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2화
타앙―
한밤에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짐마차의 오른쪽 바퀴와 함께, 거기에 등을 기대어 잠들던 병사의 육체도 산산조각이 났다.
“적이다!”
“제기랄, 또 시작이야!”
“피해 상황을 보고하고 주위를 경계해라!”
혼비백산한 아만 제국군 수송부대는 또 전투준비를 하며 자다 말고 드잡이를 했다.
멀리서 실프를 통해 그 광경을 확인한 나는 미련 없이 첫째를 타고 달아났다.
실프는 천천히 뒤따라오며 쫓아오는 적이 있나 확인한 뒤에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침낭 안에 들어가 잠을 청하던 차지혜가 나를 반겼다.
모닥불을 피우면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므로 그녀는 줄곧 어둠 속에 있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다녀왔어요.”
“어서 주무십시오. 또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합니다.”
“네.”
나는 닐슨 R3를 소환해제하고 침낭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여긴 현호 씨 침낭이 아닙니다만?”
“아, 착각했네요.”
“보통 그런 착각이 가능합니까?”
“실은 혼자 자다가 얼어 죽을까 봐 그런 거예요.”
난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조금 움찔거리던 그녀는 이내 포기했는지 한숨을 쉬고는 잠을 청했다.
‘이걸로 벌써 나흘째네.’
라만 시로 향하는 아만 제국 수송부대와 싸움을 시작한 지도 이걸로 나흘째.
그동안 나는 타락한 시험자를 4명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짐마차는 10대 파괴했다.
일방적인 공격이라 쉬운 싸움 같지만, 적들의 정찰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말을 타고 정찰을 다니는 병사들 중에 타락한 시험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되도록 타락한 시험자를 더 처치하고 싶었지만, 놈들의 위장은 점점 철저해지고 있었다. 상대방도 나름대로 내 저격에 대비한 모습이었다.
특히 중국인 시험자의 경우 검은 머리카락이 노출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작전을 바꿔서 실프를 통해 ‘시험자’, ‘시험’, ‘카르마’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내 저격하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그걸로 처치한 것도 3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2명은 타락한 시험자, 1명은 재래 결사대의 흑마법사로 보였다.
그 뒤로는 일절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아서 일반 병사들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리창위야 내놓고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다니고 있었지만, 저 녀석은 매우 성능이 좋은 마법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저격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리창위는 나를 만난 적 있었다.
길잡이 스킬을 최소 초급 1레벨이라도 익혀놨을 테니 내 방향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지금가지 나를 경계하는 적들의 정찰 방향이 정확한 점을 감안하면 분명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지금도 충분히 내 역할을 잘해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점점 접근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감시하는 심연의 눈동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었고 말이다.
나도 점점 저격 거리를 늘려서 지금은 거의 7킬로미터 바깥에서 저격을 하는 실정이었다. 그만큼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증거였다.
‘라만 시의 전투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
데이나의 말로는 이틀 전에 아렌드 왕국군이 진군해 라만 시 앞에 진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부터 시험자들이 침투 작전을 준비했다는데, 좀 더 연락을 기다려 봐야겠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결과가 나오면 나에게 연락이 왔을 게 아닌가.
그때, 문득 차지혜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내 손에 어떤 감촉이 느껴졌다.
차지혜가 내 손등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어서 주무십시오.”
“내가 잠 안 자는 지 어떻게 알았어요? 난 코골이도 없는데.”
“숨소리가 다릅니다.”
함께 지낸 지 꽤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눈치도 빨라.
나는 얌전히 눈을 붙이고 잠을 청했다.
***
리창위는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새벽의 어둠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김현호의 방향은 북서쪽.
방향에 변동이 없는 걸로 보아 지금은 어딘가에 숨어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야간 기습을 생각해 보았지만, 귀신같이 알고 미리 달아나 오히려 저격으로 반격하는 걸로 보아 정령으로 경계를 세워놓는 듯했다.
‘뜸하게 두세 시간씩 자는 걸 보니 용의주도하군.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제한 시간이 있을 테니 그 점을 고려해서 움직이는 거겠지.’
리창위도 용의주도하기는 마찬가지.
시험자와 재래 결사대 소속만이 알 수 있는 단어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지시해 뒀다.
뿐만 아니라 김현호의 취침 및 활동 시간을 계산해서, 그의 정령 소환 시간이 대략 10시간 내외라는 것까지 유추해 냈다.
유추해 낸 사실을 토대로 정찰 및 경계를 시행했고, 그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가 최소화되고 있었다.
5킬로미터 바깥에서도 백발백중으로 적중시킬 수 있는 무서운 저격 능력을 가능 상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과였다.
심지어 이쪽은 변변한 장거리 공격 수단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부대의 행군이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김현호도 점차 타락한 시험자나 흑마법사보다 타격하기 쉬운 짐마차를 노리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김현호의 목적은 확실하게 시간을 끄는 것이다.’
보급을 늦춰서 아군을 유리하게 할 생각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이쪽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재 다른 수송부대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습격받을 것에 대비해 작은 단위로 끊어서 소규모 물량의 운송이 잦아졌다.
하지만 보급로의 교란이 유도라면 타락한 시험자와 흑마법사가 잔뜩 포진한 이쪽에만 집중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
‘그럼 목적이 뭐냐.’
무슨 수단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김현호는 정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시험자와 접촉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기이할 정도로 아만 제국군의 움직임을 소상하게 파악했다.
