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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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5화
역으로
“지랄을 떨지언정 애꿎은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죽엽청이 깨지면서 다리가 젖은 무신이 그렇게 말한 직후.
객잔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악철도의 눈치를 살피느라 내내 숨만 죽이고 있던 손님들이 저마다 와 하고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이 바닥 무법자와도 같은 악철도에게 감히 지랄이란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동정으로 변했다.
“외부인이로군. 악철도가 누군지 모르고 저런 게야.”
“젊은 친구 목 하나 날아가겠어.”
“그러게 눈치껏 있어야지. 우리가 괜히 조용조용 마시는 줄 아나.”
수군거림 뒤에서 악철도가 무신을 쳐다보았다. 눈이 벌써 살기에 가득 차 있었다.
무신이 아랑곳 않고 홀딱 젖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악철도가 쳐낸 죽엽청 탓이었다.
악철도가 점소이에게서 아예 손을 떼고는 말했다.
“뭐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떠드… 끄아악!”
잘못을 했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인지상정.
그런데 사과는커녕 육두문자부터 섞고 있으니 참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신는 더 듣지도 않고 악철도의 다리에 그대로 검을 꽂았다. 이어 머리통을 잡아 식탁에 내리꽂았다. 무려 강골에 달하는 완력이기에 악철도는 발버둥만 칠 뿐 꼼짝도 못했다.
“죽여! 이놈 죽이라고!”
아무래도 동행한 두 창객은 부하인 모양이었다.
악철도의 외침에 그들이 창을 꼬나 쥐었다. 그러나 정작 행동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악철도가 제압당하기까지 불과 몇 초.
자신들은 상대가 될 수 없음을 그 찰나에 깨달은 것이다.
무엇보다…….
“케에에에엑!”
행동으로 옮겼어도 악철도는 어차피 뒤질 운명이었다.
그가 ‘죽여! 이놈 죽이라고!’ 하는 말을 꺼낸 순간, 무신이 이미 그의 목덜미에 검을 쑤셔 박고 있었다.
“닦을 것 좀 내와.”
피를 한 움큼 뒤집어 쓴 무신이 그렇게 말하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던 점소이가 얼른 수건 한 장을 가져왔다.
그녀가 벌벌 떨며 물었다.
“다, 닦아드릴까요?”
“됐다.”
무신이 얼굴과 손을 닦는 그 사이에도 두 부하는 점소이만큼 겁을 먹어서는 뻘뻘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무신이 바닥에 고꾸라진 악철도의 얼굴에 수건을 내던지고는 말했다.
“가져가 치워.”
“…예예!”
굉장히 자연스러운 존대였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듯.
축 쳐진 악철도의 시체를 들쳐 업고 나가는 두 부하를 뒤로하며 무신이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다 젖었군.”
아닌 말이 아니라 무신의 몸은 지금 엉망진창이었다. 다리는 죽엽청 때문에 축축했고 그 위로는 악철도의 피가 한 바가지였다. 수건으로 닦았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점소이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수, 수건 더 가져올까요?”
“어. 많으면 한 석 장만.”
“네네!”
재빨리 움직이는 점소이의 뒤편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니, 무겁다기보다는 죄다 얼이 빠져 있었다.
“아, 악철도가 당했어!”
가장 먼저 입을 연 자는 무신이 객잔에 들어왔을 적 ‘호오, 검객이잖아?’ 했던 어느 장한이었다.
무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두려움.
마치 악철도를 바라보듯 하고 있었다.
“뭐, 뭐 하는 놈… 헙.”
장한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악철도가 ‘놈’이란 말을 꺼냈다가 칼침을 맞은 게 바로 이 직전의 일이었다. 자신 역시 같은 꼴을 당할지 몰랐다.
다른 손님들?
장한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쥐 죽은 듯 구석에 박혀 있었다.
“여, 여기 수건이요!”
그 와중에도 무신은 태연하게 새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재질이 재질이다 보니 파천의는 아예 핏물이 배여 있었다. 의류점이든 어디든 가서 좀 만져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뻘겋게 물든 수건 석 장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봐, 주인장.”
“예예!”
소란에 놀라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객주가 구부정한 몸을 일으키며 황급히 뛰쳐나왔다. 얼굴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 역시 여느 손님들처럼 종전의 일에 대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거 다 해서 얼마요?”
피에 젖은 식탁과 바닥.
이리저리 날아가 깨진 그릇과 술병.
종전의 상황으로 인한 흔적들이 객잔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걸 변상하겠단 것이다.
그러나 객주는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벼, 변상은요!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됐고.”
무신이 제 식탁에 남아 있는 만두를 집어 먹고는 유유히 객잔을 나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
산동악가.
연무장에서 진득하니 창술을 연마하고 있던 장남 악구형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악철도가 객잔에서 변을 당했단 것이다.
당혹스럽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감히 누가 산동의 악가를 건드린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무사를 쳐다보았다.
악철도의 시체를 끌고 온 자들이었다.
“누구 짓이야?”
“타, 타지에서 온 무사 같았습니다!”
“타지?”
“예예! 검을 썼고요!”
검객이든 도객이든 그야 알 바 없었다.
타지인이라는 게 중요했다.
‘타지에서 왔기 때문에 잘 모르고 건드렸다?’
아무렴 타지인이라 해도 그 저명한 악가를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스치는 집단이 있었다.
‘설마 혈교에서?’
혈교와는 아주 제대로 앙숙이었다.
비단 정파와 사파의 관계를 떠나 그쪽 칠십혈천대에 당해 상당수의 악가무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 실상은 악가만이 혈교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때의 치욕을 갚으려고.
