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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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2화
파천학관의 무성학을 연상케 하는 다부진 체격.
각진 턱.
작은 눈.
무신은 사내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화열권(火裂拳) 하성운.
힘은 하북팽가 부럽지 않은 장사에 차후 대부분의 권법에 통달한 강호의 고수였었다.
특히 그 힘이 어느 정도냐 하면, 맨손으로 강철을 찢을 정도였었다.
물론 무신도 소문으로만 그 소식을 들었었으나 막상 면전에서 보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강호로 나가는 길인가?’
하고 생각하며 무신이 말했다.
“물어보시오.”
“강호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역시나였다.
무신이 저 멀리 북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되오.”
“그렇구려. 고맙소.”
하성운은 제갈문처럼 무림맹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두면 도움이 될 존재임은 동일했다.
앞서 말했듯 훗날 화열권이란 별호를 얻게 될 고수.
친분을 터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포권을 취하며 감사를 표하는 하성운에게, 무신이 ‘마침 잘 됐군’ 하고는 말했다.
“나도 강호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갑시다.”
“좋소.”
아무렴 길을 알려줬다고는 하나 외지인.
경계를 가질 만한데도 하성운은 흔쾌히 수락했다. 듣던 대로 호탕한 성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 있어 한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동행하다 뒤통수를 맞아도 자기가 이길 수 있단 확신이 있는 거야.’
본인이 최강이라 여기는 하성운의 허세는 강호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었다.
그러나 까놓고 보면 허세는 아니었다.
그만큼 강했던 게 맞으니까.
“적적하던 차였는데 잘됐구려.”
고삐를 쥐며 중얼거리는 하성운을 보며 무신은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웠다.
회귀 전에 본 하성운은 이미 올라설 대로 올라서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막 강호로 출두하는 꼬맹이라는 게.
‘1551년 3월 초. 이 시기면 하성운의 실력도 그렇게까지 굉장할 건 없겠어.’
알기로 하성운은 강호에 들어가서야 그 자질이 더욱 일취월장했다고 했다. 스승을 만나고 다양한 권법을 쌓으며… 거기까지였다. 세세하게는 몰랐다.
하성운이 넌지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동행할 사이에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 했소.”
하성운은 몰라도 무신의 입장에선 안 했다기보다 할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최무신이라 하오.”
“하성운이오.”
마주잡은 하성운의 손은 체격만큼이나 두터웠다. 살가죽이 아니라 철근을 쥐는 느낌이었다.
하성운이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최씨라. 어디 최씨오?”
무신은 순간적으로 ‘전주 최 씨오’ 하고 답할 뻔했다. 간신히 억누르고는 유연하게 넘어갔다.
저기 어디 산골 지방의 최씨라며.
그런데 그 대답을 듣고는 하성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와 출신이 비슷하구려.”
“그렇소?”
“말하자면 새외무림이기는 한데… 아무튼 나도 이름 없는 가문이오.”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저 어디 파천이나 구동에서 자라난 어느 가문의 아들내미인 줄만 알았다.
이를 테면 파천의 허씨세가처럼.
다그닥다그닥!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 사이 말 두 마리가 힘차게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해주에서 강호까지의 거리는 불과 며칠.
그리 속도를 낼 필요가 없었기에 두 사람의 잡담은 계속되었다.
“최 소협은 검을 쓰는구려.”
“하 소협은 맨몸인 것으로 보아 권법을 쓰는 모양이오?”
하성운이 가슴을 딱 펴며 답했다.
“남자라면 자고로 권법이 최고 아니겠소?”
하북팽가나 돼야 들어맞는 말이었으나 하성운 정도면 그 자격이 충분했다. 앞서도 말했듯 그는 손가락 몇 개로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는 괴물이니까.
그가 우쭐거리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내 비록 공통 권술이지만 무공도 여럿 익혔소. 당장 강호에 나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는 될 거요.”
