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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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9화
세이란 왕국 학살 사태.
일국의 군대와 국민을 닥치는 대로 학살해 버린 이 사건은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술탄 사록은 이번 학살 사태로 야만적인 잔인성을 드러내면서 모든 국가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 아만 제국군의 사기와 달리, 이 전쟁의 결과는 결코 아만 제국에게 국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일단 비인간적인 살육에 궁지에 몰린 세이란 왕국은 뒤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끝까지 항전하여 아만 제국군에 적잖은 인적·물적 손실을 입혔다.
게다가 모든 국가가 술탄 사록의 야심을 깨닫고는 아만 제국을 경계하고 적대하게 되었다.
특히나 아렌드 왕실이 작심하고 술탄 사록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어, 반 아만 제국 세력을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이대로 모든 국가가 아만 제국에 대항하는 연합을 맺게 된다면, 제아무리 군사강국인 아만 제국이라 해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대륙 정복은커녕 국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아만 제국 내부에서도 식견이 있는 인사들은 승전에 도취되지 않고 우려를 표했다.
물론 술탄 사록의 잔인성을 알게 되었기에, 대놓고 반대를 하는 용감한 이는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어.’
최악의 악명을 떨치게 된 술탄 사록도 이런 결과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을 감수해서라도 영혼의 파편을 최대한 빨리 대량으로 모아야 했다.
천사들의 사주를 받은 시험자들이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 오는 상황.
특히나 한 번도 적의 침범을 받은 바가 없었던 성지, 지하궁전에서 대사제가 살해당하고 의식을 방해 받은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술탄 사록이었다.
불안감이 전보다 더욱 술탄 사록을 압박했고, 결국은 어떻게든 선조 카자드 푼 아만의 부활을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감이 심해졌다.
설령 세상 모든 나라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위대한 카자드 푼 아만을 부활시킨다면 문제없다고 여겼다.
‘그분만 돌아오신다면 모든 곤경을 해치고 다시 한 번 하나 된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종교화된 재래 결사대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었다.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변질되지 않고 목적을 이루도록 종교화한 술탄 카자드의 조치가 이런 맹신적인 판단을 낳게 된 것이었다.
꼭 그런 안배가 아니더라도, 대륙을 정복해 전 인류를 발아래에 두었던 술탄 카자드는 전설을 넘어, 신화로 기억되고 있었다.
술탄 카자드에 대한 민간의 신앙이 아만 제국 내부에 상당히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술탄 사록이 이 같은 맹신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튼 술탄 사록의 의도대로 부활의 의식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이란 왕국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살육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고, 넘쳐흐르는 죽음은 대량의 영혼의 파편을 남겼다.
재래 결사대의 흑마법사들은 학살 현장을 바쁘게 다니며 영혼의 파편을 모아왔다.
그렇게 영혼의 파편을 뭉쳐 만든 가짜영혼이 지하궁전의 마법진에 쌓이게 되었다.
과감하게 무리수를 둔 보람이 있어서, 순식간에 코앞에서 배신자에게 약탈당한 가짜 영혼을 충당하고도 남게 되었다.
모인 영혼력이 최소치를 넘기게 되자 술탄이자 최고 사제인 사록은 당장 의식을 진행케 했다.
석관과 마법진이 있는 육각형 방.
예의 그 200미터 위의 옥좌에 앉은 술탄 사록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섯 명의 대사제가 모여 있었다.
본래는 배신자의 만행으로 세 사람밖에 남지 않았지만, 흑마법사 둘을 새롭게 대사제로 승격시켜 자릿수를 채워 넣은 것이다.
굳이 머릿수 다섯을 채운 이유는 부활의 의식을 치르는 데 필요한 최소 인원이 바로 다섯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사제 이브랄, 대사제 젠키.”
“예, 폐하.”
“예, 최고 사제시여.”
이브랄과 젠키 두 사람이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새롭게 대사제로 임명된 이들로, 기존의 대사제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흑마도사였다.
“의식에 사용되는 주문의 술식은 모두 습득하였느냐?”
“예, 폐하!”
“언제든 의식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최고 사제시여.”
“좋다. 그럼 지금 당장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이번에는 결코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옛!”
그리고 의식이 시작되었다.
오온―
오온―
오온―
대사제들이 입을 모아 소리 내는 기이한 울림이 육각형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5인의 대사제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흑마력의 줄기가 서로 얽혀서 밧줄 꼬듯이 꼬아졌다.
꼬아진 흑마력의 밧줄이 핏빛 마법진으로 향했다.
파아앗!
시뻘건 광채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술탄 사록은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오랫동안 대를 이어 매달린 사명이 마침내 자신의 손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인류 사상 가장 위대한 지배자가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카자드 푼 아만.
그가 돌아와 아만 제국에 다시 한 번 영광을 가져다주리라.
영원히 부흥케 하리라.
이 세상 만물을 발아래에 놓고 불멸토록 군림하리라!
결국 인류는 하나 되어 다시는 분열되어 서로 다투지 않을 것이다.
파아아아앗―!
마법진의 붉은 광채가 점점 진하게 폭사되었다.
의식이 끝에 이르자 석관에서 기하학적인 문양이 황금빛 무늬로 나타났다.
그 문양에는 까마득히 수준 높은 술식이 수없이 담겨져 있었다. 아마 저걸 본 마법사는 누구나 기절할 정도로 경악할 터였다.
