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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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7화
죽간
“……!”
구경꾼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검을 집어넣는 무신과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모를 백태길을 번갈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지 직접 백태길의 몸뚱일 살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잘려 나간 머리통.
백태길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 먼 곳에 가서 한 22만 년 살다 나오면 모를까.
길고 긴 적막은 그 머리통에서 피가 대여섯 움큼 새어 나올 즈음에야 겨우 끝을 맺었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탄성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감탄 섞인 혼잣말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백태길이 당하다니…….”
“난 보지도 못했어. 저 사람이 검 뽑는 거.”
이 바닥을 주름잡던 백태길이 한낱 과객에게 당했다는 것.
당연한 일이었다.
측정 불가 등급의 발검.
백태길 같은 ‘풋내기’ 정도야 양손 번쩍 들고 시작해도 이기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완전한 속도도 아니었다.
‘감각만으로 이 정도니, 습득시키면 더 빨라지겠어.’
하고 생각하며 작업복에 묻은 피를 터는 무신에게, 팔자 주름이 깊은 중년인이 한 명 다가왔다.
경이로움.
그 네 글자를 눈알에 가득 집어넣고서.
“사실 과객이 죽을 줄 알았습니다. 실력이 좋으시구려.”
대부분 구경꾼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혈교 출신 백태길.
이 바닥에서 그를 이길 자는 흔치 않으니까.
아니, 전무하니까.
“검집에 기름칠이 돼 있었나 봅니다.”
무신은 운이 좋았단 걸 빗대어 답했다.
그라고 으스대기 싫겠느냐마는, 관심도 너무 지나치면 외려 독이 되는 법이었다.
그가 백태길의 머리통을 들고는 물었다.
“쓰레기통 어디 있습니까?”
***
그날 밤.
배춘삼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싸했어.’
이제 막 중원에 발을 디딘 것 같은 애송이에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괜히 있어 보이려는 말을 쓰는 게 아니었다.
뭐랄까.
검선에 달했던 옛 스승의 그것보다도 더 대단했다.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이, 자다 깨서 착각한 거겠지.’
착각이 아니었다.
검신.
검선보다 기운이 높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객잔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적적하게 끼어 늦가을의 그것처럼 스산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막 그 부근 골목을 지나던 무신은 세 명의 사내와 마주쳤다.
도끼 하나에 검 둘.
저마다 흉흉한 살기를 뿜고 있었다.
촉이 왔다.
어떤 놈들인지.
‘백태길 패거리인가.’
아니나 다를까.
부객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감히 태길 형님을 죽여?”
정작 그 태길 형님께서 저지른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저들도 같은 혈교 소속이었을 테니 남 일에 아련한 감정을 느끼겠는가.
혈교(血敎).
그야말로 살육에 미친 자들이었다.
죄책감?
그따위 감정은 그들에게 농담거리도 못 되었다.
교활하고 금기 술법까지 쓰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유언이나 남겨라. 똥간에 써줄 테니.”
죽인 후 똥간에 버리겠단 뜻.
무신이 반색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군.”
“뭐?”
“이럴 줄 알았으면 니들 형님 대가리도 그곳에 넣어주는 건데.”
“네놈이 정녕 정신 줄을 놨구나.”
부객이 그대로 도끼를 뽑아 들었다. 야밤인데도 그 색이 보일 만큼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무신은 태연하게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멧돼지를 잡으며 기념으로 챙겨온 ‘아이템’이었다.
부객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깟 나뭇가지로 싸우겠다고?”
“충분하지, 이거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무신에게, 부객이 코웃음을 쳤다.
두 검객은 ‘저 미친놈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하고 기도 안 찬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호기롭게 달려든 두 검객이 피를 토한 것은, 무신이 딱 두 번 나뭇가지를 휘두른 직후였다.
콰콰쾃!
칠흑 같이 어두운 야심한 밤.
무신의 나뭇가지에 드리운 ‘검기’가 유난히 더 번쩍거렸다.
부객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이미 코앞까지 가 있었다.