“호오.”
“내공도 어느 정도 진전이 오고 있으니 강호를 휘어잡는 것도 시간문제라 보오.”
공통 무공 몇 개 익힌 것으로 강호에 나가도 꿀리지 않으며 심지어 휘어잡을 생각까지 하는 저 자신감.
생각보다 심한 허세에 무신은 하마터면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최 소협도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구려.”
“그래 보이오?”
“아까 보니 손에 멀쩡한 구석이 없고 검은 무언가 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게 딱 그렇소.”
손이야 파천학관부터 시작해 주구장창 감각을 찾는 데 열중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고 검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파천검.
예사롭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무려 파천의 삼보였다.
“헌데 최 소협은 내공을 구사할 줄 아오?”
스리슬쩍 묻는 것이 아무래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더 정확히는 ‘나는 내공을 구사할 수 있는데 너는 어떻느냐’ 하는 것이랄까.
무신도 겸손한 척 겸손하지 않게 대답했다.
“내공 정도야 뭐 가볍소.”
“가볍소?”
하성운이 흥미롭다는 듯 되묻더니 손가락을 쭉 펴 높이 하늘을 가리켰다. 매 한 마리가 자유로이 그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 마디를 하나 짚으며 말했다.
“이만큼의 내공만 쏴서 저 매를 맞출 수 있겠소? 내공이란 자고로 발현이나 농도보다 운용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운용이 좋아야 발현이나 농도도 쉽게 이뤄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말은 전혀.
세상에 정해진 궤적도 없이 움직이는 매를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인가.
만약 맞춘다고 하면, 그만큼 정확한 것도 정확한 것이고 무엇보다 빨라야 했다.
내공을 쏘는 속도가.
하성운이 ‘잘 보시오’ 하고는 가만히 매를 관찰하다가 대뜸 툭 내공을 쏘아 올렸다.
진즉부터 고삐를 풀고 있었던 무신은 어린애 재롱잔치 보듯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푸드득!
내공이 매의 날개를 스쳐 지나갔다. 워낙 살짝 맞아 깃털만 몇 가닥 뽑혀 나가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하성운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뭐, 내가 요 정도는 되오.”
그깟 날개 조금 맞춘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그 정도만 돼도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꽂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움직이는 궤적.
거리.
어쩌면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무신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한번 해보리다.”
운기조식만 수만 년을 넘게 했고 운용은 자그마치 십만 년도 넘었다. 내공은 무신에게 또 다른 생명과도 같았다.
그러니…….
쾃!
결과야 뻔했다.
그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서산을 쫓던 매가 그대로 수직 하강했다.
대가리가 터진 채.
“허억.”
요란한 숨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하성운이 눈을 동태의 그것처럼 뜨고는 매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벅벅 눈을 비비기도 했다.
무신이 말했다.
“내가 운용은 좀 되오.”
애당초 저 정도 높이의 매를 맞추는 건 무신에게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보다 작은 참새였다면 한 3초 정도는 더 집중했을 것이다.
하성운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얼른 소매로 훔치고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노, 놀랍구려.”
“하하. 별거 아니오.”
그래도 상대를 인정할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하성운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십 리도 못 가 다른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작은 호수였다.
“사실 내가 소량보다는 대량으로 운용을 더 잘하오.”
하면서 하는 말이 ‘내공을 날려 저 호숫가의 물 일부를 밖으로 튕겨 낼 수 있소’였다. 그것은 확실히 대량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 운용이었다.
무신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하성운을 지켜보았다. 아까와 달리 다리까지 어깨너비로 벌려서는 아주 집중의 집중을 하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
급기야 용울음까지 내더니 손바닥 가득 모은 내공을 그대로 호수에 발포했다.
발포.
정말 그것과도 같았다.
맹렬하게 뻗어나가는 모양새가.
“후우.”
하성운이 손을 탈탈 털며 그제야 자세를 풀었다.
