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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0화

도선유

 

 

흑포인들이 질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종전의 자신만만해하던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사내들 중에는 아예 도망치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무신은 애당초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하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무신의 검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은 농도를 띠었다. 그 길이가 족히 4척에 달했다.

저것은 이미 목검 따위가 아니었다.

 

“객사… 그거 좋지.”

 

흑포인 중 하나가 꺼냈던 단어를 그대로 읊어주며, 무신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걸음 따라 흑포인들과 사내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물러나는 것도 이내 한계에 다다랐다.

 

“커헉!”

 

도선유를 들쳐 메고 있던 자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단 10여 초 만에 여섯의 사내들이 모두 수풀 위에 너부러졌다. 꺼억꺼억 버티는 자도 있었으나 검강에 이미 오장육부가 다 상해 금세 숨을 떨구었다.

무신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머지 셋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이 어두운 옷.

흑포.

누군지 알 거 같았다.

 

“살막 놈들이구나.”

“사, 살려주십쇼.”

 

서로 눈길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흑포인들이 동시에 넙죽 엎드렸다.

고개를 조아리며.

무신은 그들을 뒤로하고 다른 이를 불렀다.

 

“이리 오거라.”

 

도선유.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있던 그녀가 꺽꺽거리며 무신에게 뛰어갔다.

그 걸음에 그간의 두려움이 털려 나가고 있었다.

무신의 시선이 다시 흑포인들을 향했다.

 

“누구 사주야?”

“저, 저희는 잘 모릅니다!”

 

침 튀기며 말하는 흑포인 중 하나의 목을, 무신이 가차 없이 벴다.

배후를 묻는 것이야 한두 놈만 있어도 충분했다.

무신은 옷이 죄다 찢어진 도선유에게 겉옷을 벗어주며 다시 물었다.

 

“누구 사주야?”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면 제 아무리 무거운 입을 가진 자도 사실을 토하게 마련이었다.

그것은 살막도 똑같았다.

 

“배, 배준성! 저희 당주입니다!”

 

배준성.

파천과 바로 인접한 구동이란 곳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던 놈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무신이 덜덜 떠는 도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흑포인의 목을 또 베었다.

푸슈슛!

반듯하게 그려진 단면 위로 피가 솟았다.

마치 꽃이 피어오르듯.

살상이란 것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무신이 무미건조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이유는?”

“사, 살려주십쇼! 제발!”

 

말해도 죽고 말하지 않아도 죽고.

제 운명을 예감한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생각보다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걱정 마라. 한 놈은 살려 보내야 배준성도 다시는 이 아이 건드릴 생각을 못할 테니.”

“저, 정말이십니까?”

 

마지막 흑포인이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며 자존심이란 자존심을 모두 내던졌다. 마귀(魔鬼)와 다를 바 없다던 살막도 결국 한낱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떠듬거리면서도 이어 말했다.

 

“이, 일전에 도회연과 거래하기로 했던 게 있었는데, 그걸 일방적으로 깼답니다!”

“도회연이?”

“예!”

“뭐 때문에?”

“그건 저도 잘…….”

 

무신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자 흑포인이 숨도 안 쉬고 말을 이었다.

 

“저, 정말입니다! 거기까진 저도 모릅니다!”

 

진실을 토하는 자의 얼굴은 억울함을 띠게 마련이었다.

지금 이 흑포인이 그러 했다.

무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살막… 도회연이 아무리 부를 좋아해도 그깟 놈들까지 연관되고 싶진 않았겠지.’

 

물론 추측이었다.

자세한 바는 도회연과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목검을 내려놓고 있지 않는 무신에게, 흑포인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저는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무신이 피식 웃었다.

살막인 주제에 이렇게 순진할 수 있단 말인가.

 

“왜, 왜 그러시는…….”

 

무신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흑포인이 사시나무 떨 듯 몸을 움츠렸다.

부디 살려달라며.

무신이 비 맞은 개새끼와 다름없는 흑포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저 아이도 똑같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예?”

“살려달라고.”

 

무신이 바로 말을 이었다.

 

“너는 그때 뭐라고 했느냐?”

“저,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었다.

흑포인들이 막 이곳에 나타난 순간에도 도선유는 살려달라 목 놓아 외치고 있었으니까.

더는 살려둘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무신이 흉흉한 검강에 휩싸인 목검을 높이 치켜들자 흑포인이 허옇게 뜬 얼굴로 말했다.

 

“마, 말하면 살려주신다 하셨잖습니까!”

“나 원 참.”

“예?”

 

무신이 그대로 목검을 휘둘렀다.

 

“그걸 왜 믿어?”

