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66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66화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43
-카르마(Karma): +1,300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64일 10시간
아직도 다음 시험까지 2개월 이상 시간이 남았다.
차지혜와 데이트와 훈련을 하고, 종종 유지수 일행과 만나서 술자리도 가지며 시간을 보냈다.
유지수와 차진혁은 요즘 노르딕 시험단이 지원한 인공근육슈트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레나에서 인공근육슈트를 쓰려면 내 가공간 스킬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시험이 시작되면 나를 찾아오기로 했다.
아무튼 영국 TUK의 습격이나 맥런 연구소, 노르딕시험단과의 협상 외에는 딱히 특별한 사건이 없는 유유자적한 나날이었다.
이렇게 한가하게 살아도 되나 하는 불안감까지 느껴졌다. 시험자가 된 후로는 시간 낭비에 대해 매우 민감해진 탓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차지혜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남은 시간 동안 갈큇발 독수리들을 키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직 성장기인 독수리들을 남은 2개월간 더 키우자는 제안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근데 아무래도 사람들 눈을 피하기가 힘들잖아요. 저 큰 녀석들이 날아다니면 누군가의 눈에 띨 텐데…….”
“무인도라면 괜찮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아레나연구소도 기밀 유지를 위해 무인도에 본부를 세웠지?
돈도 많은데 그런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무인도를 하나 사보면 어떨까?
“섬 하나 살까요? 거기다가 집도 짓고 발전기도 설치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임철호 소장에게 부탁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국아레나연구소도 국영지인 무인도에 개발허가를 내서 설립했습니다.”
“그럴게요.”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임철호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철호 소장은 내 얘기를 듣더니 마침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김현호 씨가 가져오실 젖소를 키우기 위한 새로운 목장을 만들기 위해 충남 쪽에 무인도 몇 개를 구매하려 하고 있습니다.
“충남 쪽이요?”
-예, 무인도 4개가 모여 있는 군도가 있는데 그곳을 통째로 구입할 예정입니다. 진성그룹이 나서서 그곳을 개발 중인데, 개발비에 조금 보태주신다면 김현호 씨의 사유지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좋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아레나에서 데려온 가축을 키우는 일에는 나도 관여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곳에 내 사유지를 마련해서 목장에도 쉽게 출입할 수 있게 되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장님께 말씀드리면 되는 거죠?”
-이정식 실장에게 말해도 충분합니다. 제가 먼저 언질을 해놓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날 오후쯤에 이정식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제가 얼마를 보태면…….”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정도 편의는 얼마든지 봐드리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무인도 개발 진행 상태는 어떤가요?”
-빅 래트를 폐기하고 새로 목장을 축조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준비 단계입니다.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거주지와 해수정화장치를 막 설치했을 뿐입니다.
“제가 두 달 정도 거기서 지내도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통화가 끝난 후, 이정식 실장은 지도 어플을 캡처한 이미지 파일을 보내주었다. 무인도의 위치가 표시된 이미지 파일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돈 좀 팍팍 써볼까 했는데 한 푼 쓰지 않고 해결되어 버렸군. 조금은 허탈한데.
생각 난 김에 우리는 다음 날 바로 여행 준비를 했다.
텐트와 각종 취사도구와 식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량을 잔뜩 구입해서 가공간에 있는 대로 쑤셔 넣었다.
할인마트에서 야채와 정육 코너를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둘이서 각자 카트 하나씩을 음식으로 꽉 채우자 매장 직원들이 아주 기겁을 하는 눈치였다.
다른 매장도 다니면서 식량을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내 가공간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꽉 채운 것은 물론이고, 차지혜의 아이템 백팩에도 채워 버렸다.
아마 바다에서는 갈큇발 독수리들이 사냥해서 먹을 게 없을 테니, 내가 계속 육지를 오가며 식량을 공급해야 할 듯했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서 그날 밤에 우리는 출발했다.
밤에 출발한 이유는 간단했다. 하늘을 날아서 가는데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지 않은가.
실프의 힘으로 하늘을 날아오른 뒤, 높은 상공에서 갈큇발 독수리 첫째를 가공간에서 꺼내 함께 탔다.
덩치가 매우 커진 첫째는 둘이서 함께 타기에 충분했다.
차지혜는 앞에 탄 채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하며 첫째를 조종했다.
나는 뒤에 탄 채로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차지혜는 지도와 나침반을 보고 스마트폰 GPS까지 확인하며 길을 찾느라 바빴지만, 뒤에 탄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잘 가고 있는 거죠?”
“예, 잘 가고 있습니다.”
“뭐 도와드릴 것 없어요?”
“없습니다.”
“…….”
“심심하십니까?”
“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도착합니다.”
가차 없구나.
뭔가 놀아줘야겠다는 마인드가 머릿속에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이 여자는.
아마도 이 여자는 워낙 오랫동안 혼자였던 까닭에 심심함에 대한 내성이 턱없이 강한 거겠지.
차지혜를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랐다.
“심심한데 쓰담쓰담하면서 놀아도 돼요?”
“안 됩니다.”
차지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허를 찔린 탓인지 목소리에 약간의 동요가 감지되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할래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싫어요. 할래요.”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끄러움도 이 정도면 예술이구나.
“부당해요.”
“뭐가 부당합니까?”
