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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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4화
산동
검을 든 자가 다섯.
도끼를 든 자는 넷.
도합 아홉이나 되는 숫자였으나 무신은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해 그들을 처리했다.
사실 처리란 말도 우스웠다.
그가 튀어 나감과 동시에, 그들은 쓰러졌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커헉!”
검이나 도끼를 들었다 뿐이지 그래봤자 범인의 범주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내공?
심법이나 다룰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우두머리가 반자쯤 베인 복부를 움켜쥐고서는 무신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부하들은 이미 목숨이 날아간 후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몰라뵈고!”
몰라뵀다는 것.
말은 그럴싸해도 결국 ‘고수인 줄 알았으면 덤벼들지 않았다’ 하는 후회밖에는 안 되었다.
무신이 터벅터벅 우두머리에게 걸어갔다.
“사실 내가 너희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어.”
“가, 감사합니다!”
“저년의 단검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이후 나타난 네놈들에게 처참히 무너졌으나 날 죽이진 않았거든. 네놈들은 겨우겨우 모은 돈만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지.”
“예? 지금 무슨 말씀을…….”
“헌데 그 돈이 내겐 목숨만큼 소중했다는 게 문제야.”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우두머리의 목을, 무신이 그대로 벴다.
푸슛!
하고 튀어 오른 피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물컹하고 시큼했다.
그는 손으로 대충 털고는 아직 아등바등하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유이주를 사칭한 그 여인이었다.
“하아아아악!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아악!”
안면이 완전히 뭉개져 이빨이 코에 붙어 있었고 그 매혹적이던 눈깔은 피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시꺼멨다. 정신을 안 잃은 게 용했다.
무신이 그녀의 목을 밟으며 말했다.
“쥐뿔도 없는 놈이 기껏 도와주겠다 나섰는데 거기에 대고 뒤통수를 치면 안 됐어, 네년은.”
“사, 살려…….”
고통 속에서도 살고 싶은 의지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때 꽂힌 단검을 생각하면 무신은 아직도 배가 쓰렸다.
그가 가차 없이 검을 꽂았다.
꿈틀거리는 그녀의 목덜미에.
***
칠십혈천대(七十血天隊).
혈교의 고수 칠십 명을 모아 만든 병대가 서열 20위 흑염사(黑炎絲) 무기창을 필두로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미칠 노릇이야.’
움직였다 하면 웬만한 세가 하나쯤은 가뿐히 박살 낸다는 그 병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가는 방향에 대해.
‘종적을 찾을 수가 없어.’
탈교한 주술사의 재물을 빼앗긴 일.
그 일에 ‘단 한 명의 무사’만 끼어 있다는 것까지는 어떻게 파악을 했으나 그뿐이었다.
해당 무사를 잡을 길이 없었다.
‘교주님께서 크게 노하실 텐데.’
교주의 성격이야 무기창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실 무기창은 교주보다도 해당 무사에 더 신경이 쏠려 있었다.
‘당시에 사학도 말고도 교도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걸 어찌 혼자 상대했지?’
당최 의문이었다.
아니, 대관절 얼마나 고수란 말인가.
‘허나 칠십혈천대와 나는 다를 것이다.’
칠십혈천대의 위세에 눌려 그 저명한 산동악가도 꽁지를 내빼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무기창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산동악가 가주와의 일전에서도 별다른 상처 없이 승을 따낸 이였다.
그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저 멀리 서쪽을 쳐다보았다.
‘딱 저곳에 있으면 좋으련만.’
우연치 않게, 산동이 있는 곳이었다.
***
산동.
몇 번의 기슭을 더 넘어 비로소 도착한 그곳은 여러모로 활기가 넘쳤다. 조금이라도 마진을 더 보려는 장사치들이 분주히 입을 놀리고 있었고, 한창 때 꼬맹이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제 세상처럼 누비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사들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무기였다.
창(槍).
거의 십중팔구는 그것을 들고 있었다. 검이 강호에서 가장 흔한 무기이다 하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어느 가문의 영향이 컸다.
산동악가.
그쪽 출신들로 인해 산동 안에서만큼은 창법이 더 발전했기에 많은 무사들이 창을 쥐고는 했다.
‘창. 정말 좋은 무기지.’
