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3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32화
배는 순풍을 타고 쭉쭉 나아갔다. 빈센트는 돛을 조종하며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어디 보자.”
빈센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절반쯤 왔군요.”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암초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표식도 없이 그냥 푸른 바다뿐인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항행 시간으로 거리를 재는 건가?”
빈센트는 껄껄 웃었다.
“허헛, 먼 바다에 나갈 때나 그렇지요. 여긴 앞마당인데, 배 위에서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도 어딘지 알 수 있습죠.”
“그게 가능하다고?”
“평생 바다에서 살다 보면 그게 가능해집디다.”
유쾌하게 웃으며 빈센트는 노를 저었다.
목숨 걸고 싸우러 가는 길인데도, 그는 밝은 얼굴이었다.
정말 대범한 사람이군.
과연 사람들의 인망을 얻을 만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착했습니다.”
빈센트가 말했다.
“이곳을 해적들이 지나간다는 뜻인가?”
“예, 틀림없이 여기서 육안으로 확인될 겁니다.”
“그런데, 혹시 헤엄은 잘 치나?”
내가 물었다. 연장자한테 말을 놓으려니 아직도 영 어색하다.
빈센트는 껄껄 웃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 선조가 생선이라고 해도 믿으실 겁니다.”
“싸움 중에 배가 뒤집힐 정도로 흔들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게.”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빈센트는 한가롭게 낚싯대를 꺼내 낚시를 시작했다. 정말 대범한 사람이다.
잠시 후 낚아 올린 커다란 물고기를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식사나 하시겠습니까?”
“좋지.”
“본래는 구워먹어야 제맛이지만 그냥 생으로 먹어도 쫄깃하니 좋습니다.”
아레나 세계에서도 회 같은 개념이 있는 모양이었다.
“구우면 더 맛있나?”
“예, 그런데 여기서 불을 피우기도 번거롭고, 연기 때문에 해적들 눈에 띱죠.”
“내가 구울 수 있는데. 실프, 카사!”
나는 두 정령을 소환했다.
-냐앙.
-멍!
“생선을 구워줘. 실프는 연기가 안 보이게 흩뜨려 주고.”
두 정령은 순식간에 명령을 이행했다. 카사가 굽고, 실프가 연기를 없앴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생선.
“오, 정말 제대로 구워졌군요.”
빈센트는 신이 나서 접시 세 개에 생선을 잘라 나눠주었다. 워낙 큰 생선이라 셋이서 나눠 먹어도 충분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일까.
우리는 평화롭게 도란도란 식사를 마쳤다.
“이제 슬슬 오는군요.”
빈센트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응시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시력보정 초급 1레벨로 시력이 1.0이 됐는데도 점 하나 안 보였다.
차지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열심히 응시하는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했다.
“허허, 제가 시력이 좋습니다.”
늘 바다 먼 곳을 바라보는 어부들이 시력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실프를 재소환해 빈센트가 가리킨 방향으로 보냈다.
실프가 바라보는 풍경이 머릿속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단편적인 이미지가 전달되었다면, 이제는 실시간 동영상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가 생각으로 지시를 보내면 그걸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다.
너무 복잡한 명령은 무리지만 정찰이나 돌아오라는 것처럼 간단한 지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내릴 수 있었다.
정령들이 상급으로 진화하면서 그만큼 나와의 동화율도 높아진 것이다.
나는 실프를 통해서 해적선들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해적선이 쐐기꼴 대형을 이루며 항해하고 있었다.
숫자를 헤아려 보니 무려 32척.
엄청난 숫자의 위풍당당한 행진이었다.
저 정도면 일반적인 해적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 시험단 때문이야.’
중국 시험단이 합류하고서 해적들이 저토록 성장한 것이다.
아만 제국의 권력자들과, 그리고 흑마법사들과 결탁해 카르텔을 형성한 것도 중국 시험단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장, AW50F.”
AW50F가 소환되었다. 워낙 무거운 총이라 돛단배가 살짝 흔들렸다.
빈센트는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쇳덩어리에 놀란 얼굴이었다.
적당히 균형을 잡고 서서 총을 들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체력보정 중급 5레벨에 인공근육슈트까지 입고 있어서 총의 중량이나 반동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작은 배 위라서 균형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와라.’
나는 적당한 거리로 해적선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현실 세계에서 현존하는 저격 최장거리 기록은 호수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세운 2,815m.
그 기록에 사용된 소총은 내 것과 마찬가지로 12.7㎜ 구경 대물저격소총인 바렛 M82A1이었다.
아마 나라면 5㎞ 넘는 거리도 가능하겠지. 탄약보정 마스터에 정령술이 결합된 사격술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에 타격을 줄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발휘하려면 거리가 좀 더 거리가 가까울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내 눈에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워낙 화창한 날씨라 먼 거리임에도 해적선들이 잘 보였다.
‘쐐기꼴 대형을 이루고 있으니, 선두에 선 배부터 타격을 줘야겠군.’
나는 선두함의 앞쪽 마스트(Mast)를 조준했다.
“실프, 카사. 사격 준비.”
-냐앙.
-왈!
두 정령이 내 양어깨에 앉았다. 큼직한 것들이 위에 올라타 있었지만 무게가 없었기에 사격 자세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실프, 총성을 차단해 줘.”
-냥.
실프가 꼬리로 내 뺨을 툭 치며 알았다는 표시를 해왔다. 귀여운 것.
특별히 조준에 공들일 필요는 없었다. 실프가 꼬리로 총을 움직여 방향을 조정해 주자 나는 즉각 방아쇠를 당겼다.
푸슈욱―!
