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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9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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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9화

하북팽가의 자제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가장 먼저 말문을 튼 자는 의외로 허장호였다. 눈알을 동태의 그것처럼 뜨고는 여전히 배를 움켜쥐고 있는 무성학을 쳐다보았다.

허장호는 그럼에도 못 믿겠단 얼굴이었다.

 

“마, 말이 안 되잖아!”

 

맞는 말이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길 가는 사람 백을 붙잡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말해주면, 아마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터무니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목검을 허리춤에 꽂고 있었다.

 

‘육신은 분명 보통 사람인데 이 정도 위력이 나온다… 목검을 찌르는 순간만큼은 측정 불가급의 힘이 적용되는 건가.’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유림의 검만 계승된 줄 알았더니 아주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무성학.

그게 그 방증이었다.

 

“시험은 이것으로 종료한다!”

 

이후 마지막 관생을 시험할 때까지 무성학은 무신에게 어떠한 의문도 던지지 않았다.

자신이 어찌 입문자 따위에게 그 지경이 된 건지 궁금할 법한데도 입을 꾹 다물었다.

 

“해당 관생에게 만점, 그리고 가산점을 부여한다.”

 

자리를 뜨며 무신의 점수를 최고치까지 올려줬을 뿐이었다.

달빛이 차오르는 야심한 밤.

그 이유가 드러났다.

 

“오셨습니까?”

 

호출을 받고 교관실을 찾은 무신을, 무성학이 벌떡 일어나 맞았다. 말투도 어딘지 공손해져 있었다.

무신이 의아하게 반응했다.

 

“아, 예.”

 

무성학이 차를 권하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귀한 자제분이신 걸 모르고.”

“예?”

“진즉 알아뵀어야 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북에서 오셨지요?”

 

하북.

무신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름… 아니,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성학은 자신과 보통 입문자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

해서, 자신을 벽까지 날려 보낸 ‘그 힘’을 아주 엉뚱한 쪽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북팽가.

 

강철도 짓이긴다는 엄청난 근골을 가진, 힘만 따지면 천하를 호령하는 집안이었다.

무성학의 머릿속에선 무신이 지금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당한 상황이 설명이 되니까.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북팽가는 남궁세가나 제갈세가와 더불어 오대세가에 꼽히는 거대한 세력이었다.

굽실거리는 행동은 혹여나 밉보이지 않을까 포석을 깔아두는 것이다.

물론 무신은 지금 굉장히 황당한 상태였다.

 

‘조금만 생각해도 아닌 걸 알 수 있잖아?’

 

도법을 주로 하는 하북팽가에 검을 쓰는 자가 있을 리 만무하며 설령 있다 한들 굳이 파천까지 올 이유가 없다. 산을 몇 개는 넘어야 도달할 거리니까.

그러나 불현듯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제갈문.

대대로 문인을 내는 그곳에서 학문을 벗어던지고 무(武)의 길에 뛰어들은 것을 보면, 외려 하북팽가가 검을 쓰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거리 역시 제갈세가가 멀면 더 멀었지 가깝지도 않았다.

 

‘가끔은 현실이 더 말이 안 된다니까.’

 

무신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살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무성학을 쳐다보았다. 아까 시험 전까지만 해도 갖은 허세와 권위에 찌들어 있더니 지금은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무신이 말했다.

 

“착각하신 것 같군요. 전 팽가 사람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철석같이 믿어버리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었다.

무성학이 그러했다.

 

“예예, 모르는 척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함구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사실, 무신으로서는 나쁠 것 없는 착각이었다.

알아서 편의를 봐줄 테니까.

실제로 다음 날부터 학관 생활이 조금씩 편해졌다. 숙소를 청소해 주는가 하면, 풀떼기뿐이었던 식단에 고깃국이 딸려 나오기도 했다.

차별이라면 차별.

그러나 외려 무성학보다 관생들이 더 무신을 우러러보았다.

 

“소협, 대단하십니다.”

“별말씀을.”