무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무기와 비교 선상에 놓으면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특히 검과 창.
두 무구의 우위를 가리는 것에는 늘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거리는 긴데 속도가 느린 창.
거리가 짧은 대신 속도는 빠른 검.
이게 더 낫네 저게 더 낫네 하다가 싸움이 붙어 죽어나간 무인들이 산 하나를 이룰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이 사용하는 무구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던 것이다.
‘괜한 자존심 세울 것 없어. 더 강한 놈이 이기는 거야.’
무신은 검객이지만 창객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창을 더 우위로 쳐줄 뜻이 있었다. 졌는데도 억지를 부리는 건 진정한 무도가 아니었다.
표사들마저 창을 들고 있는 풍경을 지나 그가 향한 곳은 근처 마구간이었다. 건초 냄새를 맡았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고개를 쳐들었다.
“히이잉!”
대낮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주인장이 소리를 듣고는 뛰어나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한 것이 거사도 같이 치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무신이 물었다.
“말 좀 넘길까 하는데.”
“예예, 봐드리리다.”
정든 놈이었으나 길게는 몇 달을 지낼 수도 있었다.
지금 이 산동에서만.
편의를 위해선 아쉽더라도 팔아치우는 편이 나았다.
주인장이 말을 여기저기 뜯어보고는 스리슬쩍 무신의 행색을 살폈다.
“외지에서 오셨수?”
“그렇소.”
“크흠, 어쩐지 굽이 많이 상한 게 먼 길 달려왔구나 하고 내 생각했지.”
이빨이었다.
그래봤자 며칠 달려온 것으로 상할 굽이었으면 애당초 이 말을 사지도 않았다.
무신은 일단 주인장의 개소리를 들어주었다.
“갈기도 푸석한 것이 어디 좀 병을 앓고 인남?”
“…….”
“응? 이제 보니 눈도 퀭하네?”
온종일 굶었으니 갈기야 당연히 푸석할 것이요, 눈도 퀭한 게 당연했다.
없는 병을 만들어내는 주인장에게 무신이 딱 잘라 말했다.
“지랄할 거면 딴 데 가고.”
“아, 아니오.”
흥정이란 별게 아니었다.
얕보이지만 않으면 사는 놈이든 파는 놈이든 제 가격을 부르게 돼 있었다.
무신은 적정가에 말을 넘기고는 바로 옆 객잔을 찾았다.
육포와 건량만 씹은 지도 벌써 나흘.
말만큼이나 그도 먹을 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래가지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날려 버렸다니까? 한 주먹에?”
“염병하고 앉았네. 네가 무슨 수로? 창질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아이, 진짜라니까?”
손님이 가장 적다는 점심과 저녁 사이임에도 그곳은 시끌벅적했다. 대부분이 오갈 데 없는 한량들이었다.
무신이 들어서자 일순 그 시선들이 그에게 쏠렸다.
검객.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산동 안에서만큼은 꽤나 흥미로운 존재였다.
창객에 밀려 드문 탓에.
“호오, 검객이잖아?”
의자에 기다란 창 하나를 세워둔 사내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팔뚝이 뭇 여인의 허벅다리만큼이나 굵어 힘 하나는 기가 막힐 것 같았다.
무신은 사내를 흘깃 쳐다보기만 하고는 적당히 빈자리에 가 앉았다.
파천의와 파천검.
두 장비가 풍기는 무언의 위압 때문인지 어슬렁어슬렁 시비를 트는 자는 없었다.
장비를 떠나서 저들이 무슨 이유가 있어 시비를 트겠느냐마는, 그게 객잔이란 곳의 성격이었다.
같이 술을 주고받던 중에 시비가 붙은 경우도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객잔은 또 하나의 강호인 것이다.
“주문하시겠어요?”
관심은 잠시였다.
한량들이 다시 제 식탁으로 고개를 돌린 사이 무신에게 점소이가 다가왔다.
두건으로 머리를 질끈 묶은 방년의 여인이었는데, 제법 얼굴이 반반했다. 엉덩이도 볼록하게 튀어나와 꽤나 고역일 것 같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욕구불만의 벌레들에게 치여.
“만두 2인분에 소면 하나.”
“시장하셨나봐요.”
“술은 뭐가 괜찮아?”
