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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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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1화

아주 약한 상대

 

 

기척.

다수의 그것이 유청하의 집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불순하고 거칠었으며 농도도 상당히 짙었다. 결코 범인의 그것은 아니었다.

무신은 반사적으로 산을 내려갔다. 위기에 빠진 여인을 구하겠다 하는 선심보다는, 그저 선뜻 암향표를 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의 눈에 곧 반백 명도 더 돼 보이는 무리가 들어왔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으나 옷의 특색만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흑포.

 

살막이었다.

백준성이 죽었단 소식은 들어도 벌써 들었을 터 아마 다른 살막을 포섭한 것이리라.

무신은 걸음을 바삐 했다.

 

“이 개 같은 년이!”

 

도착할 즈음되니 흑포인들의 거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거기에만 집중한 탓인지 누구도 무신이 다가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그가 기척을 죽인 영향도 있었다.

 

“시팔년아! 곧 무릎 꿇고 빌빌 기게 해줄게!”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주인 잃은 팔다리가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눈도 못 감고 이승을 떠난 머리통이 무려 열댓 개나 되었다.

유청하는 그 구석에 박혀 있었는데, 그 하얗던 몸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때.

무신이 도착했다.

 

“소협! 도망쳐요!”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그녀가 목 놓아 소리쳤다. 고통에 허덕이는 눈이 절대 여기에 끼어들면 안 된다 듯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칠 생각이었으면, 애당초 오지도 않았다.

그게 무신의 성격이었다.

 

“호오, 뭐야? 저년이랑 같이 수련하는 사인가?”

“같이 수련하기는. 이거 하는 사이겠지.”

 

한발 늦게 무신을 발견한 흑포인들이 실실 쪼갰다. 개중 하나는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어 다른 손 검지로 뻑뻑 쑤시는 시늉까지 했다.

무신의 개의치 않고 무리의 수를 대강 가늠했다.

거진 마흔 다섯.

개중 절반은 이류 정도의 하수였으나 나머지는 당장 강호에 나가도 될 정도로 고수였다.

가운데 서 있는 남자는 특히 더 남달랐다.

 

소군형.

 

화산파 출신으로서 차후 우풍창(雨風槍)이란 별호와 함께 무림맹에 들어가기도 하는 거물이었다.

그러나 다 미래의 일일 뿐.

지금은 ‘가볍게’ 제압이 가능했다.

 

“괜찮습니까?”

 

흑포인들과 소군형을 전혀 아랑곳 않고 그렇게 묻는 무신에게, 유청하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다시 소리쳤다.

 

“도, 도망치래두요!”

“목소리 보니까 죽진 않을 것 같네.”

“네?”

“일각 안에 끝날 테니까 저쪽 가서 쉬고 있어요.”

 

터무니없는 말을 어디 동네 마실 나가는 말하는 그를, 그녀뿐 아니라 흑포인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소군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그 말은 딱 눈을 열댓 번 깜빡일 정도까지만 유효했다.

흑포인들이 순식간에 우수수 쓰러졌다. 심한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지가 잘려 나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쿠웅!

심지어 당주였던 이까지 채 십합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내장이 바닥을 적셨다.

 

“이, 이게 무슨…….”

 

소군형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저 속도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스승보다도 더 빠르고 정교했다.

위력?

그거야 더 볼 것도 없었다. 방금 전 살막의 당주는 아주 ‘기초적인 검술’에 목숨을 잃었다.

상대는 그러니까 지금,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이제야 좀 머릿수가 맞군.”

 

무신이 그렇게 말하며 얼이 빠진 소군형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소군형은 간신히 마음을 다 잡고 창을 뽑아들었다.

 

우풍창(雨風槍).

 

훗날 그에게 그러한 별호를 달게 해준 무기였으나…….

처참하게 무너졌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본인이 했던 말을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받는 치욕 앞에서도 소군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저 넘실거리는 검강.

해주 따위에 있을 기운이 아니었다.

 

“마침 잘됐다. 화산파 사람으로서 어떤지 한번 봐봐라.”

 

무신이 씨익 웃으며 지난 며칠 간 속성으로 연마한 ‘그것’을 선보였다.

동시에, 소군형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그, 그건!”

