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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3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30화

 

“실은 주군과 함께 이곳까지 온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말문을 열었다.
“최근 흑마법사들이 대륙 각지에서 암약하며 알게 모르게 온갖 패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흑마법사? 그게 사실이오?”
아젠 연대장이 뜬금없다는 듯이 물었다.
“전혀 관련 없는 문제 같지만, 사실 어떤 곳보다 바로 이곳 데포르트 항구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데포르트 항구를 비롯해 인근의 수많은 해안 도시가 습격을 받았었지요?”
“그렇소. 덕분에 서부 해안에 인접한 아만 제국의 모든 도시가 비상이 걸려 있소. 그런데 그게 흑마법사와 무슨 상관이오?”
“해적들과 흑마법사들이 손을 잡았으니까요.”
“그, 그게 무슨?”
“해적들은 재산과 마정을 약탈하기 위해 습격을 했고, 흑마법사들은 많은 시체를 원했습니다.”
“시체…… 시체……!”
아젠 연대장은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지 두 눈을 부릅뜬다.
“항구 수비에는 소홀한 앗셀 집정관이 유독 뒤처리는 신속했지요?”
“그, 그랬소. 앗셀 집정관의 명령을 받은 데커 연대장이 아주 신속하게 뒷수습을 했소. 3년 전에도, 얼마 전에도…….”
“아마 데커 연대장이 항구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빠르게 뒷수습을 해주니 피난 가느라 고생한 사람들이 감격했겠죠.”
“그럼 그렇게 수습된 시체들은 단체로 화장되는 게 아니라…….”
“흑마법사들이 언데드로 만들어 여러 가지 패악질에 이용되었지요.”
충격적인 사실에 아젠 연대장과 어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순한 해적의 약탈이 아닌, 보다 철저한 계획하에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죽임당했다.
그게 모두 예정된 악의였다는 것이다.
“그럼 그 흑마법사들부터 때려잡아야 하는 게 아니오!”
아젠 연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이곳에 있던 흑마법사들은 이미 처치했습니다.”
“정말이오?”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머나먼 이곳까지 찾아왔는걸요.”
한동안 침묵했던 아젠 연대장이 문득 손을 내밀었다.
“환영하오.”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그렇게 나와 차지혜는 모임에 합류하였다.
이 모임은 3년 전의 습격 이후로 아젠 연대장이 만든 모임이었다.
“그때 해전에서 죽은 병사들의 가족들부터 섭외하고 서서히 구성원을 키워 나갔소. 해적을 물리치려면 뱃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그렇군요. 무엇보다 배가 필요하니까요.”
“바로 그거요. 비록 패장(敗將)이라 할 말은 없지만, 놈들을 이기려면 해전밖에 없소. 해적이라고는 하지만 놈들은 오히려 바다보다 육전에서 훨씬 강력했으니 말이오.”
그렇겠지.
해적들 틈바구니에 중국 시험단의 타락한 시험자들이 끼어 있으니까.
“해적과 싸우기 위한 배를 확보하기 위해 뱃사람들을 섭외하고 계셨군요?”
“싸운다니, 우리끼리는 턱도 없는 얘기요. 당장은 기껏해야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정도요. 해적의 출현을 보다 일찍 알아차려서 빠르게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싶소.”
일리 있는 구상이었다.
노련한 뱃사람들이 순찰 체계를 구축하면 해적의 출현을 일찍 포착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적어도 아젠 연대장은 현실적인 작전 구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나는 결심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대장님, 혹시 집정관과 데커 연대장이 사라진다면 군대를 장악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말 그대로입니다. 두 사람이 없어지면 군대를 장악하고 해적의 상륙을 막을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겠느냐는 얘깁니다.”
“서, 설마…….”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해적과 내통하여 사람들이 죽임당하는 걸 방조한 놈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건…….”
“그렇게 하면 적어도 해적과 맞서 싸운다는 전제조건은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까?”
아젠 연대장의 낯빛이 복잡해졌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하오.”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육전에서는 놈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는 뜻이오. 군대를 전부 결집시키고 뱃사람들을 징집해서 병력을 추가해도 열세요.”
“물론 제게 생각이 더 있습니다.”
의아해하는 아젠 연대장에게 내가 설명을 이었다.
“내가 바다로 나가 놈들을 교란시키겠습니다. 해적들이 최대한 데포르트 항구에 도달할 수 없도록 방해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소. 군함이 부족하오!”
“저 혼자서 충분합니다. 가볍고 빠른 배만 한 척 있다면 말이지요.”
“혼자서?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당신이 울펜부르크 백작님 못잖은 절대강자라도 되오?”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특별한 재주가 있지요.”
그러면서 나는 실프를 소환했다.
-냐앙.
내 어깨 위에 나타난 실프가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헉!”
“저, 저게 뭐야?”
“고양이가 갑자기?!”
어부들이 깜짝 놀랐다.
아젠 연대장은 실프를 유심히 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정령사였소?”
“알아보시는군요.”
“그래, 그래서 아까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멀리서 말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이구려. 바람의 힘으로…….”
“맞습니다.”
생각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군.
이 사내가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실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람의 상급 정령입니다. 바다에서 바람이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하는지 모르시는 분 있으십니까?”
어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항구에서 살아온 뱃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것 말고도 제게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러 가지입니다. 멀리서 적선(賊船)의 돛을 부서뜨려 항해를 못하게 만드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죠.”
“습격해 오는 해적들 중 상당수를 바다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준다면, 남은 해적 전력이 상륙해 온다 해도 군대로 막을 수 있겠구려!”
“그렇습니다.”
“그, 그렇다면……!”
아젠 연대장은 품속에서 작은 종이쪼가리를 꺼냈다. 펼치고 보니 그건 해도였다.
“풍향과 해류를 고려하면 놈들은 이 해로로 이곳에 올 거요.”
그는 열띤 설명으로 작전을 제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류가 변하오. 이때부터는 바람을 타고 가야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놈들의 돛을 부숴 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 수 있소.”
“이 지점이요? 몇 번 가보지 않으면 제가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내가 난색을 표했다.
차지혜 또한 해군 출신이 아니었기에 바다에 대해 거의 몰랐다.
그때였다.
“내 배를 타십시오.”
늙은 어부 빈센트였다.
“비, 빈센트 아저씨?”
“아저씨, 차라리 제가 갈게요!”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젊은 어부들이 나섰지만 빈센트는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이런 일은 다 산 늙은이가 나서야지! 게다가 설마 너희가 나보다 더 배를 빨리 몬단 말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빈센트 아저씨한테 이 일을 떠넘기고…….”
어부들이 난색을 표했다.
내가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뱃사람으로서 우리 항구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도 죽으러 갈 생각은 없습니다. 잘 부탁하지요.”
“이 늙은이야말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같은 늙은 어부 빈센트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며 굽실거렸다.
젊은 어부들은 물론 아젠 연대장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감동의 바다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럼 상륙을 막을 구체적인 전술적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차지혜가 사무적인 어조로 분위기를 깨버렸다.
“아, 그, 그렇구려.”
아젠 연대장이 고인 눈물을 닦으며 허둥거렸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있던 나와 빈센트도 덩달아 뻘쭘해졌다.
하여간 이 여자는 분위기 파악 장애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

