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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2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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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9화


데포르트 항구의 군대는 두 개의 연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한 연대장인 데커라는 자가 바로 여관 주인이 언급한 인물이었다.
“그분마저 없었으면 이 항구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항구 사람들에게 대피령을 내려 피신케 했고, 난리가 끝나고 나면 휘하 병력을 동원해 앞장서서 피해 복구를 한다고 한다.
주인은 데커 연대장에 대한 칭찬을 한참 하다가 사라졌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좀 더 정보를 모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두 연대의 전력, 해적의 지난 습격 빈도 등을 조사해야 합니다. 소문만 듣고서 데커 연대장이란 인물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소문만 믿을 수는 없었다.
지난번 해적 습격 때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민간인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결국 해적들은 바다에서 오는데, 조금만 더 정찰에 신경 썼더라면 더 빨리 알아차리고 대피령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차지혜와 함께 거리로 나가 정보를 더 모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한 여인을 발견했는데, 다섯 살 남짓한 어린 소년과 함께 있었다. 모자로 보였다.
여인은 깊은 수심에 잠겨 있었고, 소년은 손가락을 빨며 기운 없이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먹을 거라고 좀 줄까?’
가여운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인근의 빵집에서 큰 빵을 몇 개 구입했다.
난리 통이 벌어진 뒤라 빵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어볼 게 있다.”
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나보다 어려 보이긴 하지만 초면에 반말을 하려니까 영 어색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귀족이니 귀족답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예……!”
여인은 놀라 허리를 최대한 굽혀 보였다.
일단 나는 빵이 든 봉투를 여인에게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여인은 놀라 빵 봉투를 받아 들었다. 소년도 눈을 반짝이며 빵을 멍하니 쳐다본다.
“해적의 습격을 받은 일이 또 언제 있었지?”
“3년 전 여름에 해적이 공격해 온 적 있었습니다.”
“3년 전 여름?”
“예, 그때 제 아들이 걸음마을 막 뗀 시기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3년 전이라.
‘하긴 매년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사람이 살지 못했겠지.’
해적 놈들도 생각이 있는지 매년 타깃을 바꿔가며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약탈도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때의 일을 자세히 들려다오.”
“예, 그날은…….”
여인은 3년 전의 해적 습격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번 습격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아젠 연대장이 함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대패를 당하는 바람에 해적을 막을 수 없었어요.”
“아젠 연대장?”
“예, 그분이 군함을 전부 잃지만 않았어도 해적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무리한 작전으로 괴멸을 면치 못했다고 들었어요.”
이후로 돌아다니며 탐문해 보니, 모두들 데커 연대장을 칭송하는 한편, 아젠 연대장의 무능을 힐난하고 있었다.
“쯧, 이상한 일입죠. 아젠 그분 참 강직하고 털털한 분이셨는데. 용감한 뱃사람이었단 말입죠. 그렇게 허망하게 해적들에게 대패할 줄이야.”
나이든 어부가 한 말이었다.
실프를 시켜서 항구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남아 있는 군함이 13척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열심히 복구한 것이리라.
‘저걸 가지고 해적들과 싸우기란 불가능하겠지?’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말이지…….
여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탐문 내용을 정리했다.
“군사적인 의미로 보자면, 3년 전 아젠 연대장의 해전 대패가 결정적입니다. 그 후로 해적은 넓은 활동 반경으로 작전을 자유롭게 펼치게 되었습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바다에서 견제할 수단을 상실한 터라, 데포르트 항구는 언제 해적의 습격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게 되었습니다.”
“아젠 연대장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해요. 그 사람이 해적과 내통해서 일부러 패배한 건지, 아니면 정말 물리치려고 한 건지를요.”
“확실히 아젠 연대장이 해적과 맞서 싸운 유일한 사람이긴 합니다. 오히려 신뢰를 얻고 있는 데커 연대장은 이곳에 부임한 후로 한 번도 전투에 나선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부임한 게 3년 전이죠?”
우연치곤 공교로운데.
아젠 연대장보다 오히려 이 작자가 더 수상하다.
“우리끼리 말해봐야 뭔 소용이 있겠어요. 실프를 시켜서 살펴보죠.”
아젠 연대장이라는 작자를 찾아내 실프로 24시간 밀착 감시를 하면 뭔가가 나올 것이다.

