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7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8화
시험이 시작한 지 1년이 흘렀다.
불과 1년밖에 안 지났음에도 우리 영지는 놀라우리만치 발전했다.
영지의 치안이 좋아지고 대외 관계도 안정화되고, 교역소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유입되는 인구가 꾸준히 늘었다.
특히 교역소는 처음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몰려든 상인들로 형성된 거품이 빠졌지만, 꾸준히 엘프들과 거래하는 상단이 있어 영지 재정에 큰 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영지가 누리는 호황에는 또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바로 대륙 북부에서 촉발된 전운(戰雲)이었다.
반년 전, 아만 제국은 데이나 리트린의 예견대로 전쟁에 나섰다.
아만 제국의 현 술탄 사록이 첫 타깃으로 결정한 것은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세이란 왕국이었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벌어진 아만 제국군의 침공에 세이란 왕국은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아만 제국이 내건 명분은 반역도들을 진압하고 잃은 영토를 수복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명분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존하는 아레나의 모든 국가는 대륙을 통일했던 아만 제국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건국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만 제국의 입장에서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반역도들인 셈이었다.
게다가 아만 제국군은 점령한 세이란 왕국에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엄청난 살육이 자행되었다.
반역도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명분이었는데, 사실상 남의 나라를 선전포고도 없이 침공해서 국민들을 학살한 셈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처럼 광기에 차 있는 술탄 사록이었다.
아렌드 왕국을 필두로 각국의 맹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아렌드 왕국의 국왕 알세르폰 3세는 작심하고서 술탄 사록을 비난했고, 사특한 흑마법사 무리와의 연계 의혹을 폭로해 화제를 모았다.
세이란 왕국에서의 무자비한 학살도 사악한 흑마법을 위함이라고 주장하며 아만 제국에 대항하는 대동맹의 결성을 제안했다.
술탄 사록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일축시켰지만 이미 다른 국가에서도 흑마법사들의 암약에 대해 약간이나마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무튼 현재 세이란 왕국 영토에 주둔 중인 아만 제국군의 진군이 어디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면서, 대륙 북부는 혼돈 상태였다.
전화(戰火)를 입은 세이란 왕국의 유민이나, 아만 제국군의 침략과 살육이 두려워 피난에 나선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남쪽에서도 최근 살기 좋다고 소문이 난 우리 영지로 유입되었다.
갑작스러운 난민 유입으로 치안에 문제가 생겼지만, 차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마침 일자리 없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병사를 모집해야겠습니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풍부한 자금으로 마침내 군대를 조직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우리 영지 군대의 상태는 정말 엉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군과 경비대를 합쳐서 병력은 5백여 명쯤 되는데, 그중 무기와 갑옷을 제대로 갖춘 무장 병력은 1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1백 명도 괴수 토벌에 동원되는 탓에 제대로 무장을 갖출 수밖에 없는 전력이었다. 그나마도 천을 덧대어 만든 클로즈 아머와 창, 활로 무장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병력은 창조차 쇠붙이 창날이 아닌,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만든 조악한 것을 사용했다. 더 웃긴 건 활도 부족해서 새총이나 슬링 따위를 가진 병사가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전쟁이 발생하면 영지의 백성들을 모두 징집해서 싸우는데, 무기와 방어구 등을 각자 알아서 지참해야 한단다.
당연히 몽둥이나 농기구를 들고 나온다고 했다.
무기가 없는 징집병은 싸울 때 돌멩이를 던진다나? 아무튼 엉망진창이었다.
정교한 진형과 전술 따윈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는 군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구나.’
차지혜는 이것을 뜯어고치기로 작정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군인 출신이라지만 아레나 사람이 아니라서 전문가가 따로 필요했다.
‘뭐, 전문가 구하는 거야 간단하지.’
마침 잘 아는 사람이 얼마 전에 크게 전쟁을 치러봤거든.
“오딘 씨?”
-반갑소. 영자는 잘 번영하고 있다고 들었소.
“하하, 오딘 씨 덕분이죠.”
-별말씀을. 그런데 무슨 일이시오?
“혹시 군대를 잘 다루는 전문가를 구할 수 없을까요?”
-군대를 재편성하는 문제 때문이시오?
“예, 시험자가 아닌 현지인 전문가로 구하고 싶어요.”
-흐음, 그야 어렵지 않지. 마침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보내주겠소. 전쟁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 도움이 될 거요.
“감사합니다.”
-레이먼 준남작이라는 사람인데,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으로 젊은 후임들에게 자기 보직(補職)을 물려주고 쉬고 있소. 슬슬 은퇴를 고려하는 중이던데 내 한번 설득해 보겠소. 대신 능력만큼 자부심도 강한 사람이니 직책이나 대우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오.
“물론이죠. 사실상 저희 영지 군대의 총괄 책임자가 될 거예요. 아예 기존 군대를 전부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정예군대로 새롭게 키우고 싶거든요.”
-좋소. 또 연락 주겠소.
그리고 며칠 후에 오딘이 통신을 걸어왔다.
-레이먼 준남작이 승낙했소. 새롭게 정예군대를 편성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했소. 아무래도 본인의 군인 철학에 딱 맞는 군대를 만들어보고 싶은 모양이오.
“잘됐네요. 그럼 언제 오겠대요?”
-언제라도 출발 가능하다고 했소.
“그래요? 그럼 제가 당장 독수리를 보낼게요.”