데포르트 항구에서 해로를 따라 서쪽 멀리에 떨어진 곳.
그곳에 크고 작은 섬들이 모인 군도(群島)가 있다.
섬들이 로프를 엮어 만든 조악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각 섬마다 배가 몇 척씩 정박되었다.
해적군도.
본래 이 군도에 붙어 있던 명칭은 잊힌 지 오래.
이제는 해적들의 본거지로 악명을 떨칠 뿐이었다.
오랜 세월 해적들이 정착하고 있었으나, 단 한 번도 토벌에 성공한 적 없는 곳!
바로 그 해적군도에 한 척의 배가 유유히 접근하고 있었다.
섬들 사이로 진입한 배는 이윽고 군도에서 가장 큰 섬에 정박했다.
파앗!
배 위에서 한 인영(人影)이 새처럼 뛰어올라 선착장 위에 사뿐히 착지했다.
“오오.”
“과연…….”
선착장에 마중 나온 수십여 무리의 사내들 사이에서 나직한 감탄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 몸놀림에 놀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배에서 뛰어내린 인영이 바로 리창위였기 때문이다.
중국 최강, 비공식 세계 최강의 리창위에게 그 정도 신위는 묘기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리창위.
사내들 중 대표로 한 여인이 달려 나와 고개를 숙여보였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곱게 빗은 흑발이 매력적인 여성의 정중한 인사에도 리창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헤이싱은?”
“두목, 아니, 파트장님께서는 격무 때문에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여인의 대답에 리창위의 입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해적 파트장으로 임명되더니 돌았나. 간이 부었나 보군.”
“죄송합니다. 무, 무례를 끼칠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놀란 여인이 더듬더듬 변명한다.
“너한테 한 말이 아니니 걱정 마, 예쁜이.”
리창위는 여인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며 가볍게 말했다.
여인은 당혹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차마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그녀.
모여 있는 사내들 사이에서 무거운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리창위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지 못했다.
리창위의 도발적인 눈빛이 악마처럼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나 한번 덤벼보라고.
본보기로 삼아주겠노라고.
“흥, 재미없게.”
젖가슴을 놔준 리창위는 여인에게 말했다.
“헤이싱에게 안내해라.”
“예, 예!”
여인은 도망치듯이 앞장섰다.
험악한 분위기 속의 사내들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리창위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을 지날 때마다 사내들이 잔뜩 긴장하였다.
리창위는 최강자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리창위는 안내를 받으며 통나무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에 들어섰다.
2층으로 들어섰을 때, 리창위의 표정이 변했다.
표범가죽으로 장식된 의자에 삐딱하게 몸을 기댄 채 책을 읽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이는 이제 겨우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뒤로 묶은 긴 머리칼과 양쪽 귀에 4개씩 주렁주렁 단 피어싱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격무에 치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군.”
리창위가 말을 건넸다.
“오, 리창위 대장.”
피어싱의 젊은 사내는 여유 가득한 얼굴로 책을 접으며 대꾸했다.
헤이싱.
수년 만에 해적군도를 장악한, 중국 시험단의 해적 파트장.
그리고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리창위의 견제마로 내세운 라이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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