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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4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43화

 

박진성 회장과 김병호 비서실장의 말을 들은 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이 아레나 관련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마정 응용 기술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간 조직은 미국의 맥런 가문.
전에 내가 치료해 주었던 스미스 맥런 회장의 사업체였다. 세계 1위 랭커인 데이나 리트린도 맥런 회장 측이었다.
마정 획득량·보유량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중국 시험단.
13억 인구를 가진 대국답게 시험자의 숫자도 가장 많았고, 해적질까지 하는 등 온갖 짓으로 마정을 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헤이싱 일파의 전멸로 시험자 숫자가 반 토막이 났지만, 이 순위는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밖에도 오딘이 있는 노르딕 시험단이나 인도,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기관도 세계 고위 랭커 시험자를 많이 보유했다.
그렇듯 수많은 강자가 존재하는 세계 아레나 업계에서 한국아레나연구소의 위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랬던 한국이 이제 진성그룹의 아레나 사업체와 통합하여서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높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랭킹 7위에 오른 내가 필요하다 이거지?’
아마도 간판 에이스 같은 시험자로 나를 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난 이미 진성그룹과 계약이 되어 있었다.
내가 획득한 마정을 진성그룹에 판매한다는 계약이 되어 있다. 진성그룹과 한국아레나연구소가 통합된다면, 자연스럽게 내 소속도 한국아레나연구소로 옮겨지는 것이다.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원하는 거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김병호 비서실장이 말했다.
“현재까지 획득하신 마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시험 클리어에 집중하느라 마정 취득에 별로 신경을 안 썼다. 마정을 얻으려고 열을 올릴 이유도 없고.
“저희는 김현호 씨가 보다 적극적으로 높은 등급의 마정을 획득해 주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잘 알고 지내시는 시험자 오딘의 경우 아레나에서 지체 높은 대영주로 군림하고 있지요. 그처럼 김현호 씨도 아레나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립해서 다른 한국 시험자들의 활동이 용이해지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두 분과 같은 뜻을 갖고 일할 수가 없겠네요.”
“왜입니까?”
“전 사업가가 아니니까요. 아레나에서 싸우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
“두 분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전 다시는 누구도 아레나에 갈 일이 없게 만들 겁니다.”
할 말을 잃은 두 사람에게 내가 일침했다.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전 시험을 끝까지 클리어할 겁니다. 그걸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겁니까?”
“…….”
“목적 자체가 서로 정반대인데, 눈 가리고 아웅 하며 한 배를 타자고요? 그게 얼마나 진심성이 있겠으며, 얼마나 오래 갈까요?”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박진성 회장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잖아. 네가 시험을 전부 클리어하면 다른 시험자들까지도 전부 시험으로부터 해방된다, 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그렇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조합해 보면, 모든 시험자의 시험이 한 가지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되죠. 그래서 시험을 포기하고 돈 벌이에 몰두하는 타락한 시험자들이 생긴 거고요.”
“아무튼 간에 그 시험을 완전히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겠어?”
“그 이후는요?”
“각자의 길을 가는 거지.”
“제가 걱정되는 건 한 가지예요. 정부와 진성그룹이 마정 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그런데 나로 인해 앞으로 영원히 마정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절 가만히 내버려 둘 건가요? 돈 몇 푼 때문에 제 신상정보를 중국에 팔아먹은 작자도 있는 마당에요?”
“우리 정부가 김현호 씨에게 위해를 가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전 그걸 못 믿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두 분 다 시험을 끝까지 클리어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말은 안 하시잖아요. 그걸 원치 않는 거잖아요?”
“…….”
“…….”
김병호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박진성 회장도 결국에는 투자자인 것이다.
시험자의 안위보다 투자이익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얘기해 봐야 입장 차이만 확인할 뿐이겠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지혜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운전하던 차지혜가 문득 말했다.
“뭐가요?”
“어째서 그렇게 시험을 클리어하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시는 건지 말입니다.”
“…….”
“이제 김현호 씨는 강합니다. 시험 클리어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딱히 아레나에서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어 보입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오히려 시험을 보겠다고 덤비는 쪽이 더 위험하지.
지난번 8회차 시험도 그랬다.
해적의 습격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데포르트 항구를 떠났다면 위험할 일도 없었겠지.
오히려 나는 자진해서 목숨 걸고 싸우는 셈이었다.
“시험을 클리어하지 않고 시험자 신분과 스킬을 유지한다면, 계속 높은 수익과 대우를 받으며 사실 수 있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있으시니 마정 벌이 때문에 중국 시험단처럼 더러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렇겠죠.”
“그런데 왜 시험을 굳이 클리어하고 싶으신 겁니까?”
“…….”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어떤 사명감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내가 뭐 정의감에 타오르는 히어로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냥 싫은 것 같아요.”
“아레나가 말입니까?”
“네, 팀원들이 죽는 걸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처럼 살아남은 시험자보다는 죽은 시험자가 훨씬 많은 테니까요.”
“그럴 겁니다. 제가 한국아레나연구소에 있을 때도 살아 있는 시험자보다 죽은 시험자를 더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율법과 천사들이 하는 일이잖아요.”
“…….”
“율법은 신이나 진리 같은 절대적인 존재잖아요. 시험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지금껏 치른 모든 시험은 다 정답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 그걸 믿는 거예요. 아무리 인간이 시험을 이용하려 들어도, 그것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타락한 시험자들이 생겨나고, 현실세계의 각국에서 시험을 이용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따져보면 이것조차도 율법의 안배라고 봐야 옳다.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시험을 치른다.
계속 클리어해서 정답을 보고 말 것이다.

