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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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화
완벽하게
섬광이 그쳤다.
무신은 균형을 잃고 가라앉는 목검을 집었다.
따뜻했다.
분명, 온기가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감각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 온기라니.
그러나 그의 초점은 목검 그 자체에 맞춰져 있었다.
‘나뭇가지가 목검으로 바뀌었어.’
좀처럼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환각인가.’
무신은 고개를 저었다.
꿈도 안 꾸는데 환각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휘익.
시험 삼아 목검을 휘둘러 본 그가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아리따운 여인의 나신인들 이보단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나뭇가지와 목검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그러고 보니…….’
목검에만 집중하다 보니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입문.
알림은 분명 그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이세계랑 비슷해.’
성장에 따라 무사의 경지를 알려주던 이세계의 시스템.
방금 전 알림이 그것과 흡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상태창이나 스킬창 같은 게 열리진 않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즉부터 두 명령어를 되뇌어봤었다.
그러나 반응은 전무했었다.
‘상태창.’
[…….]
‘스킬창.’
[…….]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래도 부분적으로만 이세계의 시스템과 일치하는 모양이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야.’
목검.
그리고 상승경지를 이뤘음을 알려주는 알림.
무신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성장의 지표로 보면 되니까.
‘입문 다음이 삼류무사였지.’
이세계에선 겨우 그 정도에 15년을 허덕였다.
더 이상 오르지 못한 채.
그러나 이제는 다를 것이다.
‘재능도 노력 앞에선 결국 무너지게 돼 있어. 29만 년이면 삼류무사가 아니라 아주 꼭대기까지도 오를 수 있겠지.’
물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무신은 목검을 꽉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그렇게 되겠노라고.
그러나 노력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재능 위에는 노력이 있듯 노력 위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즐기는 것.
무신은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었다.
즐겨야지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좋아. 수련하자.’
기본기 숙달이 끝났으니 이젠 그것을 할 차례였다.
기초 검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일전에도 말했듯 외워둔 교본이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러나 무신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중급이나 고급 검술은 특징적인 것만 기억나는데.’
삼류무사였다.
당장 제 앞가림도 못했던 판에 중급이나 고급 검술을 익히는 건 사치였다.
‘일단은 지금만 생각하자.’
중급 검술만 해도 기초와 초급 검술을 끝낸 후에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을 보기엔 너무 일렀다.
무신은 자세를 잡고 기초 검술의 가장 처음이 되는 초식을 밟았다.
말 그대로 기초.
동작은 한두 개로 끝날 만큼 간단했다.
그러나 이세계에선 이마저도 못해 항상 미끄러졌다.
‘이번에도 완벽해질 때까지 하는 거야.’
***
22년 동안의 짧은 출장을 다녀온 염라는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3,257년 만에 ‘시험생’이 나타났단 것이다.
“그래서 정말 들어갔다고?”
그간 그의 대리를 봤던 1급 석영이 공손히 답했다.
“예.”
“호오, 어떤 놈인데?”
염라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생존률 제로.
그걸 알고도 들어갔다는 게.
“지구 대한민국 출신의 최무신이란 망령인데, 특이하게 차원이동을 경험했습니다.”
“차원이동을?”
“예. 워낙 기구한 운명이라 중간에 좀 기회를 준 모양입니다.”
워낙 기구한 운명.
석영에게 명부를 전달받아 기록을 읽어 내려가던 염라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석영은 쓰게 웃었다.
“그런데 차원이동을 하고서도 기구한 운명은 마찬가지였더군요. 타고난 재능이 없어 살아남질 못했답니다.”
“흐음, 여기라면 그럴 만하지.”
사방팔방으로 괴물들이 우글댔다.
무신이 차원이동을 한 곳은.
그걸 모를 리 없는 염라가 끌끌 혀를 찼다.
“지지리도 복 없는 운명이었군. 하지만 그런 운명을 가진 자는 지천에 널렸어. 뭐 얼마나 미련이 남는다고 회귀를 하고 싶어 했을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시험에 도전하면서까지.”
“그래서 한사코 뜯어말렸는데 영 듣질 않았습니다.”
“저승에서 살거나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환생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거겠지, 아마.”
석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신의 미래를 점쳤다.
“그 역시 실패하겠지요? 망령의 숲에서 2만 9천년을 지내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니까.”
염라가 피식 웃었다.
“시험생이 하도 오랜만이라 네놈이 뭘 착각하고 있구나. 2만 9천 년이 아니다.”