-도, 독수리를 말이오?
“네, 일은 빨리 추진할수록 좋으니까요.”
-레이먼 준남작이 나이도 있는데 비행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소. 한번 의향을 물어보고 연락하리다.
***
빼애애액―
갈큇발 독수리의 우렁찬 포효.
울펜부르크 백작가로 보냈던 첫째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바지 영주답게 열심히 게임을 하던 나는 그 소리에 노트북을 가공간에 집어넣고 침실에 딸려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첫째가 나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하강했다. 그리고 테라스의 난간에 멋지게 착지했다.
다만 그 첫째의 등 위에 타고 있던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이놈의 독수리는 매번 배려심이 없어. 여기서 어떻게 내리라고…….”
“내려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실프!”
-냐앙!
실프는 소환되자마자 내 마음을 읽고는 바람으로 사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엇?”
사내는 바람의 손길에 의하여 테라스에 사뿐히 착지했다.
50대 초중반쯤 된 사내였다.
거친 턱수염과 그을린 피부, 당당한 체격이 상당히 터프한 인상을 준다.
사내는 갑옷을 입고 등에 배틀 액스를 매고, 손에는 짐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듣던 대로 정령사이셨군요.”
나이든 사내는 바로 오딘이 보내준 전쟁 전문가, 레이먼 준남작이었다.
“오시는 길은 어땠나요?”
“핫핫, 좀 빡세긴 했습니다만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빨리 도착해서 좋군요.”
“그렇죠?”
“예, 백작 각하. 어쨌든 인사드리겠습니다. 울펜부르크 백작 각하를 모시는 기사, 레이먼 준남작입니다.”
“킴 백작입니다. 환영하죠. 제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을. 그런 기회를 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이제 막 도착해서 피곤할 테니 일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다. 하녀를 시켜 미리 준비해 둔 집으로 레이먼 준남작을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차지혜도 함께하는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협의에 들어갔다.
“앞으로 모든 병력이 제대로 무장을 갖추게 할 생각입니다.”
“지금 무기 보유 현황으로 봐서는 자금이 상당히 들겠습니다만…….”
레이먼 준남작이 영지군의 현황이 적힌 서류를 검토하며 우려했다.
내가 말했다.
“돈은 충분하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보다는 병장기를 구매하기 전에 병력들의 병과부터 다시 세분화해야 할 것 같은데요.”
“현재 영지의 전력을 살펴보면, 궁병의 비율이 너무 낮습니다. 새총과 슬링 따위는 버리고 활, 돈이 충분하다면 석궁으로 무장시킨 궁병이 150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병도 있어야 정찰이라도 시킬 수 있지요.”
레이먼 준남작은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성을 위해서 궁병을 150명까지 늘리고, 정찰과 기동전을 위해 경기병 50명을 육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은 병력은 창병과 보급병인데, 차지혜는 군수품을 수송 및 관리하는 보급병의 숫자를 100명 이내로 제한했다.
“그렇게 적어도 됩니까? 보급부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원활한 보급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놀라 묻는 레이먼 준남작에게 나는 갈큇발 독수리 10마리를 군수품 수송에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차피 공격보다는 영지 방어를 위해 육성하는 군대라 원정을 떠날 일도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앞서 제가 말씀드린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고도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체인메일로 무장한 중장보병도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기를 마련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훈련이죠. 석궁을 쓰는 궁병과 경기병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 영지에는 석궁을 다루는 병사도, 말을 타고 싸울 줄 아는 병사도 없었다.
다행히 레이먼 준남작이 방안을 내놓았다.
“울펜부르크 백작가에 군사 훈련 지원을 요청하시면 해결될 겁니다. 울펜부르크 백작가는 경험 많은 베테랑 병사가 많아서 훈련교관으로 파견할 인원이 충분합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거 오딘에게 신세를 많이 지는군.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면서 군대의 개편 계획이 수립되자 우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군수품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상단과 접촉해서 필요한 무기를 주문했다.
다행히 엘프들과 정기적으로 거래하는 상단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다.
교역소를 이용하며 내야 하는 세금에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가격을 많이 깎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경기병 육성 때문에 말 50필을 구매해야 했고, 창과 체인메일 등도 구매해야 했기에 자금이 부족했다.
부족한 부분은 마정을 팔아서 충당했다.
독수리들이 열심히 사냥 다니며 모아준 마정이 쌓이고 쌓여 가공간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였기에 여유가 있었다.
석궁으로 무장한 궁병이 150명.
주로 정찰에 쓸 경기병 50명.
중무장하여 백병전에 앞장설 중장보병이 1백 명.
창병 400명.
보급병 100명.
신병 300명을 새롭게 모집해서, 총병력 800여 규모의 영지 정규군이 탄생했다.
마정을 상당수 처분해서 자금을 확보한 덕에 군대 개편이 원활해졌다.
레이먼 준남작은 울펜부르크 백작가에서 훈련 지원으로 보내준 교관들과 함께 엉망진창인 군대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때쯤 대륙 북쪽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던 세이란 왕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포로로 사로잡힌 병사나 점령지의 백성이나 가리지 않고 학살당해, 현재 세이란 왕국령에 살아 있는 사람은 아만 제국군 병사밖에 없다는 끔찍한 소문도 함께였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여서 영혼의 파편을 모을 의도가 뚜렷했다.
저런 행보로 보면 카자드 푼 아만의 부활이 생각보다 빠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