“그때 교관을 저기 벽까지 날렸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힘은 난생처음 봐요”

 

입에 침을 바르며 치켜세우는 꼴에 무신은 점점 머리가 아파졌다. 하나둘이어야지 백 명의 관생 중 칠팔십이 달려드는 탓이었다.

그러나 한 관생만은 반가웠다.

 

“알기야 알았지만 최 소협은 정말 엄청난 자질을 지니셨군요.”

 

제갈문이었다.

신분을 숨기려 이곳에선 ‘진갈문’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다.

무신이 여타 관생들을 상대할 때와 다르게 조곤조곤한 어조로 반응했다.

 

“제가 보기엔 진 소협도 만만치 않습니다. 갈수록 자세가 좋아지시는 게.”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닌 척해도 만면에 기뻐하는 티가 역력한 제갈문이었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그나저나 제가 소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학문으로 따지면 일자무식인걸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무신이 제갈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검을 든 이상 누구나 다 소협이 될 수 있는 겁니다.”

“…….”

“스스로를 너무 작은 존재로 만들지 마십시오.”

 

별것 아닌 말에 제갈문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무인을 꿈꾸는 자답게 울진 않았으나 무언가 깊이 감복한 모양이었다.

말아 쥔 주먹을 파르르 떠는 게.

제갈문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열심히 해서 꼭 최 소협만큼 올라가겠습니다.”

“저만큼 올라가시는 걸론 부족합니다.”

“예?”

 

무신이 검지를 위로 찌르며 제갈문을 쳐다보았다.

 

“제가 보기에 진 소협은 무림맹에 들어갈 상입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

 

늦은 밤.

벌써 여덟 시간째 목검을 휘두르고 있던 제갈문이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최 소협… 당신은 그냥 작은 선의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겐 그것이 무인에 다가갈 수 있는 의지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며칠 후.

베기 교육까지 무난하게 끝낸 무신은 그 길로 잠깐 학관을 나섰다. 오늘은 ‘그 일’이 벌어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훤했던 밖은 그새 서산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노을이 꺼멓게 칠해지는 순간, ‘그 일’이 시작될 것이다.

무신은 일단 배춘삼을 찾았다.

벌써 일주일째.

교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항상 만두와 탁주를 들고 갔기에 이제는 배춘삼이 먼저 무신을 반겼다.

 

“어째 오늘은 안 온다 하던 참이다.”

 

무신은 ‘항상 올 테니 그런 걱정 마십시오’ 하며 따끈따끈한 만두 다섯 접시와 탁주 두 병을 배춘삼 앞에 내려놓았다.

혼자 먹기엔 다소 많은 양이었다.

 

“음, 내 이것들을 좋아하긴 한다만 너무 많구나.”

“에이.”

 

무신이 배춘삼 앞에 양반다리를 깔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물 한 잔도 마주 보며 먹어야 잘 넘어간다 들었습니다. 드시죠, 어르신.”

 

마주 앉는 의자 두 개만 없을 뿐, 동석이었다.

배춘삼에게 만두를 건네주는 무신의 입은 이미 오물오물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향긋한 탁주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배춘삼이 흡족한 듯 웃었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구나.”

 

무신은 다섯 개의 빈 접시와 두 개의 빈 병을 만들고서야 배춘삼을 떠났다. 아주 죽치고 앉아 뽕을 뽑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 일.

 

이미 해가 져 있었다. 어둠이 사위를 무겁게 짓누르며 시간이 촉박해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무신은 학관 쪽으로 내달렸다.

거기서 한참을 더 올라갔다.

파천의 최북단.

깊은 골짜기에 풀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의 시선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바위 하나를 향했다.

 

파천 도씨세가 칠녀 도선유.

 

불과 15세의 소녀가 의문의 사내들에게 납치돼 바로 저곳에서 겁탈을 당했다.

이후 사내들은 그대로 도주.

가주 도회연이 끈질기게 추격했으나 달랑 한 놈의 목숨만 끊었을 뿐이었다.

도선유?

그녀의 운명이야 뻔했다.

