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8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84화
한국아레나연구소의 임철호 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험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하여 정부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말이죠?”
-일단 모든 세금 면제와 국가유공자 1급, 그 밖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혜택이 주어질 겁니다. 이 점은 다음 시험에 임하기 전에 모든 시험자에게 주어질 겁니다.
“그것뿐인가요?”
-다음 시험을 클리어할 시 포상금을 공헌도에 따라 1억에서 10억까지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시험을 클리어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시험자들에게 그 정도 상금이 의미가 있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정도가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에 투자한 몇몇 대기업의 후원까지 받아서 간신히 재정을 마련한 보상입니다.
임철호 소장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나라가 무너지면 이 정도의 혜택마저도 더는 누릴 수 없게 될 겁니다. 현대의 사회적 인프라가 전부 무너진 세상은 시험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난 국가의 보상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미 이루어놓은 자산도 어마어마하니 말이다.
다만 다른 시험자들이 딴생각하지 않고 시험 클리어에 임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들었을 뿐이었다.
일단 정부가 약속한 보상이라면 적어도 시험자들이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에도 장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실력 있는 시험자들은 이미 가진 재산도 많을 테고, 실력 없는 시험자들은 저만한 혜택에도 감지덕지겠지?’
게다가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설령 시험을 클리어하지 못한다 해도, 시험은 종료된다.
그때에도 시험자로서 주어진 스킬들이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아기 천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레나와 하나로 합쳐진 그 세계가 시험자들에게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추가적으로 이전까지의 모든 범죄 혐의를 경중을 가리지 않고 면책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형사범죄를 저질렀던 행실 나쁜 시험자와 일부 한국인 타락한 시험자를 끌어안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 정도면 제 생각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다만 저도 한 사람의 시험자로서 말씀드린 거지 모든 시험자를 대변한 건 아니니까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모쪼록 다음 시험을 꼭 클리어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다음 시험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
또 뭐지?
임철호 소장은 다른 용건을 꺼냈다.
-전 세계 아레나 관련 조직들이 회합을 열어 대책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아레나 기구인가요?”
-아니요, 비공식적인 회합입니다. 세계 일부 기관은 제외했는데, 대표적으로 중국 시험단처럼 타락한 시험자들이 주도하는 곳은 제외했습니다.
요컨대, 노르딕 시험단처럼 확실하게 시험을 공략할 의지와 당위성이 뚜렷한 국가 기관만 모이기로 했다는 것이군.
“그런데요?”
-시험자들이 없이는 결국 탁상공론밖에 되지 않는 회의가 됩니다. 그래서 각 기관에서 대표 격인 시험자들을 한두 명씩 참석시키기로 했는데, 저희 측에서는 역시…….
내가 한국 아레나 시험단의 대표라는 것이군.
하긴 세계 랭킹 7위인 내가 아니면 누가 한국 시험자를 대표하겠나.
“지혜 씨도 같이 참석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차지혜 씨도 현호 씨의 팀원이고 연구소 관계자 출신이니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그녀도 얼마 전에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 내로라하는 시험자들을 전부 모아놓고 봐도 꿀릴 게 없다.
“알겠습니다. 언제 참석해야 하죠?”
-사흘 뒤에 코펜하겐입니다.
“덴마크요?”
-예, 아무래도 노르딕 시험단이 가장 신뢰성 있는 공략파 집단이고, 현재 다음 시험 클리어의 핵심 인물은 오딘이라고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있는 코펜하겐이 회합 장소가 되었지요.
“좋습니다. 그때 같이 가죠.”
***
약속대로 사흘 뒤 우리는 덴마크로 향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에서 집 앞까지 차량이 데리러 왔기 때문에 여행은 매우 간편했다.
공항에서도 절차 없이 출국하여 박진성 회장이 빌려준 전용기를 탔다.
살짝 곤란한 점도 있었다.
스튜어디스 이수현 때문이었다.
나를 본 그녀는 내 옆에 있는 차지혜를 흘깃 보더니 눈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명백하게 내가 느끼는 어색함을 즐기는 눈치였다.
코펜하겐 국제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텅 빈 호텔.
회합을 위하여 아예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고 했다.
데스크에서 이름을 밝히고 키를 받았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임철호 소장은 다른 방 키를 들고 사라졌다.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푼 차지혜는 홀로 자리에 앉고 명상에 잠겼다. 상급 1레벨이 된 오러 컨트롤에 적응하는 훈련이었다.
덕분에 심심해진 나는 실프와 카사를 불러다놓고 노닥거렸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로밍된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다. 전화한 장본인은 오딘이었다.
-오셨소?
“예, 호텔이에요.”
-잘됐군. 우리도 코펜하겐이요.
“마리랑 함께 있나요?”
-벨라도 함께 있소.
오오, 벨라!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오딘의 딸이 생각났다.
나는 차지혜를 명상에서 깨우고는 함께 놀러 나갔다.
“현호!”
마리가 먼저 비호처럼 덤벼들어 내 품에 안겼다.
이를 보고 금발의 자그마한 소녀가 눈을 빛냈다.
“히노!”
벨라도 달려와 내게 안겼다. 키가 안 돼서 내 다리에 매달린 것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벨라는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나는 오딘에게 물었다.