의식이 끝났다.
할 일을 마친 대사제들은 아직도 붉은 광채를 쏟아내는 마법진을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했다.
수백 년에 걸쳐 매달린 대업. 절대로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술식에 오류가 발생해 부활의 의식이 실패로 돌아가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만약에 술탄 카자드가 남긴 술식에 실수가 있었다면 그간의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덜컹!
석관의 뚜껑이 반으로 갈라졌다.
“오오오!”
“마, 마침내!”
대사제들이 흥분에 차 소리를 질렀다. 술탄 사록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드르르륵.
마침내 절반으로 갈라진 석관이 양쪽으로 열렸다.
술탄 사록은 200미터 상공의 옥좌에서 뛰어내렸다. 비행 마법으로 천천히 활강하여 바닥에 착지했다.
위대한 절대자가 돌아오는 순간인데 감히 높은 옥좌에서 내려다보며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열린 석관 내부에 주목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성공인가?
실패인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석관 안에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장본인은 아직 일어서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진의 붉은 광채가 멎었다.
석관의 황금빛 문양도 사라져 버렸다.
무거운 정적 속에서 술탄 사록과 대사제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321년이 지났구나.”
석관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나직한 중저음의 굵직한, 만인의 머릿속에 파고드는 카리스마 넘치는 음성이었다.
“예, 예! 선조님. 말씀대로 정확히 321년이 흘렀습니다.”
술탄 사록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려 하며 대답했다.
“너는 사록 푼 아만이더냐?”
“예, 선조님.”
놀랍게도 카자드는 까마득한 세월 간 잠들었다가 막 깨어났음에도 그를 알아보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은 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통치 시스템에 저장된 기록이 너무 많구나. 전부 훑어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라.”
“……!”
모두가 놀랐다.
통치 시스템!
대륙을 정복한 카자드 푼 아만이 드넓은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고안한 마법적 사회체계였다.
왕족 및 귀족을 증명하는 신분증의 인증마법 또한 이 통치 시스템과 연결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카자드는 그 통치 시스템의 지난 기록을 전부 열람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수백 년의 지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엄청난 마법적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니, 흑마법을 익힌 그들로서는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정말로 눈앞의 저 존재가 신처럼 보였다.
“이럴 줄 알았지. 내가 죽은 지 15년도 되지 않아 통치 시스템이 미치는 범위가 크게 줄었군.”
“송구합니다. 선조님께서 잠드신 후에 각지에서 역도들이 들고 일어나…….”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 했다.”
“헉, 예!”
술탄 사록은 송구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카자드는 통치 시스템의 기록을 계속 훑었다.
아만 제국의 영토가 줄어들면서 통치 시스템에 기록된 정보의 양도 크게 줄었다.
누가 언제 영지를 인수받았고 작위를 받았는지 등 시시콜콜한 데이터들이 까마득했다.
하지만 그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카자드는 핵심만 추려 읽으며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했다.
그 기나긴 작업이 끝나고서야 카자드는 술탄 사록을 바라보았다.
“사록 푼 아만.”
“예, 선조님!”
“나를 깨우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크흑, 예!”
술탄 사록은 울컥 밀려오는 감격의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감격을 만끽할 새도 없이, 카자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구나.”
“예……?”
“정말 내가 남긴 유지대로 부활의 의식을 치른 것이냐?”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군. 무언가가 잘못된 느낌이야.”
카자드는 부활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만지작거렸다.
‘설마?’
술탄 사록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느꼈다.
짚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 실은 선조님…….”
“말해라.”
“실은 완전히 선조님께서 남기신 유지 그대로 실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남겨놓으셨던 석관과 마법진의 술식을 연구하여서 부활의 의식에 필요한 영혼력의 최소치를 발견…….”
“설마, 부활에 필요한 최소치만 채웠단 말이냐?”
카자드는 딱딱하게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술탄 사록은 고개를 조아렸다.
“예, 선조님.”
“이런 멍청한―!!”
그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술탄 사록과 대사제들이 공포에 질려 납작 엎드렸다.
카자드는 분노로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부활에 필요한 영혼력의 최소치 따위를 내가 몰라서 말 안 한 줄 아느냐!”
“서, 선조님?!”
“많은 영혼력이 필요했던 이유는 내가 완전한 존재로 부활하기 위함이었단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는……!”
“이 육신에 얼마나 많은 술식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부활, 불노, 불사, 불욕(不慾), 강화! 그 모든 술식으로 완전한 존재로 탈바꿈된 육체의 그릇을 채우는 데 필요한 영혼력이었다. 그런데 그 수치를 모두 채우지 않은 채로 날 깨워 버렸어!”
“채, 다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굶주린 자는 필연 식(食)을 탐한다. 영혼력이 부족한 채 영원히 채워지지 않으면 어찌 될 것 같으냐?!”
“그, 그것이…….”
“난 남의 영혼을 끝없이 탐하는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놈아!”
술탄 사록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영혼을 탐하는 괴물이라니!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허허, 멸하지 않는 것은 없다더니, 이 또한 운명이로구나.”
쓸쓸하게 중얼거린 카자드는 한동안 눈을 감고 침묵했다.
술탄 사록은 오열했다.
자신이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카자드가 말했다.
“어서 날 죽여라.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