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3화
김현호와 차지혜가 라만 시로 향하는 아만 제국군 수송부대의 행군을 지연시키는 동안, 라만 시는 한바탕 공방전이 벌어졌다.
아렌드 왕국군의 대병력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라만 시를 지키는 아만 제국군은 그다지 긴장을 느끼지 않았다.
어디 까지나 이번 전쟁에 있어서 침공하는 쪽은 아만 제국이었다.
침공을 준비한 쪽도 아만 제국군이고, 병력 규모 면에서도 불리한 아렌드 왕국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라만 시는 매우 방어 시설이 잘 갖춰진 요새였다.
설사 이곳이 공격 받는다고 해서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와아아아―!!”
“쳐라!”
대치 상태에만 있던 아렌드 왕국군 병사들이 일제히 라만 시의 성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투석기로 바위를 날리고, 사다리를 걸쳐서 성벽을 올랐다.
“저놈들이 미쳤나!”
“화살을 쏴라!”
양측에서 서로를 향해 화살이 치열하게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유혈과 비명이 난무했다.
예상 못한 아렌드 왕국군의 정면 공격에 잠시 당황했지만, 아만 제국군은 곧 정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높은 성벽을 오르면서 아렌드 왕국군의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한 무리의 병력이 사다리를 들고 나타났다.
“간다!”
앞장서고 있는 병사가 소리쳤다. 따르는 병사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선 병사는 바로 오딘.
뒤따르는 병사들도 시험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병사로 위장해서 라만 시를 공격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강력한 시험자들의 힘을 이용해 라만 시를 타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공격 수단을 구상해 보았다.
하지만 라만 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정면 공격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인공근육슈트로 20배 증폭된 힘을 발휘하면 성벽을 넘고서 성문까지 열 수 있다.’
성문을 열고 아렌드 왕국군을 라만 시 안으로 밀고 들어가게 해서 시가전까지 유도한다.
라만 시 내부에서 난전이 벌어지면서 혼란에 휩싸인 아만 제국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잘 만하면 라만 시를 점령할 수도 있고 말이다.
“간다!!”
앞장선 오딘이 사다리를 들고 달려들었다.
성벽에 걸치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딘은 그것을 혼자서 들고 달려갔다.
오러를 쓰지 않아도 인공근육슈트로 증폭된 근력으로 한 손으로도 쉽게 들 수 있었다.
“차하!”
오딘은 있는 힘껏 사다리를 던져 성벽에 걸쳤다.
뒤따르는 시험자들도 사다리들을 잇달아 걸쳤다.
“죽여 버려!”
“싹 쓸어 버려!”
“저깟 놈들 따위!”
시험자들이 힘찬 기세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다리를 디디며 달려 올라갔다.
사다리를 평지처럼 전력질주로 올라간 오딘은 검을 뽑아 들었다.
파아아앙!
검신에 피어오르는 오러 블레이드!
비장한 표정으로 성벽 위를 지키던 아만 제국군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오러 블레이드?!”
“오, 오러 마스터다!”
“설마……!”
오러 마스터는 일반 병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일방적인 살육을 면치 못하는 강자였다.
“피, 피해야……!”
오딘이 비호처럼 뛰어들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콰지지직―
“크아악!”
“끄아악!”
“커헉!”
오러 블레이드가 지나간 범위 내에 있던 병사들이 전부 토막이 나버렸다.
오딘은 계속해서 좌우로 검을 휘둘러 주변에 있는 살아 있는 적병을 전부 사살해버렸다.
그가 한바탕 쓸고 지나간 후에 뒤따라 올라온 시험자들이 잇달아 도착했다.
오딘이 소리쳤다.
“바로 성루로!”
시험자들이 성문이 있는 성루 쪽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막아야 돼!”
아만 제국군 측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절규를 하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윽고 단검이 날아와 지휘관의 목에 정확히 꽂혔다.
힘없이 풀썩 쓰러져 절명한 지휘관.
그리고 그 자리에 불쑥 나타난 금발의 여인, 마리 요한나가 목에서 단검을 뽑았다. 그녀는 다시 마법처럼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오러 마스터 오딘.
그리고 세계 랭커 시험자들.
라만 시 도처에 깔린 수십만의 아만 제국군도 그들의 기습적인 돌파를 막아낼 수 없었다.
성문을 놓고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지만, 오딘을 위시한 시험자들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희생당하는 아만 제국군 병사들의 시신만 산을 이루었다.
쿠우우우웅!
도개교가 내려지고 성문이 열렸다.
“와아아아아!”
“열렸다!”
“돌격!”
아렌드 왕국군이 노도처럼 열린 성문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됐소. 우리도 싸웁시다. 마리와 슈헤이 씨는 고위 장교들을 찾아 최대한 많이 암살하시오.”
“그럽시다.”
라만 시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아렌드 왕국군은 시가지에서 아만 제국군과 충돌했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난전이었다.
질서 없이 사방에서 벌어지는 혼전에서 아만 제국군의 대병력도 소용이 없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시험자들은 맹활약을 했다.
그렇게 라만 시는 아렌드 왕국군의 손아귀에 떨어지나 싶었다.
***
모든 시험자가 최종 시험 클리어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특히 김현호는 라만 시로 향하는 수송부대와 그 속에 위장해 있는 흑마법사들, 타락한 시험자들을 상대로 홀로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차지혜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겠지만 분명 적지 한복판에서 고생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과중한 역할을 무리할 정도로 떠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데이나 리트린이었다.
정찰위성을 운용하는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심연의 구슬까지 2개나 컨트롤하고 있었다.
