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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5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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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50화

 

우리는 섬을 하나씩 점거해 나갔다.
저항하는 해적을 전부 사살하고 해적선을 눈에 보이는 족족 격침시켰다. 선착장과 다른 섬과 이어진 다리까지 전부 부쉈다.
그 후에 다른 섬으로 이동해서 같은 일을 반복.
섬 몇 개를 같은 방식으로 토벌하니, 일방적으로 당하던 해적들도 서서히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실프를 시켜서 정찰해 보니 해적선과 해적들이 군도 북부에 위치한 커다란 섬에 집결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결전을 치를 요량인 듯했다.
‘나야 좋지.’
모여 있으면 한 번에 몰살시킬 수 있다. 총알도 넉넉하고 오히려 편했다.
‘숲으로 유인해 볼까?’
쌍권총 난사도 좋지만 총알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숲을 불태워서 많은 숫자를 처치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이 말을 하니 차지혜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군도를 돌며 모든 배를 격침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
“해적선과 함께 식량창고도 불태워 없애면 번거롭게 싸우지 않아도 자연히 해적군도를 토벌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보름만 놔둬도 해적들은 알아서 보트나 뗏목을 타고 이 군도에서 탈출할 겁니다.”
“…….”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해서요.”
차지혜가 제시한 작전은 총알 낭비를 막고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는 방책이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쓰다듬어도 될까요?”
“……왜 쓰다듬습니까?”
“잘했다고 칭찬해 줄려고요.”
“필요 없습니다.”
이젠 칼같이 거절하는 차지혜도 귀여웠다.
“일단 놈들의 배부터 격침시킬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기동력부터 빼앗아야 하니 말입니다.”
함께 배에 올라타면서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냥요. 좋죠?”
“안 좋습니다.”
“좋잖아요.”
“안 좋습니다.”
표정 하나 안 변하는 차지혜였다. 그러면서도 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는다.
배를 타고 해적군도를 시계 방향으로 우회하며 나는 해적선을 보이는 족족 AW50F로 저격했다.
단 두 방.
마스트 두 개를 쏴서 나란히 쓰러뜨리면 된다.
혹시 몰라서 한 방을 더 쏴서 배 하단부에 큰 구멍을 뚫어버렸다. 침수되면서 해적선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한 척, 두 척, 세 척…….
계속해서 해적선이 가라앉았다.
선착장에 정박된 해적선도 여지없이 격침시켰다.
그제야 해적들은 부랴부랴 배에 올라타 나를 피해 군도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냐아앙!
섬 옆을 지날 때, 주위를 정찰하던 실프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절벽 위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실프가 보내오는 정보를 머릿속으로 전달받았다. 상급 정령술의 효능이었다.
“절벽 위에 해적들이 숨어 있네요.”
“매복 공격을 준비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잠깐 다녀올 테니 노를 젓고 계실래요?”
“제가 가겠습니다. 실프로 저를 올려주십시오.”
“좋아요.”
나는 실프를 시켜서 그녀를 힘껏 위로 띄워 올렸다.
차지혜는 공중을 날아오르며 해적들이 매복한 절벽 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절벽 위로 착지하면서 그녀는 허리춤에서 쌍곡도를 뽑아 들었다.
나는 실프를 통해 절벽 위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석궁, 활 따위를 가지고 절벽 위에 엎드려 숨어 있던 해적들이 차지혜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차지혜는 가차 없이 쌍곡도를 휘둘러 해적들을 베어 죽였다.
“으아악!”
“아악!”
“커헉!”
무서운 칼부림.
마치 붉은 꽃이 피어나듯 그녀의 주위가 피분수로 장식되었다.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체력보정 상급 1레벨과 인공근육슈트의 증폭 효과가 발휘되어 강한 힘이 실렸다.
해적들은 여지없이 썰려 나갔다.
순식간에 매복한 해적들을 정리한 그녀는 거침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내 지시를 받은 실프가 차지혜를 받아들어 돛단배로 옮겨주었다.