***

“쯧쯧, 저 작자는 또 저러고 있군.”
“뭘 잘했다고 저렇게 천하태평인지.”
“해적이 왔을 땐 코빼기도 안 보였지?”
선착장 인근의 작은 술집.
테이블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자는 중년 사내를 보며 사내들이 혀를 찼다.
잔뜩 구겨진 너덜너덜한 군복.
전혀 손질을 안 해 헝클어진 머리칼.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
몰골이 형편없는 이 중년 사내는 바로 연대장 딕 아젠이었다.
3년 전의 패배로 해군을 말아먹고 오늘날의 비극을 초래한 주범으로 꼽힌 그는 해적보다 더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이 술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술집에 모인 사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아젠을 보며 험담을 나눴다.
아젠에 대한 험담이 해적들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고, 다시 모든 게 아젠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밤이 깊고 술집이 문 닫을 때가 되자 주인 사내는 곤란한 얼굴로 곯아떨어진 아젠을 바라보았다.
“에휴, 또 이 모양이군.”
주인은 익숙한 얼굴로 아젠을 업어 들고 술집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 아젠을 버려놓고 주인은 술집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때 한 어부 노인이 나타났다. 늙고 말랐지만 팔다리가 단단한, 전형적인 나이 든 어부였다.
“쯧쯧.”
어부 노인은 술집 문 앞에 버려져 있는 아젠을 업어 들었다.
문을 닫고 있던 술집 주인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빈센트 아저씨? 이제 돌아오셨어요?”
“그래.”
“오늘도 이 양반 뒤처리를 해주시네요.”
“말조심해라. 연대장님께 이 양반이라니.”
핀잔을 들은 술집 주인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빈센트 아저씨가 만날 주워가 주시니까 그 양반, 아니, 아젠 연대장님이 마음 놓고 술 먹고 뻗는 거잖아요.”
“됐다. 들어가 쉬기나 해.”
“참,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우리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에 저렇게 호의를 베푸시는 건지.”
늙은 어부 빈센트는 평생을 뱃사람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배를 타면서 한 번도 비겁하거나 나약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술집 주인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빈센트가 아젠 연대장을 매일 챙기는 게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빈센트는 아젠 연대장을 들쳐 업고 떠났다. 그리고…….
-냐앙.
바람으로 이루어진 늘씬한 고양이 한 마리가 빛나는 눈동자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빈센트는 아젠을 들쳐 업고 한참을 걸었다.
낡은 판잣집에 도착했다.
“오셨어요, 아저씨.”
“수고하셨습니다.”
“아아, 그래.”
사내들이 우르르 나와 그들을 반겼다.
하나같이 체격이 크고 근육이 단단한 어부들이었다.
나이도 젊은이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했다.
좁은 판잣집 안에 촛불 두 개가 간신히 빛을 밝혔다.
빈센트는 아젠을 의자에 앉혀놓고 어깨를 쳐서 깨웠다.
“연대장님,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으음…….”
아젠 연대장은 마구 뒤척였다.
한참을 깨운 후에야 간신히 눈을 뜬 아젠 연대장이었다.
“끄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니 좀 작작 드시지요.”
“술을 마시는 데 ‘작작’이 돼야 말이지.”
어부들이 왁자지껄 웃었다.
아젠 연대장은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앉았다.
“시작하지. 얼마나 모였나?”
“작은 배는 15척까지 모였지만, 큰 배는 선주를 설득하기가 힘들어서 끽해야 5척입니다.”
“군함 13척, 큰 어선 5척, 작은 어선 15척…… 너무 부족한데…….”
아젠 연대장은 고심에 잠겼다.
“군함은 더 건조하지 않는 겁니까?”
빈센트의 물음에 아젠 연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집정관에게 묵살당했다. 3년 전의 패배로 발언권을 상실했으니까. 이젠 내 연대장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
“제길!”
“앗셀 그 나쁜 놈이……!”
“아젠 연대장님께서 어째서 그런 대우를!”
아젠 연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잖나.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니.”
“그 패배가 누구 때문입니까!”
“앗셀 집정관과 데커 연대장 두 놈이 해적들과 내통하는 바람에……!”
“쉿, 조용히 하게. 반역 모의를 하는 집단으로 오인받고 싶나?”
아젠 연대장이 주의를 주자 그제야 격분해하던 어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제가 대화에 참석해도 되겠습니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
모두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냐!”
아젠 연대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대가 답했다.
“저도 여러분과 뜻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모습은 드러내고 대화하는 것이 예의 아니오?”
“물론이지요. 곧 가겠습니다. 5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
모두들 의아해졌다.
말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 웬 5분이란 말인가?

***

실프를 통해 그들의 대화를 들은 나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아젠 연대장이었다.
그가 데포르트 항구에서 해적과 맞서려 하는 유일한 군 지휘관이었다.
“가죠.”
“예.”
나는 차지혜와 함께 그들이 모의를 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선착장이 모이는 작은 판잣집에 도착한 나는 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퉁, 퉁, 퉁.
힘 조절을 했음에도 인공근육슈트 때문인지, 원채 내구력이 약한 건지 문이 삐걱삐걱 흔들렸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건장한 젊은 어부 사내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하면서도 사내는 끝까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다.
아젠 연대장이 우릴 훑어보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연대장 아젠이오. 귀하도 신분을 밝혀주시겠소?”
“울펜부르크 백작가의 가신 킴 준남작입니다. 그냥 킴이라 부르면 됩니다.”
“울펜부르크…… 오딘?”
“예, 둘 다 그분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그렇군. 얼마 전의 해적도 울펜부르크 백작님께서 놀라운 신위로 격퇴해 주셨지!”
“오오, 그 오딘의?”
“그럼 우리 편이 맞는 건가?”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한 어부가 말했다.
“맞습니다! 울펜부르크 백작님과 여관에서 함께 묵던 사람들입니다. 본 적이 있습니다.”
그제야 아젠 연대장의 딱딱한 표정이 다소 풀렸다.
“그럼 적어도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신 분들임은 믿을 수 있겠구려. 그런데 타국의 분들이 선뜻 아무 관련 없는 저희를 돕겠다니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사실이외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군께 격퇴당한 해적이 분노하여 보복해 올 수 있으니 남아서 여러분을 보호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오오!”
“과연 아렌드의 영웅답다!”
기뻐하는 어부들.
하지만 아젠 연대장은 끝까지 신중하게 질문했다.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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