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6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62화
우리는 최치후 일행과 함께 한국아레나연구소로 가기로 했다.
헬기 탑승 인원이 얼마 안 돼서 유지수와 차진혁까지만 추가로 탑승했다. 나와 차지혜, 마리는 실프의 힘으로 날며 뒤따랐다.
갈큇발 독수리를 타고 날면 좋겠지만, 가공간에서 생명체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 비밀로 하고 싶었다.
“꼭 이렇게 하고 가야 합니까?”
차지혜가 조금은 불만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그녀는 현재 나에게 안겨 있었다. 일명 공주님 안기 같은 자세였다.
“예, 이렇게 하고 가야 정령술의 낭비가 적어요. 세 사람이나 하늘로 띄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하든 두 사람의 무게는 변함없습니다만?”
“정령술 써보셨어요?”
“물론 아닙니다.”
“그럼 말을 마세요. 뭘 안다고 그래요?”
“…….”
내 양팔에 들려진 차지혜는 부끄러운지 자꾸만 뒤척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럼 나랑 바꿔!”
내 등 뒤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리가 불만스럽게 소리쳤다.
“마리 씨, 가만히 좀 계세요.”
“이씨! 내가 현호한테 안길 거야!”
“안 돼요.”
“왜 안 돼? 돼!”
“실프가 안 된대요. 하늘을 날고 있는데 함부로 움직이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실프?”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냐아?
“고양이가 거짓말 하고 있어!”
-냐앙? 냐앙, 냥.
실프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마리는 그런 실프를 보며 으르렁거렸고, 차지혜는 여전히 내 품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란히 날고 있는 헬기 안에 탄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웃었다.
“지혜 언니랑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여자였는데.”
유지수와 차진혁이 한마디씩 하자 차지혜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빨갛게 익었다.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실프의 능력을 사용했기에 서로의 대화가 잘 들리게 했다.
그런데 유지수는 답답했는지 대뜸 헬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받아줘, 우차!”
나는 깜짝 놀라 실프를 시켜 유지수를 받아주었다.
유지수는 헤엄치듯이 허우적거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게 더 재밌겠다. 언니, 더 말해봐. 둘이 어떻게 해서 사귀게 된 거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에이, 말 편히 해, 언니.”
“알겠다.”
“자자, 말해봐. 둘이 어떻게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말할 의무가 없다.”
“흐응, 그럼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김현호, 말해봐.”
“흠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내가 주절주절 떠들려고 하자 차지혜가 내 팔을 꼬집었다.
부끄러움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러니까 더 당황시키고 싶잖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가 마침내 우리는 한국아레나연구소에 도착했다.
헬기장에 착지한 우리는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4층의 넓은 홀에 이르렀을 때, 한 중년 사내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들 오십시오.”
작고 마르고 머리도 반쯤 벗겨졌지만 강직한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그는 바로 한국아레나연구소의 신임소장 임철호였다.
진성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엘리트라고 들었다. 박진성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기에 이런 비밀스러운 분야를 맡게 된 것이겠지.
“다시 뵙네요, 김현호 씨.”
“예, 소장님. 오늘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한 일이었지요. 아, 최치후 씨 팀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어요. 출동 수당이 조만간 지급될 겁니다.”
“예,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최치후는 우리가 긴히 할 은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곧장 팀원들과 함께 떠났다.
임철호 소장은 이번에는 유지수와 차진혁을 번갈아보았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습격을 받는 바람에 고생을 하셨다고요?”
“예.”
“저희 연구소의 소속이셨더라면 그리 쉽게 타깃이 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
“원하신다면 다시 저희와 계약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말입니다.”
“정말인가요?”
유지수가 깜짝 놀라 물었다.
TUK의 타깃이 된 자신들을 너무 쉽게 받아준다니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임철호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 있는 김현호 씨까지 습격을 받았습니다. 유지수 씨와 차진혁 씨를 외면한다고 해서 TUK와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저희야 좋죠. 계약하겠어요. 괜찮지?”
유지수가 차진혁에게 물었다. 차진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약은 담당자와 따로 하시면 되겠군요. 2층 홀로 내려가시면 담당자와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어요.”
유지수와 차진혁도 그렇게 2층으로 떠났다.
임철호 소장은 지하에서 키우고 있는 빅 래트에 관한 일을 협의하기에 앞서 기밀 유지를 위해 관계없는 사람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여전히 내 목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르는 마리뿐이었다.
임철호 소장은 슬쩍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마리를 어떻게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마리에게 말했다.
“잠시 다른 곳에서 기다릴래요? 비밀리 나눌 얘기가 좀 있어서요.”
“알았어.”
떼를 쓸 줄 알았던 마리는 의외로 순순히 내게서 떨어졌다.
행동은 여전히 어린애 같아도 은근히 어른스러운 그녀였다. 정신적으로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리라.
마리는 임철호 소장이 데려온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떠났다.
이제야 셋만이 남게 되었다.
“빅 래트 번식에 문제가 생겼나요?”
“아직 문제로 불거진 건 아니지만, 향후 문제가 생길 여지가 너무 크다고 해야겠군요.”
임철호 소장의 말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러시죠?”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것 같군요.”