***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났다.
해적단은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해적선을 전부 잃고 식량창고까지 불타버리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더 무서운 점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적의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헤이싱 총수님을 죽인 그놈이 분명해!”
“빌어먹을! 식량도 배도 없는데 이젠 어떡하란 말이야!”
“악랄한 놈!”
“우릴 이 섬에서 굶겨 죽일 작정인 거야.”
공포에 질린 해적들에게서 한탄과 성토가 터져 나왔다.
해적단의 각 선장들도 다급히 모여 대책을 상의했는데, 달리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끝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군.”
건장한 체구에 여기저기 흉터가 있는 노인이 말했다.
임시 총수 브레멘.
그는 헤이싱을 비롯하여 강력했던 간부들이 대거 살해당하고 난 뒤에 임시로 총수가 된 사내였다.
그는 해적단에서 가장 오랫동안 선장으로 활약했던 연장자이기도 했다.
“총수님, 그럼 이제 우리 해적단은 끝장난 겁니까?”
“이, 이렇게 허무하게요?”
“그럴 순 없다고요! 그럼 우린 이제 어쩌라고요?”
“그보다는 당장 살아날 길부터 찾아봐야 해!”
“제기랄, 총수님 말씀이 옳아. 헤이싱 전 총수님도 없고 배도 깡그리 참몰됐어. 이제 해적단으로서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선장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울분을 터뜨렸다.
대륙 서쪽의 바다를 지배하며 악명을 떨쳤던 해적단.
오러 마스터였던 전 총수 헤이싱을 비롯하여 저마다 강력한 힘을 지닌 간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해적단은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검은 머리와 황색 피부를 가진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해적단을 장악하고서 지금껏 이끌어왔다.
그들은 강대한 무력을 바탕으로 육지까지 진출, 군대와 맞붙어도 지지 않아 승승장구를 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재물을 모았다.
하지만 헤이싱은 얼마 전의 데포르트 항구 전투에서 죽었다.
해적단은 형편없이 패퇴하였고, 해적군도에 돌아오자 남은 간부들도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모조리 살해당했다.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던 해적단이었지만, 새로운 총수를 뽑고서 반년에 걸쳐 간신히 재정비를 하였다.
그런데 이제 막 혼란기를 벗어났다 싶었을 즈음에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헤이싱을 죽이고 데포르트 항구를 지킨 장본인의 습격이었다.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 배를 한 척 한 척 침몰시켰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식량창고에 불을 질러버렸다.
식량창고를 지키고 있던 해적들은 적을 보지도 못했다고, 갑자기 불이 붙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마디로 유령 같은 자였다.
해적단은 전의를 잃었고, 임시 총수 브레멘은 결국 최후의 선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적단을 해체한다.”
“크흑!”
“이렇게 허망하게……!”
해적단과 인생을 함께하였던 선장들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임시 총수 브레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신들 추슬러라. 이 군도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아직 해체된 게 아니다.”
격침당하지 않은 작은 배를 최대한 모으고, 나무를 베어다가 뗏목을 만드는 등 군도 탈출을 준비하자는 지시사항이 내려졌다.
식량도 없는 이곳 해적군도에서 가만히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선장들이 각자 부하들을 통솔하기 위해 흩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이제 이곳도 끝이군.”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평범한 해적으로 보이는 행색이었지만 햇볕에도 그을리지 않은 창백한 안색이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럼 이곳에서의 내 역할도 이걸로 끝이라는 것이군.”
창백한 청년의 혼잣말이 끝났을 때였다.
우우우웅!
청년에게서 어떤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은 해적군도의 사방으로 퍼져 나갔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뭐, 뭐야 저게?!”
한 해적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뭔데 그래?”
“어? 저, 저거……!”
그제야 다른 해적들도 해안가를 보며 덩달아 경악했다.
“끄으으…….”
“으아아!”
“하으으으으……!”
“우우우……!”
시체들이 괴이한 신음을 흘리며 바다 속에서 육지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다리 하나가 없어 기어 다니는 좀비도 있어 더욱 흉측함을 연출했다.
“조, 좀비다!”
“좀비가 나타났어!”
해적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기도!”
“여기도 나타났다!”
“사방팔방에서!”
그랬다.
해적군도의 모든 방면에서 좀비 떼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수천, 수만,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해적들을 보며 창백한 안색의 청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희는 위대한 대업을 꽃피우기 위한 비료가 되리라. 허니 그만하면 값진 죽음이 아니겠느냐. 살아 나가 버러지 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청년은 인적 없는 곳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좀비 떼는 해적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아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살려줘!”
“대체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해적들은 도망칠 곳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해적군도의 모든 섬 모든 방향에서 꾸역꾸역 좀비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다 속에 잠겨 있었던 듯 온갖 해산물을 몸에 걸친 채 기어 올라오는 좀비 떼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일부는 작은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바다 깊은 곳에서 팔 여러 개가 수면 위로 튀어 올라와 배에 매달렸다. 바로 좀비 떼였다.
“으아악!”
“저리 가, 이 새끼들아!”
하나, 둘, 셋, 넷…….
매달리는 좀비들이 많아지자, 작은 배는 기울어지더니 끝내 뒤집혀 버렸다. 해적들은 채 헤엄을 쳐보기도 전에 좀비들에게 붙들려 함께 수장되어 버렸다.
그렇게 해적군도는 급속도로 지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의 청년은 더 이상 살아 있는 해적들이 보이지 않자 다시금 해안가로 나타났다.
수많은 해적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좀비 떼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를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너희 모두 비료가 되어라.”
그리 말하며 청년은 하늘로 양손을 뻗었다.
파아아아앗!
막 죽은 해적들의 시체에서 반딧불처럼 하얀 빛의 부스러기가 흘러나왔다.
수많은 빛의 부스러기가 하늘에 계속 모여들었다.
죽은 시체에서는 여지없이 그러한 빛의 가루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영혼의 파편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시체에 영혼의 잔흔이 남는다.
이 영혼의 파편을 모으고자 청년은 좀비 떼를 불러 대살육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윽고 한데 모인 영혼의 파편들은 주먹만 한 덩어리가 되어서 청년의 손에 들어왔다.
“이 정도인가.”
청년은 별 감흥 없이 영혼의 파편 덩어리를 품속에 넣었다.
“영혼의 파편을 모으기 좋은 루트였는데 이렇게 끝이 나서 아쉽군.”
그는 오랫동안 이곳 해적군도에서 활동해 왔다.
생명의 나무 같은 예외를 빼면, 영혼의 파편을 가장 많이 남기는 생명체는 인간·엘프 등이었다.
해적들은 여러 곳을 누비며 사람을 죽여 왔다. 때문에 해적단은 영혼의 파편을 모으기가 아주 좋은 중요한 루트로서 관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나고 말았다.
“그럼 대업의 새로운 방해꾼을 처치하러 가야겠군.”
청년은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크아아!”
“으어어!”
좀비 떼가 그 뒤를 따랐다.
“으으으!”
“흐으으……!”
좀비 떼에게 살육당한 해적들마저 좀비가 되어 일어났다.
모두가 청년의 뒤를 따랐다.
“시험자 김현호라고 했던가? 그자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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