싸움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심연의 구슬을 이같이 초장거리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레나 세계의 마법사들과 시험자를 통틀어 데이나 리트린이 유일했다.
심연의 구슬은 각각 김현호의 서포트, 또 하나는 아만 제국 왕궁의 감시에 이용되고 있었다.
2개가 모두 장거리까지 날려 보내 컨트롤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더는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는 게 정상이었다. 데이나가 마법사로서 정신이 고도로 단련되어 있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언제 움직이는 것이냐.’
데이나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카자드 푼 아만이었다.
마지막 시험의 최종 목적인 카자드가 갈색 산맥으로 움직여야 이번 작전은 성립되는 것이었다.
라만 시를 공격해 타격을 입히는 일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싸움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전쟁에서 져도 상관없다.
카자드만 죽일 수 있다면, 시험은 클리어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시험이 종료되면, 그 후의 아레나의 국제 정세 따윈 알게 뭐란 말인가.
-리트린 씨, 그쪽은 어때요?
문득 김현호의 목소리가 심연의 구슬을 통해 전달되었다.
“지금쯤 한참 싸우고 있을 겁니다. 아마 라만 시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을 테지요. 그쪽은 어떻습니까? 몇 시간 전에 실프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만.”
-아, 예. 누군가가 리창위와 ‘시험자’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걸 발견해서 그자를 처치했어요. 카르마가 오르지 않은 걸 보니, 타락한 시험자가 아니라 흑마법사였을 거예요.
“좋은 전과를 올리셨군요. 이런저런 더러운 일을 맡기는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만, 리창위는 재래 결사대 내에서 낮은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리창위와 상의를 했다면 보통 위치의 흑마법사가 아니었을 테지요.”
-그래요? 아무튼 이쪽은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리창위 자식이 우리 라만 시 공략 작전을 눈치챈 모양이에요. 수송부대를 놔두고 시험자들과 흑마법사들이 라만 시 방면으로 달려갔어요.
“수송부대를 공격하시면 어떻습니까? 싣고 이동하는 군량과 물자를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지금 리창위와 흑마법사 두 명이 나를 견제하고 있어요. 리창위의 길잡이 스킬을 이용해서 심연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저를 쫓아다녀요.
그 말에 데이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하면 현호 씨의 역할은 다 하셨습니다. 일단 리창위 일당을 상대하지 말고 그대로 이곳에 돌아오십시오.”
-이제 괜찮겠어요?
“예, 어차피 그들을 이곳에 끌어들이는 건 예정대로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할게요.
“아, 그리고 가지고 계시는 심연의 구슬은 주머니에서 꺼내 던져주십시오.”
-예?
“현호 씨는 이제 돌아오실 테니 심연의 구슬은 다른 곳에 쓸 참입니다. 필요한 연락은 이제 교신기로 하지요.”
-알겠어요. 그럼 지금 던지죠.
그리고 김현호의 주머니에서 꺼내진 심연의 구슬을 통해서 그곳의 상황이 데이나에게 전달되었다.
김현호가 심연의 구슬을 던졌다.
데이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심연의 구슬을 조종했다.
심연의 구슬은 똑바로 아만 제국 왕궁을 향해 날아갔다.
이미 또 하나의 심연의 구슬이 왕궁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왕궁 주위를 조심스럽게 배회할 뿐이었다.
외부에서 보는 왕궁의 모습이야 이미 정찰위성으로도 충분히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왕궁 내부.
더 정확하게는 지하궁전에 있을 카자드였다.
‘지하궁전에 들어가면 분명히 들키고 말 것이다.’
카자드 푼 아만은 네크로맨시의 창시자격인 괴물 흑마법사였다.
이쪽의 심연의 구슬이 지하미궁 안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파괴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자칫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면 술식을 역산해서 이쪽의 위치까지 알아버린다.
‘어차피 이곳의 위치는 들켜도 상관없어.’
심연의 구슬이 아만 제국 왕궁에 도착했다. 2개의 구슬이 왕궁의 주변을 배회했다.
‘간다!’
데이나는 그중 하나를 왕궁 안으로 침투시켰다.
최대한 눈에 띠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비행해 안으로 들어섰다.
재래 결사대의 고위급 간부들만 알고 있는 통로를 따라 지하미궁에 진입했다.
지하미궁에 이르러서는 더욱 컨트롤이 조심스러워졌다.
식은땀이 나왔다.
정찰위성으로는 라만 시 전투 현장을 감시하고 있으면서도, 온 정신은 구슬에 집중되고 있었다.
비록 구슬을 통해서이지만, 카자드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흐으으으…….
어디선가 들리는 신음.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카자드 푼 아만의 것이었다.
‘가자.’
들킨다 해도 그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크으으…… 괴롭구나.
구슬이 점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접근했다.
-불완전한 채로 살아 있다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
-그렇지 않으냐? 데이나 리트린.
“……동의합니다. 당신처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요.”
-흐흐흐…….
초췌한 장신의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벗은 상반신에 문신처럼 새겨진 마법진들이 기괴하게 보였다.
데이나는 심연의 구슬을 노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카자드는 구슬을, 구슬 너머로 데이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모든 욕망을 초월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 보입니다.”
-흐흐흐, 목마르구나.
카자드는 몸을 일으켰다. 벗어놓은 망토를 몸에 두르며 말을 잇는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욕망에 타오르는 카자드의 눈빛을 데이나는 분명 보았다.
파삭!
카자드는 심연의 구슬을 손아귀에 쥐어 터뜨려 버렸다. 하지만 데이나는 거기까지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