 

암향표였다.

소군형은 몇 년이 지나도 시작조차 못한 화산파의 비기가 외간 무사의 발밑에서 걸음마 떼듯 굴려지고 있었다.

무신이 말했다.

 

“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제대로 익히고 있는 것 같군. 확실히 놀라운 보법이야. 어떤 면에선 구보전답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겠어.”

“마, 말도 안 돼…….”

“허나 좀 아쉬워.”

 

무신이 바닥에 떨어진 소군형의 창을 저 멀리 차버리며 말을 이어갔다.

 

“직계 제자도 아닌 자가 암향표 같은 비기를 쓴다는 게 뭐야? 훔쳤다는 것밖에 더 돼? 저 여인이 훔쳐서 내게 준 거니 틀린 말은 아닌데… 뭐, 무림공적이 되는 건 자명한 일이지. 함부로 썼다가는.”

“어찌 익혔지?”

“응?”

 

훔쳤다는 것.

어찌 보면 그게 가장 핵심인 부분임에도 소군형은 다른 부분을 더 궁금해 했다.

 

“나는 장문의 가르침을 받고도 하지 못했던 것을 어찌 익혔느냔 말이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목숨 구걸보다는 무인으로서의 의문을 먼저 파헤치는 게.

무신이 소군형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22만 년 수련하고 나오니까 온몸에 재능이 넘치더군.”

 

무슨 개소릴 하느냐며 육두문자를 쏟으려는 소군형을, 무신이 그대로 벴다. 버러지의 유언까지 들어줄 만큼 그는 선인이 못 되었다.

온몸이 시뻘겋게 젖은 그의 뒤로 유청하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제 보니 왼쪽 허벅다리에 깊은 검상이 있었다. 살갗이 아가릴 벌리고 쿨럭쿨럭 피를 토하고 있었다.

 

“가만 계세요.”

“괜찮은데…….”

 

무신이 지혈제를 꺼내 그 상처에 뿌리고는 제 옷을 찢어 꽉 묶었다.

괜찮다고 하더니 유청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소협.”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는 무신에게 유청하는 아무런 말도 잊지 못했다.

치료를 떠나 지금 이 상황.

살막이 몰살당하고 소군형이 죽은 바로 이 상황.

그녀가 겨우 입을 뗐다.

 

“소협이 강하다는 건 짐작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무신은 으레 쓰는 대답을 사용했으나 유청하에게는 전혀 먹혀들질 않았다.

그녀도 직접 싸워본 사람이니까.

 

“운이라니. 말도 안 돼요.”

 

그녀가 소군형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헐떡거리던 그는 그새 차가운 주검이 돼 있었다.

 

“저자는 제 사형이었어요.”

“…….”

“제자들 사이에서 손에 꼽힐 만큼의 강자. 결코 운으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유청하가 분명하게 매듭을 지었다.

말꼬릴 길게 늘리며.

 

“거기다 전력도 사용하지 않고 잡으셨잖아요? 저도 보는 눈이 있다구요.”

“…….”

“아까 그건 암향표 맞죠? 실전은 모자랄지언정 제가 이론은 빠삭하게 외웠었거든요.”

“…….”

“그 며칠 새에 암향표를 흉내 내시다니. 세상에 소협과 같은 재능을 갖춘 이는 둘도 없을 거예요.”

“…….”

“거꾸로 생각하면 오히려 더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계시고도 스스로를 낮추시는 게.”

 

스스로를 낮출 생각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약한 상대’를 만난 것에.

무신이 물었다.

 

“그나저나 사형이 사매를 죽이러 오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싶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유청하가 덤덤하게 반응했다.

 

“저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죠.”

 

미천한 출신에 대한 조롱과 괴롭힘.

심지어는 겁탈까지 하려 한 마당에 사주 받고 죽이는 짓을 못할 바 무엇이겠느냔 것이다.

 

“일단 서둘러 해주를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계속 남아 있다간 아예 화산파 장문이 내려오겠어요.”

“네, 아무래도요. 근데…….”

 

유청하가 멀뚱히 무신을 쳐다보았다.

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련하면서도 오묘한 눈빛에 무신은 헙 하고 숨을 삼켰다. 유림이란 절세미녀를 보지 못했다면 아마 이 순간 그녀에게 흠뻑 빠져 버렸을 것이다.