“그러죠.”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복도 끝에 따로 있는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하에 빅 래트 서식지를 마련해 놓은 뒤로 아무나 지하로 갈 수 없게 차단해 놓은 모양이었다.
지하로 내려왔다.
빅 래트의 축사와는 벽으로 차단되어 있었는데, CCTV를 통해 축사 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헉!”
나는 기겁을 했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공급해 주는 다량의 음식물쓰레기를 전부 먹어치운 빅 래트들은 급기야 서로 싸우며 죽은 동족의 시체를 파먹었다.
뼈까지 갉아먹었는지 뼛조각 조금을 제외하고는 시신이 남지 않았다. 오직 여기저기에 널린 혈흔이 참상을 증명할 뿐이었다.
“저걸 계속 번식시켜서 키워도 되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임철호 소장의 말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덩치가 크지만 놈들은 엄연히 설치류. 아레나에서는 재앙으로 통하는 짐승이었다.
“단지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건 아닙니다. 여기에 자세히 보시면 다른 문제점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임철호 소장은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며 CCTV를 조종했다.
강철로 된 격벽이 곳곳에 파손된 모습이 보였다.
아직 구멍이 뚫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긴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빅 래트들에 의해 뚫릴지도 몰랐다.
“확실히 번식이 좋은 것은 장점입니다. 암수 두 쌍이 벌써 보름간 2회에 걸쳐 새끼를 25마리나 낳았으니까요. 그 새끼들 중 5마리는 부모형제에게 잡아먹혔지만 말입니다.”
보름 만에 새끼 25마리를 낳았다니 엄청난 번식력이었다. 소름이 다 끼치네.
“일주일에 한 번식 출산을 했다고요?”
“예,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본래 저희가 알기로는 빅 래트가 임신해서 낳기까지 약 15일은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 혹시 내 성장촉진 스킬 때문일까?’
내 성장촉진 스킬이 적용되었다면 일주일 만에 낳은 것이 납득이 간다.
비록 딱히 내가 빅 래트를 돌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지분 4할 만큼의 소유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킬이 어느 정도 적용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다시 한 번 실험을 해봐야 할 듯했다.
“마정은요?”
“수면가스를 살포하고서 안에 들어가 F-급 마정 5개를 확보했습니다. 확실히 이곳에서 태어난 개체에게도 마정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지요.”
“그건 다행이네요.”
아레나가 아닌 이곳에서 낳은 새끼들에게서도 마정이 배출되었다.
즉, 아레나로 가지 않아도 마정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F-급에 불과하더라도 보름에 25개씩 얻을 수 있다면 대단하긴 한데…….
“분명 마정 획득량은 빅 래트를 통해 대량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빅 래트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한 마디라도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그랬다간 생태계가 작살나는 건 순식간이겠군.
“그리고 빅 래트는 마정 외에는 쓸데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고기는 식품으로 쓸 수가 없고, 가죽도 품질이 썩 좋지 않습니다. 하물며 타국의 위성에 포착될 시 들킬 위험이 커서 지상에서 키울 수도 없지요.”
“예, 인정해요.”
“그래서 드리는 제안인데, 아레나의 젖소처럼 이쪽과 겉보기에 별반 차이가 없는 가축을 들여와서 키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레나의 젖소요?”
“예, 아레나의 젖소는 성체가 E급 마정을 배출합니다. 게다가 우유나 고기, 가죽 등 높은 활용도를 감안하면 빅 래트의 엄청난 번식력을 포기하더라도 손해가 안 될 겁니다.”
“무엇보다 온순해서 키우기 쉽겠네요.”
“그렇지요.”
나는 임철호 소장의 제안이 옳다고 여겼다.
차지혜 쪽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게 좋겠네요. 그럼 빅 래트는 포기하기로 하고, 다음 시험에서 젖소를 가져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빅 래트의 처분 말이죠?”
“예, 아무래도 놈들이 수면가스에도 내성이 생긴 것 같아서…….”
휴우.
벌써 그런 내성까지 생기고, 내가 정말 아레나에서 생각 없이 무서운 짐승을 데려왔군.
“카사!”
-왕!
소환된 카사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저 안에 있는 놈들을 전부 불태워줘.”
-멍!
카사는 곧장 사육장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이윽고…….
화르르르르륵!
“찌이익!”
“찌익!”
요란한 비명 소리와 함께 사육장 내부가 화염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빅 래트들은 잿더미가 되어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배설물이나 음식물쓰레기의 잔해까지도 전부 불타 없어져 버렸다. 오직 마정 24개만이 남은 상태였다.
‘말끔히 정화된 기분이네.’
나는 다시 한 번 빅 래트 같은 흉악한 짐승을 가져온 나 자신의 판단을 자책했다.
협의를 마치고 다시 지상 층으로 올라가니, 유지수와 차진혁, 마리가 노닥거리며 놀고 있었다. 유지수와 차진혁은 계약을 만족스럽게 마쳤는지 밝은 표정이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유지수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하지만 유지수 팀은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2차례 실패한 시험을 다음 회차에서 해낼 수 있느냐다.
TUK가 지금은 물러났지만, 아레나에서도 물러날 리는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영국도 이렇게 본색을 드러낸 이상 다른 국가에서도 언제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해올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