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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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7화
임시 표사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파천삼처럼 무골이 바뀐다거나 백강초처럼 내공 순환을 당겨주는 등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혹시 몰라 시작한 운기조식.
거기서 백산왕 내단의 진가가 드러났다.
‘이게 대체…….’
내공 축적.
정확히는, 내공 축적의 속도.
그것이 향상됐다.
한 시진 걸릴 것이 반 시진으로 줄었으며 체감은 그 이상이었다.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무신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과연 내단인가.’
효능이 다르므로 비교는 할 수 없겠으나 파천삼이나 백강초보다 더했다.
뭐랄까.
하나의 상승 경지를 이룬 느낌이랄까.
무신은 지체 없이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단전 안에 켜켜이 쌓이는 내공이 무려 보름이나 그의 가부좌가 풀어지지 않게 했다.
다시 또 보름이 지나서야 눈을 뜬 그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젠 정말 외공만 받쳐주면 되겠어.’
귀곡심법에 자연경.
거기에 내단.
삼박자가 합을 이루니 무인에게 있어 가장 큰 숙제이자 대업이라는 내공이 전혀 걱정되지가 않았다.
콰쾃!
시험 삼아 손아귀에 끌어낸 내공은 평소보다 더 짙은 농도를 띠고 있었다. 축적된 내공이 늘어났단 방증이었다. 물론 백강초로 인한 순환의 덕도 있을 것이고.
무신은 그것을 파천검에 주입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종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굵직한 기운이 검신에 뒤덮였다.
파괴력이야 굳이 확인해 볼 필요 있을까.
웬만한 고수도 일격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좋아.’
무신은 십분 만족하며 내공을 거뒀다. 그리고 여분의 파천의가 든 배낭과 파천검을 메고 객잔을 나섰다.
한길호와의 재회.
백산왕.
팔각수 포원일의 파천의.
그리고 내단.
목표한 바를 모두 이뤘으니 이제 구동을 떠날 때였다.
목적지야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강호(江湖).
파천이나 구동이 튜토리얼 스테이지라면, 그곳은 메인 스테이지에 해당된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하오문.
혈교.
마교.
거기에 갖가지 사건과 인물들이 얽혀 있는 곳이니까.
“육포랑 건량 좀 주시오.”
“얼마나?”
“넉넉하게. 한 보름 먹을 만큼.”
출발 전, 시장에 들려 이동 중에 먹을 것을 구입했다.
이쪽 육포는 워낙 딱딱한데다 맛도 텁텁해 평소 같으면 찾지도 않으나 별 수 없었다.
만두를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건량?
육포와 도긴개긴이었다.
“좋은 검을 가지셨군요.”
대장간도 들려 그간의 전투에 제법 날이 상한 파천검도 다듬었다.
동년배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대장장이로 있었는데, 파천검을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무신으로서는 반가울 일이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면 귀찮은 벌레가 꼬일 테니까.
“그거 괜찮군. 다 내주시오.”
이후 지혈이나 상처 회복에 좋은 환까지 구입한 후 북쪽을 향해 걸었다.
대륙력 1551년 2월 중순.
슬슬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라 지독히도 쌓여 있던 눈이 죄다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북쪽에서 ‘그것’을 타기에 용이할 것이다.
“서둘러! 이러다 해 지겠다, 이것들아!”
“그쪽부터 실으라니까! 뭣들 하는 거야!”
지나갔다고는 해도 아직 겨울은 겨울.
칼바람이 옷섬을 뚫고 들어오는 와중에도 북쪽은 외려 시끌벅적하기만 했다.
곳곳에서 터지는 고함과 짜증, 무언가를 지시하는 그 목소리는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표국.
가장 교통이 원활한 북쪽을 쫓아 그곳이 대거 몰려든 탓이었다.
날씨?
일을 해결하고 남을 마진을 생각하면 그것에 구애받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빨리들 오시라고!”
나무를 죄다 베어 공터로 만든 그곳에는 대략 대여섯의 표국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 딸린 마차만 해도 자그마치 50대가 더 넘었다.
저 안의 표물을 다 내빼면 아마 이 일대에서만큼은 손꼽히는 부자가 될 것이다.
‘상동표국도 있군.’
구동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표국답게 어김없이 마차를 대령해 놓고 있었다.
열거부 태청운 또한 멀찌감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신은 일단 다른 표국 하나를 찾았다.
