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8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87화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텅 빈 세상에 서 있었다.
풀도, 나무도, 색깔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이 온통 새하ㅤㅇㅒㅆ다. 끝없는 지평선이 공백으로 가득했다.
마치 온 세상이 하얗게 탈색이 된 것처럼…….
“꿈을 꾸는 것 같은 풍경이죠?”
아기 천사의 목소리.
녀석은 기분 나쁘게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시면 땅에 머리를 박아서 확인해 보셔도 좋아요.”
이곳에 불려왔던 첫날의 일을 말하는 것이군.
나는 대꾸대신 중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아기 천사는 키득키득 웃어댔다.
때마침 차지혜도 나타났다.
우리는 함께 석판을 소환해 시험을 확인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45
-카르마(Karma): +150
-시험(Mission): 카자드 푼 아만을 처치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
“제한 시간이 왜 이래?”
내가 물었다.
아기 천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시험자 김현호에게만은 특별히 가르쳐 드릴까요?”
“가르쳐 줘.”
아기 천사는 고사리 같은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나를 척 가리켰다.
“시험자 김현호, 당신이 죽을 때까지예요.”
“뭐?”
“제한 시간을 무제한으로 하자니 평생 이대로 아레나에 눌러 살려는 시험자도 생길 테고, 그렇다고 제한 시간을 딱 정해놓자니 카자드가 타락한 시험자들에게서 그 정보를 들고 제한시간이 지날 때까지 숨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죽을 때까지라고?”
“예, 말씀드렸잖아요. 시험자 김현호가 우리의 마지막 기준점이라고요.”
“그렇긴 하지만…….”
“참고로 이 얘기는 어떤 시험자도 모르는 비밀이에요. 그 사실이 밝혀지면 타락한 시험자들이나 카자드가 시험자 김현호 당신을 집중 공격할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물음표로 표시된 것이로군.
문득 내가 물었다.
“내가 시험을 클리어 안 하고 평생 아레나에서 눌러 살려고 한다면?”
“해보세요. 그게 가능하면 말이죠.”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아기 천사였다.
물론 싫다.
내일이면 차지혜랑 결혼해야 한단 말이야. 엄청 비싸고 럭셔리한 호텔 예식장에 예약해 놨거든? 예행연습까지 다 해놨다고.
시험 얼른 클리어하고 결혼해야지.
“문이나 열어.”
“예, 예.”
아기 천사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시험의 문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뒤에서 아기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험자 김현호.”
“왜 인마?”
“제가 많이 좋아했던 것 알죠?”
“꺼져.”
아기 천사의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저 재수 없는 새끼가. 하지만 나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열린 문틈으로 밝은 빛이 쏟아진다. 우리는 손을 잡고 빛을 향해 나아갔다.
***
아레나에 도착하자마자 가공간에서 교신기를 꺼내 오딘에게 통신을 걸었다.
“여보세요?”
-오셨구려. 시험은 우리의 예상대로였소.
“예, 카자드 푼 아만을 죽이는 거죠.”
-그런데 제한 시간이 물음표로 표기되었던데 그쪽도 마찬가지요?
“예.”
내가 죽을 때까지라는 사실은 오딘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비밀은 최대한 적은 사람만 간직할수록 좋았다.
-일단은 이쪽으로 오시오. 다른 시험자들에게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나눠주고, 정찰위성도 띄웁시다.
“예, 내일 당장 찾아뵐게요.”
그날 하루는 차지혜와 함께 여유롭게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영지의 업무를 수석 집무관 에드워드에게 맡겨놓고 울펜부르크 백작가로 출발했다.
나와 차지혜는 물론 우리 영지에 머무르고 있던 데이나도 함께였다.
독수리를 타고 쉬지 않고 날아서 불과 하루 만에 울펜부르크 백작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오.”
“일단 인공근육슈트랑 교신기부터 드릴게요.”
“그리하시오. 내 금고에 잘 보관하겠소.”
나는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잔뜩 꺼내놓았다.
우리와 함께 작전에 참가할 상위 랭킹의 시험자들에게 지급해 줄 물품이었다.
“이제 정찰위성을 띄워봅시다.”
“그러죠.”
우리는 함께 정찰위성을 발사할 포인트를 향해 이동했다.
정찰위성의 발사체는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띄울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었다.
가공간에서 정찰위성을 꺼내고 정확한 포인트에 세워놓았다.
정찰위성과 연결되어서 컨트롤하는 노트북도 함께 꺼냈다.
오딘과 데이나가 서로 상의를 하면서 정찰위성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은 노르딕 시험단에 머무르면서 연구원들에게 사전 교육을 받은 듯했다.
“이제 발사를 하면 될 겁니다.”
데이나는 전원 버튼을 눌러 정찰위성을 작동시키며 말했다.
“좀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발사체는 비행마법으로 작동하니 반발력이 주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트북으로 발사 각도를 이리저리 조정한 데이나는 노트북 키보드로 뭐라고 타이핑한 뒤 엔터를 눌렀다. 그러자,
부우우웅!
거대한 정찰위성이 서서히 공중으로 띄워 올려졌다.
천천히 공중에 오르던 정찰위성은 서서히 솟아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파아아아아앗!
급기야는 엄청난 가속도를 내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됐나요?”
“예, 이제 작동이 잘되는지 확인만 하면 됩니다.”
데이나는 노트북을 조작하며 정찰위성의 기동을 살폈다.