“이제 괜찮아진 건가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데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완쾌된 것 같소. 물론 아직 방심할 수 없지만 말이오.”
“다행이네요.”
“다 현호 씨 덕분이오.”
그렇게 오딘과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차지혜는 옆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안아주고 있는 벨라를 보는 것이겠지. 내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을 잘 알거든.
나는 벨라를 번쩍 들어 차지혜의 품에 안겨주었다.
“자, 여긴 벨라예요. 벨라, 이쪽은 차지혜야. 지혜.”
“지에?”
“지혜.”
“지에?”
“음, 그냥 지에 하자.”
얼떨결에 차지혜에게 안겨진 벨라는 배시시 사랑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차지혜는 심장을 직격 당한 것처럼 멍하니 벨라를 보았다. 아, 반했구나, 반했어.
“자, 식사나 하러 갑시다. 벨라가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성화였거든.”
그렇게 말하는 오딘의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건 그만큼 딸이 건강하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죠.”
그렇게 우리는 걸음을 옮기는데, 얼마 안가 내가 어색한 목소리로 차지혜에게 한마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벨라는 내려놔야죠?”
“아, 그렇군요.”
그제야 허둥지둥 벨라를 내려놓는 차지혜였다.
그녀의 행동거지에 ‘허둥지둥’이라는 표현을 붙이게 되다니.
‘시험 끝나면 결혼하고 얼른 애 낳아야지.’
“결혼하면 애를 갖고 싶습니다.”
“헉!”
아, 깜짝이야.
차지혜의 입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이 튀어나와서 화들짝 놀랐다. 순간 아기 천사처럼 내 생각을 읽은 줄 알았다.
“그러죠. 지혜 씨 닮은 딸이면 좋겠어요.”
“현호 씨 닮은 아들도 귀여울 것 같습니다만.”
“안 돼요. 나 닮아서 공부 못하면 큰일인데.”
“잘하게 만들면 됩니다.”
순간 오싹해졌다. 직업 군인 출신인 차지혜라면 충분히 나 닮을 아들을 성실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그녀 같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오?”
우리의 대화가 한국어라 알아듣지 못한 오딘이 물었다.
나는 우리가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딘은 놀라워하면서도 축하해 주었다.
“축하하오. 부디 귀여운 자식을 낳기를 바라겠소. 그래 봤자 벨라만큼 사랑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오.”
오랜만에 나타난 오딘의 팔불출기였다.
“현호, 축하해.”
다행히 마리는 우리의 결혼 사실을 듣고서도 난리법석을 피우지 않았다. 그저 환히 웃으며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곁에 매달려서 갖은 애교를 부리고 말썽 피우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나의 아내라고 내 가족들에게 소리쳐서 곤란하게 만들었던 일들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어린아이 같았던 그녀의 정신도 어른스럽게 성숙해 있었다.
나는 그녀도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를,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
함께 식사를 하고 어울려 놀다가 사람들이 나타나 벨라를 데려갔다. 오딘이 고용한 사람들인 모양인데, 벨라는 익숙한 듯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떠났다.
“이제 갑시다.”
“예.”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다.
통째로 빌려서 사람 없이 한산해야 했을 호텔 로비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각국 아레나 관련 기관의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로비에 들어선 우리를 보더니 수군거렸다. 중간중간에 우리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레나어도 들을 수 있었다.
“오딘과 마리 요한나군.”
“함께 온 동양인 커플은 누구지?”
“남자는 한국의 김현호다. 오딘과 절친하다는 정보가 있었어.”
“호오, 저게 뜬금없이 랭킹 7위로 나타난 김현호라고?”
“맥런 가문, 데이나 리트린 등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정보도 있지.”
“의외로 다음 시험의 핵심 인물은 오딘이 아니라 저 자일지도 몰라.”
다른 시험자들이 정황만으로 나를 알아보다니 놀라운 따름이었다. 이게 바로 유명인이 된 기분이구나 싶었다.
오딘은 그런 내 어깨에 손을 툭 치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소. 있다가 봅시다.”
“예.”
오딘은 그렇게 먼저 떠났다.
잠시 후, 노르딕 시험단의 소속으로 낯이 익은 관계자들이 우리를 커다란 강당으로 안내했다.
강당은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파티처럼 호사스럽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와인과 샴페인 등이 담긴 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종업원들,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담화를 나누는 각국의 사람들.
나로서는 처음 접한 그 신기한 풍경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때마침 임철호 소장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왔다.
“오셨군요.”
“예.”
“곧 시작될 모양입니다.”
잠시 후, 강당의 단상에 턱시도 차림의 오딘이 나타났다.
저래서 먼저 사라진 거였군.
마이크를 든 오딘이 입을 열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노르딕 시험단의 오딘이 인사드립니다.”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하는 오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은 이쪽 세계에서 그의 인지도를 실감케 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신비한 일을 겪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나날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딘이 말을 이었다.
“이제 그것을 끝마치고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 우리는 신이 내린 마지막 시험을 반드시 클리어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 일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또다시 박수를 쳤다.
그 말을 비장하게 듣고 있는 이들은 나와 같은 시험자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