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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7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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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1화


“오셨네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복식을 연상케 하는 튜닉을 입은 자그마한 소녀 천사였다.
소녀 천사의 푸른 눈동자는 눈앞에 소환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흑발, 큰 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를 가진 미남자였다.
데이나 리트린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 편안한 휴식되셨나요?”
“덕분에. 너도 잘 있었니?”
“저는 언제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온전한 상태에요.”
“평소와 같다면 잘 지낸다는 뜻이네. 다행이구나.”
데이나는 그리 말하며 자상하게 웃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호감으로 다가올 매력적인 웃음 앞에서도 소녀 천사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 오늘은 중요한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네요.”
“응.”
“판결하는 자를 만나셨군요.”
“판결하는 자? 그건 김현호를 지칭하는 표현이니?”
“네.”
“그가 무엇을 판결하는 것이니?”
“모든 것.”
“모든 것을?”
“네.”
데이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혜성처럼 세계 랭킹 톱 10에 등장한 한국의 시험자 김현호.
폭풍 같은 성장과 수없이 구사한 특별한 스킬들.
선량하면서도 의지가 있는 눈빛이 떠올랐다.
“역시 그는 특별한 존재였구나.”
“그래요.”
“현 상황을 고려해 보면 모든 것을 판결한다는 건 최종 시험을 의미하는 거겠지?”
“…….”
소녀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나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판결한다는 것을 내가 할 수는 없는 거니?”
“…….”
“그 마지막에 내가 그보다 먼저 닿을 수는 없는 거니?”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은 판결하는 자보다 먼저 닿지 못해요.”
데이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난 최종 목적에 이르기 전에 죽는 거니?”
“그건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의 선택에 달렸어요. 이번 시험에서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데이나가 그동안 3차례 클리어를 미뤄온 시험은 그 난이도가 매우 높은 극악한 위험을 자랑했다.
천하의 그조차도 망설일 수밖에 없을 정도의 위험한 시험.
데이나는 바로 그 시험을 다시 앞두고서 소녀 천사에게 자신의 운명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시험 클리어를 시도하느냐 그냥 포기하느냐.
어느 쪽이 살아남을 수 있는 쪽일까?
데이나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아앗!
시험의 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소녀 천사는 시험의 문을 가리켰다. 어서 떠나라는 제스처였다.
데이나는 시험의 문을 열며 소녀 천사에게 웃어 보였다.
“있다가 다시 보자.”
“…….”
파앗!
데이나의 훤칠한 신형이 문틈의 빛 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

눈을 떴을 때, 데이나는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다.
“심연의 눈동자.”
파앗!
데이나의 손바닥에서 야구공만 한 크기의 동그란 푸른 구체가 생성되었다.
심연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원활하게 주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었다.
손바닥에 생성된 푸른 구체가 바로 심연의 눈동자, 바로 마법 사용자의 제3의 눈이었다.
푸른 구체에 비치는 주위 시각정보가 모두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이 심연의 눈동자는 동그란 모양이므로 365도를 전부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매우 높은 수준의 마법사라면 시각뿐만이 아니라 청각정보까지도 심연의 눈동자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는데, 데이나도 그걸 할 수 있었다.
데이나는 심연의 눈동자를 통해 주위를 바라보았다.
지하실.
햇살도 촛불도 전혀 없지만, 나름대로 침대와 책상과 책장 등이 잘 갖춰진 그의 개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데이나가 방금 만든 것과 똑같이 생긴 심연의 눈동자가 놓여 있었다.
데이나는 웃으면서 그 심연의 눈동자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오늘도 문안인사 드립니다, 스승님.”
그랬다.
그것은 그의 스승의 심연의 눈동자였다.
스승은 그것을 이 방에 놓아서 데이나를 365일 24시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났느냐?
불길한 목소리가 데이나의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
텔레파시로 전달되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정작 스승은 타인의 텔레파시가 자기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때문에 데이나는 텔레파시가 아닌 육성으로 대답해야 했다.
“예, 보시다시피.”
-오늘은 서둘러라.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결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최고사제께서 대사제를 모두 소집하셨다. 해적군도에서 죽어버린 알란 녀석만 빼고 전부 모일 것이다.
“아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겠군요.”
-그래, 어쩌면 오늘 우리의 비원(悲願)을 마침내 실행에 옮길지도 모르지.
“그날이 마침내 오는군요. 가슴이 벅차고 설렙니다.”
데이나는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물론 그래야지. 아무튼 서두르도록 해라.
스승의 텔레파시가 계속 이어졌다.
-너도 대사제이니 말이다.
“예, 스승님.”
데이나는 늘 그렇듯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데이나는 채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바깥 역시 빛 한 점 없는 거대한 홀이었다.
지하궁전.
아만 제국 왕궁의 지하에 있는 광활한 어둠의 장소.
그러나 정작 이 지하궁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레나 세계를 통틀어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험의 최종 목적이자 모든 일의 원흉인 흑마법사 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데이나 리트린.
그는 처음 시험자가 된 후로 수많은 시험을 거친 끝에 이곳에 다다랐다.
그는 능히 견뎌냈지만 힘겹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마법을 메인스킬로 얻고서 마법학회에 들어가 전도유망한 마법사의 길을 걸었으나, 마법학회에 침투해 있던 흑마도사의 눈에 들었다.
마법사들 무리 안에서도 자신의 흑마력을 숨길 줄 아는 엄청난 수준의 흑마도사.
바로 지금의 그의 스승이었다.
스승은 재능이 넘치는 데이나 리트린을 탐냈다.
그래서 은근히 접근해 오며 조금씩 의향을 본떴다. 어둠의 길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도하였다.
데이나 역시 마찬가지.
시험으로 인해 그의 제자가 되어야 했던 데이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둠으로 빠지고 싶은 의향을 드러냈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어둠으로 빠져가는 모습을 스승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그는 스승의 제자가 되면서 흑마법사로 전향하였다.
흑마력이 몸에 침투하여 심장을 잠식해 들어가던 때의 고통을 그는 잊지 못했다.
뜨거운 인두로 낙인을 찍듯이, 흑마력은 데이나의 몸에 자리 잡았다.
-넌 이제 어둠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시는 빛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네 생사여탈권은 나에게 달려 있다. 네 흑마력 서클에 종속의 인(印)이 새겨져 있음을 언제나 명심해라.
“예, 스승님.”
종속의 인.
스승이 원하면 언제든 흑마력 서클을 파괴시킬 수 있는 권한의 저주였다.
지독히도 남을 믿지 않는 스승은 제자에게 그런 굴레를 씌워서 딴 마음을 먹는 즉시 모든 걸 빼앗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것이다.
데이나는 그것을 감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스승의 신뢰를 받기 위해 일한 끝에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
대사제.
최고사제 바로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6인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5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더욱 비중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내려진 시험.

