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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76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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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6화


“콘월 공작은 현 아렌드 국왕 알세르폰 3세의 이복동생으로 야심이 많아 아직도 형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센델스 백작은 아렌드 왕국 북부 변경을 지키는 군벌인데, 자신의 인생이 변경에서 끝나는 걸 극히 꺼리는 눈치였지요.”
아이템 백팩을 소환한 데이나는 그 안에서 지도를 꺼냈다.
“여기가 라만 시, 그리고 센델스 백작이 관할하는 변경은 이쪽. 서로 가깝지요? 제 생각에는 루마드 집정관과 밀서를 주고받은 사람은 센델스 백작 같습니다.”
과연 재래 결사대의 대사제 출신.
데이나는 그 자리에서 어느 나라의 누구인지를 지목해냈다.
“어머나, 그럼 그 자식만 조사하면 시험 클리어겠네요.”
유지수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일단은 거의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100% 파고들지 마시고 사전 조사를 해보십시오.”
“그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죠. 고마워요!”
반색을 한 유지수는 날 돌아보며 계속 따발따발 말했다.
“야, 네 도움까지는 안 받아도 되겠다. 아만 제국도 아닌데 우리끼리 가도 충분할 것 같아.”
“괜찮겠어요?”
“아만 제국만큼 험하지는 않아. 지들이 켕기는 게 있는데 남들 눈에 띄게 대놓고 행동하지는 못하거든.”
아무튼 두 사람의 시험 문제는 그렇게 대충 해결이 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잠시 이곳에 머물다가 출발하겠다고 했다.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군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데이나.
“그러게요. 정말로 대사제이셨던 모양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니까요.”
“아무튼 이곳에 머물면서 도와주신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이미 시험 클리어 조건을 달성해서 이곳에서 시간을 때울 뿐입니다. 여러분을 도우면서 제게 추가 카르마 보상이 더 주어질 수도 있겠군요. 제 시험은 아프리트를 사살하는 것과 놈들의 부활 의식을 방해하는 것 두 가지니까요.”
데이나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시험은 대사제 아프리트 사살, 그리고 부활의 의식 늦추기.
나를 돕는 것이 부활의 의식을 늦추는 길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충분히 신뢰를 쌓아서 맥런 가문이 원하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차지혜가 이의를 제기했다.
“재래 결사대의 목적이 달성되어서 3대 술탄 카자드 푼 아만이 부활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흑마법이라는 부자연적인 수단으로 부활한 수백 년 전의 술탄이 집권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위대한 지배자라도 수백 년이나 흐른 뒤인데 군주로 인정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데이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저도 묻겠습니다. 이 영지를 인수 받아 영주가 되었을 때, 어떻게 인정을 받았습니까? 이 영지 사람들로서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신분증 하나만 가지고 와서 영주라고 말하는데 그걸 인정해 주던가요?”
이에 내가 말했다.
“그야 신분증과 영주 직인에 걸린 마법으로 인식되어서 증명이 가능했는…… 아!”
대답하다 말고 깨달은 나였다.
데이나가 설명했다.
“중국의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서 도량형을 통일해서 중국 대륙에 통일 국가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요. 술탄 카자드도 비슷합니다. 마법적 장치로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했지요.”
바로 내가 이 영지에 와서 영주 직인에 인증을 한 마법 장치도 카자드 푼 아만이 처음 도입했다는 설명이었다.
“통일한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려면 그런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했겠지요. 그 덕에 귀족을 사칭하는 경우도 없어졌고, 통치 체계가 탄탄해졌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이유만 있었을까요?”
“설마…….”
“전부 계산한 겁니다. 본인이 수백 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부활할 수 있을 거라는 점까지 예측을 했던 겁니다. 그때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남아 있지 않아도 다시 제위에 오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했지요.”
“…….”
수백 년 앞을 내다본 포석이라니.
자신이 부활했을 때, 그 마법적 장치로 인하여 저절로 군주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정말 소름 끼치는 인간이었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데이나가 말했다.
“아만 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시스템도 술탄 카자드가 남긴 술식을 베낀 겁니다. 통일된 대륙에 시스템을 심어놓았으니, 당연히 이미 구축된 체계를 그대로 갖다 썼겠지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만 제국의 마법 시스템에 부활한 술탄 카자드가 다시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술식이 숨겨져 있다고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걸 그대로 갖다 쓴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설마, 다른 나라 시스템까지 자동으로 술탄 카자드를 군주로 인식한다는 건가요?”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점령한 지역은 아주 손쉽게 통치 체계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점령지를 쉽게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건 실로 무서운 이점이지요.”
그건 마치 해킹에 의해 한 나라 전산체계가 송두리째 넘어간 거나 다름없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안배였다.
과연 시험의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

데이나를 식객으로 받아들인 채, 본격적인 영지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라고 하지만 내가 당장 뭘 하는 건 없었다.
차지혜는 수석 집무관 에드워드에게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영지 업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가만히 보고만 들으면서 배우기만 하던 그녀는 서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지시까지 내리게 되었다.
어쩜 저렇게 일을 잘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군대에서 보면 가끔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웬만한 선임자보다 일을 더 잘하는 타입이 있는데, 바로 딱 그런 타입이었다.