수송부대가 언제 어디로 향하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습격한 점이 이상할 정도였다.
‘인공위성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마법적인 어떤 장치겠지.’
설마 정말로 상공에 정찰위성이 떠서 전부 내려다보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리창위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김현호의 목적은 이제 단순한 보급로 교란이 아니었다.
‘어떤 구조의 정보체계인지는 몰라도, 이 수송부대에 우리들이 위장해 있다는 걸 미리 알아차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령술이 아닌 저격으로 공격해 왔고.’
처음부터 자신을 역으로 사냥하기 위한 막강한 전력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격을 시도했다면.
그렇다면 그 목적은…….
리창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장교로 위장해 있는 중년의 흑마법사를 깨웠다.
“끄응, 무슨 일이오?”
중년의 흑마법사는 부스스 눈을 뜨며 피로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대로 가면 일을 전부 그르칠 거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놈의 목적이 군수물자 조달을 늦추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거라면 어떻겠소?”
“뭐요?”
리창위는 쉽게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둔한 이 중년 흑마법사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우리가 라만 시에 도착하는 걸 지연시키려고 무리한 싸움을 하는 거요, 놈은.”
“그러니까 군수물자가 아니라 우리들의 도착을 막고 있는 거다?”
“그렇소.”
“대체 그 이유가 뭐요?”
“이쯤 말하면 좀 알아들어야 할 게 아니오. 아렌드 왕국 놈들이 라만 시를 공격하려는 게 당연하잖소.”
“아…….”
그 지적에 겸연쩍었는지 얼굴을 붉힌 중년 흑마법사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술탄 폐하께 받은 어명은 수송부대를 무사히 라만 시에 도착케 하는 것이오. 지금처럼 이동하는 것 외에 달리 무슨 행동을 한단 말이오?”
“정령술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흑마법사만 수송부대에 남겨놓고 나머지는 빠르게 라만 시로 달려가는 것이오.”
“그럴 순 없소! 그렇게 전력이 빠지면 결국 이 수송부대가 놈에게 당하고 말 거요. 지금 운반하는 물량이 얼마나 막대한지 모르시오?”
‘답답하군.’
리창위는 살심을 억누르며 반박했다.
“이보시오. 말했잖소? 놈의 목적은 군수물자가 아니라 우리를 막는 거라고. 목적인 우리가 라만 시로 달려가면 놈도 이곳에서 수송부대와 드잡이를 할 수 없을 거요. 우릴 쫓아올 거란 말이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막연한 추측이잖소?”
“막연하다고?”
“아무튼 나는 폐하의 어명을 따를 뿐이오.”
“우리가 따로 떨어져 나와 라만 시로 강행하는 것이 오히려 놈으로부터 수송부대를 지키는 일이오. 이해 못하시겠소?”
“말뜻은 이해했소. 아니까 반대하는 거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리창위는 주먹만 불끈 쥔 채 그냥 물러났다.
열 받아도 재래 결사대의 고위급 흑마법사를 죽일 수는 없었다.
저자를 살해하면 이곳에 있는 다른 흑마법사들을 적대하게 되어서 일을 더 그르치게 될 테니까.
‘흑마법사들은 그냥 놔두고 중국 시험단만이라도 데리고 먼저 갈까? 아닌데, 흑마법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렇게 고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타앙―
멀리서부터 들리는 지긋지긋한 총성!
그리고 그 총성과 동시에,
퍼억!
하고 누군가의 머리통이 피분수를 뿜으며 끔찍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놈이 깨어났나! 방향은 그대로였는데!’
리창위는 놀라서 저격당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던 그 중년 흑마법사였다.
공교로운 우연?
아니었다.
리창위는 대략 사태를 파악했다.
‘놈도 내 길잡이 스킬을 인지하고 있군. 영악한 녀석.’
총알이 날아온 방향은 김현호가 있는 북서쪽이 아니었다.
아마도 정령에게 총을 들려주고 다른 곳으로 보내서 저격을 시킨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죽었군.’
아마 실프를 통해 이곳을 몰래 감시하면서 ‘시험자’ 등의 단어를 쓰고 있는 사람을 포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걸 봤겠지.’
리창위에게 저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수단이 있다는 걸 알고, 타깃을 함께 대화를 나누던 상대로 바꾼 것.
결국 대화를 마치고 리창위가 떨어지자마자 중년 흑마법사를 처치해버렸다.
‘심연의 눈동자들까지 전부 따돌려 버렸군. 점점 똑똑해지고 있어.’
하지만 리창위는 웃었다. 도리어 김현호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맙군.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는데 나를 대신해서 제거해 주었어.’
리창위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뒤, 시험자들과 흑마법사들을 은밀히 불러 모아 상의를 했다.
그 꽉 막히고 둔한 중년 흑마법사가 사라진 탓에 대화가 잘 통했다.
“마법사 셋과 나만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먼저 목적지로 이동하시오. 마법으로 몸을 은신하고 움직이면 놈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거요.”
“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데요.”
“놈의 이목은 내게 집중되어 있소.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알아차리지 못하오.”
리창위가 길잡이 스킬을 쓰듯, 김현호도 길잡이 스킬로 리창위를 주목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저격으로 리창위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놈은 얼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나를 중심으로 감시를 하고 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놈도 속을 것이다.’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무서운 통찰력이었다.
그렇게 리창위의 말대로, 그와 흑마법사 셋을 제외한 모두가 투명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 먼저 이동했다.
야음을 틈탄 강행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