자궁이 파열돼 여자로서의 성징을 거의 잃었으며 마음의 상처가 커 평생을 숨어 살았다.

한 여자의 인생이 풍비박산된 것이다.

 

‘결국 자결했다고 했나.’

 

남 일인데도 참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젠 다를 것이다.

무신은 그녀를 납치한 사내들을 이곳에서 죽일 계획이었다.

그게 그가 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일’이었다.

알량한 영웅심 따위가 아니었다.

사례.

도씨세가는 파천 제일의 부(富)를 가진 집안이었다.

 

‘어디서 납치당했는지 알면 아예 거기서 죽치고 기다리는 건데. 아쉽군.’

 

무신은 입맛을 다시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회귀 전을 되짚었다.

 

‘머릿수 여섯에 경지는 삼류에서 이류 수준이라 했지.’

 

도회연에게 잡힌 자가 실토한 내용이었다.

그 이상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죽어버렸지.’

 

눈앞에 여식을 겁탈한 자가 있는데 아비로서 가만 볼 수 있었겠는가.

참지 못한 도회연이 검을 휘두른 것이다. 뒤늦게 한탄하며 실토받은 내용을 수배서로 내건 것이고.

 

“우우우웁! 웁웁! 우우웁!”

 

반 시진쯤 지났을까.

몸부림치는 목소리가 정확히 여섯의 사내들에게 끌려왔다.

수풀 사이로 얼핏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들짐승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벌써부터 아랫도리를 까는 자도 있었다.

 

“우우웁! 우우우우웁!”

 

도선유는 입이 묶인 채 한 사내의 어깨에 들려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열다섯 소녀가 결코 버티지 못할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무신이 나선 건 바로 그때였다.

 

“뭐야?”

 

뺨까지 수북하게 수염을 기른 사내가 놀란 눈으로 무신을 쳐다보았다. 들짐승도 안 나올 후미진 곳에서 대뜸 사람이 튀어나온 탓이었다.

다른 사내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한 명.

겨우 한 명이었다.

사내들이 더 이상 놀랄 이유가 없었다.

 

“호오, 이 산속 어디에서 신선놀음이라도 하시다 불의를 보고 끼어드시는 건가? 재밌구만.”

 

신선놀음.

검신의 경지까지 올랐으니 무신에게 있어 신선은 정말 놀음과도 같았다.

무신은 말없이 목검을 빼 들었다.

마침 서슬 퍼런 검을 꺼내던 사내들이 그 모습에 복장을 터뜨렸다.

 

“그깟 걸로 우릴 상대하겠다고?”

 

그러나 그 목검에 검기가 드리우는 순간.

다들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검기?”

 

그런데.

사내들이 이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믿을 구석도 없는데 나댈 리가 없지.”

 

심지어 도로 검을 집어넣는 자도 있었다.

그때.

별안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사내들의 것이 아니었다.

 

“저기들 오시는구나.”

 

사내들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흑포를 두른 세 명의 검객이 서 있었다.

도선유를 겁탈했던 자들.

여섯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잡힌 놈이 저 흑포인들에 대해선 끝까지 함구했단 건가.’

 

그 말인즉슨, 저 흑포인들에게 어느 정도 입지가 있단 뜻이었다.

후환이 두려워 실토하지 않았다 가정하면…….

 

“파천 바닥에도 검기를 두르는 무사가 있었구만.”

 

뺨에 칼자국이 있는 흑포인이 검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그의 검에도 그것이 드리웠다.

콰쾃!

검기였다.

나머지 두 흑포인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검기가 셋이라…….’

 

멀뚱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신이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나무.

바위.

수풀.

저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다른 데 시선이 팔린 무신을 보며, 흑포인이 히죽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그러게 조용히 박혀 있을 것이지 왜 여자 하나 구하겠다 튀어나와 가지고 이런 데서 객사… 허억!”

 

흑포인이 눈을 부릅뜨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머지 두 흑포인,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얇디얇은 목검 하나에 집채와도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터져 오르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검강(劍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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