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1화
아만 제국, 라만 시.
아렌드 왕국 북부 변경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이 도시는 옛날부터 국가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지역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반 백성보다 군인이 더 많이 상주하는 요새가 되었다. 이곳에 사는 백성들도 대부분 상주 군인의 일가족이었다.
다수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주둔 시설과 요새로서의 뛰어난 방어력이 두루 갖춰져 있어, 정복 전쟁의 전초기지로 선택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20만여 명에 달하는 아만 제국군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었고, 언제든 명령만 떨어지면 국경을 넘어 아렌드 왕국령으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준비는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20만 대군을 먹여 살릴 군량이 제때 도착해야 비로소 진격하든 싸우든 할 텐데, 보급선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군량을 비롯해 보급품이 제때 보급되지 않자 하루에 한두 끼씩 굶주리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병사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이대로라면 군 기강이 흔들릴 위험까지 있었다.
그리고 높은 상공에서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정찰위성은 그런 라만 시의 내부 풍경을 면밀히 촬영하고 있었다.
***
데이나는 정찰위성으로 내려다 본 라만 시의 구조의 병력 배치 상태를 소상하게 파악해 지도를 작성했다.
그때, 복도 끝에 있는 그의 비밀 방으로 오딘이 들어왔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김현호 씨는 무사히 후퇴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는 건 무엇이오?”
“라만 시 내부입니다.”
그제야 오딘은 데이나가 제작한 지도를 보았다.
상세한 병력 배치 상태가 표기된 정확한 내부지도였다.
마치, 아군이 라만 시를 선제공격할 때를 대비하여 제작한 듯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오?”
“이쪽은 시험자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아만 제국군은 아직 흑마법사들과 리창위 일당이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지요.”
“그 틈을 노려 우리가 먼저 공격하자는 거요?”
“그렇습니다.”
데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김현호 씨가 원거리 저격으로 계속 그들의 발목을 붙들고, 그렇게 시간이 벌린 틈을 타 우리가 라만 시를 공격해 타격을 입히면 어떻습니까?”
“이곳에 모인 시험자 전력을 활용하자는 것이군.”
“예, 아렌드 왕국군도 전부 총공격에 동원해 이목을 끌고 시험자들이 침투해 타격을 가합니다. 작전에 참여하는 33인 외에도 시험자가 많이 모여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 말에 오딘은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위성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라만 시의 방어시설 및 내부 사정을 훤히 파악했다.
이걸 강하고 날랜 시험자들이 이용한다면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김현호 씨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커지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그는 5킬로미터 이상의 거리에서도 저격이 가능합니다. 거기다 정령술은 흑마법으로 탐지할 수가 없습니다.”
“으음.”
오딘도 김현호의 저격소총이 내는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흑마법사들과 리창위 일당을 상대로 혼자서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살짝 우려가 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역량은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텐데.’
오딘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윽고 결심을 굳혔다.
‘결국 모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좋소. 폐하께도 그렇게 말해보리다. 아마 승인될 거요. 지금 폐하께는 내 의견이 잘 먹히니까.”
오딘의 장담대로 다음 날부터 알세르폰 3세는 라만 시 공격에 대해 영주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적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 먼저 이쪽에서 먼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서 기선을 제압한다는 내용의 논의였다.
하지만 진실은 시험자들이 라만 시에 침투해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만 제국령에 있는 김현호에게도 데이나가 이 의견을 전달했다.
***
“좋아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해야죠. 제가 듣기에도 좋은 작전인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데이나와 대화를 마치고 나는 뒤에 앉은 차지혜에게 말을 건넸다.
“들으셨죠?”
“들었습니다.”
“일단 제가 둘째를 콜 스킬로 소환할 테니 그걸 타고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남아서 리창위 일당하고 드잡이를…….”
“싫습니다.”
“싫다고요?”
나는 뜨악해서 물었다.
차지혜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함께 남아 현호 씨를 지키겠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지혜 씨가 활약할 일은 없어요. 계속 원거리에서 저격만 하면서 괴롭히기만 할 건데요.”
“흑마법사들도 끼어 있는 이상 어떤 수단으로 공격해 올지 쉬이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의 위험을 대비해 제가 경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저 혼자인 편이 움직이기도 편해요.”
“둘째를 콜하십시오. 전 둘째를 타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경호하겠습니다.”
아 놔, 이론상 딱딱 맞는 말이라 짜증이 난다.
뭔 여자가 한 마디도 안 져! 차지혜와 드잡이를 했을 때의 누나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렇게 남편 말 안 들으면 소박맞아요.”
“아직 남편 아닙니다만?”
“얼레? 벌써 잊었어요? 아레나에서는 이미 부부잖아요.”
“아무튼 싫습니다.”
에잉.
일단 위험한 일이니만큼 그녀를 떨어뜨려놓고 싶었는데 무리인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하려다가 문득 나는 뭔가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함께 싸우려면 이건 정말로 꼭 지켜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절 오빠라 부르세요.”
“알……!”
알겠다고 하려다가 차지혜가 심히 동요하였다.
“제가 잘 못들은 것 같습니다만.”
“오빠라 부르라고요.”
“싫습니다.”
“그럼 돌아가세요. 말했다시피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함께 싸울 수 없어요.”
“나이는 제가 한 살 많으므로 현호 씨를 오빠라 부를 이유도 없을뿐더러, 이 싸움과도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관련이 왜 없어요! 원래 남자는 오빠라 불리면 기운이 솟는 법이라고요. 그것도 이해 못하다니, 역시 같이 싸울 수가 없네요. 돌아가세요, 얼른!”