“왜 제 걸 제 마음대로 쓰다듬을 수 없는 거예요?”
“제 머리의 소유권을 왜 현호 씨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제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지혜 씨, 제가 마음에 안 들죠?”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손대는 게 싫다는 뜻이잖아요. 이제 정이 식었구나.”
잠시 후, 나는 차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벌써요?”
즐거운 입씨름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네.
“카사!”
-왕!
카사가 나타나 반갑게 짖었다.
“섬 네 개가 모여 있는 군도를 찾아봐.”
-멍!
카사는 신나게 아래로 날아갔다.
어두운 밤이라 실프 대신 카사를 소환했는데, 온몸이 불덩이로 이루어진 카사는 주변에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카사는 금방 군도를 발견했다. 카사가 발견한 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전달되었다.
바로 사금도라 명명된 네 개의 섬이었다.
동사금도, 서사금도, 남사금도, 북사금도로 명명된 네 개의 섬이 한 데 모여 있는 모습이 전달되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자 카사는 더욱 밝게 불타오르며 사금도의 풍경을 비췄다.
네 개의 섬 중 남사금도는 독도처럼 작은 바위섬이었고, 다른 세 개 섬은 꽤 규모가 크고 숲도 조성되어 있었다.
첫째는 카사가 멀리서 내고 있는 빛을 쫓아 하강했다.
우리는 서사금도의 들판에 착륙했다.
바위절벽 아래로 바다가 어둠 속에서 시커멓게 펼쳐진 장소였다.
일단 갈큇발 독수리들을 전부 꺼내놓자 녀석들은 갑자기 변한 환경에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는 사금도 주변을 날아다니며 정찰을 시작했다.
텐트를 꺼내 설치하고, 실프를 시켜서 나무 하나를 썩둑썩둑 썰어 장작으로 만든 뒤 모닥불을 피웠다.
차지혜는 아이템 백팩에서 생수와 냄비를 꺼내 끓이고는 라면 두 봉을 넣었다.
나란히 모닥불에 앉아 밤바다를 보며 라면을 먹으니, 이게 또 맛이 각별했다.
“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걸 보니까 시원시원하네요.”
“그렇습니다.”
“저랑 이렇게 있으니까 좋죠?”
나는 다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질문을 던졌다.
“예, 좋습니다.”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좋다고 말했잖습니까.”
“말투가 별로 안 좋아 보여요. 실은 귀찮은데 저 때문에 억지로 온 거죠?”
“또 이러시는 겁니까?”
“저랑 있어서 좋다고 표현해 보세요.”
“현호 씨와 있어서 좋습니다.”
“좀 더 애교 있는 말투로요.”
“또 이러시는 겁니까. 절 부끄럽게 만드는 걸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흥, 저한테 애정표현을 전혀 안 하잖아요. 실은 제가 싫은 거죠?”
“시, 싫지 않습니다.”
내 짓궂은 추궁에 차지혜는 점점 당황했다. 아, 너무 재미있다.
내가 계속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차지혜는 갑자기 내 목을 잡아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동체시력 마스터로 그녀의 행동을 미리 예측했지만, 나는 순순히 키스에 응했다.
그녀는 나를 땅에 눕힌 뒤에 위에서 내리누르듯 키스를 계속했다.
입과 입으로 서로의 온기가 달콤하게 오갔다.
한참 후에야 차지혜는 입술을 뗐다.
“싫은 사람과 이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음, 아직 부족한데요.”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췄다. 계속 키스를 나누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비행하던 갈큇발 독수리 10마리가 돌아온 탓에 삑삑거리는 울음소리가 요란했지만,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무인도에서의 첫날이 흘러갔다.
***
다음 날부터 나는 이따금씩 육지로 날아가 갈큇발 독수리들에게 줄 고기를 닥치는 대로 구매해 조달했다.
가공간에 갈큇발 독수리 10마리 분의 여유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공이 안 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잔뜩 챙겨올 수 있었다.
내가 조달하는 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갈큇발 독수리들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덩치가 커질수록 먹는 양도 많아져서 이젠 아예 매일 육지로 다녀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날, 매우 큰 배 한 척이 사금도에 나타났다.
나는 놀라서 독수리들을 불러 가공간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실프를 소환해 정찰하게 했다.
배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내렸다.
사람들은 배 안에서 각종 건설 장비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누구지? 진성그룹 쪽 사람들인가?’
그렇게 숨죽이고 지켜볼 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텐트에서 차지혜가 막 잠이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속옷 차림이었다.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진성그룹 사람들인가 싶어서요.”
“저 배는 연구소 소속입니다. 연구소 사람들입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차지혜는 한눈에 배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뒤로 묶어버렸다. 그런데도 예쁜 걸 보면 정말 타고난 미모였다.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습니다. 잘하면 독수리들의 식량조달을 부탁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럼 좋겠네요. 매일 육지에 다녀온 것도 번거로웠는데.”
우리는 섬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눠보았다.
차지혜의 예상대로 그들은 연구소에서 파견한 직원들이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사금도 경비.
사금도에 민간인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내가 독수리들을 먹일 식량 조달을 부탁하자 그들은 상부에 연락을 해보더니 승낙했다. 연구소 소장인 임철호가 나에게 매우 협조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