“예?”
“29만 년이다.”
석영이 입을 쩍 벌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29만 년.”
염라가 ‘시간 흐름이 달라 여기선 2,900년이지만 말이다’ 하고 다시 명부를 펴 들었다.
어차피 죽을 망령.
그만 신경 끄고 업무나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제사나 지내줘라. 그래도 3,257년만의 손님이었는데.”
***
‘후아.’
무신은 하마터면 목검을 집어 던질 뻔했다.
기초 검술의 시작이자 모든 검술의 교점이 되기도 하는 ‘그 동작’ 하나 때문에 벌써 반년을 보낸 탓이었다.
발검(拔劍).
어떻게 보면 찌르기나 베기보다도 간단한 것인데 좀처럼 완성될 기미가 안 보였다.
검집도 없는 마당에 제대로 뭘 하겠느냐마는, 나뭇가지를 검으로 쓸 때와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느냐지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닌 것이다.
‘더 빨라야 돼.’
찰나의 싸움.
최대한 빨리 검을 뽑아 먼저 선공을 치는 것.
발검의 의의였다.
그러나 무신의 발검은 아직도 턱없이 느렸다.
‘후아.’
무신은 심호흡을 했다.
포기란 단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에 무너질 거였다면 애당초 시작도 안 했을 일이었다.
그가 다시 목검을 들었다.
왼손으로 만든 원에 끼운 후, 빠르게 빼는 일련의 초식.
동작만큼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가 문제였다.
‘그냥 이쯤하고 넘어갈까?’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개뿔이. 찌르기랑 베기를 잘못 익혀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발검까지 그리 만들 순 없지.’
무신은 그렇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마치 기계처럼.
기계가 가동을 멈춘 것은 나무가 서너 번도 더 열매를 맺고 떨어뜨린 후였다.
찌르기와 베기의 1억 번은 진즉에 넘었다.
휘익!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발검했을 때.
그 속도는 눈 깜짝할 새란 말로도 표현이 안 되었다.
‘하, 보람차네.’
무신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망령이라 몸은 안 쑤셨으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정말 자라고 있잖아?’
문득 돌아본 나무는 이전보다 반 뼘은 더 커 있었다.
눈대중이었으나 분명 자라긴 자랐다.
무신은 그것이 신기했다.
자신이 수년을 보냈단 방증이 되기도 하니까.
‘이만큼 해야 될 걸 겨우 몇 개월 하고 말았으니 평생 삼류무사였지.’
무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밑바탕이 깔렸으니 이제 본격적인 무대를 열 차례였다.
기초 검술 제1초식.
그 역시 찌르기나 베기와 마찬가지였다.
이미 익히고 있으나 정확하지 않은 자세가 배어 있었다.
그것을 바꿔야 했다.
물론,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몇 날 며칠은 금방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나무에 열매가 맺히고 떨어졌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00일, 200일, 300일… 1,380일.
무신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
그가 아는 기초 검술의 교본은 7초식까지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기본기에 발검이랑 기초 검술 1초식 익히는 데만 10년을 보낸 셈이잖아?’
재능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무신은 고개를 저었다.
‘덜 완벽하게 했으면 진즉에 넘길 수 있었어.’
완벽.
그것을 얻었으니 헛된 세월은 아니었다.
‘가자.’
목검은 쉬지 않고 돌아갔다.
1,380일이 6,500일이 될 때까지.
‘빌어먹을.’
무신은 육두문자와 함께 비로소 목검을 내려놓았다.
검이 검으로 보이지 않고 웬수로 보였다.
넌덜머리가 났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는 귓불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또 한 번 찾아왔다.
[삼류무사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동시에 목검이 허공 위로 떠올랐다.
그날, 나뭇가지가 그랬듯이.
‘설마.’
설마는 항상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콰지직!
섬광이 치더니 목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목검에 형형색색으로 번지는 빛.
무광의 세계인 망령의 숲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신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윽고, 절대 나무가 재료라고 할 수 없는 검 하나가 그의 앞에 떠올랐다.
철검(鐵劍).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으나 필히 그것이었다.
심지어 실체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망령인 무신이 그 실체를 손에 쥘 수까지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무신은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늘 보던 초원뿐.
반 뼘에서 다섯 뼘은 더 커진 나무 주위에도 ‘누군가’라 지칭될 만한 존재는 없었다.
[…….]
그리고, 알림은 다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