탄환이 우렁차게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실프의 힘으로 회전력이 무섭게 강화된 탄환은 해적함대 선두함의 앞쪽 마스트에 작렬했다.
육중한 충격과 함께 마스트가 기우뚱거렸다.
커다란 돛이 달린 마스트 하나가 쓰러지자 해적선이 흔들거렸다.
‘좋아, 한 발 더.’
이번에는 뒤쪽의 메인마스트를 쏘았다.
푸슈육―!!
여지없이 메인마스트도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돛을 잃어버린 해적함대 선두함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요동쳤다.
두 개의 마스트가 쓰러진 방향으로 배 자체가 기울어 버린 것이다.
‘아, 마스트 두 개가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지면 배를 기울어뜨릴 수 있겠구나.’
나는 내 생각을 실프에게 전달했다. 실프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함이 그렇게 멈춰 버리자 해적함대의 대형이 흐트러져버렸다.
나는 다음 타깃을 골라 여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잇달아 두 번을 쏘자, 마스트 두 개가 가지런히 왼쪽으로 쓰러지며 해적선도 덩달아 왼쪽으로 기울었다.
해적선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해적들이 보트를 내리고 바다로 뛰어들어 피신했다.
총알 두 발로 배를 가라앉게 만들다니, 짜릿한 성취감이 든다.
“정말 대단하군요.”
빈센트가 놀라 멍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빈센트에게 말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겠군. 놈들이 우릴 쫓아올 테니까.”
“예, 예!”
빈센트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면서 나는 다시 다음 타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여지없이 미스트가 쓰러졌다.
벌써 항해가 불가능해진 해적선이 세 척이었다.
***
“무슨 일이냐?”
갑판으로 나온 헤이싱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총수님!”
해적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헤이싱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중국 시험단의 해적 파트장 헤이싱.
아레나에서 그는 해적군도를 지배하는 총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헤이싱은 전황을 살폈다.
쐐기꼴 대형을 이루어야 할 함대가 엉망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게다가 세 척은 쓰러져서 침몰 중. 타고 있던 해적들이 바쁘게 탈출하는 등 혼란의 도가니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
헤이싱이 물었다.
그러자 선장모를 쓰고 있는 중년 사내가 다가와 보고했다.
“공격을 받아 선두에 있던 세 척이 침몰했습니다.”
“적은?”
“그게…… 대체 어떤 적에게 무슨 공격을 받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푸슈육―!!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온 소리가 들리더니,
빠지직!
바로 그들이 타고 있던 배의 앞쪽 포어마스트(Foremast)가 부서져 오른쪽으로 쓰러져버렸다.
“으아악!”
“우리 차례다!”
돛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마스트가 쓰러지자 해적들은 난리가 났다.
헤이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놈이군.”
헤이싱은 김현호의 저격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다만 의외인 것은 저격소총의 위력이 마스트를 한 방에 부숴 버릴 정도라는 사실.
“총수님, 저, 저기!”
메인마스트의 파수대에서 관측을 하던 해적이 소리쳤다.
해적이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보니 무언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작은 돛단배 한 척으로 보였다.
“저기서 공격하는 거다.”
헤이싱이 선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라.”
“옛!”
이윽고 돌격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적선들이 일제히 전진했다.
하지만 헤이싱이 타고 있는 해적선은 포어마스트가 박살나서 제대로 항행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콰지직!
또 한 발의 총알이 메인마스트마저 박살 내놓았다.
나무기둥이 움푹 패여 버리더니, 메인마스트가 도끼에 찍힌 나무처럼 기울었다.
“으아아악!”
메인마스트 파수대에 있던 해적이 추락하며 비명을 질렀다.
쿠우웅!
메인마스트가 결국 완전히 쓰러져 버렸다.
포어마스트와 메인마스트가 나란히 오른쪽으로 쓰러지자, 해적선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으아악!”
“꽉 잡아라!”
해적들이 기울어진 쪽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균형을 잡고 있는 헤이싱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부서진 마스트를 붙들고 매달린 선장에게 한마디 남겼다.
“알아서 잘 수습해라.”
“예, 옛?”
헤이싱은 있는 힘껏 점프했다. 그의 신형이 새처럼 하늘로 떠올랐다.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그렇게 헤이싱은 사라져 버렸다.
선장은 침몰하는 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엄두를 못 느꼈다.
한편, 옆 배로 옮겨온 헤이싱은 중국 시험단 소속 시험자들에게 소리쳤다.
“마스트를 둘러싸 보호해라! 총이 마스트를 노린다.”
“옛!”
방어력에 강점을 가진 타락한 시험자들이 방패를 들고 포어마스트를 보호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총알이 날아오는 걸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총알이 어디에 적중되는지 미리 알고 방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콰지지직!
총탄은 시험자들의 키로 닿을 수 없는 높은 지점에 적중되었다.
마스트를 둘러싸 보호했던 시험자들은 우지끈 하며 쓰러지는 포어마스트를 멍청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헤이싱은 혀를 찼다.
이대로 가다가는 김현호 한 놈 때문에 해적선단이 전멸할 것 같았다.
“마법사들은 방어마법으로 마스트를 보호해라! 그리고 속력을 좀 더 높여!”
“옛!”
메인스킬로 마법을 익힌 시험자들이 방어 마법을 펼쳤다.
“보트를 하나 내려라!”
해적들이 분주한 와중에도 작은 보트를 내렸다.
헤이싱은 시험자 한 명과 함께 보트로 뛰어내렸다.
“노를 저어라.”
“옛!”
시험자가 시키는 대로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헤이싱은 전방 멀리를 노려보았다.
‘이참에 내 손으로 요절을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