7화
철교
어떠한 장소에 기관진식을 설치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금은보화나 비급 등 귀중한 보물의 보관.
강호 세력의 본거지.
내부에 있는 자들을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잠금장치.
물론 마지막 경우는 거의 드물다. 가두자고 그 짓 할 바에야 그냥 죽이는 게 백배 나으니까.
각설하고, 무신이 지금 들어가려는 동굴은 개중 두 가지에 해당된다.
강호 세력의 본거지이며 끝에 다다르면 귀중한 보물도 얻을 수 있다.
철교(鐵敎).
동굴은 바로 그곳의 소유였다.
지금은 비록 사라졌으나 한때 혈교와도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사파의 거물.
무신은 흥미롭게 동굴을 바라보았다.
‘특히 교주가 참 대단했다고 하지.’
회귀 전을 떠나 백 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도 자세히는 몰랐다. 그러나 화산파나 남궁세가는 물론, 마교까지 위협했다 들었다.
교주의 실력이.
‘깨달음의 경지는 분명 넘었을 테고.’
깨달음의 경지.
초절정을 넘어 화경 이상을 가리킨다.
‘동굴 끝에 도달하면 그 교주의 힘을 알 수 있겠군.’
죽어도 진즉에 죽었을 양반의 힘을 이제와 어찌 느끼겠느냐마는, 불가능하지는 않다.
동굴 끝에 존재하는 교주의 보물.
그것의 가치가 곧 교주의 힘을 방증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기 때문에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었다.
‘교주나 되는 자의 보물이니 기관진식도 여타의 것보다 까다롭게 설치되어 있겠지.’
소문난 고수들도 여지없이 죽어나갔으니 그 난이도야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나 애당초 기관진식이란 게 무엇인가.
힘보다는 머리를 요하는 일.
이런 일에 괜히 제갈가가 나서는 게 아니었다. 침착하게만 가면 능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신은 찬찬히 몸을 풀고 성큼성큼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갔는데도 그 태가 들어나지 않을 만큼 입구가 감춰져 있었다. 늦게 발견된 데에는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솨아아아아.
입구 앞에 서자 난데없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날의 스산함이 풍긴 것은 착각이 아니렷다. 거기에 맞춰 무신도 곧장 대응했다. 온몸에 강기를 두르고 검병에 손을 가져갔다.
방대한 내공과 측정 불가에 이르는 발검.
그로서는 만반의 준비였다.
그렇게 첫발을 내딛기 무섭게, 넝쿨처럼 엉켜 있던 수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입장을 환영한다는 듯.
범인이었으면 소스라치게 놀랐겠으나 무신은 그저 즐거웠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삼류무사.
감히 기관진식에 도전할 생각을 했었겠는가.
‘일단은 별거 없는데.’
목소리가 울리고 천장이 하늘처럼 높으며 넓이는 몇백 명도 쭉 설 수 있을 만큼 컸다.
지극히 평범한 동굴.
그러나 무신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다 갑자기…….
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예상대로였다.
고개만 살짝 흔들었을 뿐인데 양쪽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촉에 보랏빛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독이 발라진 듯했다.
‘과연.’
어렵지 않게 피하기는 했다.
몸만 약간 틀어서.
그런데 내공을 응집해 사위를 밝히고 보니 바닥을 뒹구는 화살이 수백 개였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난이도가 높군.’
직접 체감하니 그렇게나 많은 무인들이 죽어나간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동시에, 더한 기대가 몰려왔다.
‘그만큼 보물의 가치가 크단 뜻이겠지.’
기대는 괜한 흥분을 자아내는 법.
무신은 머리를 두어 번 흔들며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얼마 안 가 또 화살이 날아왔으나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호신강기.
내공을 검기나 검강처럼 몸에 두르니 제아무리 독화살이라도 살집을 꿰뚫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촉이 구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물론 여타 무인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양.
호신강기라는 것도 결국 내공의 양이 많을수록 위력이 증대하기 때문이다. 귀곡심법과 영약으로 무장한 무신을 그들이 따라갈 리 만무하다.
한참 동굴을 나아가던 무신은 문득 발을 멈췄다.
스스스스스.
무언가 오고 있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동굴이란 곳의 특성과 실수하지 않으려 오감을 곤두세운 덕이었다.
이윽고, 그가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혹여나 동굴이 무너질까 최대한 힘을 조절했음에도 벽면이 우르르 썰려 나갔다.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싶었다.
그는 손목을 매만지며 사위를 훑었다. 시뻘건 벌레들이 바닥과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사엽충(死獵蟲).
내력이 낮은 자는 즉시 사망에도 이르게 하는 독충이었다.
‘독화살에 독충. 오만 것을 다 심어놨군.’
사엽충을 지나가자마자 천장과 벽면을 타고 희뿌연 뱀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사엽충보다 더한 독성을 가진 독사였다.
무신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그것들을 구석에 날려 보냈다. 호신강기가 있다고는 해도 가까이 오도록 할 수는 없었다. 사람 일이란 게 항상 어찌 될지 모르기에.
이후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탄탄대로였다. 독충이나 독사는커녕 독화살도 감감무소식…….
그는 외려 더 경계를 갖췄다.
방심을 유도하고 더한 함정을 꺼내는 것.
기관진식의 기본 성격이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별안간 진동과 함께 동굴이 몸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정말, 멀쩡했던 벽이 압축되고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압축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눈 한번 깜빡이면 몇 자가 조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무신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아니, 대처랄 것도 없었다.
암향표.