아무튼 차지혜가 일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계획대로 되었음에도 나는 어쩐지 잉여가 된 기분을 느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나 하다가 가공간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게임도 하고…….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기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의 무기력함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을 때였다.
때마침 차지혜가 십여 장의 서류를 가져와 나에게 내밀었다.
“직인을 찍어주십시오.”
영주 직인은 오로지 나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게 어떤 내용인데요?”
평소와 달리 나는 서류 내용에 대해 물었다.
설명을 듣고 나름대로 의견도 내면서 같이 일이라는 걸 해볼 참이었다.
“제가 다 검토한 사항이라 그냥 찍기만 하시면 됩니다.”
“아…… 그, 그래요?”
“내용은 있다가 밤에 천천히 알려드릴 테니 일단은 결제를 서둘러 주십시오.”
“아, 알겠어요.”
나는 시키는 대로 서류 하단에 직인을 척척 찍어주었다.
신기하게도 직인을 찍을 때마다 서류에서 동그란 문장이 빛났다. 영주 직인을 찍었을 때만이 나타나는 마법적 효과였다.
“제가 무언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차지혜는 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곧 현호 씨가 나서야 할 일이 많아질 겁니다. 그때까지 이런 일쯤은 제게 맡기십시오.”
“예, 알겠어요.”
결국 나는 영지 업무에서 신경을 끄고 나름대로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시험 전에 구상했던, 갈큇발 독수리들에게 사냥을 시키는 일이었다.
일단은 사람을 시켜서 대장장이를 불러오게 했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마른 체구의 대장장이 노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나는 갈큇발 독수리 첫째를 대장장이 노인에게 보여주었다.
“이 독수리의 몸에 맞는 갑옷을 만들 수 있나?”
“어이쿠! 크기도 하군요.”
눈이 휘둥그레진 대장장이 노인은 주춤주춤 첫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빙 둘러보며 첫째의 체구를 살핀 대장장이 노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들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듭니다, 영주님. 차라리 기사 한 분을 완전 무장시키는 비용이 쌀 겁니다.”
“그렇게 비싸?”
“물론입죠. 태어나서 이렇게 큰 새는 처음 보는데, 이 엄청난 몸집에 맞는 갑옷을 지으려면, 들어가는 철만 어마어마할 겁니다.”
“으음, 그럼 갑옷까지는 아니더라도, 투구는 어때? 어쨌든 멀리서 봐도 이 독수리들이 위험한 야생 맹금이 아니라 내가 키우는 동물임을 알아봤으면 좋겠는데.”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영주님. 가볍고 화려하게 모양을 내서 멀리서도 알아보도록 할 수 있습죠.”
“그럼 그렇게 10개만 제작해 줘.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이미 있는 투구들을 개량해서 독수리들에게 맞게 개조하면 빨리 완성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해오도록.”
주문을 받은 대장장이 노인은 끈 달린 투구 10개를 제작해 왔다.
투구의 이마에 영주 직인으로 찍자 헤인스 영지의 직인 문양이 동그랗게 나타났다.
마법이 걸린 영주 직인은 어디에 찍어도 잘 찍히며 빛이 나서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미리 구매해 두었던 100카르마짜리 아이템 백 2개를 첫째와 둘째의 목에 걸어주었다.
“자, 이 주변을 돌면서 괴물들을 사냥하도록 해. 절대로 사람이나 사람이 키우는 가축을 해쳐서는 안 돼. 그리고 마정은 이 가방에 담아서 내게 가져오는 거야. 알았지?”
“삐이익!”
“삐익!”
내 말을 알아들은 독수리들이 요란하게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출발! 되도록 사람들 놀하게 하지 말고 높게 날아.”
“빼애애액―!”
10마리나 되는 거대한 갈큇발 독수리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일대 장관이었다.
혹시 몰라서 10마리씩 무리 지어 다니는 갈큇발 독수리들은 내가 키우는 동물들이니 놀라거나 공격하지 말라고 영지에 알리게 했다.
수석 집무관 에드워드는 내 지시를 받자마자 공문을 영지 마을 곳곳에 보냈다.
갈큇발 독수리들이 사냥을 시작하자 영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졌다.
“괴물들의 출현 빈도가 부쩍 줄었다고 합니다. 영지민들이 영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수석 집무관 에드워드가 보고했다.
“그래? 효과가 있긴 있나 보네.”
독수리들이 워낙 먹성이 좋은 탓에 여기저기서 사냥을 하며 괴물들을 잡아먹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지가 왕실에 귀속된 후로 괴물 토벌을 거의 하지 않았던 탓에 괴물들의 번식이 많아졌던 참이었습니다. 시기적절하게 영주님께서 조치를 취하셔서 민심이 좋습니다.”
“왜 그동안 하지 않았지? 왕실에 귀속된 동안 영지를 관리한 건 수석 집무관 아닌가?”
“영지 업무는 담당해도 군사적인 부분까지는 통제가 잘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개 집무관에게 그런 군사적 권한이 주어질 리 없습니다.”
“그도 그렇군. 아무튼 영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니 다행이야.”
일석이조로군.
갈큇발 독수리들이 며칠에 한 번씩 돌아와서 가져와 주는 마정의 수량이 상당하거든.
그렇지 않아도 차지혜가 영지 업무를 돌보면서 필요한 자금이 너무 많다고 했었는데.
마정을 팔아서 돈을 보테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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