“혹 임시 표사를 볼 수 있겠습니까?”
한 달 내지 보름도 더 걸릴 거리를 홀로 말을 타고 가느니 같은 방향으로 가는 표국의 마차를 얻어 타는 것이다.
임시표사를 자처해.
무신이 타려던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표주가 배낭과 검을 차고 있는 무신의 행색을 훑으며 물었다.
“경지가 어찌 돼?”
당연하다는 듯한 하대였다. 표주쯤 되면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다고는 하나 예절에는 어긋나는 행위였다.
무신은 크게 개의치 않고 답했다.
“입문입니다.”
파천학관을 나온 이후 감각을 찾는 데에 열중하긴 했으나 전부 상위 검술이었다.
백운격.
혹은, 쾌검이나 중검.
초급 검술을 껑충 뛰었으니 경지가 아직도 입문에 머물러 있는 게 당연했다.
물론 여타 무인이었다면 꿈에도 못 꿀 전개였다.
초급 검술도 통달하지 못한 자가 그 위를 넘본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모든 검술에 측정 불가의 등급을 달고 있는 무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표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 참, 입문으로 뭘 하겠단 거야?”
신경질적인 어투.
그러나 표주를 욕할 게 아니었다.
중원 어디를 가도 입문무사가 임시 표사를 보겠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물론 무신에겐 해결책이 있었다.
아니, 해결책이라 말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는 애초에 힘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검기 정도만 보여줘도 외려 표주가 굽실거리며 모시려 들 것이다.
그럼에도 입문이라 한 이유?
경지 자체는 그게 맞으니까.
그렇게 그가 검기를 피우려는 그때.
마침 표물을 다 실었는지 해당 표국의 표사들이 무신 주위로 몰려들었다.
임시 표사란 말이 재밌어 보였는지 다른 표국의 표사들까지 우르르 함께였다.
무신이 마저 입을 열기 전에, 표주가 말했다.
“입문 무사님께서 오셨는데 임시 표사가 되고 싶으시단다!”
그 말을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예 복장을 잡는 자도 있었다.
개중 한 표사가 나서서 으르렁댔다.
“무골은 꽤 좋아 보인다만 입문으로 뭘 어쩌겠단 거야? 표사 일이 쉬운 줄 알아? 이리 가면 녹림에 치이고 저리 가면 난데없이 사파가 나타나 또 치이고. 그게 표사라는 거다, 이 새끼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녹림에 사파에 가끔은 표국들끼리 시비가 붙기도 하니 결코 입문무사가 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검신.
그것을 떠나서도 이제는 자력으로 검강까지 발현하는 무신에게, 외려 수치였다.
표사 ‘따위’를 하는 것은.
“차라리 가는 길인데 좀 태워주십사 할 것이지.”
“그래, 그 말이 더 맞겠네.”
가는 길인데 좀 태워 주십사.
우습지도 않은 말이었다.
표국.
표국이라 쓰고 건달이라고도 읽는 집단.
그랬다고 곱게 태워줬겠는가.
“대신 요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야 되겠지만 말이야. 크큭.”
“애걔, 겨우 가랑이? 네 발로 한 번 짖어봐. 내가 부탁하면 우리 쪽 표주는 태워줄지도 몰라.”
귀찮은 일은 싫었는데, 아무래도 누구 모가지 하나는 따야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무신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검을 뽑아 들… 뒤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장한의 사내가 성큼성큼 무리 안으로 들어왔다.
덩치를 떠나 등에 찬 거대한 도끼만으로도 상당히 위압적인 자.
열거부 태청운이었다.
무신이 흥미롭단 눈으로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다들 말이 지나치구먼.”
온화한 어투와는 다르게 살기 어린 안광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태청운의 얼굴에서.
“입문 무사라고 표사 일을 못 할 게 뭔가? 그리고 요즘 시기에 녹림이 나오는 경우 봤나? 사파? 그 족속이야 이 부근에서 사라진 지 오래네.”
태청운의 몇 마디에 각 표주는 물론, 표사들의 입이 벙어리처럼 꾹 다물어졌다.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입문이라 해도 무사네, 무사. 범인처럼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나서서 싸울 수 있는 존재란 말일세. 합류 시키면 외려 머릿수가 늘어나는 건데 왜 이리 조롱들을 하고 앉았는가.”
나서서 싸울 수 있는 존재.