-시험(Mission): 대사제 아프리트를 사살하고 부활의 의식을 늦춰라.

대사제 아프리트는 바로 그의 스승이었다.
부활의 의식은 지금껏 그들이 준비해 온 최후의 비원이었다.
맥런 회장은 맥런 가문의 사업적 이유 때문에 시험을 3회나 거른 줄 알고 미안해했지만, 실은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험을 돌파하여 여기까지 다다른 대담한 데이나라 할지라도, 이 시험만은 숨 막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흑마력 서클에 스승이 새겨놓은 종속의 인.
스승이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자신의 흑마력 서클을 파괴할 수 있다.
지금껏 이루었던 흑마력이, 흑마법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 상실감은 둘째 치더라도, 의식을 방해한 대가로 다른 대사제들과 최고사제에게 당할 응징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의심 많은 스승 아프리트는 무슨 수로 처치할까?
그 고민들이 지금까지 데이나의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건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의 선택에 달렸어요. 이번 시험에서 시험자 데이나 리트린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데이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포기해야 하나?
아니면 실행해야 하나?
어느 쪽이 살 수 있는 길이란 말인가?
데이나는 걸음을 옮긴 끝에 지하궁전의 중앙 홀에 이르렀다.
그곳부터는 다른 자들이 있었다.
데이나는 품속에서 하얀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그리고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숙이 눌러썼다.
여기서부터는 얼굴을 가려야 할 이유가 있었다.
중앙 홀의 정중앙에는 육각형 기둥 모양의 방이 있었다.
실로 거대한 육각형 기둥.
여섯 면에는 각각 문이 하나씩 총 여섯 개가 있었다. 그 여섯 문은 오직 대사제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육각형 방의 문 앞에는 몇 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가면을 쓴 데이나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대사제님.”
“리창위인가.”
“예, 대사제님.”
사내, 리창위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중국 시험단을 완벽하게 장악한 그는 여전히 흑마법사들의 편에 서서 시험 공략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사제들은 리창위 무리를 부리면서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 마정을 많이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때문에 리창위는 기꺼이 그들의 하수인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 대사제 누구를 죽여라, 정도의 시험을 받은 상태겠지.’
데이나의 얼굴은 아레나 업계에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그는 리창위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게 가면을 착용한 것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웃는 얼굴이 기분 나쁘다는 대사제 몇 사람의 비아냥거림 탓이었지만 말이다.
“수고하도록. 곧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 같다. 그때는 너 역시 원하는 것을 마음껏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하겠습니다.”
리창위는 승냥이처럼 웃으며 물러났다.
데이나는 육각형 방 문 하나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육각형 방 안은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 피로 새겨진 시뻘건 마법진이 음산한 붉은 광채를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 마법진 위에는 누군가가 고이 잠들어 있는 거대한 석관(石棺)이 있고, 그 주위로 동그란 구슬이 잔뜩 널려 있었다.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는 그 구슬들은 전부 가짜 영혼이었다.
방의 여섯 벽에 대사제들이 각각 서 있었다. 그의 스승 아프리트도 보였다. 얼마 전에 죽은 대사제 알란의 자리만 비어 있을 뿐이었다.
“모두 왔나.”
위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좁은 여섯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대사제 5인이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림잡아도 200미터.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옥좌(玉座)에 최고사제가 앉아 있었다.
최고사제는 평범한 체격의 중년 사내였다.
다만 머리에 쓴 황금관은 범상치 않았다.
아만 제국 술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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