3D 지도에 정찰위성의 이동경로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었던 정찰위성은 마침내 녹색 점으로 바뀌었다.
데이나는 웃으며 말했다.
“본궤도에 올랐군요. 성공입니다.”
좋았어!
기쁨에 주먹을 불끈 쥔 나는 데이나에게 말했다.
“한번 정찰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시험해 봐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아만 제국의 궁전 쪽을 정찰해 보죠.”
데이나는 노트북으로 정찰위성의 고성능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조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아만 제국 궁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나 선명한 사진이었다.
“우와!”
나는 감탄을 했다.
데이나는 궁전의 돔 쪽을 확대했다.
“제가 이 돔을 뚫고 나와 도망쳤었습니다. 수리 중인 것이 보이지요?”
정말로 돔의 구멍 난 부분을 몇몇 인부가 붙어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만 제국군도 한번 살펴볼 수 있겠소?”
“일일이 눈으로 살피며 찾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일단 어느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정보라도 알아야 합니다.”
“아마 지금쯤 국경 쪽에 배치되어 있을 거요.”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데이나가 노트북을 바쁘게 조작했다.
한참을 조작한 끝에 마침내 한 큰 규모의 무리가 주둔해 있는 풍경 이미지가 화면에 들어왔다.
아만 제국군의 진영이었다.
“됐군!”
오딘이 크게 기뻐했다.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해 본 그로서는 정찰위성이 보내주는 이 첩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됐소. 이걸로 전쟁은 우리의 승리나 다름없소.”
“그럼 이제는 김현호 씨가 제안한 작전을 실행하는 일만 남았군요.”
“그렇소. 리트린 씨가 수고를 해주시오, 아만 제국군의 동향은 물론이고 카자드 푼 아만의 움직임까지 체크해야 하오. 아렌드 왕실은 물론 교신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측 시험자들도 감시하고 있으니 힘을 합하면 정보전에서는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시작이 좋았다.
일단 가장 큰 문제였던 정찰위성이 계획대로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카자드 푼 아만이 우리의 예상대로 갈색산맥에 직접 나타날까?’
만약에 나타나지 않고 지하궁전에 틀어박혀 있으면 시험은 예정보다 훨씬 어려워질 터였다.
그때는 전쟁에서 아만 제국군이 패퇴할 때까지 오랜 시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울펜부르크 백작가에 머물렀다.
데이나가 매일 정찰위성으로 체크하는 적들의 동향도 보고, 이곳에 합류할 시험자들도 기다렸다.
카자드 푼 아만을 처치하는 작전에 참가하는 시험자는 모두 33명.
대부분 카르마 총량 세계 랭킹 50위권 이내에 드는 공인된 강자들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만도 오딘, 마리 요한나, 데이나 리트린, 그리고 차지혜가 있었다.
차지혜의 경우 카르마 총량을 공개하지 않아 랭킹이 낮았지만, 오러 컨트롤 상급 1레벨을 달성해서 오러 마스터가 된 그녀는 이 작전에 낄 자격이 충분했다.
아무튼 일단은 우리들 5명이 울펜부르크 백작가에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가 작전 참가 시험자가 하나둘씩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바로 일본의 시험자 나카이 슈헤이였다.
170㎝ 정도의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졌지만 과묵하고 신중한 인상이 돋보이는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잘 오셨어요.”
“또 뵙는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며 터놓고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는 오러 컨트롤을 상급 2레벨까지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것만 봐서는 차지혜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의 전투 방식의 핵심은 바로 암영보라는 보조스킬이었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렸을 때 발소리가 사라지며 그림자 속에서 가만히 있을 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보조스킬로, 그를 최고의 자객으로 만들어준 핵심 노하우였다.
“일단은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받으시오. 인공근육슈트는 어서 익숙해지셔야 할 거요.”
오딘은 금고에서 두 가지 물품을 슈헤이에게 지급해 주었다.
슈헤이는 완력을 증폭시켜 주는 인공근육슈트의 성능에 놀라면서도 곧바로 저택 내부의 수련장에서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시험자가 되기 전, 살아생전에도 유명 검도 도장의 사범이었다는데 과연 성실했다.
그는 이따금씩 오딘, 차지혜 등과 대련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밖에도 시험자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울펜부르크 백작가는 오딘의 중요한 손님들로 득시글거리게 되었다.
오딘의 개인 수련장은 인공근육슈트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시험자들로 득시글거리게 되었다.
***
지하궁전.
죽음을 이기고 돌아올 지배자를 위해 마련된 황금권좌.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권좌는 그 정당한 주인이 걸터앉아 있었다.
현 아만 제국의 군주인 술탄 사록도 그 황금권좌에 앉은 이의 오른편에 서 있어야 했다.
황금권좌의 주인, 카자드 푼 아만은 오만한 눈빛으로 발아래에 부복해 있는 검은 머리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리창위라고 했나.”
“예, 폐하!”
리창위의 음성에 긴장감이 있었다.
술탄 사록을 상대할 때조차 여유 만만했던 리창위도 카자드 앞에서는 특유의 뻔뻔한 태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라고?”
“예, 시험 내용은 폐하를 처치하는 것이고, 제한 시간은 특이하게도 물음표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물음표라. 제한이 없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제한이라고 표기되지 물음표로 애매하게 나타나진 않았을 겁니다.”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게로군. 뭐, 상관없다.”
카자드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나는 곧 두 개의 세계를 전부 지배하는 사상초유의 군주가 될 테니까!”
그렇게 최후의 시험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