그것을 꺼내 드니 벽은 그의 숨통은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잠시 후 벽이 잠잠해지자 그는 다시 사뿐하게 발을 디디며 동굴을 헤쳐 나갔다. 바닥에서 갑자기 가시가 솟아오르는가 하면, 여태까지의 함정이 한데 섞여 등장하기도 했으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호신강기와 보법, 그리고 두 가지를 받쳐주는 내공의 삼위일체.
거칠 게 없었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지 않고서야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겠어.’
당연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기관진식이란 것도 결국 들어오면 나갈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천장이 무너지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신이 ‘우라질’ 하고 육두문자를 토하며 암향표에 구보전답까지 죄다 끌어 올렸다. 신법도 물론이었다.
굉음이 울리며 뒤에서부터 동굴이 내려앉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했던가.
그 속도는 벽이 압축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들짐승처럼 맹렬하게 쫓아왔다.
무신은 바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간만의 긴장이었다.
‘그래, 이래야 재밌지.’
누가 들었으면 미친놈이라 했을 것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재미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심지어 웃고 있었다.
‘쫄깃하게 잘 만들어놨어, 아주.’
그도 사람이었다.
자칫 깔려죽을 수도 있는 위기에 재미를 추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나중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그뿐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던 그가 호흡을 되찾은 것은, 어느 문 앞에서였다.
철문.
철교의 철의 상징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끝인가.’
정황상으로는 그렇다.
천장이 무너지는 최악의 함정까지 통과했으니 이제는 보물이 나올 시기였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무신은 할 말을 잃었다.
강시.
초점 없는 눈으로 ‘침입자’만을 응시하는 그것들이 웬만한 연무장 하나에 달하는 공간을 시꺼멓게 채우고 있었다.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벌써부터 코를 찔렀다.
무신은 당혹스러웠다.
강시가 두려워서?
그게 아니었다.
강시는 본디 혈교 주술의 산물.
그 외의 집단에서 강시를 다룬단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설령 마교의 주술이라 한들 강시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강시란 게 철교에서도 파생된 거였나?’
그렇게밖에는 판단이 안 섰다.
‘싯팔, 모르겠다.’
강시든 홍시든 간에 우선은 족쳐야 되는 상황 아니겠는가.
무신은 혓바닥을 날름 핥으며 파천검을 높이 쳐들었다. 내내 뛰기만 해 심심하던 차 외려 반갑기까지 했다.
수백 마리도 더 될 것 같은 저 강시들이.
‘철강시 같은데.’
철강시.
도검불침에 내공을 다루기도 하니 어떤 의미에선 천장이 무너지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복수하고 싶거든 저승 가서 22만 년만 묵었다 와.’
그러나 무신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내공을 한껏 끌어 올려 몇 번 검을 휘두르니 알아서들 쓰러졌다.
철강시들의 내공?
어림도 없었다.
시주(屍主)라고 해봐야 이류에서 일류무사들.
그 정도 내공 가지고 검강도 쉬이 다루는 자를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결과로도 증명됐다.
쿠웅!
마지막 철강시까지 쓰러뜨린 직후, 무신이 입은 상처는 땀 몇 방울이 전부였다.
‘그나저나 철교에서 어떻게 강시를 다뤘을까.’
상황을 끝내고 보니 다시금 그 의문이 솟구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혈교 쪽으로 손을 빌렸나.’
세력 다툼 때문에 칼부림만 안 나도 다행일 관계에 어찌 그렇겠느냐마는, 가능성이야 충분했다.
당장 저기 저 종남파는 마교에게 무공도 팔아넘기고 있지 않은가.
‘나중에 개방 쪽으로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는 비린내 나는 시체더미를 지나 조그마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뒤로 어떠한 살기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촉이 왔다.
‘……!’
방이었다.
화살도 독충도 독사도 다 없고 벽이나 천장에도 전혀 이상이 없는 그냥 동굴 내 작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큼지막한 궤짝이 하나 있었다.
궤짝.
저것이 의미하는 바…….
무신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며 더 볼 것도 없이 궤짝을 열어젖혔다.
번쩍!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그러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금 1관.
자그마치 금자 100냥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범인은 평생 가도 못 모을 엄청난 거액이었다.
‘하.’
어떤 의미로는 기가 찼다.
입으로도 못 담을 게 눈앞에 있으니 정신이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물은 이제 시작일 뿐.
그의 시선이 금방 다른 것을 쫓았다.
철룡광랑검법(鐵龍狂浪劍法).
철교 교주 무위의 근원이며 화산파나 남궁세가의 비기와 비교해도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저명한 검법이었다.
그것이 석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무신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자의 비기.
이만큼 짜릿한 일이 또 있을까.
‘적어도 중검에 한해선 철룡광랑검법이 최강이라지.’
철교 교주가 강호를 휩쓸며 직접 증명했으니 의심할 여지는 더욱 없었다.
무신은 케케묵은 먼지에 쌓인 철룡광랑검법서를 손에 들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펴서 온몸에 습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장소도 장소거니와 자칫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었다.
극강의 중검.
한낱 동굴이 그 무게를 어찌 견디랴.
‘…….’
아쉬움은 잠시였다. 그는 서적을 품에 넣으며 끝을 바라보았다.
방의 끝임과 동시에 동굴의 끝.
철교 교주가 진짜 감추려 했던 물건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무어라 해야 할까.
긴장?
흥분?
기대?
복잡미묘하게 쌓인 감정에 몸과 정신이 괴로웠다. 침이야 진즉부터 꿀꺽꿀꺽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석반을 두 개나 오르고서야 비로소 멈춰 섰다. 파천검을 들고 있는 손이 더욱 더 심하게 요동쳤다.
과장이 아니었다.
긴장과 흥분과 기대란 종전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모두 그 손에 가 있었다.
그는 파천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철교 교주의 상징’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