***

부천에 돌아와 주차장에 들어왔을 때였다.
차를 주차해놓고 내렸을 때, 사내 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검은 곱슬머리와 짙은 갈색 피부로 보아 동남아시아 쪽 사람으로 보였다.
“바람의 가호.”
낯선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접근해 오자 나는 일단 바람의 가호를 펼쳤다.
차지혜도 오러를 끌어올렸는데, 다행히 두 외국인 사내는 싸울 의사가 없어 보였다.
“안녕하시오.”
“우린 적이 아니니 경계하실 것 없소.”
두 사내는 아레나어로 말했다.
하지만 두 사내가 시험자라는 사실을 알자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둘 중 키 크고 잘생긴 사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레나 인 인디아의 시험자 크리슈나요.”
아레나 인 인디아?
차지혜가 나직이 귀띔해 주었다.
“인도의 아레나 기관입니다.”
인도?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크리슈나라는 잘생긴 인도인 사내와 악수를 했다.
이어서 이번에는 키가 작고 체격이 다부진 인도인 사내도 손을 내민다.
“인도 시험단에서 왔소. 라브라 부르시오.”
인도 시험단? 이건 또 뭐야?
악수를 하면서도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레나 인 인디아는 뭐고 인도 시험단은 뭐죠?”
“저희 아레나 인 인디아는 인도 정부가 정식으로 시험자를 지원하는 공식기관입니다.”
“저희 인도 시험단은 순수한 시험 클리어와 생존을 위해 시험자들끼리 뭉친 조직입니다.”
경쟁적으로 설명하는 걸 보니 양측이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근데 듣기에는 아레나 인 인디아는 마정 사업 및 이익을 위한 단체 같고, 인도 시험단은 노르딕 시험단처럼 순수하게 시험 공략을 위해 뭉친 듯했다.
자연스럽게 인도 시험단 쪽에 더 호감이 들 무렵이었다.
차지혜가 말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입니다.”
“아…….”
그제야 나는 상황 파악이 됐다. 어느 쪽이 더 옳다 그르다 판별할 게 아니라는 거로군.
두 사내도 차지혜의 일침에 겸연쩍어진 듯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무슨 볼일이시죠?”
“김현호 씨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왔소.”
“김현호 씨와 뜻을 함께하고 싶소.”
크리슈나와 라브가 동시에 말했다.
서로 곁눈질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잊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 일이 점점 많아지겠군.’
내 이름과 랭킹이 공개되었으니, 앞으로도 이런 영입 제안이 많을 터였다.
일단은 그들에게 거절 의사를 밝히며 돌려보냈다.
그들은 자기네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나를 우대해 준다며 강조를 했다.
1천억 원대의 연봉도 제시했지만 돈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난 줄 알았는데, 크리슈나가 돌아왔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겠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나 보군요.”
“그렇소.”
난 대번에 용건을 알아맞혔다. 내게 볼일은 그 두 가지거든.
“미 달러 기준으로 2억 불입니다. 치료 기간은 2주, 치료를 행하는 장소는 한국입니다.”
나는 지난번 맥런 회장을 치료하면서 나름대로 정한 기준을 그대로 말했다.
“치료 기간은 가타부타할 수 없지만, 가격도 너무 비싸고 그분께선 거동이 불편하시오.”
“제 휴식 시간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2주가 넘는 기간을 타국에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인도는 좋은 곳이오. 방문하시는 2주간 극진히 대접하겠소.”
“죄송합니다. 어떤 점도 타협이 불가합니다. 승낙 혹은 거절로 대답해 주십시오.”
크리슈나는 나직이 신음했다.
“돈은 어떻게 받길 원하시오?”
“전액 치료 전에 제 스위스 계좌로 입금받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생각나서 덧붙였다.
“카르마로 대신 지불하신다면 5천 카르마만 받겠습니다.”
“5천 카르마? 될 것 같군. 좋소, 그럼 카르마로 대신 지불해 드리리다.”
“요즘엔 카르마 구하기가 쉽지 않던데 가능한가요?”
“일가족들을 위해서 많은 돈을 남기고 싶어 하는 시험자는 늘 있소. 그리고 인도도 중국만큼이나 시험자가 많소. 이젠 중국 시험단보다 더 많고.”
하긴.
인도도 인구수로 따지면 중국에 비견되는 국가였지.
“아무튼 일단 돌아가 보고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크리슈나가 떠났다.
현재 내게는 16,000카르마가 남아 있었다.
만약 이번 거래로 5천 카르마를 더 획득하면 정령술을 올리든 다른 스킬 하나를 마스터하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카르마 보상을 어떻게 할지 더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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