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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0화

보답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왼쪽 뺨에 칼자국.

무인의 기준이 되지는 않으나 조금 작은 신장.

그녀가 분명했다.

 

유청하.

 

화산파에서 손꼽히는 인재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해주로 내려왔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무신이 붙잡았다.

 

“네?”

 

분칠은커녕 뭘 하고 왔는지 얼굴에 땀이 한 가득인데도 혹할 만한 외모였다. 피부 때문인지 유독 더 도드라져 보이는 붉은 입술은 매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신이 물었다.

 

“화산파에서 내려오셨지요?”

 

***

 

해주 서쪽의 어느 조그마한 나무집.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나 이 일대에서 이 정도면 으리으리한 궁에 속할 것이다.

그녀, 유청하가 사는 곳이었다.

 

“제가 화산파에 있었단 걸… 어떻게 아셨죠?”

 

그야 당연히 회귀로 인한 기억 덕분이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했다간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했다.

무신은 대충 둘러댔다.

 

“어떻게 알았나 하는 것은,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내용에 들어 있습니다.”

“말해주신다뇨? 뭘?”

 

화산파와 살막, 그리고 유청하.

무신도 굳이 남의 일에 간섭하겠단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알게 된 소식을 전해줄 뿐이었다.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니까.

유청하 정도의 고수면.

 

“화산파가 살막을 시켜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

“당신이 화산파란 건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요.”

“…….”

“안 믿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유청하의 얼굴이 더 하얗게 떴다. 창백하다 못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아뇨. 믿어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으나 의심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정말, 믿고 있었다.

 

“의외군요. 무슨 소릴 하냐며 외려 절 욕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족속들이니까요.”

 

무신은 살짝 놀랐다.

족속들.

이미 그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단 뜻이었다.

 

“놀라셨죠? 족속들이라니까.”

 

유청하가 무신의 속마음을 읽으며 말을 이었다.

 

“전 원래 해주 출신이에요. 열 살 봄까지였나. 쭉 여기서만 살았죠. 그러다 우연찮게 무공에 재능을 발견했고 또 우연찮게 스승님을 만났어요.”

“스승님?”

“화산파의 장로셨어요.”

 

무신은 화산파의 장로가 해주까지 왔다는 것보다도 그러한 존재에게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유청하가 과거를 회상하며 옅게 웃었다.

 

“스승님 덕분에 결국 화산파까지 들어갔구요.”

 

스승의 공도 물론 있었겠으나 유청하의 실력도 배제할 순 없을 것이다. 이세계에선 ‘빽’이란 것도 실력이 받쳐줘야 의미가 생기니까.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어요. 해주 밑바닥 출신으로서 정파의 명문에 들어갔다는 게.”

“굉장한 일이지요.”

“그쵸? 하지만 쉽진 않더라구요.”

 

쉽진 않다는 것.

수련의 어려움을 말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해주 출신이 미천해도 좀 미천해요? 사저든 사매든 사형이든 누구든 다 절 사람으로 봐주질 않더라구요. 원래 그쪽에 명문가 출신이 많기도 하고.”

 

그녀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하루는 수련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막 꿈틀거리고. 너무 놀라서 벗었더니 뱀이 들어 있었어요.”

“…….”

“그냥 뱀이면 또 몰라. 독사를 넣어놨다니까요? 안 죽은 게 다행이지, 정말.”

 

지나간 일이라고 유쾌하게 말하는 듯 보여도 그새 더 붉어진 눈시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은 유청하에게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었다.

 

“둘러싸여 이유 없이 욕을 먹기도 했고 사형들에게 겁탈을 당할 뻔도 했어요.”

“…….”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매일 같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건 뭐 기본이었구요.”

“…….”

“밥이야 늘 혼자 먹었죠. 쉴 때도 늘 혼자 놀았고.”

“…….”

“근데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유청하가 이를 앙다물며 자문자답했다.

 

“더 열심히 했어요. 정말 악착같이. 그깟 것에 포기하기 싫었거든요. 만약 포기해버리면 스승님을 뵐 면목도 없고.”

“잘하셨습니다.”

“고마워요.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유청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괜스레 무신이 더 불안했다.

 

“그들이 스승님을 죽였어요.”

“예?”

“거슬려서. 그게 이유래요.”

 

유청하의 눈에서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스승님이 그렇게 가시고 나니까 아무리 애써도 힘이 안 나더라구요. 제게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셨으니까.”

“…….”

“그래서 나오게 된 거예요, 화산파를.”

 

유청하가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여서’ 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말했다.

 

“홀로 해주에 내려와 많이 생각해 봤어요. 이제부터 내가 뭘 해야 하나. 답은 정해져 있더라구요.”

 

정해진 답.

무신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스승님의 복수를 하는 거죠.”

 

아까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유청하의 얼굴에 가득했던 땀은 모두 스승의 복수를 위한 칼날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무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화산파에서도 눈치채고 절 그런 식으로 죽이려 한 것 같아요. 달랑 나 한 명인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달랑 나 한 명이 아니었다.

지금 유청하의 수준은 강호 어디에 나가도 꿇리지 않을 고수 중의 고수였다.

화산파가 충분히 경계를 가질 만했다.

 

“아마 계속 당신을 죽이려 들 겁니다.”

“아마 그렇겠죠.”

 

경우만 다를 뿐 태청운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선은 이곳에서 몸을 빼는 게 좋을 것이다.

유청하가 탁상과 벽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게 쉽지 않네요.”

“뭐든 죽는 것보단 안 낫겠습니까?”

“그도 그렇지만요.”