“그건 억지입니다.”
차지혜의 목소리에 아주 살짝 억울함이 깃들었다.
“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 수도 있다면서 고작 그것 하나 해주지 못해요? 아, 이제 지혜 씨의 진심을 불신하게 되었어요. 역시 이런 기분으로는 함께 싸울 수가 없네요. 돌아가세요.”
나는 마구 억지를 부렸고, 급기야 둘째를 콜 스킬로 소환했다.
결국 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아직 군바리 티를 벗지 못해서 오빠라고 부르기에는 말투가 너무 어색합니다.”
“대체 전역을 언제 했는데 아직도 군대 물이 덜 빠져요? 역시 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한 거예요. 결혼해서 부부로 함께 사는데, 남편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부인이 애교 하나 없는 다 나 까 말투로 반겨주니 기분이 좋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저도 타협해서 단어를 바꿀게요.”
“……?”
“여보라고 불러 봐요.”
“……?!”
내 허리를 붙들고 있는 그녀의 양팔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뻔뻔스럽게 요구했다.
“자, 어서요. 설마 곧 결혼할 사인데 여보라고는 죽어도 못 부르겠다는 건가요? 파혼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 그게……!”
“어서요. 제가 싫으면 관두고요.”
“알겠습니다. 여, 여보.”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 번 말해줄래요?”
“들었잖습니까.”
“못 들었다고요.”
그렇게 나는 내내 차지혜를 괴롭히면서도, 첫째를 조종해 북서쪽으로 향했다.
리창위 일당과 흑마법사가 섞여 있는 수송부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결국 함께 싸우기로 한 것이다.
비행하면서 계속 차지혜에게 이것저것 짓궂은 요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주머니에 넣어놓은 심연의 구슬에서 데이나의 목소리가 들였다.
-꽤 심각한 말씀을 나누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적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계십니다.
“아, 그래요?”
-약 3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슬슬 준비하십시오.
“알겠어요.”
나는 옆에서 함께 나란히 날고 있는 둘째를 가리키며 차지혜에게 말했다.
“자, 여보. 이제 저기에 타세요.”
“알겠습니다.”
“어허!”
“……알겠습니다, 여보.”
음, 한층 듣기 좋다. 딱딱한 군인 어투와 부끄러움 가득한 단어가 섞이니까 재미있는 말투가 되었어.
“무장!”
나는 닐슨 R3을 꺼냈다.
“실프, 정찰을 해.”
-냐앙!
소환된 실프가 북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내 머릿속으로 실프가 보고 있는 장면이 전달되었다.
길게 줄지어 움직이는 수많은 짐마차 행렬. 말을 타고 바짝 신경이 곤두선 채 주위를 경계하는 기병대.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병사로 위장한 채 끼어 있는 리창위 일당.
검은 머리칼과 동양인 피부를 가진 생김새를 가진 병사들은 위장을 한 중국인 시험자들이 분명했다.
‘돌아와, 실프.’
나는 스코프로 중국인 시험자로 보이는 자들 중 하나를 겨누었다.
곁으로 돌아온 실프가 정확한 조준을 해주었다.
일단은 눈에 띌까 봐 카사는 소환하지 않았다. 불덩어리인 카사가 하늘에 떠 있으면 멀리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다!’
실프로 총성을 죽인 채, 첫 발을 발사했다.
푸슈우우욱―!!
세차게 공기를 찢고 날아간 20㎜구경짜리 탄환이 중국인 시험자로 의심되는 병사의 머리에 적중했다.
너무나 강력한 대물 저격소총의 위력에, 표현 그대로 머리가 폭발했다.
그 바람에 주위에 있던 병사와 말들이 혼비백산하였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 타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실프는 재빨리 총구 방향을 타락한 시험자로 의심되는 검은 머리 병사를 향해 조정해 주었다.
푸슉― 퍼억!
이번에는 가슴이 뻥 뚫려 나가며 심장이 있던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폭발했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한 사내가 불쑥 튀어나와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리창위였다.
말에서 내려 달린 그는 오러를 활용하는지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왔다.
“리창위가 와요! 이쯤 하고 후퇴할게요.”
“맨 앞에 있는 짐마차 바퀴 하나를 맞추십시오!”
차지혜가 재빨리 말했다.
‘아!’
난 그제야 놈들의 행동을 지연시킬 좋은 방법을 깨닫고는 다시 한 번 저격소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욱― 콰아앙!!
실프가 회전력을 더하고 탄약보정으로 위력이 배가 된 탄환은 가장 선두에 있던 짐마차를 거의 반파시켰다.
그리고는 리창위가 가까이 오기 전에 미련 없이 첫째를 조종해 달아났다. 차지혜도 둘째를 타고 뒤따랐다.
-심연의 눈동자가 쫓아올 겁니다.
불쑥 들리는 데이나의 경고.
아차, 그렇지! 흑마법사들이 날 그냥 보낼 리가 없지.
데이나의 지적에 따라, 나는 실프에게 소리쳤다.
“실프, 심연의 눈동자가 쫓아오는 게 보이면 전부 파괴해 버려!”
-냐아앙!
실프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의 칼날을 수차례 날렸다.
실프가 난사한 바람의 칼날이 허공에 떠 있던 무언가를 잇달아 격추시켰다.
데이나의 지적은 정확했던 것이다.
그렇게 흑마법사들의 추적까지 뿌리친 후에 나는 차지혜와 함께 그들에게서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