그러나 기본적인 무공을 비롯해 수적으로도 밀리는 탓에 늘 계획만 세울 뿐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악구형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혈교는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는 상황이야, 지금. 굳이 먼 곳까지 와서 건드릴 이유가 없다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
악구형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악철도가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했지?”
“그, 그게…….”
악구형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두 무사가 입에 침을 바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던 악구형이 ‘점소이를 식탁에 눕혀 범하려 했다’ 하는 부분에서 심한 호통을 쳤다.
죽은 악철도를 향해.
“버러지 같은 놈! 그딴 짓이나 하고 다니다니!”
무도에 어긋나고 어긋나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갈해야 할 악가의 무사가 대낮부터 애꿎은 여인을 겁탈하려 했단 것이잖은가.
죽어도 쌌다.
어차피 평소 행실 때문에라도 차라리 쥐도 새도 모르게 객사했으면 하던 자였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무렴 악철도가 쓰레기라도 결국 악가 소속 무사.
가뜩이나 손님들 다 보는 앞에서 그 꼴을 당했으니 소문은 삽시간에 퍼질 테고…….
위상.
그로 인해 깎일 그것이 문제였다.
악구형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상대가 옳은 일을 했다고는 해도 악가의 위상을 생각하면 가만있을 수만도 없어.’
게다가 상대가 검객이었다.
악가는 창술의 명가.
검에 당했으니 특히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이런 일이 터지다니.’
악구형은 부득이하게 독단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었다.
‘그 검객을 똑같이 죽이진 않더라도 악가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각인시켜 줘야 해. 그래야 산동 내에서의 악가의 입지가 지켜질 것이야.’
악철도를 제압하고 죽이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은 고수라는 것?
그야 알 바 없었다.
악구형 역시 세간이 알아주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물론 그 검객이 더 뛰어난 무위를 지녔을 가능성… 은 전무했다.
‘그랬으면 이놈들이 거기서 알아봤겠지. 이름난 무사는 절로 얼굴이 알려지는 법이니까.’
악구형은 그길로 연무장을 나섰다.
***
무신은 의류점에 들러 파천의를 손본 후, 주머니 속 ‘그것’을 매만지며 외곽으로 움직였다. 골목 두어 개를 지나자 몇 무리의 거지들과 함께 허름한 건물이 한 채 나타났다.
개방.
산동에 위치한 분타였다.
무신이 나타나자 거지들 중 하나가 앞을 막았다.
“무슨 일이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빠른 법이었다.
무신은 ‘그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배춘삼의 패.
자그마치 한 달 하고도 보름 동안 뇌물을 바쳐 얻어낸 산물이었다.
거지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이건!”
무신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않고 서 있었으나 상황은 알아서 정리되었다.
방주로도 거론됐던 인물의 패를 소지한 자.
뭐 더 볼 게 있겠는가.
이윽고 소식을 들은 분타주가 뛰쳐나왔다.
“어, 어디 계시느냐!”
극존칭에 심지어 버선발.
과연 배춘삼의 위용을 알 만했다.
“최무신이라 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무신은 순식간에 산동 분타의 귀빈이 되었다. 죄다 허리를 굽실거리며 상다리가 부러져라 술상을 차려 나오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분타주가 무신에게 양손으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배 장로님의 은인이 오실 줄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은인이라.
그래봤자 만두와 술, 그리고 말동무 좀 해준 것뿐이었다. 거기에 쓰기에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다.
그러나 무신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산동의 정보를 좀 얻어갈까 하는데.”
산동 분타에 온 목적을 채우기 더 쉬워질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무신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분타주가 냉큼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요!’하고 반색했다.
배춘삼의 은인에게 자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외려 영광이라는 듯.
‘이 정도라면 총타에 가서도 뽑아먹을 수 있겠는데?’
무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총타.
방주를 비롯한 개방의 장로들이 있는 곳.
배춘삼이 아무렴 잘났다고 한들 그들 모두의 입지를 아우를 만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은 되겠지.
‘적어도 개방과 적대적이 될 걱정은 없겠어.’
그러나 또 모를 일이었다.
배춘삼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가 있다면 거꾸로 관계가 꼬일 수도 있었다.
“…하는 게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산동의 정보입니다.”
무신은 거진 한 시진에 걸쳐 분타주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해.
몰랐던 내용?
써먹으면 외려 시간 낭비일 정도로 실속이 없었다.
아쉬움을 삼키는 무신에게, 분타주가 ‘아차차!’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악가에 대해 좀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
인적이 드문 관도.
비로소 총타를 떠나 낮의 그 객잔을 향하던 무신에게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어스름한 달빛에 비친 그들은 하나같이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악가였다.
물론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애당초 저 정도 머릿수의 기척을 못 느끼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산동악가의 장남, 악구형이라 한다. 잠깐 거기 서보거라.”
악구형.
차후 악가의 가주.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너의 죄를 물으러 왔다.”
예상한 일이었다. 당시의 상황이 어땠든 간에 악가 정도 되는 가문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넘어가면 위상에 금이 간다 여길 테니까.
악구형이 두어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그의 뒤로 너덧의 악가 무사들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우리 무사가 잘못을 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죽인 것을 묵인할 수는 없다.”
“…….”
“용서를 구하면 멀쩡하게 보내는 주지.”
악구형의 창에서 방대한 양의 기가 솟아올랐다. 수틀리게 하면 즉시 목을 날리겠단 무언의 시위였다.
그런데.
“지금 비키면 그대로 살려는 주마.”
상대가 역으로 악구형을 위협했다.
검도 뽑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