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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6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69화

 

보조스킬 체력보정을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는 우리 4인은 넉넉하게 준비된 삼계탕을 순식간에 동내 버렸다.
육체의 성능이 좋은 만큼 들어가는 연료량도 많거든.
단 걸 좋아하는 차지혜는 디저트로 딸기 타르트까지 해주며 요리솜씨를 뽐냈고, 유지수는 눈이 뒤집혔다.
“우, 우와! 이거 핸드메이드야?”
“그렇습니다.”
“잘 먹을게! 여기 머무는 동안 입이 심심할 일은 없겠어.”
여기 머무는 동안?
뉘앙스로 보아 이 양반들, 하루만 있다가 갈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독수리를 시켜서 우리를 데리러 올 수 있다고?”
“예, 아마도 현재 아레나에서 두 분은 궁지에 몰려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맞죠?”
“그렇지.”
“거기서는 거의 현상수배범처럼 쫓기고 있지.”
“그럼 일단 다음 시험이 시작되면 제가 두 분께 독수리를 보내드릴게요. 그걸 타고 저희가 있는 곳으로 피신하세요. 그 뒤에 몸도 추스르고 재정비도 한 뒤에 다시 시험에 도전하시는 거죠.”
“좋은 생각인데. 우리도 아레나에서는 쫓기는 처지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고.”
차진혁은 내 말에 찬성했다.
그러나 유지수는 아직 판단이 안 섰는지 내게 질문을 했다.
“네가 키운다는 그 독수리들이 우리가 있는 장소로 정확하게 찾아올 수 있을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헤매지도 않고 아주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죠.”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동물추적이라는 스킬이 있어요. 냄새만 인식하면, 냄새의 주인이 어디에 있든 추적할 수 있죠.”
“냄새?”
“예, 두 분이 갖고 계시는 소지품을 아무거나 하나씩 주세요. 그걸로 냄새를 인식시키면 돼요.”
“소지품……?”
문득 유지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차진혁도 표정이 멍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보더니, 이윽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날 붙잡고 소리쳤다.
“네 도움이 필요해!”
“우리 시험 좀 도와줘!”
“무, 무슨 일이신데요?”
“우리 시험이 뭔지는 알지?”
“무슨 집정관의 뒤를 캐는 거 아니었던가요?”
“루마드 집정관의 배후를 조사하는 시험이야.”
유지수가 말을 이었다.
“조사는 실패했지만, 한 가지 손에 넣은 물건은 있어.”
유지수가 손가락을 딱딱 튕겨대자, 차진혁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이템 백팩을 소환해 그 안에서 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가죽 표지로 고급스럽게 장정(裝幀)된 책이었다.
국어사전 정도로 두꺼운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책을 펼쳐보았다.
“음?”
나는 깜짝 놀랐다.
책 안에 직사각형으로 빈 공간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책 내부의 빈공간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유지수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루마드 집정관의 관저에 침투해서 그걸 빼왔는데 보다시피 이미 내부는 텅 비어 있었어.”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짐작하세요?”
“밀서일 거야. 누구와 주고받은 밀서인지는 모르겠어.”
“아만 제국 왕실이 아닐까요? 술탄이 흑마법사 무리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술탄씩이나 돼서 집정관과 남몰래 밀서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을까?”
유지수의 말에 나는 아, 하고 수긍했다.
술탄은 집정관을 임명하는 사람이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도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는 권력자였다.
그런 술탄이라면 용건이 있을 땐 그냥 불러서 얘기하지 밀서를 전달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 책을 누구와 주고받았는지를 알아야 해.”
“동물추적 스킬로 이 책에 배인 냄새의 주인을 추적하면 되겠네요?”
“바로 그거야. 그렇게 은밀하고 중요한 책이 많은 사람의 손을 타지는 않았을 거야.”
“그 정도면 어렵지 않네요.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이제 살았다!”
유지수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차진혁도 다소 한숨 돌린 눈치였다.
“그럼 일단은 독수리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저희 쪽으로 오세요. 인공근육슈트랑 교신기를 받으시고, 저희랑 좀 있다가 같이 시험을 클리어하죠.”
“알았어. 우리도 힘닿는 대로 그쪽 시험을 도와줄게.”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유지수 팀과는 협의가 되었다. 그들은 함께 내 집에 머물면서 대련도 하고 아레나의 정보도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리고 시험이 다가왔다.