“어, 어떻게 검기를… 커헉!”
적에게 이 상황의 이유를 설명해 줄 만큼 무신은 선인이 못 되었다. 그대로 부객의 목을 날리고는 나뭇가지를 허리춤에 도로 꽂아 넣었다.
곧 바닥에 나뒹구는 세 구의 시체.
주머니를 뒤져 은자 1냥 정도를 빼낸 그가 ‘응?’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부객의 품 안 깊숙한 곳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둘둘 말린 죽간이었는데, 혈교를 뜻하는 혈 자가 겉면에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는 일단 선천지기를 다시 올렸다. 혈교의 모략과 술수야 밥알에도 독을 넣을 정도이니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
살살 끈을 잡아당기자 대나무 살 안으로 그 내용이 드러났다. 암투는 걸려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거…….’
파천 땅 전역이 그려져 있는 지도.
무신의 눈은 그 외곽에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쪽으로 향했다.
‘설마…….’
표시된 지역은 들짐승 출몰이 잦고 워낙 길도 험해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해서, 냄새가 났다.
장보도.
소지자가 혈교 출신이었으므로 그럴 공산은 더더욱 컸다.
원래 그쪽이 도술이나 주술에 능해 장보도에 대한 정보만은 개방에도 안 꿀리니까.
‘거렁뱅이들이 꼬인 줄 알았더니 이게 이렇게 기연이 되는군.’
그러나 아직 모를 일이었다. 추측일 뿐이지 장보도는커녕 외려 함정이 될 수도 있었다.
장보도를 미끼로 뒤통수를 치는 것.
흔한 일이었다.
다만, 그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놈들이 지금도 혈교인 건 아니니까. 배후에 누가 있지도 않을 테고.’
무신은 표시된 지역 아래 작은 글씨를 보았다.
대륙력 1550년 7월 15일 19시.
앞으로 약 석 달 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좀처럼 의문을 감추지 못하던 무신은 날이 밝는 대로 죽간을 따라 파천을 나섰다.
“크아아아아아앙!”
들짐승이 몇 있었으나 나뭇가지 몇 번 휘두르니 알아서들 꽁꽁 숨어들어 갔다. 너덧 걸음마다 돌부리가 채일 정도로 험한 산행이야 외려 달가울 정도였다.
발 없이 살았던 지난 22만 년.
설령 거름을 밟고 지나가도 마냥 행복할 것이다.
‘여긴가.’
세 시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후미진 기슭이었다.
저 멀리 산의 정상이 보이고 나무와 수풀만 잔뜩 우거진, 정말 말 그대로 기슭.
무슨 이유에서인지 들짐승의 인기척은 적었다. 나뭇가지의 선천지기 탓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까부터 손에 들지도 않았으니까.
여기저기 근방을 뒤지던 무신이 중얼거렸다.
‘장보도는커녕 땡전 하나 안 떨어져 있군.’
헛걸음한 듯싶었으나 아직 모를 일이었다.
7월 15일 19시.
죽간에 표시된 그 시각에 다시 온다면, 장보도가 됐든 뭐가 됐든 나타나긴 나타날 것이다.
아니고서야 이게 뭐 소중하다고 품속 깊숙이 지니고 있었겠는가.
무신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일단 자리를 떴다.
파천에 도착할 즈음에는 해가 벌써 중천을 넘어가 있었다.
“또 왔습니다, 어르신.”
그 길로 객잔에 들러 만두와 탁주를 내온 무신은 어제처럼 세 번째 골목을 찾았다.
길바닥이 제 안방인 양 배춘삼이 너부러져 있었다. 무신이 준 돈으로 간밤은 객잔에서 보냈는지 그나마 살갗은 좀 허옇게 밀려 있었다.
“고 녀석 참 맘에 드는 짓만 골라 하는구나.”
세 접시나 되는 만두를 보며 배춘삼이 오늘은 바로 눈을 떴다. 그러고는 걸신들린 듯 탈탈 접시를 털었다. 엉겨 붙은 만두피 하나 없어 문지르면 뽀득뽀득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가 꺼억 배를 두드리며, 양반다리를 깔고 앉아 있는 무신에게 물었다.