 

“어떻게 하죠?”

“네?”

“너무 큰 은혜를 입어버렸어요.”

“암향표가 고마워 오히려 제가 은혜를 갚으러 온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유청하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문파의 비기가 아무렴 중요하다 해도 목숨에 비할 바가 될까요? 더구나 목숨을 걸고 도와주신 건데.”

 

목숨.

걸지 않았다. 소군형이 그나마 좀 사람이었을 뿐 나머지는 전부 하룻강아지에 불과했으니까.

설령 걸어야 할 상황이었어도 애당초 오질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청하는 제멋대로 해석했다.

 

“평생 잊지 않을게요, 오늘 이 은혜는.”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데, 무신으로서는 사실 나쁠 것 없는 전개였다. 일전에도 말했듯 유청하 정도의 고수면 언제고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절망적인 얼굴을 했다.

 

“잊지만 않고 갚지는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차라리 소협께서 오기 전에 제가 죽어버렸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식겁하며 묻는 무신에게 유청하가 푸훗 웃으며 당연히 절대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그만큼 고마운 마음이 큰 것이니 그걸 알아달라고 했다.

 

“소협, 암향표를 익히고 해주에서 나간다 하셨나요?”

“예.”

“그 이후는요?”

 

그 이후.

당연히 그곳이었다.

 

“강호로 나갑니다.”

“역시. 강호군요.”

 

유청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예?”

“스승님의 복수를 하고 꼭 소협에게 갈 테니까.”

 

단순히 은혜를 갚겠단 어투가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왜 심장이 뛴다 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

 

보름이면 충분했다.

열뢰대섬검, 그리고 암향표를 ‘통달’하기까지의 시간은.

이른 아침.

무신은 운기조식과 함께 통달한 두 가지 무공을 실행에 옮겼다. 시작은 열뢰대섬검이었다.

 

‘과연.’

 

산검이란 의의에 맞게 가공할 속도를 선보였다. 허공에 찌르기만 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힘까지 넘쳤다.

쾌검에 접목 시킨다면 극강의 무공이 하나 튀어나올 것이다.

그러나 ‘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산검의 극한이라 불리우는 그것을 익혀야만 진정한 극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것 역시 화산파에 있었다.

암향표처럼.

 

‘기회가 되면 그것도 얻을 수 있겠지.’

 

당연히 소망일 뿐.

강호도 나가지 않은 판국에 암향표보다 더한 화산파의 비기를 얻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무신은 이후 열뢰대섬검만 몇 시진 펼친 후에야 그 다음으로 넘어갔다.

암향표였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그의 신형이 바람을 갈랐다. 괜한 비유나 비교가 아니라 정말 그처럼 매섭게 움직였다.

구보전답?

우위를 따질 순 없겠으나 암향표는 보법임과 동시에 신법도 되었다. 기척이 남지 않는단 점이 달랐다.

 

‘비기가 괜히 비기가 아니군.’

 

비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낱 보법이 이 정도인데, 내가심법이나 앞서 말한 검법 같은 부류는 어떠할까.

 

‘특히 심법은 17대 심법 따위와 차원이 달라.’

 

망령의 숲에서 익히려 했던 17대 심법.

그것은 다 공통 심법이었다.

효과야 숱한 공통 심법 중에서 최강이라고는 하나 결코 문파의 비기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무신에겐 그다지 상관할 바 없는 문제였다.

그보다 더한 ‘귀곡심법’을 익혔으니까.

파천과 구동을 거치며 섭취한 영약과 내단의 효능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됐어.’

 

무신은 암향표만을 이용해 산을 열 바퀴나 돌고서야 비로소 수련을 끝냈다.

마음이 홀가분한 한편, 조금은 긴장도 되었다.

 

강호(江湖).

 

드디어 그곳으로 나가게 될 테니까.

회귀 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멋도 모르고 나갔다가 매일 같이 두려움 속에 살았다.

그러나 이젠 다를 것이다.

 

삼류무사와 검신.

 

천양지차보다도 더한 차이가 있었다.

더 이상 하수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주를 떠나려는 무신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말 좀 물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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