“날마다 괜찮은 건 없고 전체적으로는 죽엽청이 잘나가요.”
“그럼 그걸로 내와.”
“한 병이요?”
무신은 고민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배가 굶주린 것은 비단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점소이가 ‘금방 내오겠습니다’하고는 자리로 돌아… 가지 못하고 잠깐 근처를 서성였다.
역시나.
거나하게 취한 몇몇 사내들이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그녀는 유연하게 잘 대처했다.
“자꾸 이러시면 술에다 독 타는 수가 있어요.”
“독을 타? 그럼 내 가만있을 것 같아?”
“가만있을 수밖에 없죠. 독 탄 술 마시고 어떻게 움직여요.”
똑부러지게 말하는 그녀에게 사내들이 껄껄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불편할 광경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무신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선에서는.
“맛있게 드세요!”
죄다 한량들이라고는 해도 과연 손님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주문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음식이 나온 것이다.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 열두 개.
고명이 얹어진 소면.
향만 맡아도 취기가 올라오는 죽엽청.
무신은 걸신이라도 들린 양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반쯤 비웠을 즈음 객잔 문이 뒤흔들렸다.
정말, 열린 게 아니라 뒤흔들렸다.
“오리구이랑 죽엽청 가져와!”
부하인지 동료인지 모를 이들을 둘 대동한 어느 창객.
굵직한 그의 목소리에 바로 직전까지 떠들썩하던 객잔이 삽시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무신의 눈이 빛났다.
‘악철도였던가.’
악씨였으나 악가의 자제는 아니었다. 실력이 좋아 악가 소속 무사로 들어간 경우였다.
그러나 실력과는 달리 인성은 밑바닥을 긴다는 게 문제.
하루가 멀다 하고 행패를 부리며 제 기분 따라 길 가는 사람을 줘 패기도 했다.
당장 지금도 그 여파가 드러나고 있었다.
손님들의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탁탁 내려놓던 술잔마저 신경 쓰고 있었다.
반병이나 남은 술을 두고 객잔을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뭘 봐, 이것들아?”
악철도가 으르렁거리며 가장 널찍한 식탁을 골라 엉덩일 붙였다.
공교롭게도 무신의 바로 옆자리였다.
그러나 무신은 개의치 않고 하던 식사를 이어갔다.
남들 눈에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그의 눈에는 그저 ‘한 명의 창객’일 뿐이었다.
“빨리빨리 내와!”
재촉도 정도껏이었다. 눈 몇 번 깜빡할 시간에 어찌 주문한 음식이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이 객잔은 그다지 느린 편도 아니었다.
일각이면 충분히 받고도 남을…….
일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점소이가 급한 대로 죽엽청부터 얼른 꺼내 들고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악철도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오리구이는?”
“지금 조리 중이에요.”
“시팔, 나 오는 줄 알았으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놔야 될 거 아냐? 앙?”
“죄송합니다. 얼른 해서 내드릴게요.”
특출 난 예언가도 한낱 창객이 어느 시점에 객잔으로 들이닥치리라고는 예상치 못할 것이다.
되도 않는 억지였다.
“잠깐 이리와 봐.”
그럼에도 꾸벅꾸벅 허리 숙이며 돌아가려는 점소이를, 악철도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붙들었다.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헌데 이년은 갈수록 엉덩이가 찰지게 올라오네? 뭘 쑤셔 넣었나?”
악철도가 점소이의 엉덩이에 손을 움켜쥐고는 주물주물했다. 살짝 치는 정도에 그쳤던 여타 손님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반응 또한 이전과 달랐다. 얼굴만 달아오를 뿐 똑 부러지는 말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그만해 주세요.”
“그만? 뭘 그만해?”
악철도가 점소이를 아예 제 무릎에 앉히고는 치맛자락을 죄 뜯어냈다.
허연 속살이 드러나자 그의 눈알이 희번덕하게 달아올랐다. 혓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핥기도 했다.
“제, 제발…….”
“닥치고 있어, 이년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젖가슴을 탐하던 악철도가 아예 거사를 치르려는 듯 식탁에 있던 죽엽청을 쳐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녀를 눕히…….
하필이면, 죽엽청이 바로 옆자리로 날아가 깨졌다.
무신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