태청운은 지금 이 상황의 핵심을 짚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신을 향해 말했다.
“임시 표사를 하려거든 우리 쪽으로 오게.”
***
혈교 본거.
사안이 사안인지라 기껏해야 소교주 정도만 참석하는 정기집회에 장로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심지어는 교주까지.
삼장로가 노발대발하며 그 포문을 열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요?”
사안 자체는 의외로 간단했다.
탈교한 주술사의 재물을 쫓아 파천 남쪽으로 향했던 서열 37위 적발검 사학도와 그 휘하 교도들이 모두 죽은 것.
그러나 그로 인한 ‘수치’가 문제였다.
“강호도 아니고 한낱 파천 바닥에서 전멸을 당하다니!”
빼앗긴 재물까지 감안하면 수치를 넘어 치욕이었다.
주술사의 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든.
교주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길게 볼 것 없다.”
그의 말에 한껏 달아올라 있던 좌중이 확 가라앉았다.
광분하던 삼장로도 마찬가지였다.
혈추귀(血追鬼) 적라성.
그는 수틀리면 아끼는 심복의 목도 가차 없이 베는 인물이었다.
괜히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놈이 됐든 년이 됐든 한 놈이 됐든 여러 놈이 됐든 최대한 빨리 잡아서 내 앞에 대령하라.”
적라성의 말은 장로보다는 소교주나 이하 서열들을 향하고 있었으나 장로들도 같이 고개를 수그렸다.
하대?
외려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서열 중 하나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의문을 달았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추적을 하려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끄아아악!”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열의 손이 날아갔다.
마치 예리한 칼에 서걱서걱 잘린 듯이.
적라성이 손가락에 맺힌 강기를 지우며, 다시 똑똑히 말했다.
“어떻게든 잡아와. 방법은 알아서 강구하고.”
“예……!”
더 이상 집회의 의미가 없다는 듯 적라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이 날아간 서열을 아예 죽여 버리고선.
“케헥!”
고요한 분위기 속에, 외마디 비명만이 남았다.
***
상동표국 표사들은 무신을 크게 반겼다.
입문 무사라 고생 많겠다며 격려까지.
그러고 보면 표주든 표사든 죄다 몰려들어 조롱을 늘어놨던 아까의 상황 속에, 상동 표국 소속은 없었었다.
‘태청운의 영향인가. 무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무신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아니, 기쁠 일이었다.
“오호, 파천에서 왔다고?”
“파천은 요즘 어떤가? 나 있을 때만 해도 내 이름 석 자에 벌벌 떨던 곳이었는데.”
“그 무슨 망발이야? 벌벌 떨기는 무슨.”
“진짜라니까?”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표사들과 담소를 나누며 갈 수 있으니까.
한 표사가 물었다.
“헌데 자네 그거 아는가?”
고삐 쥐고 있는 것도 일이라며 죄다 마차 안으로 들어온 표사들과 달리 홀로 말을 몰고 가는 태청운.
표사가 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분, 소싯적에 이름 좀 날리셨다네.”
“어디서요?”
모르는 척 묻는 무신에게, 표사가 마치 제 일인 냥 우쭐대며 말했다.
“강호에서.”
“호오.”
탄성을 지르는 무신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표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구구절절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옆에 있던 이들도 같이 거들었다.
“경지는 어느 정도인 줄 아는가?”
“어느 정돕니까?”
무신은 일부러 꿀꺽 침까지 삼켜주었다.
표사가 놀라지 말라는 듯 눈을 치켜뜨고는 말했다.
“무려 부강도 발현하신다네.”
“예?”
“안 믿기지?”
부강은 검강과 같이 절세의 고수만이 이룰 수 있는 경지.
회귀 전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정말 너무 놀라 마차 뒤로 나자빠졌을지도 몰랐다.
무신이 물었다.
“헌데 왜 표사 일을 하신답니까?”
이번만큼은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 궁금했다.
아쉽게도 표사의 고개가 저어졌다.
“그건 나도 모른다네. 그에 대해선 말씀을 안 해주셔서.”
하기야 일개 표사가 알 정도였으면 회귀 전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배춘삼이 준 정보에 들어 있었거나.
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해서 마차에 몸을 맡겼다. 육포나 건량을 사온 게 무의미할 정도로 먹거리도 풍부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초장부터 상동표국의 문을 두드렸으면 좀 좋았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커헉!”
마부의 목이 날아가며,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