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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8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83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한숨을 쉰 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나 말이 맞아. 사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은 모두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어. 그때 나는…….”
“뻥치시네.”
“거짓말.”
“아들, 그건 아니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세 식구의 지적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아, 역시 이건 안 통하네.
하는 수 없이 나는 등산로에서 구해준 진성그룹 이사의 눈에 들어 일을 소개받았고, 어쩌다 보니 정부와 진성그룹, 덴마크 정부가 얽힌 국책 사업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건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둘러댈 수 있어서 납득시키기가 편했다.
“아무튼 너희 결혼하기로 했다니까 엄마가 한시름 놨어, 얘.”
엄마는 누나와 현지를 슥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얘들 문제만 좀 해결되면 좋을 텐데…….”
누나와 현지가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참고로 현지가 하겠다고 설치던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적자 행진이었다.
“현지야, 내가 소개시켜 줄 테니까 진성그룹에 취직할래?”
“진짜?”
내 말에 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말 좀 잘해놓으면 계열사 어디에 꽂아주겠지.”
박진성 회장이 설마 그 정도 사소한 부탁도 안 들어줄까.
“할래, 할래!”
“쇼핑몰은 미련 버렸냐?”
“응, 다시는 내 돈 내고 사업하지 않을 거야. 난 머리가 돌이라 안 될 것 같아.”
창고에 쌓인 재고를 보더니 얘가 겸손을 좀 배운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박진성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아레나에서 최근 난리 났다는 얘긴 들었어.
“들으셨네요. 조만간 그 문제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근데 지금은 그거 말고 좀 사소한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뭔데?
“제 여동생 취직 좀…….”
-…….
“애가 좀 멍청하고 게으르긴 한데 눈치는 빨라요. 괜찮죠?”
-이놈아, 네 눈엔 내가 옆집 할아버지로 보여? 고작 그 얘기하려고 나한테 전화한 거야?
“그럼요.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 실장한테 말해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네, 돈 적당히 받고 일은 많지 않은 자리로 부탁해요. 얘가 일 많은 것도 좀 싫어해서요.”
-끊어!
전화가 끊겼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현지에게 말했다.
“해결됐다. 조만간 면접 보러 오라고 할 거야.”
“우와! 진짜? 나 진성그룹 다니는 거야?”
“그래, 적당히 한가한 자리로 달라고 해놨으니까 그렇게 해줄 거야.”
“나이스! 오빠 완전 땡큐!”
현지는 희희낙락해서 음악 없이 클럽 댄스를 출 기세였다.
“아들, 현지 취직된 거야?”
“응, 엄마.”
“어머머, 아들 정말로 대단한 사람 됐나봐. 그런 대기업에 동생도 꽂아주고. 다른 멀쩡한 애도 아니고 우리 현지인데.”
“나도 그것 때문에 좀 걸렸는데, 내 부탁이니까 쟤가 술 먹고 면접 보러 가지 않는 이상 들어줄 거야.”
“어머, 잘됐다. 그럼 이제 현주 시집가는 일만 남았네.”
“가, 갈 거야, 조만간. 아니, 언젠간…….”
누나답지 않게 기가 죽은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내가 결혼한다는 게 적잖은 데미지였던 모양이다. 가슴이 찡하다.
박진성 회장한테 전화해서 어디 남자 없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쌍욕을 먹을 것 같아서 못하겠다.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그때, 잠자코 우리 가족들의 코미디를 구경하고 있던 차지혜가 입을 열었다.
“직업 군인도 괜찮습니까?”
“에엑?!”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현지와 내가 화들짝 놀랐다.
“별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군인이었던 시절에 알고 지냈던 부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차지혜는 누나에게 말을 이었다.
“여자들이 직업 군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장가 못 간 남자가 많습니다.”
“전 군인 좋아요.”
냉큼 대답하는 누나.
“박봉에 시간도 많이 못 내는 문제가 있는데…….”
“아무 상관없어요. 남자답기만 하면 돼요.”
“특수부대 엘리트들입니다.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남자가 그쯤 되어야 우리 누나를 감당하지.
차지혜도 말이 나온 김에 즉석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인사는 됐고 본론만 말하지. 혹시 여자 소개받을 생각이…… 있군. 알았다. 휴가 나올 수 있는 날짜를 문자로 보내라.”
전화를 끊은 차지혜는 누나에게 말했다.
“무조건 하겠답니다.”
“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못 들었을 텐데요?”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 자리에서 우리 삼남매의 문제가 모조리 해결될 분위기였다.
엄마는 무척 행복해했고, 누나의 울화도 한층 가라앉았다.
현지는 벌써부터 자기가 대기업 다니는 여자라고 친구들에게 자랑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 허락을 받았다.
흥이 난 김에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다.
중간중간, 차지혜는 예전에 부하였던 군인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자기는 여자 소개 안 시켜주냐는 불만 폭주한 것.
평소 연락하는 사람이 전혀 없던 차지혜는 졸지에 수많은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녀의 외로움도 해결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날 나는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시험을 끝내고 싶다고.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평범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

돌아와서는 사이좋게 카르마 보상에 들어갔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46
-카르마(Karma): +15,750
-시험(Mission): 마지막 휴식을 취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88일 11시간

지난 시험은 딱히 힘든 일이 없었는데도 카르마 보상이 많은 편이었다.
내가 아만 제국과 싸울 준비를 잘해놓았다는 증거였다.
뭐, 영지를 사실상 통치한 건 차지혜지만 오딘이나 엘프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역할이 내 공로이다 보니 성적이 높았다.
그래도 차지혜도 무려 9,500카르마를 획득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마지막 카르마 보상이 될 가능성이 컸다.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으니 특히나 신중하게 생각해서 최선의 보상을 받아야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스킬을 보여줘.”