 

흑포인이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른 채 그대로 고꾸라졌다. 부릅뜬 눈에 억울하단 기색이 역력했다.

안쓰러움?

그러기는커녕 동정조차 들지 않았다.

쓰레기에게 쓰레기다운 결말을 줬을 뿐이니까.

 

‘후우.’

 

무신은 검강을 지웠다. 알싸한 통증이 뒤늦게 몰려왔다.

역시나.

이 몸으로 자연경(自然境)의 그것을 쓰기는 무리였다.

 

‘웬만하면 자제해야겠어.’

 

무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쓴 이유는 검기를 쓰는 자가 셋이나 됐기 때문이었다.

선천지기.

그래봤자 검기만 아슬아슬하게 키울 수준이었다.

무신은 뻐근한 몸을 풀며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도선유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혼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심지어 먼저 입을 열기까지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아예 몸을 일으켜 꾸벅꾸벅 허리를 숙여댔다. 열다섯 꼬맹이가 그러고 있으니 무신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맴돌았다.

그가 다가가자 도선유가 냉큼 달려왔다.

뭘 하려나 싶었는데, 소매를 손바닥까지 끌어 올리고서 그의 얼굴을 닦았다.

핏방울 하나 남지 않게.

그는 그 읏차읏차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어린애가 이래서 미인으로 불렸구나.’

 

어스름한 달빛에 비춰진 도선유의 얼굴은 하얀 백설기 위에 알록달록 박힌 꽃잎 같았다. 특히 울고불고 퉁퉁 부어 있는데도 생기가 넘치는 눈은 유림이 떠오를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영락없는 열다섯 소녀였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보면.

무신이 어깨와 팔을 탈탈 털며 말했다.

 

“그만 됐다. 내가 하마.”

“아니에요. 제가 해드릴게요.”

 

참, 보면 볼수록 애 같지가 않았다.

무신은 도선유가 팔을 뻗지 못하도록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너는 괜찮느냐?”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씩씩하구나.”

 

아닌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뭐가 됐든 대단한 아이였다.

무신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른 한 손에는 흑포인 중 하나의 수급을 쥐었다. 흑포를 벗겨 그 안에 넣었기에 외관상으로는 보따리처럼 보였다.

 

***

 

“서, 선유야!”

 

파천 서쪽에 위치한 도씨세가.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 사라져 한바탕 난리가 났던 그곳은 자정에 이르러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초로에 가까운 가주 도회연이 도선유를 와락 껴안았다.

그 먼 곳을 내려오며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녀가 그제야 눈물을 터뜨렸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정황을 전해들은 도회연은 무신에게 절이라도 할 판국이었다. 무신이 아니었다면 도선유는 꼼짝없이 겁탈당했을 테니까.

도회연이 말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겠느냐는 것.

무신이 듣고 싶던 말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냔 투로 운을 뗐다.

 

“갚으시다뇨. 무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닐세. 그럴 말 말게.”

 

도회연이 손사래를 치더니 하인을 시켜 무언갈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는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배준성의 짓이라고?”

“예.”

 

이미 흑포와 그 수급을 본 후였다. 도회연도 확인차 다시 물어본 것이다.

그가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그깟 거래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내 그놈을 당장…….”

 

무신은 버선발로 뛰쳐나가려는 도회연을 얼른 붙잡았다.

 

“일단 참으시는 게. 워낙 더러운 족속이라 무슨 변을 당하실지 모릅니다.”

“하.”

 

성급하게 움직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살막.

확실한 계획을 세워도 건드리기 어려운 족속이니 뭣 같더라도 참아야 했다.

겨우 분을 삭히는 도회연을 보며 무신이 화제를 돌렸다.

 

“어떤 거래를 하시다 그리 되신 겁니까?”

“말도 안 되는 거래였네.”

 

도회연이 기가 차다는 듯 입을 뗐다.

 

“해주를 치겠다며 그 자금을 대달라더군.”

“해주를요?”

“그 많은 빈민들을 털어먹겠단 게지. 어찌 없는 사람들 걸 빼앗을 생각을 하는지 원. 그리고 애당초 내가 왜 살막과 거래를 하겠나. 인간도 아닌 족속들과.”

 

예상대로였다.

도회연은 처음부터 살막과 거래를 하겠단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살막은 그걸 ‘일방적으로 끊었다’ 표현한 것이고.

그리고 해주.

구동과 마찬가지로 파천과 인접해있으며 도회연의 말마따나 빈민들이 대거 모여 사는 지역이었다.

도회연이 질색하며 말했다.

 

“유청하라고 들어봤나? 자금은 아마 그 여잘 제거하기 위한 사주비일 테지. 그래야 빈민들을 털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유청하.