“왜 내게 선심을 주느냐?”
당신의 정보력이 필요해서.
본심과 달리 무신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알랑방귀를 뀌었다.
“어른은 항상 공경하라 배웠습니다.”
“…….”
“동정으로 느끼셨을지 모르겠으나 제겐 이것이 어른에 대한 공경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배춘삼이 껄껄 웃었다.
“기특한 녀석이로구먼.”
기특한 녀석.
오로지 배춘삼의 환심을 사는 게 목적인 무신에겐 상당한 호재였다.
무신은 오늘도 잘 쉬시라며 객잔 방값까지 건네주고는 골목을 나섰다.
이후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파천의 북부를 찾았다.
파천학관(派川學館).
이제 막 무(武)에 입문한 자들이 기본기와 기초 검술 등을 익히는 곳이었다.
검신을 밟았던 마당에 기본과 기초가 무슨 필요겠느냐마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파천검(派川劍).
파천의 삼보(三寶)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으뜸.
수백의 학관생 중에서 단연 첫 번째 손가락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으뜸을 뽑는 파천학관 교육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회귀 전에는 부랴부랴 달려 겨우 늦지 않고 입관할 수 있었지.’
무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파천학관에 들어섰다.
절차는 특별할 게 없었다. 성명과 나이 정도만 쓰면 금방 입관 허락이 떨어졌다.
어차피 입문자들.
이것저것 따져봤자 거기서 거기임을 학관에서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대상의 경지는 ‘없음’입니다.]
이세계 시스템을 이용해 입문자임을 밝혀야 했다. 정보를 공유하겠단 의도는 아니었다.
위장 입관.
고수가 하수인 척 들어와 1등 보상만 날름 빼먹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입관되셨습니다.”
검신.
검선조차 명함을 못 내밀 경지에 있음에도 무신은 그 과정을 당당히 통과했다. 모든 무공이 측정 불가에 이르기는 하나 모두 ‘육신’이 아닌 ‘감각’의 기준이라 상태창 상으론 무(無)의 경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안내를 따라 들어서자 내부는 이미 학관생으로 바글바글했다. 저마다 생김새는 달라도 무인이 되겠단 열망만은 누구 하나 다르지 않았다.
중간쯤의 대열에 합류한 무신이 두세 줄 앞에 있는 어떤 남자를 쳐다보았다.
왜소한 체격에 잔뜩 긴장한 듯 식은땀까지.
근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결코 무인의 그릇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신은 계속 그를 주시했다.
저 남자가 바로…….
그때.
“반갑다, 관생들!”
교관이 나타났다.
무신은 남자에게서 눈을 떼고 정면을 쳐다보았다.
“파천학관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무성학.
우렁찬 목소리로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는 7척에 달하는 신장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거구였다. 저 몸을 하고서 쾌검을 중점으로 하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이런저런 학관의 수칙과 교육 방식을 설명한 그가 대뜸 검을 빼 들었다.
“너희들도 이곳의 교육을 모두 수료하면!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너희들은 곧 죽어도 못할 동작들이다’ 하는 얼굴로 기초 검술을 하나하나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성학은 이류와 일류를 오가는 무인이었기에 그깟 열세 개의 초식 밟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가 검을 내려놓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기초 검술.
별것 아닌 그것도 하수의 눈에는 고산의 정상만큼이나 드높게 보이는 법이었다.
무성학이 한껏 가슴을 펴며 넋을 놓고 있는 관생들을 아울렀다.
“내가 방금 전 펼친 것은 기초 검술의 13개 초식이다! 혹시 나서서 해볼 관생 있느냐! 따라 하기라도 하면 은자 5냥을 주마!”
언뜻 관생들의 의지를 불태우는 말 같으나 실상은 ‘네깟 놈들은 절대 할 수 없다’ 하는 조롱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무성학은 모르고 있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기초 검술만 수백 년 닦은 관생이 있단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