 

유청하가 목소릴 가다듬으며 화제를 돌렸다.

 

“소협은 어떻게 해주에 오셨나요?”

“잠깐 좀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만 여쭙진 않을게요.”

 

유청하가 눈을 찡긋하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소협 덕에 목숨을 건진 셈이네요.”

“저야 뭐 전해 드리기만 했을 뿐인데.”

“못 전해받았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테니 절 구해주신 게 맞죠.”

 

벌써 몇 번째 생명의 은인이 되는 셈인가.

무신으로서는 나쁠 것 없는 취급이었다.

유청하도 결국 무인.

그렇다면 무언가 보답이 있을 수도 있는… 그녀가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찬장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래 꺼내지 않았는지 먼지가 풀풀 날렸다.

 

“화산파를 나오던 그날… 몰래 가지고 나왔어요.”

 

자그마한 서적.

하단에 ‘화산파’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무신이 설마 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 맞아요. 화산파의 비기예요.”

 

***

 

소소한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무신은 비로소 유청하가 준 서적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가슴이 떨렸다.

 

암향표(暗香飄).

 

통달하면 그 말 그대로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신비의 보법이었다.

물론, 화산파의 비기로써.

유청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전 죽어도 못 익히겠더라구요. 수행이 부족한 건지.”

“그럼 전 가능하리라 보신 겁니까?”

“가능하리라가 아니라 무조건 돼요.”

 

유청하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소협은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이상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으니까.”

 

***

 

자그마치 나흘이었다.

골방 서고를 비롯해 해주 곳곳을 뒤졌으나 열뢰대섬검은커녕 평범한 서적 하나 보이질 않았다. 쉽게 나오겠거니 싶어 이번에는 엿새를 더 투자했는데,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직접 그 검법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반쯤 포기하던 찰나.

어깻죽지 쪽은 찢어지고 허벅다리 쪽은 훤히 드러난, 옷이 아니라 거적데기나 다름없는 것을 입은 여인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잠깐 외지의 바위에 앉아 있는 무신에게.

 

“무사님!”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이상하리만치 낯설지는 또 않았다. 괴상한 소리를 하잔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여인이 열다섯 보쯤 거리로 가까워졌을 즈음에야 무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계속 찾아다녔어요!”

 

첫날.

배불뚝이 약쟁이에게 도망치다 머리채를 붙잡혔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안색이 흉흉한 건 그때와 비슷했으나 거적데기라도 뭘 입긴 입어서 그나마 사람 같기는 했다.

무신이 물었다.

 

“저를 왜?”

“이걸 우연히 발견했는데…….”

 

여인이 품에서 무언갈 주섬주섬 꺼냈다.

 

“잘은 모르겠는데 검에 관련된 서적 같아서… 무사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떠나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서적이요?”

“네! 한번 봐보시겠어요?”

 

순간, 무신의 머릿속에서 암향표를 꺼내주던 유청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번에도…….

 

열뢰대섬검(裂雷大閃劍).

 

그것이었다.

그토록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이거?”

 

격하게 반응하는 무신에게, 여인이 냉큼 답했다.

 

“산에 먹을 걸 캐러 갔다가 발견했어요!”

“하…….”

 

한숨으로 들린 모양이었다. 여인이 금세 사색이 되어서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이상한 걸 들고 와서…….”

“이상한 거라니요.”

 

여인이 ‘네?’ 하며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여인에게, 무신은 은자 몇 냥을 건네주었다. 액수 자체만 놓고 보면 클지 몰라도 열뢰대섬검의 가치에 비하면 굉장히 헐값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거절했다.

 

“아, 아니에요!”

 

그러면서 ‘절 구해주신 은혜를 겨우 이 서적 하나로 갚겠다는 것도 죄송한데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 말도 안 돼요’ 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녀에겐 열뢰대섬검의 가치가 목숨 값에 비하면 외려 더 헐값이었던 것이다.

무신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다, 이렇게 결정했다.

 

“그럼 이거 들고 해주에서 나가세요. 그리고 어떻게든 꼭 성공해서 더 근사하게 은혜 갚는 겁니다. 알겠지요? 받아요.”

“네?”

“자, 어서.”

 

여인이 얼떨떨하게 은자를 받아들었다. 은자와 무신을 번갈아보다 이내 뚝뚝 눈물을 쏟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꼭 성공해서 지금보다 더 근사하게 은혜를 갚을게요.”

 

또박또박한 말이었으나 그새 목이 잠겼는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무언의 다짐만은 확고하게 느껴졌다.

무신은 생각했다.

 

‘혹시 또 알아? 나중에 어디 높은 자리에 앉는 여자가 될지.’

 

15년 간 삼류무사였다가 저승을 거쳐 검신으로 회귀한 사람도 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

 

검신.

감각만이라고는 해도 이미 검을 다루는 능력 자체를 초월한 마당에 새로운 검술이 무슨 필요겠는가.

그러나 열뢰대섬검은 다르다.

 

산검(散劍).

 

말 그대로 검을 흩뿌려 급소를 동시에 여러 번 가격한다.

통달하면 수십 번까지도 가뿐하게.

그뿐인가.

 

비급.

 

공통 검술이지만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에 숙달도 빠르다.

여러모로 안 익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넉넉잡아 한두 달이면 돼.’

 

열뢰대섬검만 놓고 보면 보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암향표.

그것은 조금 시일이 걸린다.

 

‘여기가 좋겠군.’

 

유청하의 집 근처에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산.

무신은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뒤쪽의 나무 아래에는 짐이 한 보따리였다. 통달 전까지 하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불과 며칠도 안 되어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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