***

시험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한국아레나연구소로 갔다.
한국아레나연구소는 노르딕 시험단으로부터 공급받은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나에게 잔뜩 주었다.
시험자들에게 나눠줄 것들이었다.
나는 그걸 전부 가공간에 보관하였다.
“맥런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시험에 임하기 한 시간 전, 임철호 소장이 찾아와 내게 말했다.
“뭐래요?”
“갈기털 개를 한 쌍 구해달라더군요.”
“갈기털 개요?”
“예, 말 같은 긴 갈기털을 가진 개인데, 새끼를 많이 낳습니다. 아무래도 맥런 가문은 빠른 번식을 통한 마정 확보에 초점을 둔 듯합니다.”
“우리와는 다르네요.”
우리는 아레나의 젖소를 한 쌍 데려오기로 했다.
마정도 얻고, 우유도 얻고, 고기도 얻고, 가죽도 얻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척 보기에는 현실세계의 젖소와 비슷하게 생겨서 한눈에 구별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었다.
노르딕 시험단도 우리처럼 젖소를 요구했고 말이다.
아무튼, 뭐 요구한 대로 들어줄 생각이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물론 맥런 가문이 먼저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하고 나서였다.
데이나 리트린.
공식 랭킹 세계 1위의 시험자인 그는 과연 2명이나 되는 대사제를 처치할 수 있을까?
그 호언장담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시험의 최종 목적을 이루는 주인공은 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모든 준비가 끝나자 시험은 불과 30분을 앞두게 되었다.
“부디 무사히 귀환하시길 빌겠습니다.”
임철호 소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살아 돌아오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와 작별하고서 나는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고시원보다 조금 넓은 방에 침대와 작은 탁자가 있었다.
문을 잠그고서 나는 침대에 누웠다.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43
-카르마(Karma): +5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26분 42초

100카르마짜리 아이템백 두 개를 구매하고서 50카르마만 남아 있었다.
이번 시험도 클리어하면 최소한 5천에서 많게는 2만 정도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타락한 시험자의 습격이라도 받으면 좋겠군.
그럼 처치해 버리고 카르마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을 텐데.
이제 내가 랭킹 7위의 강자임을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쉬이 덤비지 못할 것이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제한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초가 되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였다.
이제 익숙해서 별로 초조하지 않았다.
0초가 되자 스르륵 내 눈이 감겼다.

***

“기상!”
땅― 땅― 땅―!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차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꽹과리를 들고 있는 아기 천사는 우리를 보며 히죽 재수 없게 웃었다.
“휴식 시간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덕분에.”
“알긴 아네요.”
“뭘 알아, 이 자식아.”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제 이렇게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무슨 뜻이야?”
아기 천사는 웃으며 말했다.
“뭘 물으세요. 머리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시험의 최종 목적 달성이 머지않았다. 아기 천사는 그걸 암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꼭 나일 필요는 없는 거지?”
내가 물었다.
많은 단어가 생략된 질문이었지만, 아기 천사는 곧장 알아들었다.
“아니요.”
“……?!”
“시험자 김현호예요.”
“나라고?”
“예, 당신에게 달렸어요. 모든 걸 결정짓는 선택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아요.”
“왜 하필 나야?”
“하필 당신이었을 뿐이에요.”
“뭐?!”
“오랫동안 시험은 지속되어 왔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시험자는 최종 목적을 코앞에 두고서 죽거나 타락했죠.”
“…….”
“그래서 율법은 이제 이 시험이라는 것 자체를 끝내려 하고 있어요. 그럼 언제 끝내야 할까요?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 시험자 김현호.”
“나?”
“예, 마지막으로 딱 당신까지만 지켜보기로 했어요. 당신은 과연 시험을 끝까지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죽거나 포기하고 타락해 버릴까요? 그건 시험자 김현호에게 달린 일이죠.”
“내가 시험을 전부 다 클리어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시험은 사라지고 모든 시험자는 시험의 굴레에서 해방되죠. 물론 보상도 주어질 거고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실패하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가르쳐 주지 않았던 시험의 비밀이 지금 조금씩 드러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 천사가 말했다.
“그럼 시험자로 선택받은 인간은 시험을 끝까지 완수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거예요. 마정을 계속 얻을 수 있기를 원하고, 아레나와 단절되지 않기를 원하는 것으로 판단할 거예요. 그리고…….”
아기 천사의 웃음이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대로 해줄 거예요. 아레나와 단절되지 않게, 계속 마정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말이죠.”
“그, 그게 무슨 뜻이야?”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나쁜 의미지? 그건 좋지 않은 결말인 거지?”
내가 재차 물었다.
아기 천사가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건가요?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있던가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하고요.”
“…….”
“플러스 카르마라고 올바른 건 아니고, 마이너스 카르마라고 그른 건 아니에요. 그저 플러스 카르마만큼의, 마이너스 카르마만큼의 대가가 돌아오게 될 뿐이죠. 그 대가를 옳게 여길지 나쁘게 여길지는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몫이죠.”
그것은 어떤 의미로 더 무섭게 들렸다.
선악(善惡)을 구분하지 않겠다.
이게 올바르다고 길을 제시해 주지 않겠다.
다만 어떤 일을 행하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뿐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택도 마찬가지에요. 최종 시험이 클리어되든지 클리어되지 않든지 그걸 옳다 그르다 판결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대가를 치를 뿐이죠. 그 대가를 상이라 여길지, 벌이라 여길지는 여러분께 달린 일이고요.”
나는 몸이 떨려왔다.
아레나와 단절되지 않게 해주겠다. 계속 마정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
그것은 결코 좋게 들리지 않았다.
마정을 얻기 위해 중국 시험단이 아레나에서 자행한 짓을 생각해 보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타락한 시험자가 마정을 위해 비슷한 짓거리를 했을 터였다.
그 대가가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건, 결코 좋게 들리지 않았다.
“잠깐! 꼭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아니,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가 시험을 끝까지 클리어할 수도 있어. 예를 들면 데이나 리트린 같은 시험자가 말이야!”
“과연 그럴까요?”
“무슨 뜻이야!”
“여기까지예요.”
아기 천사의 단호한 말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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