머리통이 잘려 나가듯 호수의 한 귀퉁이가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십분지 일 정도로 그리 큰 범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굉장히 기뻐했다. 비로소 제 역량을 보여줬단 얼굴이었다. 어깨 또한 아까처럼 잔뜩 들썩거리고 있었다.
“맨몸으로만 싸우는 무인이라면 이만한 내공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소?”
무신은 ‘대단하십니다’ 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딱 검지 두 개만 펴서 가볍게 내공을 터뜨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그러나 가볍단 말이 무색하게 그의 손에서 터져 나가는 기운은 가히…….
콰앙!
호수가 증명하고 있었다.
몇분지 일이라 할 것도 없이 그냥 호수에 있던 물 전체가 밖으로 밀려났다.
“검으로만 싸우는 무인도 검을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강한 내공을 가져야 하는 법이라오.”
하성운의 말을 빌려 비슷한 설명을 해주었으나 정작 그 본인은 넋이 나가 듣질 못하고 있었다.
그가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이, 이게 무슨…….”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하성운이 정신을 차린 것은, 무신이 ‘이거 하나 씹겠소?’ 하며 육포를 건넬 즈음이었다.
하성운이 대뜸 포권을 취했다.
“내 몰상식한 행동을 했구려. 최 소협과 같은 고수를 옆에 두고.”
“아니오. 괜찮소.”
내공을 대량으로 운용하고 어쩌고를 떠나 무신은 자세도 제대로 잡지 않았다.
하성운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것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내공에 관계한 모든 면에서 자신이 열위.
그가 거듭 사죄의 뜻을 밝혔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다니. 고개를 들 낯짝이 없소.”
“뭘 그리 신경 쓰시오. 가던 길이나 갑시다.”
하고 말하는 무신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성운은 허세만큼이나 자존심도 센 편이라 들었는데,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순순히 인정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몰상식이란 말까지 쓰면서.
그러나 알던 대로였다.
강호가 코앞까지 다가온 어느 길목.
하성운이 ‘헌데 최소협…’ 하며 마지막 제안을 꺼내 들었다.
“사실 맨몸으로만 싸우는 무인에겐 내공보다도 신체 자체의 힘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오.”
신체 자체의 힘.
더 안 들어도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됐다.
“비록 내공은 밀리겠으나 그 힘 하나만큼은 안 꿇릴 자신이 있소.”
이번만큼은 허세가 아니었다. 앞전에서도 말했듯 하성운은 실제로 하북팽가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장사 중의 장사였다.
그가 저만치 바위 하나를 가리켰다.
양팔로 세 번을 더 감아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크기.
그러더니 주먹을 살살 어루만졌다.
“내 이 주먹으로 저 바위 가르는 것을 보여주겠소.”
하성운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이제는 아예 심기일전했다.
마치 생사라도 걸린 듯.
그만큼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기합은 맹수 한 마리가 뛰쳐나온 정도였는데, 덕분인지 결과가 괜찮았다. 바위가 정말 두 쪽으로 갈라졌다.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밑동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성운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양 환희에 젖었다.
이게 나의 힘이오.
말만 안 할 뿐 딱 그 꼴이었다.
“응? 할 테요?”
마침 바로 옆에 있는 바위를 향해 걸어가는 무신에게, 하성운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면서 ‘조심하시오.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닌데’ 하며 제 나름대로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무신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바위 앞에 섰다.
하성운과 다르게 그는 주먹이 아니라 약지만 문질문질하고 있었다.
하성운이 설마… 하고 어이를 상실하는 순간.
무신이 약지를 엄지에 걸어 그대로 바위에 튕겼다.
콰앙!
그 큰 바위가 쩍 갈라졌다.
심지어 두 쪽도 아니라 아예 산산조각이 났다.
하성운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강골(强骨).
무신은 하북팽가도 뛰어넘는 무골을 가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