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5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59화
집으로 돌아와서 유지수에게 집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이미 부천으로 오고 있었던 유지수 일행은 대략 30분쯤 뒤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네.”
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짧은 핫팬츠차림의 야시시한 여자는 유지수.
“반갑군.”
그리고 크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차진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뿐이었다.
내 기억에는 안경 낀 남자가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죽었구나.’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누군지 기억 안 난다. 차분하고 친절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라? 차지혜?!”
“살아 있었나?”
유지수와 차진혁이 차지혜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아직 차지혜에 대한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전 죽었다가 시험자가 됐습니다.”
“지, 진짜? 실종됐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유지수는 생각보다 정이 많은 성격인지 그녀의 사정을 궁금해했다.
차지혜는 간략하게 리창위와 김중태 소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소장 새끼 완전 쓰레기네. 야비한 놈일 거라고는 생각 했지만……!”
유지수는 마치 자기 일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역시 날라리 같으면서도 은근히 정 많은 여자다.
“그래서 지금은 몇 회차인데?”
차진혁의 물음에 차지혜는 나를 가리켰다.
“현호 씨와 같은 9회차입니다.”
“뭐? 김현호보다 더 늦게 시험자가 된 거 아냐?”
“따라잡았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휴식 기간을 반납하고 연속으로 시험을 봤더니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호 씨와 같은 팀으로 편입되기도 했습니다.”
“편입도 된다고?!”
“전 세계 시험자들을 통틀어보면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
“아무튼 대단하군. 원래 능력자여서 그런가, 시험자가 되고서도 날아다니는군.”
차진혁은 질린 얼굴이 되었다.
“현호 씨에 비하면 멀었습니다.”
“쟨 정말 이상한 케이스고!”
유지수가 버럭 소리쳤다.
“어떻게 그 짧은 사이에 세계 랭킹 7위가 되는 거야?”
“중국 시험단과 아레나에서 부딪쳤거든요. 타락한 시험자를 여럿 죽여서 대박을 터뜨렸죠.”
“진짜 부럽다! 나도 그렇게 대박 좀 터졌으면 좋겠는데!”
“그놈들이 보통 놈들인 줄 알아? 그놈들과 싸워서 몇 명을 죽일 정도로 강해진 것 자체가 경이로운 거지.”
차진혁의 말에 유지수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차진혁, 이 남자도 처음 봤던 때보다 상당히 변했다.
예전에는 강천성에게 시비를 걸 정도로 호전적이었는데, 많이 침착해졌다. 그사이 많은 시련을 겪었던 것일까?
“그나저나 집이 좋네?”
유지수는 내 집을 둘러보며 즐겁게 말했다. 그녀는 50평짜리 테라스에서 감탄을 했다.
“우와, 완전 마당이네! 펜트하우스 진짜 짱이다! 이 집 얼마야?”
“얼마 안 해요. 14억?”
그냥 생각 없이 지른 탓에 집값도 잘 기억 안 나는군. 나 정말 갑부 된 모양이다.
“대박! 강남에서 이런 집을 구하려면 수십 억 할 텐데. 나도 그냥 부천에서 살 걸 그랬나?”
그녀는 강남에 사는 모양이었다. 뭐, 베테랑 시험자이니 재산이 적지 않으리라.
“훈련 시설도 갖춰져 있군.”
함께 따라 나온 차진혁도 테라스에 설치된 목인장에 관심을 가졌다.
“이건 누가 쓰는 거지?”
“저요.”
“무술을 할 줄 알았어?”
“무술이랄 것까진 없지만요.”
“강천성만큼 하나?”
난 잠시 생각해 보고 말했다.
“이제 비슷하거나 제가 더 솜씨가 좋지 않을까요?”
운동신경 스킬을 마스터했으니, 내 몸 쓰는 요령이 강천성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스킬이 아닌 순수한 수련으로 그 정도의 실력을 닦은 강천성이 대단한 거였지.
“나랑 한판 해볼까?”
뜬금없는 차진혁의 제안이었다.
“야! 갑자기 뭔 헛……!”
“가만 있어봐.”
차진혁은 뭐라고 핀잔하는 유지수를 제지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기는요?”
“검은 안 써.”
“괜찮겠어요?”
“예전의 내가 아니야.”
차진혁은 씨익 웃으며 패딩을 벗었다.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나 보군.’
아무리 호전적인 성격이라지만, 오랜만의 재회에 대뜸 붙어보자니 영 어색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앞서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리라. 아무래도 내가 고작 9회차에 랭킹 7위라니 의혹도 들었겠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앞에 마주섰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험을 경험한 차진혁이었다. 하지만 헤이싱 같은 놈과도 싸운 터라 별로 두렵지 않았다.
“먼저 시작하지.”
그러면서 차진혁은 거침없이 주먹을 뻗어왔다.
손날이 내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나는 왼팔을 크게 휘저어 손날을 옆으로 밀쳐냈다.
동시에 오른쪽 주먹으로 펀치를 뻗어 반격했다.
뒤로 물러나 내 리치 밖으로 빠져나간 차진혁이었지만, 내가 원하던 바였다.
파파파팟!
나는 속사포처럼 주먹질을 했다.
마치 하나의 나무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가듯, 펀치가 연속으로 차진혁에게 쏟아졌다.
“큭!”
놀란 차진혁은 왼편으로 즉시 빠져나갔지만, 나는 풋워크로 쫓으며 쉬지 않고 펀치를 이어나갔다.
파파파파팟―!
바로 번자권의 묘였다. 헤이싱과 싸우면서 완전히 몸에 익은 번자권이 자유자재로 펼쳐졌다. 운동신경 마스터의 효능이었다.