무신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그 여자가 죽은 건 분명 절벽 낙사 때문이라 들었는데… 정말 살막 놈들이 한 짓인지도 모르겠어.’

 

모르겠어가 아니었다.

그럴 공산이 컸다.

애당초 말이 되는가.

유청하 정도의 고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게.

 

‘근데 살막 놈들이 굳이 유청하를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빈민들 주머니 터는 거야 야밤에 몰래 가도 충분했을 텐데.’

 

어쩌면, 그 또한 도선유처럼 사주가 있는 게 아닐까.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든 저렇든…….’

 

어차피 남일이었다.

이후 ‘어떻게 그 많은 적을 혼자 잡을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가 막 끝날 즈음 해서 하인이 돌아왔다.

빈손으로 나갔던 그는 오색 장식구가 박힌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도회연이 그 상자를 받아 다시 무신에게 건넸다.

 

“약소하지만 받아주게. 내 딸을 구해준 감사의 표시일세.”

 

무신은 일부러 놀란 척 반응했다.

 

“예?”

 

그러나 손은 이미 상자의 뚜껑을 쥐고 있었다.

파천 제일의 부를 가진 도씨세가.

과연 얼마가 들었을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네.”

 

무신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무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하고 답하며 살짝 뚜껑을 젖혔다.

그의 눈이 못 볼 거라도 본 냥 흔들렸다.

 

‘……!’

 

금자 1냥이었다.

 

***

 

“오늘은 어제 말한 대로 관생 간의 대련을 실시하겠다.”

 

도선유의 일이 있고 사흘 후.

100여 명의 관생들이 널찍하게 둘러앉아 중앙에 임의 대련장을 만들었다. 성적에 맞춰 짜여 진 두 명씩의 관생이 그 안에 들어가 합을 겨뤘다.

사람으로 치면 갓 걸음만 뗀 자들이 뭘 하겠느냐마는, 의외로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절대실력은 낮아도 상대실력에는 차이가 없는 까닭이었다.

멀리서 보면 절정 고수들의 혈투를 보는 것도 같았다.

무신의 차례는 가장 마지막이었는데, 그 다음으로 가장 성적이 좋은 허장호가 상대로 나서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허장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인정해.”

 

대련 전 잠깐의 휴식.

허장호가 대뜸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기초 검술의 초식을 밟을 만큼 감각이 좋다는 것. 그 거구의 교관을 벽까지 날릴 만큼 힘도 좋다는 것. 인정해. 아니, 인정 안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하지만 대련만은 나한테 안 될 거다. 감각? 힘? 아무리 좋아봤자 의미 없어. 입문천검(入門天劍). 우리 허씨 가문만의 비기를 여기 파천학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익히고 있었거든.”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휴식이 끝난 후 대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 이럴 수가…….”

 

허장호는 단 1합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상대는 입문천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 저명한 ‘백운격(白雲擊)’에도 통달한 자였으니까.

 

***

 

며칠 후.

무신은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도회연의 부름에 따라 다시 그의 집을 찾았다. 무려 사두로 된 마차를 보내주어 한두 시진은 족히 걸릴 거리가 불과 일각 조금 넘게 걸렸다.

도씨세가 손님방.

으리으리한 도자기와 그림이 벽면을 장식하는 그곳에서, 도회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네.”

 

턱! 하는 소리를 내며 도회연이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금자 1냥이 들어 있었던 그날 그 상자에 비해 몇 배는 더 큰 크기였다.

 

“혹, 우리 도씨세가의 호위 무사로 지낼 생각 없나? 보수는 내 섭섭지 않게 쳐줌세.”

 

하고는 도회연이 상자를 열었다.

번쩍!

아닌 말이 아니라 정말 번쩍거리며 빛이 났다.

그 정도로 많은 금자가 들어 있었다.

 

“어떤가?”

 

여섯의 사내들이야 그렇다 쳐도 살막 셋을 죽였다는 것.

그게 의미 하는 바 무엇인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강하단 뜻이다.

도회연은 그 힘을 ‘앞으로 자신의 여식들이 위험하지 않게끔’ 빌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사자는 전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숱하게 깔린 금자.

좋다.

물론 좋다.

그러나 차후 파천을 벗어나 강호로 나가게 되면, 이보다 더한 돈도 쥘 수 있다.

굳이 묶여 있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원한다면 땅도 몇 곳 떼어줄 수 있네.”

 

도회연이 칼을 빼들었으나 무신의 마음은 이미 요지부동이었다.

땅이라는 것도 결국 얼마든지 살 수…….

그때.

도회연의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드릴 수 있어요.”

 

도선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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