-시험자 김현호가 습득한 모든 스킬을 보여드립니다.

-메인스킬: 정령술(상급 5레벨).
-보조스킬: 체력보정(중급 5레벨), 길잡이(초급 1레벨), 순간이동(중급 1레벨), 시력보정(초급 1레벨), 동물조련(마스터).
-특수스킬: 스킬합성.
-합성스킬: 바람의 가호(마스터), 불꽃의 가호(마스터), 운동신경(마스터), 생명의 불꽃(중급 4레벨), 투과(마스터), 가공간(마스터), 사격(초급 1레벨), 탄약보정(마스터), 리로드, 동체시력(마스터), 투시(초급 1레벨), 궤도감지, 성장촉진(마스터), 동물추적, 콜, 갈퀴바람(초급 5레벨), 발톱강화(중급 1레벨).

-잔여 카르마: +15,750

참고로 상급 4레벨이었던 정령술은 지난 번 시험 도중에 레벨이 하나 올랐다.
실프와 카사에게 매일 하나씩 생명의 불꽃을 먹였는데, 그게 이제야 효과를 본 것이다.
바로 전 시험 때 2년간 아레나에서 보내는 동안 꼬박꼬박 먹인 보람이 있었다.
상급 4레벨에서 5레벨로 올리려면 4,800카르마가 필요한데, 그건 거의 웬만한 시험 하나를 클리어한 보상이나 다름없었다.
15,750카르마라…….
뭔가 좀 애매한 수치였다.
메인스킬인 정령술에 전부 투자한다고 해도 레벨을 두 단계까지밖에 못 올린다.
상급 6레벨로 올릴 때 5,100카르마, 7레벨 5,400카르마, 8레벨 5,700카르마.
즉, 8레벨까지 16,200카르마가 필요한데 아슬아슬하게 모자란다.
이제 와서 레벨 두 단계 올린다고 극적인 효과가 발휘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올리다 말았던 갈퀴바람과 발톱강화에 더 시선이 갔다.

-갈퀴바람(합성스킬): 발톱으로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켜 적을 공격합니다. 동물조련(보조스킬)으로 복종시킨 조류 애완동물에게만 적용됩니다.
*초급 5레벨: 쿨타임 1분

-발톱강화(합성스킬): 발톱이 강화되어 단단하고 예리해집니다. 동물조련(보조스킬)으로 복종시킨 애완동물에게만 적용됩니다.
*중급 1레벨: 발톱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집니다.

이 두 스킬을 아예 마스터까지 올려 버려서 갈큇발 독수리들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석판에 대고 말했다.
“갈퀴바람과 발톱강화를 마스터했을 때를 보여줘.”
그러자 석판의 글씨가 꾸물꾸물 변했다.

-갈퀴바람(합성스킬)과 발톱강화(합성스킬)를 마스터했을 때를 보여줍니다.
-갈퀴바람(합성스킬)
*마스터: 무제한 (-4500)
-발톱강화(합성스킬)
*마스터: 발톱이 오러처럼 단단해집니다. (-4100)

-잔여 카르마: +15,750

‘이건 정말 좋은데?’
갈퀴바람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니!
갈큇발 독수리 10마리가 편대비행을 하며 무제한으로 갈퀴바람을 난사한다면, 거의 폭격기 수준이었다.
아만 제국군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발톱강화도 마찬가지였다.
오러와 동등한 강도라니! 오러 엑스퍼트 급의 기사 10명을 둔 것과 같은 꼴이었다. 물론 날아다니며 갈퀴바람까지 난사할 수 있으니 가치는 그 수십 배다.
‘좋아, 결심했다.’
나는 두 스킬을 마스터까지 올려버렸다.

-잔여 카르마: +7,150

이제 이 카르마는 어디다가 쓴다?
‘정령술 레벨이나 하나 올릴까?’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좀 더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다가 나는 문득 차지혜의 카르마 보상이 궁금해졌다.
“카르마 보상은 어떻게 받으실 생각이에요?”
“오러 컨트롤을 올릴 생각입니다.”
“얼마나 올릴 수 있는데요?”
“지금 가진 카르마라면 중급 10레벨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아쉽구나.
레벨을 하나만 더 올리면 상급 1레벨, 즉 오러 마스터의 경지인데.
나는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상급 1레벨까지 카르마가 얼마나 부족한데요?”
차지혜는 잠시 계산을 하더니 말했다.
“3,400카르마가 부족합니다.”
“아!”
그제야 나는 내 남은 카르마를 어디다가 써야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알아냈다.
“제가 3,500카르마를 줄 수 있어요. 그걸로 오러 마스터가 되세요.”
“제게 카르마를 양도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전 딱히 레벨을 올릴 만한 스킬이 없어요. 그보다 지혜 씨가 오러 마스터가 되는 편이 확실히 다음 시험의 결전에 도움이 될 거예요.”
“…….”
차지혜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한테 손해가 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난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시험은 다음 한 번으로 모두 끝나요. 스킬이든 카르마든 남겨서 뭐하겠어요?”
“현호 씨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머리를 왜 쓰다듬습니까?”
“습관이 돼서요.”
“이제 그만하십시오.”
“습관이 돼서 멈추지를 못하겠어요. 습관은 참 무섭네요.”
“…….”
차지혜를 대하는 나의 뻔뻔함은 나날이 레벨이 높아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난 1,000카르마짜리 아이템 백팩을 7개 사서 차지혜에게 양도했다.
그녀는 그것을 반값에 환불받아 3500카르마를 추가로 손에 넣었다. 그걸로 오러 컨트롤을 상급 1레벨까지 올렸다.
그녀 역시 오러 마스터가 된 것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한 번도 시험 클리어를 실패한 적 없었다던 오딘보다도 빠른 성장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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