차진혁도 보통은 아니었다.
무작정 막으려 하지 않고 좌우로 이동하며 포지션을 전환하는 대응은 훌륭했다.
무기를 안 쓴다고는 해도 아레나에서 겪은 실전 경험이 어딜 가진 않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용케 반격을 하고 있네?’
조금의 간격도 없이 펀치세례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틈틈이 반격을 가한다. 그 특유의 손날을 찌르거나 휘두르며 말이다,
‘저 손날이 검이구나!’
나는 차진혁이 손을 검 대신 써서 검술을 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체조건은 차진혁이 월등했다.
나는 체력보정 중급 5레벨.
차진혁은 아마 상급일 터였다. 오러 컨트롤을 메인스킬로 익혔으니까.
하지만 육체능력에서 열세여도 싸움은 내가 주도하고 있었다.
마스터한 동체시력 스킬로 차진혁의 다음 움직임이 뻔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퍼억!
“큭!”
결국 차진혁은 턱에 내 왼손 펀치를 허용했다.
노한 차진혁이 곧바로 강펀치로 반격하는 찰나,
파앗!
“헉!”
난 몸을 뒤로 젖히며 두 발로 차진혁의 가슴팍을 2연속으로 걷어찼다.
차진혁은 그 충격에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월등한 체력보정 탓인지 타격은 커 보이지 않았다.
차진혁은 잠시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자기 가슴팍을 보더니, 이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 잘 싸우는 거야? 특기가 근접전이야?”
“아뇨.”
나는 닐슨 H2 2정을 꺼내 양손에 쥐어보였다.
“총?”
차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메인스킬은 뭔데?”
“정령술.”
“정령술?”
그러자 유지수도 끼어들었다.
“그거 엘프들과 극소수의 인간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잖아?”
“예.”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과 정령술을 쓰는 놈이 이렇게 잘 싸운다고? 나 참, 과연 랭킹 7위답군.”
“별말씀을요.”
“아무튼 네 실력은 잘 봤다.”
“그럼 이제 두 분의 용건을 말씀하실 차례죠?”
내 말에 유지수와 차진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말을 기다렸다.
유지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솔직하게 털어놓을게. 사실 아레나에서 조금 곤경에 처해서 도움을 빌리러 왔어. 너밖에는 달리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더라.”
“예, 말씀해 보세요.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고마워. 실은 말이지…….”
이어지는 유지수의 설명은 이러했다.
-시험(Mission): 루마드 집정관의 배후를 조사하라.
이것이 24회차에서 유지수 팀이 받은 시험이었다.
유지수 팀은 이 시험을 24, 25회차 연속으로 실패를 했다.
암살도 아니다.
그저 뒷조사였을 뿐인데, 유지수 팀 같은 베테랑 시험자들이 연속으로 실패를 맛본 것이다.
나는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타락한 시험자들이 개입했겠네요.”
“맞아.”
“하지만 시험은 그 점도 감안해서 주어졌을 거예요.”
“알고 있어. 우리도 타락한 시험자들의 방해를 예상하고 대비했어. 중국 시험단이 해적단을 손아귀에 넣고 아만 제국에 강한 입김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런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내가 재차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진혁이 대신 대답했다.
“주의해야 할 적은 중국 시험단이 아니라 TUK 놈들이었어.”
“TUK?”
그건 또 뭐 하는 작자들이지?
내 의문에 옆에 있던 차지혜가 설명해 준다.
“Testers of United Kingdom의 약자입니다.”
“영국이요?”
“그렇습니다.”
휴우, 다행히 바로 알아 맞혔다. 저질 영어 실력 때문에 순간적으로 미국을 먼저 떠올렸거든.
“TUK, 그 영국의 기관이 시험을 방해했단 말이에요?”
“응, 확실해. 이번 시험 때문에 정보고 서로 공유한 사이이고 해서 방심했는데 갑자기 적으로 돌변했어.”
“그 개자식들 때문에 지용이가…….”
차진혁이 이를 갈았다.
그제야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유지수 팀의 또 다른 멤버의 이름이 바로 이지용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TUK가 유지수 팀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흘렸고, 결국 유지수 팀은 적의 함정에 빠져 이지용이 죽는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TUK는 영국 왕실과 귀족 가문들이 후원하는 기관입니다. 투자의 성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해서 마정 응용 기술의 상용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차지혜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마정 응용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험이 계속 유지되어야 했다.
때문에 TUK가 시험의 최종 목적에 접근해 가는 유지수 팀을 공격한 것이다.
“그럼 영국과 뜻이 같은 기관들도 중국 시험단처럼 흑마법사들의 편을 들 수 있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시험이 계속되길 바라는 건 아레나 관련 사업에 투자한 전 세계 자본가의 공통적인 바람입니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달리 다른 나라 기관들은 지금까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노골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국이 대놓고 행동을 개시하다니.
‘아마도 우리가 해적단에 접근했기 때문이겠구나.’
7회차 때 나는 오딘 일행과 함께 데포르트 항구를 습격한 해적을 격퇴하고 인근에 은둔하여 공작을 벌이든 흑마법사 존 오멘토를 사살했다.
그 일로 시험의 최종 목적이 클리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 세계 아레나 기관에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때문에 TUK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이 마각을 드러냈고 말이다.
“그래서 저더러 다음 시험을 도와달라는 건가요?”
내 물음에 유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네 시험을 봐야 하니 아레나에서까지 우리를 봐줄 여유는 없잖아.”
“그럼요?”
“현실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를 지켜줘. 일단은 그거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